|
2차 대전에 대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경로는 영화들이었다. 2차 대전을 다룬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이 영화화되었다. 가장 많이, 쉽게 접한 것이 대부분 헐리우드 영화였다. 고전영화인 <머나먼 다리>나 <대탈주>같은 헐리우드 작품들은 어린시절 TV에서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극장, 혹은 EBS나 국군의 날 특집으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그런 헐리우드 전쟁영화들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전쟁 중 성공적인 작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점차 전쟁의 승리를 그리는 영화가 아닌 유대인들의 참혹함을 다룬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쟁의 실태에 빗댄 인간성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에 이어 전쟁현장이 실감나는 영화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2차 대전은 끊임없이 많은 이야기로 영화화 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모른다. 몰라서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전쟁이다. 영광스럽지 못한 영웅, 우리 아버지들… 본격적으로 르네 타르디(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작가의 아내 도미니크가 역시나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생활을 겪었던 그녀의 아버지 장 그랑쥬와 시아버지 르네 타르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아버지는 1차대전시대와는 달리 전혀 자랑스럽지 못한 전쟁 패배자였다. 전쟁 전의 청춘들은 전쟁 이후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보상은 커녕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했다. 정부의 잘못은 침묵으로 덮어졌다. 타르디가 아버지의 전쟁포로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올린 것은 그것이 단순히 지나가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식들에게로 이어지는 현실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전쟁에 졌기때문이 아니라 전쟁과정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조국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이유들이 고스란히 영광스럽지 못한 전쟁패배자들의 낙인으로 아버지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르네 타르디는 어차피 입대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원하는 부대를 고를 수 있도록 자원입대해서 전차병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책이믈 지고 싶지 않아 일반병을 선호했다고 했다. 1차대전에서 연합군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겨우 승리했음에도 프랑스는 오만과 나태함에 허무하게 전쟁에서 져버렸다. 전쟁 중 제대로 된 명령이나 보급을 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포로가 된 프랑스군대는 수송열차에 태워져 포로수용소로 이동한다. 문은 감시에 의해 내내 닫혀있었고 몇몇 병사가 돌아가며 열차 바닥을 칼로 뚫어서 용변을 보았고 한다. 빡빡하게 태워진 포로들의 인원이기에 구멍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볼일을 보는 사람들의 오물이 튀기도 했다. 포로수용소에서조차 장교들은 일반병을 차별하는 귀족주의를 보인다.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포로를 수용소로 나르는 수송열차다. 짧게라도 며칠이나 걸리는 수송중에 열차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가 참 많이 궁금했었다. 어느 영화에서는 커다란 통에 사람들이 용변을 보았다가 정차할때 그것을 비우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런 자잘한 것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사람들은 살아갈 여력을 만들어낸다. 오락거리를 만들어내고 통용되는 화폐를 창출해내고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디서든 사람은 살만하다냐고? 아니다. 르네 타르디를 통해 알게 되는 포로수용소의 '생활'은 말 그대로 살아가는 자잘한 생활에 불과한게 아니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으며서도 가장 절실하게 와닿았던 것이 허기였다. 배고픔과 모자란 잠. 가장 원초적인 것들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배제된 중에도 살아야겠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라기보다 죽을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삶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르네 타르디의 포로생활은 유대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밑바닥의 상실의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쟁 포로의 생활이다. 책 속에도 언급되지만 그들의 생활은 그런대로 유대인의 생활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렇다고 그것이 살만했다는 것은 아니다. 수용소에서 빵과 담배는 가장 기본적인 화폐였다. 미국이 참전하면서 미국 포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미국 포로들에 대한 대우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좋았다고 나온다. 적십자의 많은 물자지원에 미국인 포로들은 비교적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국의 능력에 따라 포로들에 대한 대우도 천차만별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수용소의 간이 화장실. 가끔은 나무 기둥이 부러지기도 했단다. ![]() 다섯명당 한 덩어리씩 배급되는 빵을 정확히 나누기위해 사람들은 저울을 만들어냈다. 무게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부피에 집착했단다. 배고픔때문에 르네 타르디는 수용소밖의 농장일에 지원하지만 그것은 르네 타르디의 적성과는 너무나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적성을 운운하는 것이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땅의 냄새와 촉감을 느껴야하는 농부출신의 사람들과 도시에서 자라 기계를 만지는데 익숙했던 르네 타르디의 차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게 만드는 음식들, 하지만 그거라도 먹어야 했고, 병이 걸리면 숯 한덩이가 고작이었고, 강제노동을 피하려고 일부러 관절염에 걸리길 마다하지 않는 모습들에, 수시로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들이다. 그 와중에도 프랑스인 특유의 유머감각이 발휘되는 에피소들도 있었다. 정확성에 철저한 독일군을 골려먹기 위해 프랑스군은 일부러 점호를 틀리게 하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서류작업을 농땡이치다가 며칠씩 걸리던 일을 한시간만에 해치워버리기도 했다. 독일군을 곯리기 위해 몰래 독일군이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에 오물을 묻혔다가 되려 독일군이 선의를 베풀어 샌드위치를 주는 바람에 자신이 먹은 이야기나 배고픔에 사람들이 서로 레시피를 교환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들은 친숙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독일이 2차대전에 패배해 포로들에게 수용소를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져 수용소를 떠나는 것으로 르네 타르디의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다. 그렇게 단지 수용소를 떠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포로수용소를 떠난 뒤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포로생활 5년 동안 내내 심한 배고픔과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패배에 의한 자괴감에 빠지는 그런 힘든 생활중이 포로수용소를 떠난다고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내면적 상처는 정부에 대한 배신감, 불신뿐이 아니라 전쟁 이후 가족들에게 전쟁영웅이 아니라 전쟁 패배자로 인식되는 상처로 계속 이어졌음을 책 첫머리에서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뱉어낼 수 없는 분노가 쌓인 채 돌아온 병사들에게 태만한 태도로 전쟁을 이끌어갔던 정부는 보상은 커녕 아무런 사과도 없었다. 굳이 2차 대전이 아니더라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어떤 전쟁이라 하더라도 몇 줄 혹은 몇 페이지로 요약된 글이나 두어시간의 영화로만 그것을 바라볼때 내밀하게 와닿지 않는다. 현재의 내가 직접 겪진 않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준 어른들,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었고, 시대라는 묶음으로 영향을 행사한다. 그 중에 2차대전은 우리와도 밀접한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었기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에 우리는 여전히 휴전상태로 전쟁이라는 영향권아래 놓여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며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길 수도 있겠지만 르네 타르디의 <포로 수용소>를 읽으면서 전쟁 이전에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 6,70년대부터 우리나라도 우리의 전쟁에 대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주로 헐리우드 영화들처럼 전쟁의 활약상을 그리거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은 전쟁 연구자들에 의해 그려지긴 했지만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겐 얼마만큼 알려지고 관심을 불러 일으켜 왔을까. 분단의 국가, 결코 승리했다고 할 수 없는 6.25전쟁을 통해 우리는 군인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쟁은 사람들의 생활을 비롯해서 마음까지 황폐화 시킨다. 전쟁이후는 모든 사람들, 사회가 서로를 보듬기보다는 말 그대로 먹고 살기 바빴고 씻어내지 못할 악몽이기에 애써 잊어버리려고만 하던 시대였다. 개인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는 힐링의 개념에 목말라 하고 있다. 치유를 하려면 상처를 마주해야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배워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어떻게 봐야하나. 우리 사회의 내부의 많은 전쟁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나... 프랑스 국민작가라는 칭호를 받는 타르디가 자신의 아버지 르네 타르디를 통해 되살린 전쟁속의 모습은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자 아버지 시대에 대한 이해다. 삶은 단순히 살아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은 아니다. 그것은 포로수용소에서의 삶처럼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이 살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마주하고 볼 수 있을때야 진정한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
|
2000년 7월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은 적이 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 여름의 수용소 정문에는 ' ARBEIT MACHT FREI' 라고 씌여져 있었다. 즉, '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뜻이다. 수용소 건물을 지나 전시실에 가니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신발, 목발, 안경, 지갑,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가스실에서 사용했던 '사이클론 비'라는 빈 통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스실에 들어가니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했고, 가스 냄새가 나는듯한 착각에 정신이 몽롱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았던 기억은 <포로수용소>와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 이야기를 읽게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책꽂이에서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이야기이면서 그가 창안한 정신분석학 이론인 '로코테라피'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ㅣ 청아출판사>를 보고 다시 읽어 보았다.
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상황에 따라서 어떤 심리변화를 일으키는지,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해 나가는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였기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인데, '자크 타르디'의 <포로수용소>와 함께 읽어도 같은 맥락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기존의 수용소 관련 책과 비교되는 점은 만화라는 점도 있지만, 유태인이기에 수용소에 끌려 간 것이 아니라, 전쟁포로로 수용소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르네 타르디'는 2차 세계대전 중에 포로 수용소에 갇혔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이 책의 저자의 할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그 이야기는 <그것은 참호전이었다>로 소개된 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 책은 '르네 타르디'의 개인사이자 가족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사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역사가 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독일군에 의해서 포로가 된 183만 명의 군인들. 그중의 160만 명은 독일과 폴란드의 집단 수용소에서 독일의 전쟁을 돕기 위한 군수물자 생산과 독일 기업을 위해서, 독일의 농가를 위해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은 '르네 타르디'의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지게 되기까지는 그와 사돈관계에 있는 장 그랑쥬의 이야기도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포로수용소>의 만화 속에는 항상 짧은 반바지를 입은 '자크 타르디'가 등장한다. 그 소년은 아버지에게 상황에 따른 질문을 한다.
' 아빠가 자원 입대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요!', ' 이 고철더미들 보이시죠? 이걸로 냄비 같은 유용한 물건이나, 애들 장난감, 기차나 빨래통을 만들 수도 있었잖아요?' 등... 어떻게 생각하면 전쟁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 소년의 응석같기도 하지만, 그런 순수한 질문 속에서 독자들은 학살로 점철되었던 전쟁의 실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전쟁 상황은 독일군, 연합군, 민간인, 군인 구별없이 마구 총격을 퍼부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었으니... " 다들 하는 말이지만 '놈들이 아니면 우리가 죽어' ,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전쟁은 전쟁이야',....제기랄! ... 그 놈들이 숲 길가에 숨어 있지만 않았더라도 우리가 그짓을 할 필요는 없었을 거야" (p. 60) 불패의 최고 군대, 지상 최고의 군대, 가장 똑똑한 사람들만으로 지도부가 구성된 군대.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이렇게 생각했지만, 전쟁터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군대가 프랑스 군대였다.
독일군의 포로가 된 '르네 타르디'의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 밀집대형으로 텐트에 돌아온 이들은 슈탈라크에서 새 일을 받았어. 작은 내부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은 매일 여기저기 끌려나가 노역을 했지. 민간 기업가들도 수용소에 와 사람들을 골라 갔어. 노예시장 같았지. 글려간 사람들은 죽지 않고서는 슈탈리크로 되돌아 오지 않았어. 기력이 다하거나 병에 걸려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는데 더는 쓸모가 없는 사람들은 짐승처럼 죽어갔지." (p. 87)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다. 그래도 나중에는 비교적 편한 회계업무를 맡으면서... " 우린 거쳐가는 포로들 덕분에 다른 종류의 수용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사람들이 무조건 가스로 처형되고, 화형당하는 수용소, 장애인과 정신지체자, '우월한 인종'의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 정치범, 동성연애자, 집시... 그리고 대량으로 학살된 유대인들" " 그래서 유대인 기록카드를 몰래 폐기하신 건가요?" " 조심하기 위해서지. '유대인 사냥'은 독일에서 시작해서 중앙유럽으로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번졌단다. 1933년 발랑스에 왔던 아이들을 기억해 보렴." (p. 184)
1945년 1월 29일 숭요소를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 까지 4년 8개월, 1680일의 기록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르네 타르디'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의 생활은 행복했을까? 그를 비롯한 전쟁의 피해자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꽃다운 청춘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훗날까지 트라우마로 남겨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 여행이 길고 또 힘든 여정이 될 거라고 당시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단다. 이어서 내가 프랑스로 돌아온 이야기의 그 이후 이야기를 해주마! 이걸로 내 이야기의 첫 부분이 끝났다!" (p. 188) 이 마지막 문장을 통해서 <포로수용소>는 이 책의 첫 번째 시리즈임을 예감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 왔지만 끝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의 아픈 상처들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래도 독일은 종전 후인 1970년 12월 7일 독일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끓고 애도를 표했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의 또다른 전쟁발발 국가인 일본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사진출처 : 네이버 검색) '르네 타르디'의 전쟁 후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
표지를 보면 '포로수용소에 웬 소년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반바지 차림인 걸 보면 소년병은 아닌 것 같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처럼 탱크를 상품으로 받기 위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걸까? 그러기에는 옆에 서있는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그리 다정해 보이지도 않고, 유머와 긍정의 표정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더구나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둘은 분명 부자지간이 맞다. 다만 40년 전의 기억을 되짚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회상과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들의 가상이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신경질적이고 화난 모습을 보며 자란 만화가 '자크 타르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노를 터트리는 아버지와 가뜩이나 예민한 소년 시절 아들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아버지 '르네 타르디'가 1940년부터 독일 포로수용소에 56개월 간 갇혀 지낸 프랑스 군인이었다고 한다면 그런 울분에 대한 납득이 되지 않을까? 1946년에 태어난 아들은 1980년대 들어서야 아버지에게 40년 전 일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채워진 세 권 분량의 공책은 상자 속에 보관된다. 훗날 죽는 순간까지 혼수상태 속에서 전쟁터를 헤매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트라우마에 충격을 받은 아들은 패전 포로라는 불명예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가혹했던 수감 생활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아버지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리고 작품 속에 자신의 소년 시절 모습으로 등장해 아버지 살아생전에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뒤늦게 쏟아낸다.
전쟁의 상처는 작가의 가족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지 25년 뒤, 스물다섯 살이었던 아버지도 2차 대전에 참전했고 포로가 됐다. 아내의 아버지 역시 같은 시기에 포로 신세였는데, 두 사람은 작품 속에서 픽션으로나마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어머니 또한 전쟁으로 외할아버지를 잃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자랐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제3제국의 수상이 되어 영토 확장 주장이 나오면서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고, 아버지는 원하는 부대를 고를 수 있다는 이유로 열아홉 살에 군에 지원해 전차병으로 복무한다. 포로가 될 때까지 줄곧 전차 그 자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시 정세를 들려준다.
누가 보면 인공지능 전차와 소년이 대화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 전차가 어린 아들이 바라보는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을 상징하는 건 아니다. 무기와 연료가 바닥나면 그냥 고철덩어리일 뿐인 전차는 지상 최고의 군대를 자부했으나 실상은 오합지졸이었던 프랑스군의 모습에 오히려 가깝다.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자진해서 망가뜨려야 한다는 면에서도...) 자신감은 넘쳤으나 군기는 빠져 있어서 군인이 전쟁 준비보다 노동 시간 준수에나 힘쓰고, 일광욕에 술까지... 사실상 통제가 전혀 안 되는 분위기였다. 지휘체계는 한마디로 개판이어서 명령이나 보급도 제대로 못 받은데다, 얕보던 야만인들에게 파리를 점령당한 프랑스 정부가 독일과 협력하는 쪽으로 돌아서기까지 했으니(자진해서 망가뜨렸으니) 포로들은 거의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르네 타르디는 전투에 참가한지 12일만에 포로가 됐고, 가축 수송 열차에 실려 이동한 뒤 12일 동안 걸어서 수용소에 도착하게 된다. 독일군에 포로가 된 183만 명 가운데 독일과 폴란드의 집단 포로수용소로 이송됐던 160만 명 중 한 명이 되어...
<르네 타르디의 사진>
패전으로 인한 우울함과 조국으로부터 버림당한 배신감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예생활이 시작된다. 아픈 사람은 돌려보내진다는 헛소문에 자해 소동까지 벌어졌지만, 추위와 배고픔의 연속인 수감생활을 피할 길은 없었다. 병역 기피(?) 때문에 까임방지권을 획득하지 못해서는 아니지만 구타는 피할 길이 없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강제 노역을 시킬 수 없다지만, 협약도 상대를 봐가며 적용됐다. 독일군 포로를 훨씬 많이 잡고 있는 미군 포로에게나 찰떡같이 지켜졌지, 독일군 포로가 한 명도 없는 프랑스 포로들에게는 애시당초 해당사항이 없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원칙만이 엄수됐을 뿐이다. 하류인종이라는 이유로 포로가 되는 순간 즉시 처형당한 아프리카인 부대에 비하면 그나마 돌 같은 빵과 먼지 가득한 죽도 감지덕지라고 해야 할까? 형편없는 지휘관이었던 장교들은 따로 수용됐지만, 슈탈라크(일반 사병 수용소)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p.170-포로에게 배고픔은 기본적인 요소로 집착할 대상이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었어. 포로는 배가 고파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야.
적십자의 지원을 후하게 받았던 미군 포로들은 무늬만 패잔병이었지만, 프랑스군 포로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철조망과 기둥이라도 뜯어 먹어야 할 판이었다. 한달에 2개까지 가족에게서 소포를 받는 것이 허용됐는데, 운이 나쁘면 독일 병사가 내용물을 조사한답시고 보내준 음식에 장난을 쳐놓기 일쑤였다. 소포를 보내줄 사람마저 없는 고아 출신은 '밥먹듯 굶는' 수밖에 없었다니, 운명의 장난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살이 너무 빠져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와중에도 제국은 포로들의 똥까지 채소를 키우는 데 갖다 썼다. 착취도 이렇게 더러운 착취가 또 있을까.
배고픔을 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요리법을 상상하는 것 뿐이었는데, 최근 읽은 트라우마 관련 책에서도 상상력이 마음의 응급처치가 된다며 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억압된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상대에게 대놓고 맞서는 게 아니라, 요구에서 조금씩만 벗어나는 '작은 반항'으로 최소한의 자율성과 품위라도 유지하라는 거다. 모든 것이 '베르보텐(금지)'인 수용소에서 르네 타르디는 맡은 일을 게을리하는 것으로 적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자부했고, 점호 때 적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포로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매번 인원수가 달라지게 만든 것도 그런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 한 가지는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수행하는 방법인데, 르네 타르디가 좋은 하루를 위해 구역질 나는 멀건 커피를 억지로 들이키고, 없는 손재주로 예술활동을 했던 것 모두가 트라우마 대처법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독일군의 전황이 악화될수록 수용소 생활은 점점 가혹해져만 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세로 3단의 단순한 컷구성은 이 작품이 만화가 아니라 앨범을 넘기며 듣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준다. 흑백 그림이 주는 묵직함 속에 몇 안 되는 컬러가 유독 눈에 띈다. 비시 정부(나치 정권과 정전협정을 맺고 휴양도시 비시Vichy에 주둔한 친독일 프랑스 정부)와의 조약에 의해 프랑스 포로들만 국기 게양과 경례가 가능해졌는데, 타 국가 포로들이 야유를 보내자 창피해서 자발적으로 그 혜택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유는 앞서 보여준 다른 컬러 그림이 설명해준다.
진격한 군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 군인은 외면당한다. 유대인 민간인 수용자는 피해자로서 위로받고,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는 영웅으로서 칭송받았지만, 돌아온 전쟁포로들은 무관심이라는 또 다른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도 잠복해 있는 트라우마는 말로 할수록 덜 아프다고 한다. 작품 속 가상의 아들은 귀신처럼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사전을 찾아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버지의 앞뒤 안 맞는 말에 딴지를 걸면, 안 해보고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어색한 대화라도 있었기에 아버지의 기억이 아들의 그림으로 이어져 '안 가본 사람은 모르는' 포로수용소의 참상을 전해준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됐을 것 같다.
<아버지의 스케치(위)를 참조한 아들의 그림(아래)> |
|
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850일간 전쟁 포로로 잡혀 있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다룬 영화 '언브로큰'. 일본을 왜곡되게 그렸다는 이유로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가 최근 일본에 입국 금지 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떠나서 포로수용소라는 곳의 특성상 잔혹 행위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텐데 말이죠. 그렇게 인권을 외치는 미국도 이슬람 수감자를 짐승처럼 다룬 사진이 유출돼 난리가 났었고,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던 죄수와 간수 실험만 보더라도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행동 자체가 통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인간이기에 그렇게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을 극구 부인하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죠. 포로수용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자료가 바로 만화 '포로수용소'입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포로로 잡혔던 프랑스 전차병 르네 타르디의 56개월 간의 포로 생활 기록입니다. 곱하기 30 하면 대략 1680일이니까 루이 잠페리니의 2배 가까운 기간이군요. '언브로큰'처럼 인간 승리를 느끼기에는 너무 긴 기간이죠. 추위와 배고픔이 그만큼 이어졌으면 억압과 구타가 없었어도 견디기 힘들 겁니다. 육체적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패전 병사였기 때문에 조국에 돌아와서 할말도 없고, 위로받을 곳도 없었으니까요. 독일로 이송됐던 160만 명의 포로들이 그렇게 잊혀져 갔습니다. 하소연 할 곳 없이 쌓아둔 트라우마는 분노와 짜증으로 변했고,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들에게는 그저 신경질적인 아버지로 비칠 뿐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이 책의 작가인 만화가 자크 타르디입니다. 아들은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포로수용소의 일들을 물어봤고 40년이 지난 후의 기억으로 복원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지고 배상 의무를 진 독일은 실업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구세주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때 나타난 게 콧수염 아저씨죠. 공산주의자를 싫어하던 그가 스탈린과 연합해서 세력을 확장하자 프랑스는 영국과 손을 잡습니다. 연합군 덕분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간신히 승리했던 프랑스는 마치 세계 최강의 군대라도 되는듯 자만하고 있다가 얕잡아 본 독일이 밀고 들어오자 냉큼 독일과 손을 잡고 맙니다. 프랑스가 끝까지 맞서 싸웠다면 자긍심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형편없는 정부 때문에 포로 생활은 더 우울해집니다. 차라리 감옥이라면 형이 언제 끝날지라도 알 텐데 끝을 모른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돌덩이 같은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점호 시간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인원수를 헷갈리게 만들거나 감시자가 등 돌리고 있을 때 게으름을 피우는 걸로 적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정신승리로 버텼죠. 하지만 독일의 전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처벌은 가혹해졌고 별다른 이유 없이 포로가 사살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배고픔과 추위는 이미 한계를 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준비만 했던 탈출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독일이 물러나면서 풀려나게 되지만 표정에는 패배감만이 가득했습니다. '언브로큰'이 아니라 '브로큰' 상태였다고 해야겠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작품이 탄생했기 때문에 작가가 미처 물어보지 못해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실제 기억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화장실 사용법이라든지 배고픔을 잊는 방법, 다른 국가 출신 포로들과의 동료애 등 당시의 포로 생활을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몇몇 컷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흑백사진 같은 연출 덕분에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들고 음울한 분위기가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팔레스타인', '체르노빌의 봄', '굿모닝 예루살렘' 같은 논픽션 만화는 오랜만이라서 더 반가웠구요. 일본이 영화 같은 가혹 행위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소재의 영화 개봉에 맞춰서 읽어보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밝혀질 겁니다.
|
|
아버지에 이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들이 있다. 그의 이름은 르네 타르디로, 아버지는 1차 세계 대전을 겪었고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었다. 대를 이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건 르네 타르디만이 아니었다. 훗날 그의 사돈이 되는 장 그랑쥬도 대를 이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포로수용소』를 그린 자크 타르디는 르네 타르디의 아들로, 아버지가 겪은 포로수용소의 삶을 만화로 그렸다. 전쟁 포로들은 역사의 희생자이자 산 증인이었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르네 타르디는 전쟁의 고통을 겪었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아들이 있으니 말이다. 자크 타르디는 아버지의 고통과 상처를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이야기로 만들었다. 책은 아버지 르네 타르디가 아들 자크 타르디에게 프랑스인으로 보는 전쟁의 참상과 4년 8개월, 1680일 동안의 포로수용소 경험 들려주는 방식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군대에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에 부끄럼을 느꼈다. 르네 타르디가 입대한 것은 공명심이 아니라 히틀러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코디언과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삶은 그에게서 멀어졌다. 징집병들은 자신의 직업에 따라 배치되었고 대졸자, 지식인, 엔지니어들은 부사관이 되었지만 그들은 일반병을 선호했다. 그들이 열심히 배운 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모든 것이 금지된 포로수용소의 삶을 살거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다가 짐승처럼 죽어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샤르도네처럼 이유 없이 죽기도 했다. 포로수용소의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의 삶도 누리지 못했다. 생생한 만화 덕에 참담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정상적인 병영 생활도 혼잡스러움 때문에 힘들던 내가 이곳에서 견디기는 더욱 힘들더구나. 가장 힘든 점은 포로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어. 재판에서 20년 형을 받은 사람도 언제 퇴소하는지는 알지. 어떤 바보들은 빠른 시일 내에 풀려날 거라 믿었지만, 난 비관적이었다.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었어.(83쪽) 그럼에도 삶이 아름다운 건 ‘우연’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스쳐 지나갔던 르네 타르디와 장 그랑쥬는 40년 후 자식들의 결혼으로 재회했다. 우연은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비극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었을지도. 다행히 자식들은 그들처럼 전쟁의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았다.
네 할아버지께선 직접 겪으신 ‘1차 대전’ 이야긴 하지 않으셨지. 아마 말씀하셨더라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아버진 전투를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전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셨어. 내게 전쟁은 그저 야만적인 난폭함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일이었을 뿐, 도무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 아무튼 난 끔찍한 전쟁이 또다시 벌어지리라는 걸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27쪽)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전쟁이란 ‘야만적인 그저 야만적인 난폭함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일이었을 분, 도무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 말이다. 뉴스 화면에 나온 전쟁 참사의 흔적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지만 내 문제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종전이 아닌 휴전 중이며 세계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크 타르디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프랑스군이 지상 최고의 군대라고 칭한 정부를 반복적으로 비판했다. 1940년 무렵 프랑스에는 정부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는 순진한 국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의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다. 학창시절 세계사는 내가 담을 쌓았던 과목 중 하나였다. 암기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음에도 외국어 지명이나 역사는 외워지지 않았다. 내가 세계사를 배운 것은 소설이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전부를 말하진 않지만(한 권의 책이 전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배경과 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자크 타르디의 관심은 ‘사람’이었다. 전쟁포로들은 고통 속에서도 수용소를 벗어날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비극의 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원하던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아 계속 우울했는데 책을 보는 사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골목에 ‘쓰레기와의 전쟁’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주차전쟁, 범죄와의 전쟁이란 말들은 익숙하다. 언젠가부터 어떤 일을 해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비칠 때 전쟁이란 말을 붙인다. 우린 전쟁이란 단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
|
어렀을 적 외할머니는 자주 일제시대와 6.25의 당시 생활들을 이야기 하셨다. 우는 아이들이 눈물을 뚝 그칠 정도의 악날하고 무서웠던 존재로 인식이 되던 일제 순사의 이야기며, 학교 시절 일본 선생님으로부터 일본말을 배우고 일본의 국가에 해당하는 기미가요를 배웠던 기억들, 이어서 6.25의 처참하고 쓰라렸던 고생담은 비단 우리 할머니만 겪어 온 것은 아닐것이다.
그 시대에 사시던 분들은 모두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일제라면~ 공산당이라면~ 머리를 절레 흔드시던 분들도 이젠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한 두분씩 하늘로 가시게 된 현재-
나 만하더라도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직접 경험한 분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됬고 학교에서도 배우게됬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그 한가지의 다리를 건너 뛰어서 듣게되는 교육시스템과 책만으로 접하는 시대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듯이 물에 탄듯, 술에 탄듯, 이현령비현령의 비유처럼 진실과 왜곡이란 두 양갈래의 길에서 아직까지도 그 진의에 대한 일부 양심있는 국가를 제외하곤 여전히 오리발을 내미는 일부의 그릇된 국가들 행동을 보게 된다.
국가의 체계 속에서 그 안에서 하나의 국민이란 자부심 하나로, 오로지 나라의 안보를 위한단 생각 하에 자원입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강제징집이란 명에 의해 , 서로 각기 다른 뜻을 가지고는 있었다하나 결국엔 오로지 나라를 구하고자했던 행동의 하나임을 우리는 알 수가있다.
여기 한 사람, 그 흔한 역사란 바퀴 속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아주 평범했던 남자가 있다.
이름은 르네 타르티-
독일의 공습으로 인한 자신의 나라 프랑스를 구하고자 자원입대를 하면서 전차병으로 전선에 뛰어들게 되지만 이내 프랑스는 1940년 6월, 독일의 침공으로 약 한 달 만에 파리까지 함락이 된다.
치열한 전투 속에 독일군에 잡혀서 소위 말하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금방 풀려날 줄 알았던 그 안의 생활은 거의 5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된다.
수용소 안의 생활상은 르네의 아들이자 저자인 자크 타르디가 노년에 이른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와 아버지가 당시를 회상하며 적은 글들을 토대로 어린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 속으로 가는 형태를 취한다.
자신의 이름인 르네란 이름이 간단한 수용번호로 불리게된 절차서부터 처음 입소할 때부터의 비인간적인 차별대우를 당한 기억들, 독일인들을 얕잡아 불르는 튜튼, 보체 프리츠,프리체,프리돌린, 슐뢰'라 불린 이름들을 통해 자신들만의 자존심만은 지키고자 했던 혈기 왕성했던 프랑스인들의 면모를 볼 수가 있다.
독일과 손 잡은 비시 프랑스 정부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운동을 벌인 자유 프랑스로 나뉜 당시의 제 2차 세계대전이란 역사는 말 그대로 나라와 나라의 대결이었으며 그 안에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살아야했던 이름없는 사람들의 소리없는 절규의 생활상이 시종 검은 문자와 검은 그림으로 장식을 한다.
이미 이런 포로 생활이라던가 자유를 향해 끊임없는 탈출의 기회를 엿보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한 이야기들은 책으로 익히 알고 있고 읽으면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없던 감동을 주는데, (빅터 프랭클과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부딪치는 가운데 벌어지는 수용소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일들은 활자로만 아닌 그림과 같이 곁들여져 있기에 실로 감동은 배로 다가온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 그 중에서 배고픔에 대한 욕구와 절망, 그 안에서 이뤄지는 물건교환과 적막하리 만치 이어지던 분위기일지라도 한 때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있는 춤 축제의 에피소드, 사랑하는 아내의 편지를 통해 탈출의 꿈을 꿨지만 이마저도 동료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포기하게 된 사연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간간히 걸프전이나 이라크 파병 미군들 중에서 전쟁 후의 스트레스로 인한 병들이 종종 발견이 되고 이는 사회생활 적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단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저자의 아버지와 장인 또한 그 분들의 아버지들이 겪었던 제 1차대전에 이은 꼭 25년 뒤에 자신들이 겪게 된 제2차 세계대전을 당하면서 알게 된 그 아찔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집에 돌아 온 후 아버지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유를 빼앗긴 채 지낸 4년 간의 음울한 시절에 대해 어떤 설명도, 표현도 자세한 언급도 없었다....(생략) 참호전을 치렀던 1차 대전의 영웅들과는 달리 , 자랑할 만한 영웅담도 멋진 승리도 없었던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아버지와 똑같은 상황를 겪었을 것이다. (생략) 집단 수용소에 수용됐던 일반인들이 파리로 돌아오고 점령 정부에 맞서 저항하던 레지스탕스의 영웅적 투쟁을 기념하는 동안 , 전쟁 포로들의 귀환은 완전히 가려져만 있었다. 전쟁 포로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공간도 없었고, 이들이 겪은 고통은 언급될 권리조차 없었다. (생략) 그리고 부끄럽게도 8만여 명의 자국 군인을 적의 손에 그대로 남겨두어 ...(생략) 강제 노동에 지쳐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비시 정부로부터도, 전쟁 포로들은 잊혀진 채 살아야 했다.-p 6~7
전쟁이 주는 가장 처참함은 바로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현상을 접하는 경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적을 죽여야만하는 상황 속에 죽음이 주는 무감각을 당하는 절차
당시 프랑스가 행했던 자국이 정복한 또 다른 국가인 아프라카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차출해 또 다시 전쟁으로 내몰은 만용, 그들조차 잡혀왔어도 같은 수용소 안에 머물수 없었던 나라의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인간적인 모멸, 그 어느나라에도 속할 수 없어 제 3국 (무국적자)로 전락당하는 경우, 수용소 안에서의 스파이 짓을 하는 사람들, 차후엔 오히려 그들의 행동들이 레지스탕스의 활동으로 변모해가는 과정들의 아이러니...
도덕상 용납이 안되는 이런 현상들이 실제 벌어졌고, 이런 일들로 인해 이름없는 사람들의 활동은 자국 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픈 인행항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전쟁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영향들 중에선 이런 비 인간적인 행동들이 있음으로해서 나라를 되찾기까지 이름난 명사들의 활약만이 아닌 근실하고 평범하게 , 자신들이 맡은 일에 충실하게 살고자했던 어느 풋풋하고 혈기가 왕성했던 무명씨들의 인생을 그 어느 한 해에만 없애버린 것이 아닌 몇 년간의 황금기를 모조리 통째 날려버렸단 비극이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각성을 일깨운다. 마치 우리나라 문학의 거장들이 그려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어쩌면 이리도 장소만 다를 뿐 그들이 당했던 모습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소름이 돋아옴을 읽는내내 느꼈다.
이젠 고인이 된 아버지의 회상을 토대로 그려낸 1부에 속하는 이 책은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한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최대한 극아무도하게 몰고가는 비 이성적인 동물로 만들어 버리는 매개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문득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봐라.- 정황상 이 전쟁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 이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위해 일한 조국은(프랑스)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인정해주고 보상을 해 주었는가? -생포되는 순간에도 혹독한 수용소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적과 맞섰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자존감과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던 이름없이 살다 간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모여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인 현장으로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은 차후 포로 수용소에 나온 후의 이야기로 전개되리란 기대감이 드는 2부의 이야기들과 그림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는데, 사실적이면서도 그 안에의 작은 유머들은 시종 지루함을 모르고 교육적인 면에서나, 삶에 대한 생각면에서나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책이다. |
|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개인에게 무엇을 남길까.두말할 나위없이 외상후 심한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전쟁의 명목이 다양하지만 대개는 국가 지도자의 영웅심과 민족의 우월성 그리고 배타적 종교관을 넘어 자원전쟁과 같은 것이 군사적,경제적 우월성을 앞세워 약세국에게 총탄의 세례를 안길 것이다.청년층은 국토 방위를 위해 의무적으로 전쟁에 나가야 한다.전쟁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는 예측불허가 될 수도 있으며 전쟁 상황에 따라서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면서 물적,인적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것이다.이것은 전쟁 역사를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이다.그렇다면 전쟁으로 인해 과연 승전국은 어느 나라이고 패전국은 어느 나라인가 라는 원초적인 물음도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해당 국가 모두가 상처와 후유증을 앓게 마련이다.상처와 후유증은 전장(戰場)의 중심부에서 총부리와 총탄의 세례를 간신히 피해 가면서 운좋게 살아 남은 자라고 생각이 든다.
20세기 세계는 양차(兩次)대전을 겪으면서 두 축의 이념을 형성하고 경제회복이라는 대과제와 경제중심축의 이동을 들 수가 있다.양차대전에서 독일은 전쟁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에 전쟁을 선언하면서 독일,이탈리아가 동맹국으로 참전하게 되고,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를 침공하고,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난징 대학살)을 일으키면서 2차 세계대전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특히 독일은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고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 및 유대인 말살을 기화로 독일,소비에트 연방 대(對) 영국,미국,프랑스와 같은 나라가 연합국이 되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피말리는 싸움이 이어져 갔다.히틀러가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 자행했던 게슈타포 수용소를 시작으로 유대인의 씨말리기 작전은 쥐불놀이와 같이 번져만 갔다.참으로 골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안긴 희대의 만행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프랑스 군인이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4년 8개월)에서 직접 체험했던 굶주림과 학대,불명예의 시간을 망각되기 전에 아들에게 구술 및 회고담으로 남긴 《포로수용소》는 그래픽노블의 전형(典型)으로 삼을 만하다.타르디 저자는 할아버지의 1차 세계대전의 경험담,그리고 아버지의 포로수용소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사실에 가깝도록 포로수용소의 실상을 재현하고 있다.군복무를 한 나는 이렇게 피말리는 생존의 한계를 경험하지 못해 그저 마음으로만 공감할 뿐이다.잿빛을 띤 어스름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포로수용소의 거리는 획일적인 바둑판 모양의 천막과 파놉티콘을 연상케 하는 감시탑,철조망,감시병은 포로병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던 천형이었다.르네 타르디는 포로수용소 생활의 산증인이면서 전쟁이란 무엇이고 국가란 무엇인가를 냉엄하게 시사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주변 동유럽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아 세를 불려 나갔다.독일에 패한 프랑스 병사들을 강제 집결시켜 독일 트리에로 간 다음,발트해 연안의 포메라이아의 수용소에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독일 제국은 포로수용소를 일반병과 장교,임시수용소로 분리하여 차별대우했는데,그 실상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모포가 없어 짚더미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몇 백 명의 음식을 여우 몇 마리를 잡아 떼우기도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노역은 죽도록 시키면서 먹는 것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판국이었으니,꾀를 낸 병사들은 화장실에서 취사용 도구와 식재료를 구해 허기를 채웠다고도 한다.더욱 황당한 것은 포로병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척 하면서 떡갈나무 잎이나 도토리를 끓여 내었다는 것으로 생색은 낼대로 낸 셈이다.감자캐기 한 바구니 당 담배 한 개피를 얻는데 이것이라도 받을려고 포로병들은 감자캐기 속도를 내었던 것이다.과연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르네 타르디는 탈출을 감행하기 위해 철조망 아래를 파내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철통같은 감시망에 그저 상상으로만 끝나고 만다.동료 샤르도네는 '탈출을 시려하려던 자"라는 이어령비어령식의 보고로 숙소에서 무참히 사살당한다.다행히도 전황(戰況)은 연합국의 편이었는지 1945년 1월 29일 수용소를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지긋지긋한 수용소를 뒤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포로수용병들에 대한 프랑스 정부가 독일 제국에 보인 무능력과 안주는 포로수용병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와 떨어뜨렸을 것이다.르네 타르디는 패전국의 포로수용병으로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강인한 자세가 가상스러웠다.『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가 말한 비극적 낙관주의로서 고통,죄책감,죽음에 직면했을 때 닥치는 모든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능력도 르네 타르디에게서 엿볼 수가 있다.르네 타르디는 작가인 아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실상을 후세들에게 남겨 전쟁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개인이 전쟁을 겪은 뒤 안고 살아가야 할 트라우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국가가 치료하고 보상해야 할 사안이다.이 글을 통해 국가와 전쟁이 갖는 의미와 후유증을 곰곰히 새겨 보았다. |
|
‘포로수용소(길찾기 출판)’의 작가 자크 타르디는 올 1월 열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주요 이벤트 작가로 초청받았다. 세계 최대의 출판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은 2014년 전쟁의 위험과 그 파괴적인 결과를 인류에 경고하기 위한 특별 기획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지지않는 꽃’ 한국기획전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런 관심은 만화도 얼마든지 높은 작품성과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으며 전시 상황의 비극을 작가 정신으로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로수용소’는 저자 자크 타르디의 아버지인 르네 타르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4년 8개월을 보냈던 ‘슈탈라크 ⅡB 수용소’에서 실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작가는 아버지 르네 타르디가 세 권의 노트에 적어준 내용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구상하여 그림으로 엮어냈다고 한다. 속지 앞뒤로 르네 타르디의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노트가 그대로 복사되어 있다. 노트에 있는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르테 타르디가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면 자크 타르디가 누구에게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한 인간의 생애에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분노 때문에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르네 타르디 같은 전쟁포로들은 자랑할 만한 영웅담도 멋진 승리도 없이 수치심을 삼키고 침묵속에서 이중으로 고통받아야했다. 많은 젊은이들은 수감 생활로 허비된 인생, 외로움, 육체적 고통, 가혹 행위에 치욕까지 이 모든 것을 수용소에서 겪어야 했다. 르네 타르디는 “프랑스 정부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그 누구도 우리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 식민지 신민들도 몽둥이질만 조금하면 프랑스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줄 것이라고 무한 긍정하며 교육하였다” 라고 말하면서 젊은 시절 자신들을 적군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었던 조국을 미워했으며, 무능한 정부와 군대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래픽 노블’의 대가라는 수식어의 작가답게 그림이 흑백이지만 섬세하고 웅장하게 포로수용소의 장면들과 생활 모습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자칫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젊은 포로인 아버지 르네 타르디 옆을 어린 아들 자크 타르디가 따라다니며 질문을 하면 아버지 르네 타르디가 그때 상황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언제 탈출하느냐고 계속 묻고 곤란하게 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에 참견을 한다. 르네 타르디는 자신의 쏜 포탄에 독일군 포병이 맞아 마그마 같은 피를 쏟은 채 바스라져 있는 사체 쪼가리를 보고 오랫동안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놈들이 아니면 우리가 다 죽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전쟁은 전쟁이야”라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짓이었고 야만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전쟁은 법을 지키며 사는 보통 청년을 살인으로 내몰았으며, 포로가 되어 장장 4년 8개월을 포로수용소에서 보내야했으니 르네 타르디는 자신의 조국을, 독일군을, 전 세계를 미워하고 저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포로수용소의 전경은 수많은 천막이 세워져 있고 철조망이 높이 쳐져 있는 것이 몇 년 전에 가 본 ‘거제포로수용소’의 사진 속 모습들과 다르지 않았다. 정상적인 병영생활도 힘든데 이런 곳에서 몇 년을 견딘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곳에는 추위, 더위, 배고픔과 절망만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 따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포로들은 늘 배고프고 배고프고 또 고팠다. 세상 모든 점령지에서는 점령군에 협조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듯이 수용소에서도 독일군 협조자 있었다. 종전 후에 이 첩자들은 각자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을 꿈을 꾸고 있다가 얼마 후에는 연합군 편에 달라붙어 모범적인 레지스탕스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일제 친일파가 앞장서서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고문하다가 해방 후에는 온갖 공직을 독차지했던 현실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재미있는 일화들도 있다. 포로들이 워낙 많다보니 다양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몰래 들여온 부품으로 라디오를 만들어 정보를 얻고,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썼다. 어떤 포로가 미운 독일군의 샌드위치에 몰래 똥을 묻혀놓았지만 이를 눈치챈 독일군에 의해 도리어 자신이 먹게 되는 장면은 속이 울렁거렸지만 우스웠다. 그러나 전쟁이 치열해지고 독일군이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그들은 포로들을 더 잔인하게 대했다. 이유 없이 막사에 들어와 포로를 죽이기도 하고 죽은 포로들은 구덩이를 파서 던져 넣고 불을 질렀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자크 타르디의 표현을 빌리면 그의 아버지 르네 타르디의 전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평생 전쟁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며 살았던 것 같다. 타르디는 흑백만화의 힘을 빌려 포로수용소에 갇힌 젊은이들의 잔혹한 삶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만화로도 전쟁의 폭력성과 파괴성 그리고 전쟁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이들에 대한 문제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예술의 힘은 위대하다. ‘포로수용소’는 누구나 알기 쉬운 완성도 높은 만화예술을 통해 전쟁의 야만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슬픈 일이다. |
|
바로 직전에 너무 강렬한 그래픽 노블을 읽어서 그런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느낌은 그냥 평범한 그래픽 노블이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글자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처음엔 내용을 인지하느라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포로 수용소'라는 제목이 던져주는 그 의미심장함과 깊이때문에 너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어서 그런거였는지 이 책은 전후 세대인 아들이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회고록처럼 기록한 것 정도로만 생각하기 시작할즈음,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들의 질문과 끼어들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 역시 많은 책과 기록물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포로수용소의 비인권적인 행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 담담하게 그려진 그림과 이야기들은 되짚어 볼수록 놀랍다. 그림체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단순함쪽에 조금 가까운 그림의 형태인데 나는 이런 명확한 그림이 좋다. 그래서 그저 술렁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아버지 타르디가 결국 전차를 두고 잡혀가게 되었을 때 저자는 전차 그리는 것이 힘들었었는데 다행이다,라는 표현을 넣는다. 아들의 그런 말은, 어쩌면 전쟁 이야기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고 있다. 또 참혹하고 인권이 무너지는 전투의 현장뿐 아니라 포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과는 상관없이 유머러스하거나 영웅의 탄생을 볼 수 있을것 같은 현장으로 묘사되고 있는 영화의 이야기는 영화일뿐이라는 아버지의 항변은 전쟁을 겪은 세대가 니들은 아무것도 몰라,라고 툭 내뱉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나이 든 분들의 넋두리같은 이야기려니 하며 흘려버렸던 나 자신을 반성해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이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포로 수용소의 실상에 대한 몇가지의 이야기들은 다른 문학작품을 통해 접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문학적인 표현방법과 그래픽 노블의 표현, 그리고 이 책 '포로 수용소'는 실제 르네 타르디가 19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를 하고 2차 대전때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생활하며 겪은 사실을 기록한 기록문학이라는 생각은 이 책에 실려있는 에피소드들을 그저 쉽게 넘기며 볼 수는 없게 하고 있다.
"난 모든 게 미웠다. 병사들이 한탄하는 소리도 지겨웠어. 기운빠진 병사들은 하루 종일 궁시렁거렸지. 하긴 그 사람들은 징집돼 전쟁을 했으니 자원 입대한 내 입장은 뭐가 되겠니.... 내가 남들 못지 않게 서글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날 비웃었겠지. 그래서 절망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더 애썼어. 비웃음거리가 될 순 없잖니. 나 역시 전쟁을 원한 건 아니었으니..."(72)
그렇게 원하지 않던 전쟁을 겪고 5년여의 수용소 생활로 인해 르네 타르디의 일상은 바뀌어버렸다. 아, 이건 이렇게 한 문장, 한 단어로 그의 삶은 바뀌어버렸다, 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엉켜버리고 무너져내려버렸음을 알 수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깊이 새겨져있을뿐만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에도 담겨있으리라 예상하게 된다.
"먹물 깨나 먹었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은 자기들이 전쟁만 끝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무너져버린 프랑스의 자긍심을 재건하는 일에 한몫 끼게 될 거라고 믿었어. 그러면서 독일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이라고 주장했지. 벌써 장관 자리 차지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거야. 이 비겁한 자식들이 어쩌다 장관이라도 된다면 국가의 자긍심을 세운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없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낼 거야. 지금은 바지에 오줌이나 싸는 주제에." (71-72)
하지만 현실은 르네 타르디와 같은 사람들을 비난으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조국은 그들을 존경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라고 표현하지만 조국뿐이겠는가. 아들조차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원입대했음을 상기시키며 그를 궁지로 내몰고 있을뿐이다. 화장실도 없는 열차 한 칸에 40명이 들어가 손발이 저릴만큼 움직이지도 못하고 빼곡하니 몸을 굳히고 있어야하고 10cm가 넘는 열차 밑바닥에 겨우 조그만 구멍을 내고 볼일을 봐야하고, 수용소에서는 굶주림이 일상이었는데 그마저도 니히트 아르바이트 니히트 에센, 그러니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야기로 수용소안에서도 노동력착취가 횡행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의식주를 꿈꾸기는 커녕 굶지않고 죽음을 비껴가며 살아가고 있음을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의문인 생활을 한 아버지에게 말이다. 그리고 아들은 자꾸만 아버지에게 탈출시도를 하지는 않느냐고 캐묻는다. 탈출이 여의치않았다는 아버지의 대답을 왠지 그 일에 대한 회피를 짐작하게만 하는데, 결국 친구 샤르도네와 탈출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순찰을 돌던 독일군 병사가 이유없이 쏜 총에 그 친구는 죽임을 당하고 탈출계획은 무산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죽음은 독일군의 명백한 살인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묻혀버리고 만다.
다큐멘터리 기록같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어져가는 이야기는 조금 어색했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꾸 추궁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던 아들의 질문은 책을 덮을 즈음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아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버지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게 비난받을 일이냐? 전쟁이 일어날 걸 짐작했고, 싸워야 한다는 걸 이해했던 거야. 우리 지휘관들이 전투를 이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겠지. 하지만 난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다. 어쨌든 난 싸웠고, 게다가 나 혼자 싸운 건 아니었어! 전쟁의 위협을 느꼈기에 난 학교를 떠나 군대에 들어간 거야"(171) 아들이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할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더 확장해서는 국민으로서 전세대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지금 읽은 르네 타르디의 기나긴 이야기의 첫 부분보다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아주 강렬한 그래픽노블을 읽었다고 했는데, 자크 타르디의 포로수용소는 무채색인 듯했던 첫느낌과는 달리 서서히 스며들며 자신의 색을 깊이 새겨놓은 듯한 느낌에 다른 책과는 또 다른 강렬한 그래픽노블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
|
나치의 죄악상들 또는 전쟁과 관련한 특이 사항들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란 나치의 기만적 슬로건, 빅터 프랭클, 장 아메리, 프리모 레비 등 유명 포로들,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을 통해 알려진 괴를리츠 수용소에서의 음악 연주, 포로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독일 관리, 프랑스 작가 앙드레 드 리쇼가 ‘고통’을 통해 알린 독일군 포로와 프랑스 여자의 사련(邪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전쟁 중에도 존재하는 일상(日常)의 진실을 되새기게 한다. 그래픽 노블로 담아낸 나치의 전쟁 범죄와 포로 수용 이야기인 ‘포로 수용소’는 프랑스 미술가 자크 타르디의 정성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급 드라마이다. 이 책을 통해 누구든 예의 그 전쟁 중에도 존재하는 일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포로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나치의 제네바 협약 위반으로 말미암은 비인간적 대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다. 어떤 교훈을 얻어내야 하는가, 란 의미이다. ‘포로 수용소’는 자크 타르디의 아내인 도미니크 그랑쥬의 말로 시작된다. 자크 타르디와 도미니크 그랑쥬는 똑같이 1915년에 태어나 스물 다섯의 나이에 공히 4년 8개월의 포로 생활을 한 아버지들을 둔 부부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많은 인연이 하나로 엮였다. 르네 타르디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40년 만에 그 기막힌 실상을 아들 자크 타르디에게 구술했고 딸 라첼은 어두운 채색으로 전쟁 분위기에 걸맞은 분위기를 냈다. 그런가 하면 아들 오스키는 자료 조사를 도왔다. 르네와 장은 각각 슈탈라크(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는데 그 이름이ⅡB 수용소와 VB 수용소이다. 저자는 전쟁 포로들이 그 기막힌 참상을 이야기할 공간이 없었고 고통이 언급될 권리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자크의 아내 도미니크는 시아버지가 당신 인생의 비극이 가족의 기억 속에 불분명한 공백으로 남지 않도록 아들의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기억을 성심껏 손수 공책에 써내려갔다고 말한다. ‘포로 수용소’는 아버지 르네와 아들 자크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책이기도 하다. 농담과 특유의 고집으로 역사적 진실과 개인적 고난의 실상을 밝혀가는 부자의 모습은 흥미와 감동, 안타까움 등을 두루 느끼게 하기에 족하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두 가지 압도적인 모습이 있다. 하나는 유럽 전역에 산재했던 나치 포로 수용소의 위치도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바탕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표현된 나치 문양의 섬찟함이다. 포로 수용소와 그곳에 이르기까지 수송용으로 쓰인 열차 내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굶주림은 일상이었고 폭력과 체벌도 만연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에서도 행해진 점호 역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치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불태운 점이 특히 혀를 차게 한다. 르네가 포로로 잡힌 곳은 자크의 할아버지(르네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전투에서 부상당한 곳이다.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르네는 아들 자크에게 네 할아버지는 그 지역에서 무려 4년이나 버텼지만 자신들은 단 2주도 버티지 못했다고 말한다. 르네는 자원입대해 중사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은 히틀러를 피할 길이 없어서였다. 당연하지만 르네는 전쟁은 그저 야만적인 난폭함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일이었을 뿐 도무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포로 소용소’의 장점은 주인공 르네가 무능력한 프랑스에 대한 배신감과 인간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결국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포로 수용소’가 보여주는 색다른 면은 달리 있다. 그것은 그 난장판 속에서도 카드로 돈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 소포를 받기도 했다는 점, 야외 미사가 허용되기도 했다는 점, 메시앙을 통해 알 수 있었듯 음악이 연주되기도 했다는 점, 비밀스럽게 간이 라디오를 만들고 술을 빚고 포로들끼리 싸움을 벌여 수용소 내의 감옥이라 할 곳에 유폐되기도 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인간군상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잠잘 때 일찍 일어나 영하 20도에서 조깅을 하고 벽돌로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들, 제자리를 빙빙 도는 사람들, 미치기 일보 직전의 사람들, 소그룹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그 추운 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정원을 가꾸어 토마토 같은 과일을 가꾸는 사람들의 실존(實存)이다. 강한 희망의 사람들이고 나름으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곳을 살아 나가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었다. 르네는 탈출을 모의하고 히틀러 제거를 계획하지만 나치의 패망과 함께 1945년 1월 29일 포로 수용소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제 이야기는 다음편으로 이어진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슬로건이 기만적이라 했지만 개인적으로 ‘Nicht Arbeit, Nicht Essen‘ 즉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말을 통해 좋은 의미의 말도 어떤 상황에서 발(發)해지느냐에 따라 파장과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포로 수용소‘는 그림을 생각하면 술술 넘어갈 듯 보이지만 역사적 무게를 솜씨 있게 다룬 작가의 역량이 작품 곳곳을 음미하게 해 속도가 느릴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충분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고증으로 리얼한 드라마를 꾸린 타르디 가족의 화목(和睦)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고백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