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고 읽으면 적나라한 성에 대한 묘사가 시 전체를 지배하는 섹슈얼리티가 남성적이라고 섣불리 언급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성이 쓴 시이다. 또다른 여성시인 김선우와는 다른 성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이다. 모성에 와닿은 김선우와 달리 김언희의 시는 굉장히 도발적이고 어쩔땐 퇴폐적이다. 때론 최승자시인을 뒤따를만한 권태가 시 전체를 감싸고 돈다. 김언희 시인의 시는 남진우시인과 김정란시인의 언쟁에도 휩싸이기도 했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이 육체에 대해 관대할 필요는 없다. 모성역시 학습되어졌을지도 모르는 일. 비단 김언희 시 만이 여성성에 모든것은 아닐것이며 또한 모든 시인들이 추구하고 답습해야할 부분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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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회비평의 이론가인 노드롭프라이가 집을 원형적 상징의 하나로 상정하고 인류가 경험한 낙원 상징의 천상적 이미지로 의미화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에게 있어 '집'은 근원적으로 삶의 평온과 안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간의 질서있는 삶, 화해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즉 집은 인간을 위한 최초의 공간이며 인간 존재의 최초의 세계이다. 따라서 집 안과 집 밖으로 대별되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문 밖 또는 집의 존재 밖으로 내쫓기는 경험으로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인간에게 적의를 쌓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어떠한 집단 내에서 평안함을 느낀디면 그들은 집단의 지베적인 규범을 따를 것이며 존재와 행복에 대한 사회적 개념에 동의할 것이지만, 사회적 다양성과 가변성이 많은 집단에 있어 개인은 그들의 사회적 환경을 바꿀 기회를 가지게 되며 페쇄된 집단의 한계 내에서만 살아갈 필요가 없으므로 집단 밖으로 뛰쳐나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행동하고 사고할 기회를 갖는다. 현대사회에서 소외의 ㅕㅇ태는 이와 같은 다양성과 가변성의 사회 속에서 개인이 적응하지 못하고 유리 또는 고립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 역시 제약이 강건할 수록 고립을 벗어나려는 일탈의 의지 또한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존재의 구심점이 되어 주는 집으로부터의 일탈은 새로운 공간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때의 '집'은 단순히 육체가 머무르는 공간에서 벗어나 부성이나 모성의 의미로 환원되기도 한다. 따라서 집으로부터 기인하는 일탈의 양상은 다양하기 마련인데 김언희의 이번 시집 역시 이러한 양상의 한 범주로 살펴볼 수 있다.
억압적 부성이 존재하는 집에서 기존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새로은 자아의 영역을 확인하고자 할 때, 즉 유토피아를 향해 갈 때 파기되어야 할 것은 가부장적인 부성의 권위이다. 이러한 전제주의적인 귄위에 대해 반발함으로서 자아는 집을 부정하고 집을 떠날 수 있으며, 자신의 새로은 공간을 구축해나가는 일탈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집은 기존 사회의 인습적 질서를 함축하고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집은 시적 화자가 차별화되고, 독립된 질서로 존재하기 위해 부정되어야할 공간으로 인지된다. 시 중에<아버지의 자장가>라는 시를 살펴보면 이 시 속에서 화자가 인식하고 있는 아버지의 상징적인 의미는 자신을 억압하는 힘의 존재로 대변된다. '눈'은 세상을 인지하는 신체적 도구이다. 따라서 인식론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딸(여성)의 기관을 먹어치우는 아버지(부권적 질서, 가부장제로 대변된다)의 그로테스크한 양상이 시의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 시 속의 아버지는 체제에 순응하는 주체를 교묘하게 요구하며 독립된 보행을 하지 못하고 아기작 아기작 걸어다니는"유아적 퇴행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생존의 기본적인 기관까지 전부 꽃을 꽂아버리고 싶어 하는 전제적 부권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화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착한 '어린 양'이 되어 살아가야 하며 '살아있는 꽃다발'이 되어 '아버지의 바다'라는 거대한 부권적 권력 안에 갇혀 통제당한다. 이 속에서 화자의 이상과 꿈은 말살되고 주체는 박탈당한다. 아버지로부터 억압당한 욕망은 마음 속에 각인되어 화자는 일탈의 한 양상으로 아버지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아버지 아버지>라는 라는 짧은 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이성과 법으로 명령하며 억압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의붓애비'로 상정한다. 나아가 "개가죽"을 스고 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개'라는 구체적인 동물로 아버지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부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아버지라 대변되는 집이 부여하는 질서 혹은 구조 등의 감옥적 체계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 빠져나가 새로은 공간으로의 탈출을 지향하는 일탈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화자에게 있어 아버지가 존재하는 집은 부정의 공간이자 일탈하고 싶은 공간으로서의 집인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애비는 의붓 애비 아버지, 아버지, 개가죽을 쓰고 오세요... -<아버지, 아버지>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