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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홈피 일기에서 투데이 히스토리를 보니 작년 이맘 때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뵈러 고베 개풍관에 방문했다. http://blog.yes24.com/document/9262287 그리워져서 추억을 되새길 겸 전에 구입해둔 이 책을 방학 맞아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역시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특유 깊이와 글맛이 살아 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보통 한국이 일본보다 10년 정도 느리다는 의견이 많은데, 과연 2006년 즈음에 블로그에 쓰신 글을 모아 출간했다는 이 책을 지금 읽기 참 적절하다. 신자유주의가 리스크 사회를 만들어 특히 약자들이 안전을 위협 받는 매커니즘에 대해 본인이 스승님으로 여기는 레비나스 등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분석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폐해를 구조주의자 푸코 입을 빌어 읽은 "민주주의 살해하기"와 함께 읽고 있었기 때문에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이 읽는 일본 상황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혼자 문화를 좋아하고 솔로 이코노미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환영해온 사람이지만,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이 혼자 문화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면서 경제적인 맥락에서 원인을 풀어가는 부분을 읽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핵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난 원인 중에는 각자가 집 한 채씩 마련해서 거기에 가전제품과 가구를 채울 때 소비가 급증해서 저성장 시대에도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다는 배경이 있다. 혼밥혼술을 하고 홀로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외식,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
제목만 보아도 책 전체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도 다소 할아버지처럼 위와 같이 혼자 문화가 퍼지는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똑똑한 여성과 못생긴 남성이 결혼을 안(못)하는 현상이 늘어나면 이들이 나이 들어 아프거나 위기를 맞았을 때 그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는 사람들이 없어 큰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얼굴, 사랑, 증여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훈훈한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인간은 서로 돌보아야 생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네가 필요해.'라고 선언할 때 인간관계는 깊이 유지될 수 있다. 저자는 오지랖 넓게도 지인들과 함께 주변에 있는 노처녀, 노총각들 중매를 서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신나 한다. 그 옛날 댄스파티의 유용함을 추억한다. 더 나아가서는 함께 의식주와 생활을 영위하고 배우고 무도를 수련하고 그 무엇이라도 나누는 공동체 만들기를 기획한다. 실제로 저자는 고베여학원 교수 정년 퇴직 후 고베에 개풍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이 맥락에서 단지 결혼과 출산처럼 함께 생활하는 일만 말하지 않는다. 요즘 청년 중에 자발적 백수나 프리터들이 늘고 있는데, 노동을 계산적으로 내 이익만 취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직업을 구하면 진로 탐색이 끝날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으려니 죽을 때까지 진로 탐색을 계속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겠다. 지금 여기서 계속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자기 일에 완벽하게 만족하며 죽을 때까지 이 일만 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아래 내용처럼 청소년들에게 너의 소질과 흥미, 적성과 성격을 고려해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진로 교육이 취업을 유보하는 청년을 키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퇴사 열풍을 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듦의 정도 차이는 있을 지언정, 어떤 직종 안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지점과 어려운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다른 글에서 인간이 노동의 의무를 견딜 때 자신도 타인을 도우며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도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요즘 사람들이 새삼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또 후쿠오카 신이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해 반가웠다. 대학원 파견 때 한창 뇌과학과 생물학이 재미있어서 그의 저작도 찾아 읽곤 했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한국으로 치면 정재승처럼 인문학을 기반으로 적절한 비유와 스토리텔링으로 생물학을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준다. 두 분이 무려 서로 아는 사이이고 학문적으로 즐겁게 교류하는 사이라니 좋다. 지난 학년 말에 2학년과 환경 진도를 나가면서 육식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이 있기에 인류가 육식하는 문화에 대해 풀어준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맥락 있는 글들이라 중간에 끊기 애매해서 다소 길게 인용해둔다.
특히 생물학과 무도를 연결시킨 아래 부분을 읽고 있노라니 작년 고베 개풍관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여성 2분이 무도를 시연해주셨는데 서로 합이 잘 맞는 상태에서 공격과 수비를 하는 동안 그 조용한 가운데 몸이 부딪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 몸처럼 춤을 추는 듯했다. 그래서 보는 우리는 사진조차 찍지 않고 집중할 정도로 경건한 마음가짐이 되었다. 저자가 이 부분에서 무도는 '적을 만들지 않'을 때 잘 된다고 말하는 맥락이 이런 것인가 싶다. 중요한 순간에 긴장해서 일을 그르치게 되기도 쉽고, 당장 수영할 때 몸이 뻣뻣해질 정도로 힘을 많이 주면 몸이 물에 가라앉으면서 저항을 많이 받아 수영하기가 더 힘겨워진다. 여유와 유연함!!
저자가 블로그라는 형식을 차용한 이유는 글쓰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해서였을 테다. 스스로 이야기하듯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한 글에 비해 표현에서 힘을 빼서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우치다 타츠루 다른 저작들에서 보여주곤 했던 일본 지성이나 어른으로서 보이는 철학적 깊이, 사회 현상을 읽는 날카로운 분석력 또한 나타나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 글 읽기를 행복해하고 다른 저작도 번역한 바 있는 번역자가 번역했기에 더욱 잘 읽힌다. 방학을 맞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데 한꺼번에 많이 읽으려니 학기 중 시간을 쪼개 읽을 때에 비해 집중력이나 재미가 떨어지는 듯해 고민인 나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오랜만에 즐겁게 독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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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고등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자기표현, 생각의 교환, 조직화를 할 수 있도록 언어를 비롯한 의사소통 체계를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 사람은 가족에서 국가까지 협동·경쟁하는 많은 집단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냈고 사회 조직 내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성이나 이름을 가지고 국가에 따라서는 계급을 가진다. 사람끼리의 사회적 상호 작용은 인간 사회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전통, 의식, 윤리,가치, 사회 규범, 법을 만들었다. 사람의 미를 감상하는 능력과 자기표현의 욕망이 결합하여 예술, 글, 문학, 음악과 같은 문화적 혁신을 이끌었다." 위키피디아.
인간에 대한 정의이다. 사회적 동물이라 칭하기도 하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파트너", 함께 무언가를 할 사람, 함께 밥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숨쉬고 ...
함께(With)가 늘 기본이 된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 인간이다.
사무실에 까마득한 후배가 한 명 있다. 아침 출근해서 저녁 퇴근할 때 까지 머리 박고 일만 한다. 그나마 밥은 같이 먹나? 저녁 퇴근 후 무얼 하냐 물었더니 아무 것도 , 아무 곳에 가지도 않는다 한다.
그게 편하단다. 누굴 만나는 것도 싫고,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도 싫고 ...
하루 종일 말하는 단어 수를 세면 아마 내가 하는 말의 1/10 도 안될 것 같다.
점점 은둔자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그게 사회현상이라 하는데, 일본 사회에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타파하려는 그런 현상을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한 개도 빠짐없이 따라가고 있단다. 그것도 더 가속을 붙여 따라가고 있다. 조만간 앞지를 게 분명하다.
우울하다. 오늘 방송엔 10대~30대 사망율 중 가장 높은 비율이 "자살"이란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 당당하게 1등 대한민국...
사회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우리는 잡은 물고기 도망갈까봐 그물손질이나 하고 있고 ....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리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지만, 그래도 인정하기 싫어진다. 어찌 해야 할까 ..답은 없어보인다.
총체적 난국이라 하지 않는가?
예전처럼 "이 책은 ....에게 ..." 처럼 권하기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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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문과 머리말이 매우 인상적이라서 책을 살짝만 들춰봐도 흥미와 호기심이 생겨날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저자의 표현대로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것’과 ‘지나치게 상식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등 가족이 없고 사회적 능력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풍요롭고 안전하며 복지가 갖추어져 있다는 일본이 부러워진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면 인구 용량에 한계가 올 것이라 말한다. 저출산 시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능력한 대책이 우리나라 사정과 비슷하여 크게 공감이 간다. 노동과 육아 관련 개혁과 저렴한 교육비로 출생률을 회복한 프랑스와 사교육비는 높고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만 봐도 여성 식자율과 출산율의 관계, 교육비와 출산율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만약 여성의 식자율을 떨어뜨리는 것을 국책으로 내세우면 남자아이들이 ‘성차별’이라 항의할 것이라는 저자의 유머가 웃음을 준다. 국공립학교의 수업료를 무료로 하는 것이 저출산을 단번에 개선할 수 있는 비책이라는 저자의 말만 들어도 답답한 가슴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으로 사회적인 ‘공평성’을 실현하고자 할 때와 ‘신뢰’에 부응하고자 할 때 노동 능력이 향상한다고 한다. 공평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사회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공평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사회적 자원이 잘 ‘흘러가는’ 장치를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연구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 행정 기관에서 실시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 사회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이익을 확보할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받음으로써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고, 공생형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북뱅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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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탁에 앉아 있어도 가족이 따로따로 딴 음식을 먹고 있다면, 이것도 '혼자 먹기'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모두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혼자 먹기'에 속한다.
20,30대가 주류이긴 하지만 적게는 10대부터 많게는 50대까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근래들어 '혼자 밥먹기'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온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의 고급식당부터 학교의 공공화장실까지 그들이 혼자 먹을 수 있다고 인증을 남기는 장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함께 먹을 수 없어 혼자 먹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점차 자발적인 '혼자 밥먹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며 타박하거나 아에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슬슬 상처가 될 법한 악플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친구혹은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고 믿고있는 사람들 중 저자, 우치다 타츠루의 이론에 입각해 진짜 '혼자가 아닌 함께'식사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책,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는 몇 년전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 중에서 몇가지 주제를 모아 재구성한 작품으로 타이틀이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라는 다소 매몰차고 냉철한 비판조인 까닭은 실제 타인의 저술에 반박하듯 펴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책의 대략적 주제는 결혼하지 않고 혹은 가족을 부양치 않고 사는 사람들의 제법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을 뿐 더러 마치 혼자사는 것이 함께 하는 공동체보다 더 나은 것인양 보여지는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혼자 못사는 것을 진짜 '재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려는 노력없이 '자립'아닌 '고립'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인 셈이다. 저자의 말처럼 특히 '노동'에 관한 부분은 돌이켜 봤을 때 다소 강하게 표현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현재 일하지 않거나 취준생인 독자라면 위로가 아닌 채찍에 서러움이 몰려들 수도 있다. 일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못하는 현실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부분은 사회적인 문제가 함께 맞물려있는 부분이라 우선 개인적인 측면에서 '일을 하지 않은려는 사람'에 한해 말을 하자면 저자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렇군, 노동이 자기표현이라면 그런 행동은 매우 사리에 맞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동은 자기표현도 아니고 예술적 창조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의무다.
두어달 전 읽었던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이란 책이 생각나는 챕터로 노동은 순수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의무'라는 점에서는 두 저자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책의 리뷰를 작성할 당시에는 자기표현이나 예술적 창조를 위한 노동을 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자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의무라고만 하니 역시나 또 완벽하게 공감되지 않는다. 몇몇 독자들이 50년생인 저자의 나이를 언급하며 일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부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도 어느정도 인정한-이 바로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이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맞지않은 정규직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할 뿐 아니라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이라는 목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태를 꼬집은거라 볼 수 있다.
확실히 어떤 종류의 문화는 돈을 주고 해외에서 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풍토에 뿌리내린 깊고 따뜻한 '친밀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점점 개인이 공동체활동에서 벗어나 고립되려는 까닭 중 다른 큰 이유는 '글로벌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흐름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화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나또한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부분은 역시나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SNS 역기능과 맞물린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몇시간 혹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려고 하거나 국내의 정세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적으로 쫓으려는 의식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과의 거리를 점점 멀게할 뿐이다. 또한 지나치게 간섭하려는 것은 반대로 타인이 나를 지나치게 간섭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대체가능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것은 글로벌화에 흐름을 쫓아가면서 반대로 전혀 타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글로벌화의 길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에는 무수한 '낡은 습관' 이 있고, 무수한 성적 금기가 있다. 거기에 대고 일일이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시오'라고 통고하는 것 자체가 계몽적인 실천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효 있는 계몽적 실천이 될 수 있으려면 '낡은 관습'을 대신하여 동일한 인류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의제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서두에 언급했던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떠올랐는데 마지막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동체'적인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진행중인 상황으로 몸이 불편한 누군가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안타까운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듯 올렸더니 단순히 댓글로 위로하는 것 뿐 아니라 모금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전달하게 되었고 이일을 계기로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은 그 고마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등 기부문화가 파급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물론 이런 좋은 일을 악용하는 사례가 몇차례 발생한 뒤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혼자 밥먹기'를 앞다투어 인증하려던 사람들이 '나눔인증' 하려고 더 열성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저자의 조언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수록 증여와 답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 자기를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소해도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주는 사람은 이 사이클 안에서 '중심점'이 됩니다. 증여와 답례의 사이클은 '중심점'으로 자리원이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연배를 두고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지만 리뷰 전반에 걸쳐 마치 옹호하듯 말한 것처럼 책 본문에 실린 내용은 몇년 전 저자가 고립되어 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였다. 후반부에 저자의 글이나 인터뷰, 추천글을 보게되면 저자가 하는 말이 쓴소리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이 있다. 입에도 달고 몸에도 좋으면 좋겠지만 만약 양자택일을 굳이 해야한다면 당장은 서럽고 내맘을 몰라주는 듯 해도 결국 실천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혼자 밥먹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혹은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이라면 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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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을 읽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저자 이름도 처음 들어본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 제목도 어쩐지 모호한 느낌이 났고 표지 디자인만 봐서는 꽤 딱딱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손에 들고도 바로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조금 미뤄두었다. 그러다 손에 펴들고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야, 이거? 굉장히 재미있는데? ^^;
이 책은 저자가 2000년대 중반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모아 편집한 글이다. 요즘은 그 주기가 많이 짧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10년 뒤 미래라고들 하는 말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5년, 7년 이렇게 줄여서 말하곤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2000년대 중반의 글이면 거의 10년 정도 전의 글인데도 우리나라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
사회현상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늘어놓으면서 여기에 온갖 이론과 길고 긴 이름의 외국 학자와 저서를 나열하며 인용구로 범벅한 책들이라면 신물나게 훑어봤기에 이 책도 그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저자는 배려가 넘치는 글로 심지어 킥킥대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점점 현대인들이 원자화되는 현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글로벌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가 이끌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음식이나 물건을 나눔을 통해 소비하기도 하고 중매를 서 결혼을 하게도 하는 등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의미를 실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공동체가 몇 년 전부터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알게모르게 많이 늘어나 있다. 그의 말마따나 돈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도, 나이가 들었거나 병들었어도 그럭저럭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는 그날까지, 소규모 공동체들이여 창궐하라(?)고 외치고 싶다.
혼자 살면서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으면 2일 내내 말 한 마디 할 일이 없어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던 어떤 지난 하루를 떠올리다보니 괜히 울컥해지기도 했다. 그래, 혼자 못 사는 건 잘못이 아니라 재주였어!
이 책에서 아쉬운 건 딱 하나, 표지 및 내지 디자인이다. 이렇게 유쾌한 감각의 글을 이리도 딱딱하게 포장하다니! ㅜ_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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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북뱅, 2014)는 주로 이삼십대 청년들에게 절실하고 친근한 테마(결혼, 가족, 직업 등)를 논의한 에세이집이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본주의의 두 가지 병폐적 문화에 대한 감정평가서'라 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원자화'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화'이다. 개인의 원자화란 "시민들이 다양한 전통적 유대를 잃어버리고 사회에서 각자 따로따로 흩어져버리는 것"을 말하고, 글로벌화는 "상품, 자본, 인간, 정보가 국경을 넘어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의 원자화에 대항하여 타자와의 공생윤리학을 강조하고, 글로벌화에 대항하여 상호부조의 시스템, 즉 "상호적인 축복의 네트워크"를 강조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혹은 소비자본주의라 불린다. 먹물을 미처 다 지우지 못한 교양인이라면 '액체근대' 운운하면서 모든 것이 돈과 소비시장에 의해 균일화되는 유동하는 현대사회를 얘기할 것이다. 인간소외, 시민사회의 몰락, 정치적 민중의 소멸을 불러온 것이 바로 '고객의, 자본에 의한, 소비를 위한' 소비 욕망과 경제적 명령이다. 개인의 원자화가 소비시장에 적용되면 친척도 지역사회도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화폐를 가지고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하면 된다는 퇴행적인 사고로 나타나고, 심하면 은둔형 외톨이나 '묻지마 살인' 같은 퇴행적인 현상으로까지 나아간다. 원자화로 인한 퇴행 현상에 대해서 저자는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에 기대어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노하우를 배울 것을 적극 주장하고 나선다. 또한 얼핏 보기에 '자아의 팽배' 현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진정한 자아의 축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요즘 젊은이들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고립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아의 축소' 또는 '자아의 순화'는 우리 시대의 병이다. 현재 우리는 자기 결정, 자기 책임, 자아 찾기, 자기다움의 추구, 내 나름의 취향이랄까?… 이러한 빈말에 사로잡혀 있다."(253쪽) 90년대 말부터 떠들어온 '가족의 해체'는 이미 한물 간 얘기처럼 들리고, '나 홀로 산다'는 일인가구의 증가나 셰어 하우스 같은 가족의 재구성을 논하는 소비 트렌드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하면서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직업의식과 공생을 위한 노하우를 키우고 '이웃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바람직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성원들 가운데 20%가 과잉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그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사회조직은 과잉 성취의 20%와 '고만고만' 60%, 그리고 성취 미달이 20% 정도를 차지한다. 과잉 성취의 인간은 종종 표준의 5배, 10배에 달하는 능력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것은 성취 미달의 부족분을 메우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거듭거듭 말씀 드리는 것처럼, 인간이 만든 조직은 '다섯 명 중 한 명만 과잉 성취를 이루어내도 잘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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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1950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도립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합기도 7단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집 일층에 ‘개풍관’이라는 도장을 열어 무도 수련과 더불어 철학 강의도 하면서 새로운 학습공동체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타츠루는 레비나스를 자신의 평생 스승으로 삼았다고 말하는데서 이 책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관점을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우치다 타츠루 또한 이 책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히는 것보다 ‘타자와 공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공생을 위한 노하우를 배우는 쪽이 훨씬 더 나은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처음 이 세상에 인간이 생길 때 신은 개인을 창조했지만 공동체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신 자체가 공동체로 있었기에 인간 또한 공동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한한 존재자가 아닌 유한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공동체를 벗어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어느 한 규격이라는 틀에 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혼자 생활하며 살아가지만 서로 더불어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는 시스템이 필요함을 이 책에서 논한다. 물론, 정부의 노력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개인이 중시 되는 사회로 점점 나가면서 개인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왜곡된 현상을 경계한다. 이 부분에서 결핍된 것은 인간의 원래 본질이다.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는 인간의 본질을 제거하고 개인의 우상화와 자아의 숭배를 집어 넣었다. 그래서 자유라는 의미도 일부 퇴색되어졌다. 세상을 세상의 기준과 관점으로 볼 것인지, 처음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개체로써 볼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은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논의한 것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원자화 현상’이다. 즉, 개인주의 아래에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자기다움’을 주장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개인’뿐임을 강조한다. 말했다시피 우치다 타츠루의 모든 저작에는 '타자의 윤리학'이라 불리는 레비나스의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다. 저자는 노동은 본래 선물이라고 말한다. 즉,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반대급부의 책무 이행이라는 것이다. 노동은 출발점부터 타자를 위한 것이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타츠루는 젊은이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젊은이들은 노동을 자기실현쯤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적인 기반의 시스템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자립한 인간이자 시대가 요청하는 인간상”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는 함께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타자와 공생할 수 있는 능력, 아마도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 신을 사랑하는 능력으로 곧장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점을 다시 제대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본주의 구조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흘러가는 이 세상에 태클을 걸어야 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 레비나스 타자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나 이 세상의 부조리한 구조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에게 이 책이 읽혀져 많은 소통의 자리가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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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가 닮은 한국과 일본은 현재 저출산과 초고령화 사회라는 공통점이 있다. 핵가족화를 넘어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화된 사회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주장하는데 셰어하우스나 동네 사랑방은 그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2000년대 중반부터 블로그에 써온 에세이를 모아 편집한 책인데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글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원자화와 글로벌화라는 단어로 공통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저자는 이제 전통적인 유대마저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각자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고 이는 스스로 자립하여 자기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자기 책임으로 내려야 하는 등 삶의 방식이 바뀌었음을 말한다고 한다. 대가족에서는 모든 의사결정을 그 가족의 어르신이 내렸다면 이제는 각자 떨어진 사회 속에서 스스로 결정과 책임을 내려야 하는 자립화된 사회가 되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그만큼 불신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를만큼 배신과 배반에 노출되었고 개인 이기주의로 인해 상대방의 대한 배려와 이해심 그리고 인내심이 옅어져가고 있다. 사회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도 상대방과 대화로 풀 수도 있는 부분인데 공동체를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전체보다는 개인만 남기 때문에 내 자신의 안전과 안위만이 우선시되다보면 내 개인적인 공간으로 침투하는 요소들은 모두 적대시하며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상화되어 가는 듯 싶다. 이 책은 일본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우리가 그 룰에 따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룰에 충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무한경쟁시대는 개인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취지에서 신봉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개인을 고립화시키는 건 아닐까 싶다. 서로가 힘을 합쳐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성과 지상주의가 가져온 폐해는 철저하게 집단으로부터 고립되도록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표지는 인문학 서적처럼 딱딱한 데에 반하여 <룸 메이트>와 <셰어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이 개인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며, 살아가야 할 이유와 내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역시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준다. 나홀로족이 늘어나는 상황에선 더욱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때 사회적 약자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근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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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그러면서도 혼자서만 살 수는 없는 관계속의 존재이다. 관계, 즉 나와 타자와의 이어짐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이유로든 이어져야 한다는 필연성을 갖고 있는 대상의 존재로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개인화된 인간이기 보다 공동체적인 존재속에 포함되어 삶을 사는 안온함을 더 추구하고 있는 그런 존재 일지도 모른다.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는 개인주의, 개인화된 시대에서 공동체의 소중함과 공동체적인 삶을 말해 주는 책으로 읽혀진다. 핵가족화, 또는 원자화 된 사회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말하며 과거 공통체적인 삶을 살았던 시기에 대한 그리움 같은 느낌으로 공동체적인 생활의 부활론을 꿈꾸는 내용도 존재 하기에 뚜렷하고 명징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일본과 한국의 공통적인 사회 상황이 바로 '원자화'와 '글로벌화'이며 전통적 유대를 잃어버리고 사회 속에서 뭉쳐지지 않는 모래알 같은 존재로 흩어져 버리는 모습, 자립이라는 자기실현, 자기결정으로 인한 자기책임을 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철학적 화두와 같은 결론의 답이 될것도 같은 느낌이다. 모두가 세상이 다변화하고 복잡하며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스트레스를 받고 삶을 사는데 오롯이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존재감을 확립하며 자기실현을 해 내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대부분의 철학적 명제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삶의 방식에 커다란 반향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진정 나를 찾아았다손 치더라도 나의 존재를 둘러싼 세계가 속물적인 세계라면 내가 찾은 진정한 나는 나인가 하는 강한 의문을 갖게된다. 결국 책의 제목처럼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혼돈의 사회를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개발하고 타인과 공생,공감하는 방법을 통해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삶이 더 아름다운 이유를 온전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책으로 기억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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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독특하여 사전정보없이 오로지 제목에 끌려 선택하여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이 범상치 않은 제목을 자다가 생각해냈다고 한다.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라니. 그동안 자수성가형의 혼자서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군계일학처럼 인정받아온 세태인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저자는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저출산, 일, 매스컴, 세계화 시대의 문제점, 공동체, 사랑과 죽음 등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50년도 출생으로 젊은 내가 읽기에 어느 정도 꼰대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많이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진정한 선생을 찾기가 어려운형편이었는데 선생님으로서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혼자만 잘났다고 천년만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좀 모자라도, 반대로 내가 잘난 사람이라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 사고의 과정은 사회현상에 대한 치열한 분석, 남다른 통찰, 예리한 비판을 포함한다. 피상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면이 있는 나에게 객관적이고 분석적이고 냉철하게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점이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비판적이지만은 않다. 포용하고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느낌이다.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그동안 본인이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후학들과 함게 나누는 느낌이다.
난 지금 한창 공부중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전공과목만을 파헤치느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무식쟁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내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전혀 관심밖이었던 부분들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속한 이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공동체에 속한 상태에서의 진정한 자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