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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을 도와 한글을 만든 건 신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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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금 가운데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누굴까요. 저도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가장 처음 생각나는 사람은 세종입니다. 우리나라는 세종한테는 ‘대(大)’를 붙여서 세종대왕이라고 하죠. 세종은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아는 건 얼마 없군요. 세종이 한 일 가운데서 가장 큰일은 우리 모두가 쓰는 ‘한글’을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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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금 가운데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누굴까요. 저도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가장 처음 생각나는 사람은 세종입니다. 우리나라는 세종한테는 ‘대(大)’를 붙여서 세종대왕이라고 하죠. 세종은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아는 건 얼마 없군요. 세종이 한 일 가운데서 가장 큰일은 우리 모두가 쓰는 ‘한글’을 만든 일이죠. 우리 글자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중국글자말을 써야 했을 거예요. 아니면 일본말을 썼을지도. 제 국어사전은 오래된 것인데 거기에서 ‘훈민정음’을 찾아보니, 첫번째에 ‘세종 25년(1443)에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 도움을 얻어 처음 만든 우리 글자. 모음 11자, 자음 17자로 되어 있음.’이라고 쓰여 있어요(두번째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거의 이렇게 알고 있겠지요. 이 책은 그게 아니다고 합니다. 한글을 만든 건 신미 대사라고 하네요. 오랫동안 신미라는 이름은 우리한테 알려지지 않았군요. 이것은 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보다 먼저 나온 책에는 신미가 한글을 범어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본 건 아니고 ‘범어’라는 말로 찾아보니 내용이 조금 나왔습니다.

 

고려는 불교 나라였지만 조선은 유교(성리학) 나라였지요. 그렇다고 조선에 불교가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세종은 불교를 가까이 했습니다. 세종이 왕이 되고 대마도 정벌을 했더군요. 세종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기보다 아버지 태종 때문에 그랬다고 하네요. 세종은 왜와 잘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왜는 불교 나라였답니다. 왜는 세종한테 조선에는 필요없는 대장경을 달라고 했습니다.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세종한테 그런 것은 줘버려라 했다더군요. 그럴 수가. 종교와 상관없이 대장경은 고려 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유산인데 말입니다. 세종이 그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물어본 사람은 함허예요. 함허는 신미 스승입니다. 함허은 세종한테 대장경을 왜에 넘겨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대장경에 쓰인 말은 중국글자말이어서 백성은 쉽게 볼 수 없다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신미는 백성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우리 글자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했어요. 세종한테 그런 말을 한 건 그게 신미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세종은 신미한테 우리 글자를 만들라고 합니다. 이 일은 아무한테도 알려지지 않았지요.

 

불교를 가까이 한 사람은 세종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세자(문종), 수양, 안평, 정의 공주도 불교를 가까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함허한테 배우고 다음에는 신미한테 배웁니다. 다른 책에서 수양과 안평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을 본 적 있는데, 두 사람이 세종 아들이었군요. 잘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두 사람 여기에 나온 모습은 괜찮은데 왜 나이 들어서는 그렇게 됐을까요. 제가 본 책은 김종서 이야기였어요. 이 책에 김종서 이름 한번 나왔습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기는 하죠. 우리한테는 지나간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군요. 신하들 가운데도 불교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모두 한가지만 생각하면 그리 좋지 않을 듯합니다. 불교와 유교가 대립했지만, 아니 유교가 불교를 눈엣가시로 여겼군요.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한 까닭을 잘 모르겠군요. 시샘이었을까요. 하는 일도 없는데 나라에서 땅을 주고 노비를 주어서. 승려가 다 괜찮았던 건 아니었나봐요. 어디에나 처음 마음과는 달리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있지요. 승려 가운데도 여자와 술에 빠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신은 그런 것을 나쁘게 보았습니다.

 

유신 때문에 승려인 신미가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됐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힘을 모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군요. 우리나라 역사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이것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책이 있어서 한글을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을 알게 되었네요(이것보다 먼저 나온 것도 있지만). 신미는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이 없었어요. 아마 지금도 그 마음은 다르지 않을 거예요. 이런 마음은 배우고 싶습니다. 세종과 신미가 있어서 우리는 우리 글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딘가는 말은 있지만 글자가 없어서 그 말이 사라지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말과 글이 없어질 뻔한 일이 있었군요.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고 애쓴 분도 고맙군요.

 

한글은 처음 만들었졌을 때와 달리 모음 11자, 자음 14자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말을 다르게 해서 그렇게 바뀐 거겠지요. 옛날 말투 들어보면 참 이상하잖아요. 조선이나 고려 때는 어땠을지.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군요. 그건 그렇고 한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어가면 좋겠습니다.



희선




☆―

‘구중궁궐이라도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이요, 비록 오두막이라도 마음이 편안하면 극락이 아닐 것인가.’      (98쪽)


“아바마마 뜻대로 대사님이 세상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완성해가고 있는 우리 글자야말로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입니다.”  (248쪽)


“부처님은 무엇을 했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마라 가르쳤사옵니다. 그러니 신은 전하와 대군마마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사옵니다.”  (309쪽)


“과인이 만든 우리 글자를 왜 ‘훈민정음’이라 한줄 아시오?”

“전하, 예부터 ‘한자의 바른 소리’를 ‘정음(正音)’이라 했사옵니다. 그러니 전하 마음과 달리 ‘훈민정음’이라 하면 ‘백성을 가르치는 한자의 바른 소리’라는 뜻이 되옵니다.”

“그렇소.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 글자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생각해서 ‘훈민정음’이라 했소. 마음 같아서는 ‘훈민정자(訓民正字)’로 하고 싶었지만 말이요.”

“이제야 신은 전하의 깊은 뜻을 이해하겠사옵니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우리 글자를 창제하셨지만, 한자의 바른 소리를 가르치고자 스물여덟자를 만드셨다고 하니 어느 누가 시비하겠사옵니까.”  (290~291쪽)


n***8 2015.02.05.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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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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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스님이 창제했다? 아마 소가 웃을 일이다고 할 것이다. 한글창제의 비밀을 밝혀줄 책이 출간됐다. 비록 소설이지만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강에 비친 달”이다   이 책은 십 수 년 동안 샘터사에 근무할 때 법정스님의 책들을 만들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법정스님과 사제지정을 맺었다는 ‘정찬주’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정신’에서 출판했다.   천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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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스님이 창제했다? 아마 소가 웃을 일이다고 할 것이다. 한글창제의 비밀을 밝혀줄 책이 출간됐다. 비록 소설이지만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강에 비친 달”이다

 

이 책은 십 수 년 동안 샘터사에 근무할 때 법정스님의 책들을 만들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법정스님과 사제지정을 맺었다는 ‘정찬주’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정신’에서 출판했다.

 

천강은 ‘월인천강’의 준말로 부처가 수많은 세상에 몸을 바꾸어 태어나 중생을 교화하심이 마치 달이 천 개가 넘는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 소설의 제목을 “천강에 비친 달”이라고 지었을까?

“천강에 비친 달”, 이 소설은 모두 5개장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하고 있다,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은 ‘신미대사’라는 스님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신미대사? 그는 누구인가?

소설은 한 어린아이가 추위에 쓰러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아이는 무예가 출중한 김훈의 아들이다. 김훈은 정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리로 생활한다. 김훈은 조모상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빈소를 지키지 않고 상경하여 정종의 거처인 인덕궁에서 기생첩 벽단단을 데리고 놀았다. 당시 이러한 일은 큰 불효와 불충의 죄에 해당되었다.

태종에게 아부하는 신하들에게는 이러한 일은 좋은 먹잇감이다. 신하들이 김훈을 처벌하라고 상소를 올린다. 김훈은 곤장 백대를 맞고 현 광주 송정으로 귀양을 가면서 집안은 풍지박살을 당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훈의 아들 김수성은 배가 고파 길에서 쓰러져 절에 들어가게 된다. 어린아이는 거기서 함허스님을 만나게 된다. 면서 스님이 되고자 간청을 한다.

스님이 된 신미에게 함허스님은 아미타경을 외우도록 지시를 한다.

원경왕후의 4재를 기리는 천도재에서 세종과 신미가 만난다. 그날 신미는 스승 함허스님의 지시에 따라 [아미타경]을 염불한다. 세종은 맑고 청아한 염불 소리를 듣고 어머니 원경왕후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신미스님과 세종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후 세종은 함허스님과 신미스님을 은밀히 궁으로 불러들여 지혜를 구한다. 이때 신미는 모든 백성이 한자가 아닌 우리 글자로 『대장경』이나 유가의 경전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세종에게 부탁을 한다. 세종은 신미에게 범어에 능통하니 비밀리에 한글을 만들라고 지시를 하면서 대사를 집현전 학사로 임명한다. 유생들은 중이 학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신미를 제거할 계략을 꾸민다. 범어에 능통한 신미는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의공주 등에게 범어의 음운학을 가르치며 그들이 도움을 받아 훈민정음 반포 8년 전 한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중상모략과 살인의 위협을 받는 일들이 벌어진다.

 

저자는 실록을 토대로 한글은 범어에 능한 신미대사가 창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국민들은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1443년 12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할 때까지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는 사실과 훈민정음 반포 8년 전에 이미 한글 언해본 책을 간행한 사람이 신미대사라고 하는 사실이 신미대사가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는 말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소설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신미는 한글을 창제한 것 외에도 이룩한 업적이 많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그의 저술이나 법문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납득할 수 없다. 그의 고결한 인품 때문인지, 아니면 역사가 남의 공을 가로채는 비열한 일을 한 것인지 의문스러운 일이다.

 

“세종의 말대로 신미와 함께 만들고 있는 글자로는 이 세상의 어떤 소리도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었다. 봄비처럼 보슬보슬 속삭이듯 내리는 소리나, 소나기처럼 주룩주룩 쏟아지는 소리도 물론이려니와 가을비처럼 추적추적 낙엽을 적시는 빗소리도 가능했다.(221쪽)”

한글의 오묘함과 과학적 원리, 실용성과 합리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천강에 비친 달”,

책을 다 읽고는 저자가 이 소설의 제목을 “천강에 비친 달”이라고 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월인천강’이라는 말이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수많은 몸을 바꾸어 태어나 달이 천 개가 넘는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니 “천강에 비친 달”도 한글이 쉬운 글로 백성을 깨우치는 것이 마치 하나의 달이 천 개가 넘는 강에 비치는 것과 같은 의미하고 선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t*******d 2014.10.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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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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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했을 때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우리 후대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글, 우리말은 유치원 정도면 제 이름은 다~쓸 줄 안다. 그 만큼 한글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한글하면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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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했을 때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우리 후대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글, 우리말은 유치원 정도면 제 이름은 다~쓸 줄 안다. 그 만큼 한글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한글하면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만든 글이다. 라고 배웠다.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대왕이 밤을 새워 가며 노력해서 만든 한글. 이런 우리가 믿었던, 배웠던 이야기를 뒤집고 있다. 천강에 비친 달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신미스님이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그리고 반포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학자들로부터 불가를 지키려는 세종과 불자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석씨를 신봉하는 불당이라는 집현전 학사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그럼 유학자는 공씨를 신봉하는 집단인가?

책을 읽다보면 세종의 면모가 고스란히 보인다.

훈민정음 - 백성을 가르치는 한자의 바른 소리, 훈민정자라고 하고 싶었다는 세종의 이야기

중국 진서보다 우수하고 아름다운 우리 글자 스물여덟자.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여 만든 글자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 아름다운 글자 우리는 그 글자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외래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지금 우리가 한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걱정보다는 자부심이 든다.

풀잎 끝의 이슬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몸을 미련 없이 던지려 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반짝일 수 없다.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

“전하 아뢰옵기 외람도니 말씀이온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그 죄를 부처님께 고한 뒤 한 그릇 밥과 과일을 불단에 올린다고 해서 어찌 그 죄가 사라지겠습니까? 다만 불단에 올린 공양물을 주린 백성이 먹고 허기를 면한다면 그것이 바로 덕을 쌓는 적선이 되는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죄를 묻고 벌하는 분이 아니고 복을 짓게 하는 복전일 뿐이옵니다. 옛말에 선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했사옵니다. 전하게 계시는 궁도 마찬가지 옵니다.”

불교와 관련하여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 책이었다.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기회도 되었다.

n********8 2014.10.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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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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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세종대왕을 두고, 위대한 정치가다, 혹은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같은 생각을 맨 먼저 떠올리지는 보통 않습니다. 물론 그는 가시적인 정치적 업적을 너무도 뚜렷이, 다수 남긴 군주였고, (이 소설에서도 잘 묘사되는 것처럼)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온화하고 너그로운 모습으로 관료와 사대부, 뭇 백성을 잘 다독인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세종 대왕 하면 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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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세종대왕을 두고, 위대한 정치가다, 혹은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같은 생각을 맨 먼저 떠올리지는 보통 않습니다. 물론 그는 가시적인 정치적 업적을 너무도 뚜렷이, 다수 남긴 군주였고, (이 소설에서도 잘 묘사되는 것처럼)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온화하고 너그로운 모습으로 관료와 사대부, 뭇 백성을 잘 다독인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세종 대왕 하면 그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개념, 단어는 바로 "한글"입니다. 한글이야말로 우리에게 세종대왕이 선사해 준 가장 값진 선물이요, 이후 그 숱한 민족적 수난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혼과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해 준 근원적 신분증이자 고통과 간난의 항해 중 가라앉지 않게 우리를 꼬옥 품어 준 방주와도 같습니다.

이런 한글의 창제 과정에, 집현전 학사 외에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여,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역할을 해 내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크게 당혹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피치 못할 곡절이 있어 그의 공헌이 기록에서 누락되었다면, 우리는 매우 늦었으나마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저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 그의 공적이 아니었으면 영영 우리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던 한글에 대해, 다시금 고마움을 되새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일단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한 것은 서력으로 1443년이고, 이를 시용(試用)한 후 세상에 반포한 건 그로부터 3년 후입니다. 한편, 조선이 대체한 고려 왕조의 대(代)에, 승려 묘청이 서경 천도 운동을 통해 민족 정기의  부활을 시도한 건 1135년의 일입니다. 두 사건 사이에 대략 삼백 년의 간격이 뜨나, 한글 창제의 시점과 우리 시대는 그 곱절인 육백 년을 격(隔)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관점에서 보자면(더군다나 기계적으로 측량 불가요 순환적이기까지 한 불가적 시간 개념에서는) 묘청과 세종의 시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서로이웃의 구간인지도 모릅니다.

신라 원광 법사가 세속 오계를 통해 해동 식의 호국 불교 개념을 정립한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이웃의 거대한 중화 제국의 유교적 문화 유입에 맞서, 민족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치열한 움직임을 보여 왔습니다.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사대주의적 유교 관료에 맞서, 이들은 대체로 풍수 지리 사상, 전통의 풍류도를 대폭 수용하여, 차츰 의식과 예법이 대륙의 그것을 좇아가는 겨레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그 중에 원효가 있었고, 묘청이 있었으며,  무학 대사가 있었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신미대사가 있었습니다. 아마 백 오십 년 후의 휴정, 유정 대사 같은 이들도 이 범주에 넣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신미 대사를 축으로 하여, 민족 정기와 부처님의 가르침(유학보다 이 땅에 정착한 지 훨씬 오래된)을 지키려는 세력과, 반대편에 서서 사대와 모화를 촉진하여 자측의 기득권을 유지, 확장하려는 세력 간의 집요하고 처절한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종 대왕은 그 선왕인 태종 이방원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모후 원경왕후에 대한 애틋한 추모의 정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개인적 소신과 성향 때문에, 유학도들의 등쌀 때문에 궁지에 몰린 불교계를 음으로 양으로 후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어리석은 백성에게 행정적 통치 지침이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행적을 정확히, 그리고 널리 깨우치게 하기 위한 의도로, 한글이라는 표음 문자를 창제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세종 자신도 산스크리트어의 문자 표기인 범자의 원리에 대해 밝은 편이었지만, 신미 대사 역시 남다르게 영특한 두뇌와 스승인 함허 대사의 가르침에 힘입어, 젊은 시절부터 범자의 원리에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세종 대왕을 우연히 알현하고(꼭 우연은 아닌 게, 법석에서 신미 대사의 독경 소리가 유난히 낭랑하고 우렁찼다고 합니다), 그의 신임을 받아 여러 차례 독대한 끝에, 그는 민족 고유의 문자를 고안하라는 밀명을 받게 됩니다. 한자와 다른 문자를 만들어 내는 건 사대의 원칙에 반하고 공맹의 가르침(특히 성리학인 걸로 이 소설에선 설정되고 있습니다)에 어긋난다 하여,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역죄로 추포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소설은 그런 정황을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미대사를 남몰래 사모하던 희우(기쁜 비라는 뜻으로, 신미대사처럼 몰락 양반가 출신의 처녀입니다)는 역시 우연한 기회에 미행(微行) 중이던 세종 대왕을 만나 사헌부의 다모로 발탁됩니다. 양반가라고는 하나 이 집안 역시 불교를 오래 숭상하던 가풍이 있었고, 그 때문에 풍비박산의 아픔을 겪은지라, 희우는 행동거지 말 한 마디마다 부처님 섬기는 마음을 숨기질 못합니다. 물론 이를 지켜 보는 우리 독자는 조마조마하기 이를 데 없구요.

우리는 한글 창제 작업이라면, 세종 대왕이 주도하고 그 기술적 실무를 집현전 학사 정인지가 맡아, 책 <훈민정음>에 그 서문까지 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른바 정인지 序). 그러나 이 소설은, 정음청 학사를 제수 받은 신미 대사야말로 創과 製 중 후자의 핵심 직무를 위임 받아,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자 모 28자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까지 쓴 공로자로 기록되었는가? 그 속깊은 사연(작가가 창조해 낸)은 이 소설을 직접 읽어 보셔야겠죠.

문장이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표현이 많아, 월탄이나 김성한 풍의 역사 소설 줄겨 읽으시는 분들이 크게 반길 만합니다. 몇몇 고문(성녕대군 추도문)은 작가님의 뻬어난 한문 실력과 우리말 표현력으로 (원문인 한문으로부터) 번역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되고 뜻 깊은 문학 감상이 됩니다. 다만 생소한 불교 용어가 몇 있어서(예를 들어 院主 같은 말은 한자 표기도 빠져 있어, 저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 나갈 때 다소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세자 문종, 수양, 양녕, 이 세 왕자가 모두 신미 대사를 스승으로 섬기고, 그에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꼼꼼히도 받아들이는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삼형제는 하나같이 불교에 경도되었고, 수양은 특히 <석보상절>을 직접 지어 부왕 세종으로부터 그 화답인 <월인천강지곡>을 받아들기도 했죠. 천 개의 강에 달 하나가 그 빛을 고루 내린다는 이 소설의 제목은 여기서 따 온 것입니다. 신미대사는 소설 말미에 세종을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칭하는데, 결국 백성을 살리고 바른 정치를 베푸는 위정자가 부처님이나 마찬가지고, 부처님처럼 중요한 위상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로도 들립니다. 아니면, 깨어 있는 백성 하나하나의 몸짓과 덕행이 모여 이 더러운 땅(예토)을 서방의 극락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일까요? 오늘 밤에도 떠오를 달을 보며 깊이 생각에 잠길 일입니다.

v*****7 2014.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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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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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난후 처음 으로 표기한 가사집이다. [천강에 비친달]이란 제목을 보고는 난 전자에서 이야기한 [월인 천강지곡]과 관련있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글창제에 있어 세종을 중심축으로  조선시대 많은 학자들의 공로도 있었다는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신미대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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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난후 처음 으로 표기한 가사집이다.

[천강에 비친달]이란 제목을 보고는 난 전자에서 이야기한 [월인 천강지곡]과 관련있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글창제에 있어 세종을 중심축으로  조선시대 많은 학자들의 공로도 있었다는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신미대사라는 새로운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의 스승의 덕목이 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신미는 세종에게 있어 그런 위인이다.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할수 있게 해준

공덕이 큰 인물이다.그런 인물임에도  우리에게 신미라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미는 숭유억불정책이 실시됬던 조선시대정책의 희생자라고 할수있다.

 

스승함허와 신미와의 인연이 시작된 싯점부터 이야기는 거슬러 홍천사 경내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종이 홍천사 천도재 현장에 친히 거동하여 대장경 불사를 배풀기위한 행차를 하게된다.

이때 세종은 신미를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적 배경과 세종대왕과 연관된 주위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

한때는 유명했던 절에 대한 이야기등 우리가 알기 못했던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방대하게 실려 있어

읽는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뿐만아니라  서술이 참 재미있게 엮어져 있다.  남송시대등 당대 유명한 시뿐만아니라 함허의 시도 책읽는

중간 중간에 함께 접할수 있는데, 시조를 읊조리며 읽는 기분이 마치 내가 그 시대 사람인듯 싶기도 했다.

 

신미의 법문뿐망아니라 불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불교에 대해 유독 무지했던 내자신이

어느정도 불교에 대한 접근을 해볼수 있어 유익했다.

 

 

w********r 2014.10.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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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창제의 비밀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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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들보다 우리나라 역사를 좀 더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신미 대사의 이야기는 정말 처음 들었다. 그것도 신미 대사가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 역시 놀랄만한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이게 정사라고 한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이 책은 어린 중 신미가 세종 앞에서 아미타경을 독경하는 장면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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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들보다 우리나라 역사를 좀 더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신미 대사의 이야기는 정말 처음 들었다. 그것도 신미 대사가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 역시 놀랄만한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이게 정사라고 한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이 책은 어린 중 신미가 세종 앞에서 아미타경을 독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무를 겸비한 부친이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자 집에서 도망 나와 중이 되었다는 신미 대사는 세종대왕의 왕사역할을 했고, 세자들의 교육도 담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신미 대사는 집현전 학사, 정음청 학사로 관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신미 대사의 스승인 함허 스님이 금강경과 범자에 능통했기 때문에 범자를 바탕으로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범자는 우리가 산스크리트어라고 알고 있는 고대 인도에서 쓰던 언어인데 현재 우리말과 비슷한 점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 당시 시대상과 역사적 사실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향교 교생들이 절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장면들, 왕실의 지원을 받는 사찰은 부패했었다는 것, 태종과 원경왕후와의 불화, 왜국이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대장경을 요구했다는 것, 고려 때 팔만대장경 제작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익이 되었던 것, 임금의 수결이 있는 물건을 지닌 자는 함부로 체포하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야다시나 광화문 괴자 사건, 세종대왕이 정인지의 저고리에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를 직접 써 주었다는 것, 유교의 나라에서 세종대왕이 불단에 자신의 곤룡포 두 벌을 올렸다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또한 동이족인 우리와 천축 사람들 조상이 수미산 어느 산자락에서 함께 살다가 따로 살게 되었다면서 부처님도 동이족의 조상이라고 언급한 것은 놀라운 발언이다.

 

 

또한 신미 대사의 동생이 조선 초기 문신이며 학자로 널리 알려진 김수온이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진관사나 복천사는 알겠는데 흥천사가 서울에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바로 돈암동에 있다고 한다.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공표하기 5년 전에 이미 원각선종석보 언해본을 다섯 권 만들었다는 사실도 역시 새로웠고, 세종이 직접 석보상절을 참고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찬불가를 훈민정음으로 지었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월인천강지곡이라 하니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이 책의 내용 자체가 매우 신선했는데, 작가는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또 다시 기대되는 언급을 하였다.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신미 대사의 전성기는 세조 때였다는 것이다. 후속편이 나오면 주저 없이 사서 보겠다.

 

d****o 2014.10.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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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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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한글과 관련 있는 소설인 천강에 비친 달을 읽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뿌리 깊은 나무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특히 제가 소설은 안 가리고 정말 좋아하기에 기대도 더욱 컸다.     특히 작가에 꽂히기 시작하면  그 분책은 과거부터 쭉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이었던 작가분이 김진명 작가. 우연한 기회에 역사 소설을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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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한글과 관련 있는 소설인 천강에 비친 달을 읽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뿌리 깊은 나무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특히 제가 소설은 안 가리고 정말 좋아하기에 기대도 더욱 컸다.

 

    

특히 작가에 꽂히기 시작하면 

 

그 분책은 과거부터 쭉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이었던 작가분이 김진명 작가.

 

우연한 기회에 역사 소설을 접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다 읽고 

 

여태까지 쓰신 책을 다 찾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천강에 비친 달 책에 대한 설명에 

 

한글이 절에서 태어났고, 한글 창제에 대한 진실,

 

팩트로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그래서

 

구미가 확 당겨서 기대치가 엄청 높아져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을 다 읽었는 데

 

엄청난 궁금증이 찾아왔다!

 

어디까지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부분이고,

 

어디 가 완전히 허구인지,

 

그래서 검색을 시작했는데....

 

현재 연구 중인 분들도 계셔서 정말 놀랐다.

 

사실, 이게 진짜로 나타난다면,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길지도 많이 궁금해졌다.

 

정말로 집현전 학자들이 아닌, 

 

절에서 신미대사가 만든 것이라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한 생각은

 

희우 차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실제로 마셔보고 싶다.라는 생각이었다.

 

워낙 차를 좋아해서 그랬던 거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실 약간의

 

혼란이 왔고 진짜처럼 느껴질 만큼

 

잘 쓴 책이라 느껴졌고, 

 

절반만 읽고, 절반은 나중에 읽으려 했는데

 

결국 시작해서 한 번에 끝을 봤다.

 

 

사실 읽기 전엔 뿌리 깊은 나무가 워낙 재미있어서

 

천강에 비친 달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스토리를 이끌어 나갔을지가

 

참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읽는 동안은, 뿌리 깊은 나무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잘 만든 소설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j****5 2014.10.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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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창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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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들어있는 교과과정 중에 초성, 중성, 종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챕터를 공부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은 글자에 대한 유래서부터 한글의 고유한 독창성 있는 글자의 내막까지 공부하고 쪽지시험을 본 기억은 수업시간의 초조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 한글 날이 지나갔다.   우리가 읽고, 쓰고, 말하기, 듣기란 영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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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들어있는 교과과정 중에 초성, 중성, 종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챕터를 공부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은 글자에 대한 유래서부터 한글의 고유한 독창성 있는 글자의 내막까지 공부하고 쪽지시험을 본 기억은 수업시간의 초조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 한글 날이 지나갔다.

 

우리가 읽고, 쓰고, 말하기, 듣기란 영역에서 독자적인 글자를 갖고 있다는 자체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하고 이는 타 나라의 언어학자는 물론이요 전공분야가 아닌 사람들조차 인정을 받는 독보적인 체계의 글자임은 틀림이 없다.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에 대한 업적은 그래서 더욱 잊을 수가 없고 일정한 글이 없어 읽을 줄도 몰라 고생하는 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린 넓은 혜안은 두고두고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어릴 적 책을 통해서 우린 세종대왕이 한글을 집현적 학자들과 같이 만든줄로만 알았고, 나 또한 이 책이 아니었다면 한글 탄생에 얽힌 비밀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선건국의 이념은 억불숭유정책이다.

고려 말의 혼란했던, 정치에 깊이 관여도 했고 종교가 가진 독자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개인의 그릇된 욕심을 내비친 승려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성계는 이를 견제하고 고려에서 벗어난 신생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거리를 둔 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시의 시대 분위기로는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여함을 느끼게 된 것일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실제 알고보면 왕권가의 사람들은 불교에 대한 교리와 자신의 거처를 유교란 것에 적을 두지 못했음이 알 수있는 대목들이 간간히 눈에 뛴다.

 

이성계만 해도 건국 초기에 무학대사가 있어 한양천도라든가 왕권이양에 있어서도 충고를 받아들였단 점에서 쉽게 불교를 저버리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찰떡 궁합이 있었듯, 세종에게는 천상의 화합 파트너인 신미대사가 있었다.

 

 아버지의 불충과 불효 때문에 가문이 쓰러지게 되자 조선의 정책에 반한것임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했던 신미대사는 스승인 함허대사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고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의 4재를 지내기 위해 흥천사에 온 세종의 눈에 독경을 하는 모습이 맘에 들어 이후 세종의 부름을 받게 된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일본의 끊임없는 불교경전, 그것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달라는 요구에 왜구의 침입과 일본에 잡혀있는 조선백성들을 데려오기 위한 정책 때문에 골머리를 않고 있던 때였다.

 

유생들의 거침없는 불교배격 때문에 팔만대장경을 넘겨주란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미대사와 마주한 세종은 신미대사의 한 마디에 결단을 내리게 된다.

 

""전하, 모든 백성이 대장경이나 유가의 경전을 볼 수 있도록 한자가 아닌 우리 글자를 만드시옵소서"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당시에 경전의 교과서라 할 범어를 알고 있던 신미에게 한글 창제에 대한 명을 내린 세종은 이를 비밀리에 부치게 되고 이는 곧 자신의 후계자인 문종을 비롯, 세조, 안평, 정의 공주까지 불교에 귀의하면서 조심스레 일을 돕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중국의 한자를 기본적인 글자로 알고 있고 이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글자를 만들던 타국에 대한 비난을 일삼던 유생들과 학자들을 교묘히 따돌리고 독자적으로 한글을 만들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글창제의 실지 주인공은 세종이 제시한 범어에서 창작하란 창(創)과 제(제)의 신미가 함께한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대의 우리들은 신미대사에 대해선 그다지 알지 못한다.

훈민정음의 반포를 할 당시만 해도 신미의 존재에 대해선 그저 왕이 불러서 내불당에서 독경과 왕실의 가족들이 필요로한 존재로만 인식이 되어야함을, 그래서 오로지 한글창제에 대한 이해와 반포시기는 반대를 하는 신하들의 집념을 꺽기 위해서라도 그가 실제적인 주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었음을 비밀에 붙여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서는 그나마 실록을 통해 그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고 이를 토대로 작가가 쓴 글이기에 사실적인 부분들이 드러남으로써 한글에 대한 이해와 그 고된 산고의 과정들을 좀 더 알기 쉽게 한 점이 두드러진다.

 

 책에선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해 그 후에 여러 작품들을 오늘 날까지도 알 수있게 한 공로가 들어있다.

 

왜 한글이 필요한지에 대한 깨우침을 일찍이 간파했던 세종의 창안 계획과 맞물려 불교경전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을 내뱉은 말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불경도 알기 쉽게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던 한글이 이젠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이자 말이요, 그 어떤 소리도 그대로 표현 할 수있는 독창성을 갖고 있단 점에서 만일 유생들과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손을 든 세종이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말은 과연 있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땀이 흐르게 된다.

 

어느나라든지 속국을 만들 때는 그 나라의 언어부터 차단시켰단 점을 주지해 볼 때 우리나라의 고된 역사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그 동안의 학자들 노고가 눈에 밟히게 되고 신미대사가 없었더라면 과연 세종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했을 신하가 있었을까? 하는 가정도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 위치한 한 부족의 말을 한글로 표현할 수 있게한 지원을 하게 된 사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후 이마저도 여러사정이 겹쳐 지원마저 중단이 되게  생겼단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됬다.

 

 이런 지원들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함으로써 한글의 독창성을 알리고 타 나라에서 필요로한다면 서로 돕는 시스템으로 나아갈 때 그 보람을 저 멀리 세종대왕과 신미대사는 웃으며 바라보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게 되는 오늘, 한글 날이 다시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고 그 감사한 마음이 더욱 강해지게 해 주는 책이다.


m*******n 2014.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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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의 탄생, 천강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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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한글 창제에 관련된 숨은 이야기는 언젠가 드라마 속에서 세종대왕께서 겪으신 크고 많은 어려움과 창제 이후에도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을 이미 보여 주었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 만 이라고 그냥 흘려 버리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 시대상의 분위기와 연관지어 한글 창제를 하기까지, 하고 난 후에도, 얼마나 큰 시련이 있었을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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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한글 창제에 관련된 숨은 이야기는 언젠가 드라마 속에서 세종대왕께서 겪으신

크고 많은 어려움과 창제 이후에도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을

이미 보여 주었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 만 이라고 그냥 흘려 버리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 시대상의 분위기와

연관지어 한글 창제를 하기까지, 하고 난 후에도, 얼마나 큰 시련이 있었을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는 약간의 깨달음도 생겨 났었다.

 

한글을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해 오고 있음을 생각하매

세종 대왕의 노고와 고뇌는 얼마나 크셨던지를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이번에 접하게 된 정찬주 님의 천강에 비친 달은 역사적인 그 현장 속에 있었던 기분으로

첫 페이지부터 넘기기 시작해서 끝부분 책장을 덮을 때 까지 너무나 재미있었고,

문장 자체가 쏙쏙 읽어져서 그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세종 대왕과 신미 라는 스님의 만남은 불교에서 일컫는 인연 중 최고의 인연 이었고,

유가를 숭상하는 유교국에서의 불교 찬미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도전적인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반대와 힘든 과정에서도 한글 창제라는 꽃을 피워 낸 대단한 성과였다.

아무나 읽지 못하는 한자로 된 한자 대장경, 중들 조차도 읽지 못하는 범자 대장경에서

시작해서 우리글로 만들어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장경을 원했던 세종 대왕과

신미의 의기 투합은 결국 우리나라 글자, 훈민정음 창제로 나타났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던 세종 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결과물로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범어에 능했던 신미 라는 스님의 연구로 이루어 졌다는 주제가 역사 속 세종 실록 같은

자료에서 보여 주는 것으로, 반드시 허구이고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추천사에서 처럼, " 소설적 허구가 아니라 세종실록에 근거한

역사적 진실의 올곧은 복원이다.  소설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확대시키는 동시에

지적 감동에 취하게 하는 큰 일을 해 냈다."

 

완전 동감이다.

천강에 비친 달을 조금 읽고 잠시 여유 시간에 우연히 책 표지를 보다가,

달이 천강에 비치다?   이것은...  월인 천강?

불현듯이 떠 오른 제목이 주는 영감.

신미 라는 스님을 훌륭히 부활시키고 세종 대왕의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 볼 수 있게 한 이야기.

절에서 일어난 이야기인 만큼 군데군데 불교에 관한 자세한 해설도  마음에

닿아 왔고, 다시 한 번 깊이 읽어 보게 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j*****n 2014.1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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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치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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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이세 신미 (임금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었다기보다 머리 속에 상황이 그려지면서 역사드라마 한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신미: 배과전에서 본 신미 본관 영동(永同). 속성 김(金). 사호(賜號) 혜각존자(慧覺尊者). 수미(守眉)의 도우(道友)이며 함께 선도(禪道)를 널리 선양하였는데, 기화(己和)의 《금강경설의(金剛經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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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이세 신미

(임금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었다기보다 머리 속에 상황이 그려지면서 역사드라마 한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신미: 배과전에서 본 신미

본관 영동(永同). 속성 김(金). 사호(賜號) 혜각존자(慧覺尊者). 수미(守眉)의 도우(道友)이며 함께 선도(禪道)를 널리 선양하였는데, 기화(己和)의 《금강경설의(金剛經說義)》를 교정, 《오가해(五家解)》에 편입하는 등 저작활동도 활발하였다. 세조(世祖)가 매우 신임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매사를 일일이 그에게 물어서 처리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조 즉위 후에는 왕사(王師)가 되었는데, 1458년(세조 4)에는 동생 김수온(金守溫)과 《월인석보(月印釋譜)》를 편찬하고 그 후에도 경전의 국역사업에 참여하였다.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 신미의 부도(浮屠)가 있다.

신미를 찾아보면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인데.

신미는 함허스님 아래에서 자라게 된다. 이 소설을 보면 숭유억불정책으로 고통받는 불교인들의 삶이 담겨 있다.

세종은 원경왕후의 한을 풀어주고자 재를 올릴 때

신미의 염불소리를 듣고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다. 시간이 흐른 뒤

함허스님과 신미스님은 함께 궁궐로 가게 된다.

1420년 왜국사신이 <대장경>을 달라고 온 일이 있었다. 세종은 왜국이 대장경을 요구하는 이유가 유교국이 되었으니 필요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군신들의 대장경이 무용지물이라는 군신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장경은 모두 한자로 된 것이오. 나라 안의 백성들이 그것을 어찌 읽을 수 있겠소.-생략- 무지렁이 백성들에게는 한낱 그림의 떡이오.”

신미는 현기증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전하, 모든 백성이 <대장경>이나 유가의 경전을 볼 수 있도록 한자가 아닌 우리 글자를 만드시옵소서.”

함허는 우리 사투리와 범어가 한 뿌리라고 생각한다.

아비, 아바이, 에미, 하나부지, 하나비, 머심, 거시기, 머시기, 그라고, 그랑께 ....

세종은 우리 글자를 만드는데 신미를 만나 의논하고 싶어한다. 신미(유가경전에 해박하고 미얀마, 밀자 당의 글자에 통달)신미와 함께 우리 글자를 만들기 위해 궁궐출입을 자유롭게 하고자 심미를 학사로 임명한다. 나중 신미가 정음청 학사로 제수된 후에도 유신들의 질시와 모함이 끈이지 않았다. 세종에 이어 문종까지 이어졌다. 안완경 등이 정음청을 혁파하고자 상소를 오렸지만 세종과 문종은 그 주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종25년 12월 30일

집현전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인이 친히 전자를 모방하여 스물여덟 글자라 창제했다.

--신미는 집현전의 소식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고리없이 곡을 했다. 세종의 초인적인 인내와 단호한 결단, 자신의 목숨을 노린 위협 속에서 창제된 훈민정음이 사무치게 고마워 눈물이 났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서문에서

그 깊은 연원과 뜻이 묘연하여 신 등은(정음을 창제함에 있어)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집현전 학사들이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이름만 올린 것에 대한 송구함일 솟구쳤기 때문에....신미는 훈민정음 창제에 있어 거론되지 않았다. 신미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보며 신미의 공이 사라진 안타까움이 남는다.

억불숭유, 지배층의 중국 한자 숭상...

후세에 한글 창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머리 속에 신미가 등장하지 않지만

문종 등극 이후

승 신미를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국왕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다-

원융무야 혜가존자로 삼고 임금이 사용하는 종이에 교지를 써서 붉은 비단보에 담아 사람을 보내어 주었는데 우리나라의 시조 이래로 일찍이 이러한 승직은 없었다고 한다.

/<천강에 비친 달>을 보니 '범어'가 궁금해 진다.

j****0 2014.10.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