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했던 '책세상문고-우리시대'시리즈가 드디어 100권을 돌파했다.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100권째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러나 나의 축하는 단순히 출판사의 수고에 대한 축하가 아니다. 지난 5년여 동안 '우리시대'와 더불어 한껏 살찔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지적 지평의 확대를 축하하고자 함이며, 아울러 그간 학계의 주변부에 머물던 소장학자들(일명 '보따리장사'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켜 사회적 평가와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에 대한 축하인 셈이다. 아울러 허허로운 일상에 찌들어 있던 내가 '우리시대'와의 만남을 계기로 새삼 지적 호기심에 빠져들게 된 것에 대해서도 자축하고자 한다. 학문적 지평의 확대, 소장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자세에 대한 흐뭇한 관찰, 서구 학문으로만 여겨졌던 철학일반에 대한 인식 변화, 우리 시각으로 학문하기의 가능성 확인, 다양한 현실 문제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통한 해법 모색, 고전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마련 등등. 이 모든 일들은 지난 5년여 동안 '책세상문고-우리시대'를 통해 확인하고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책세상'이 그 모든 것들을 이끌었다고 보긴 힘들다. 다만 사회적 흐름이 그러했고, 그의 시대적 의미를 한발 앞서 이해했고 그 이해를 확산시키려 노력했던 게 바로 '책세상'이었던 것이다. 아쉬웠던 점도 있다. 무명의 소장학자를 발굴(?), 그 학문적 참신성을 활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또 다른 소장학자들과 함께 고민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칫 '책세상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아울러 시대적 거대 의제(아젠더)를 발굴,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좀더 치열해졌으며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 바람을 알았음일까. 마침 '우리시대'의 100번째 저작은 작금의 세계사적 거대 의제이며 또한 시대적 딜레마인 미국의 패권주의와 그에 저항하는 테러리즘, 그리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구축을 위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를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우리시대100, 구춘권)은 21세기의 탈냉전시대에 세계질서의 구축은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책은 우선 현재의 세계지배질서를 테라테러리즘과 美패권주의의 충돌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 역시 미국의 일방주의에 기인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제1장에서 테러리즘을 정의한 뒤 제2장에서는 메가테러리즘(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해함으로써 사회를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는 최근의 테러리즘의 경향을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의 등장 배경과 원인에 대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중 특히 주목할 것은 테러리즘의 발호와 아랍의 종교적 근본주의가 지구화(세계화)가 노정 시킨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균형의 부산물임을 확인시키는 부분이다. 또한 이전의 테러조직과 전혀 다른 조직강령과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알카에다의 특성에 대해서도 눈 여겨 볼 일이다. 수직적 조직체계였던 기존의 테러집단과 달리 수평적이며 각기 독립적인 조직운영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알카에다의 경우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을 타도하기 위한 미국의 소위 '테러와의 전쟁'은 그 실효성 면에서 극히 의문스럽기만 하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제3장에서는 지구화(세계화), 탈냉전 그리고 안보 현실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 장의 핵심내용은 테러리즘에 대한 미국식의 군사적 대응(테러와의 전쟁)은 무의미한 것이며 테러리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으로써 탈군사화된 안보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역사의 종언'을 부르짖었지만 이는 자만의 소치였을 뿐이다. 탈냉전 시대의 미국의 모습은 마치 실 끊어진 연을 연상시킨다. 한동안 공중을 부유하다 이내 곤두박질 치고 말 것이 뻔한 것 아닌가. 목표와 상대를 잃어버린 자유진영의 거물 미국은 냉전시대 보다 더 많은 군사적 행동에 나섦으로써 스스로 테러리즘의 타깃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제4장에서는 미국의 헤게모니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고찰하고 있지만 별다른 것이 없다. 제5장은 제4장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번 미국의 군사화와 세계질서전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테러전이라기 보다 미국의 헤게모니의 변화에 따른 세계질서 재편을 위한 미국만의 전쟁일 뿐이다. 저자의 세계질서에 대한 철학이 담긴 부분은 에필로그, 즉 '맺는말'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21세기의 세계평화는 국가세계가 아닌 사회로부터 등장한 위험에 의해 도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 탈군사화된 안보 정책이 대단히 시급한 과제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곧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복지 확대, 정치권력에 대한 참여 요구의 수용, 그리고 공정한 세계를 지향하는 문명 간의 대화를 내용으로 할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간 발행되었던 '우리시대'(100권)는 우리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에 해답을 제시하기 보다 늘 새로운 화두를 던져놓곤 했다. 이는 학문의 기본 자세를 견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무릇 학문이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아니던가. '노하우(Know-how)'가 판치는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세상에 끊임없이 '노와이(Know-why)'를 던지는 '책세상문고-우리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메가테러리즘과>한국의> |
| 유엔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붙이는 미국의 과감함은 테러를 막자는 것인가? 테러의 완전소탕을 통하여 질서를 바로 잡고야 말겠다는 <세계질서전쟁>. 그들의 전쟁 목표는 그들의 주장대로 지구 상에서 모든 테러를 뿌리뽑기 위한 것일까? 21세기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미국의 전쟁(소위 <악의 축>들에 대한)은 냉전 이후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도 여전히 자기 건재를 드러내고 기득권을 행사하려는 무력과시(군사력에 의한)의 방편이거나, 숨겨진 또 다른 이익(지하 에너지자원)을 전제로 한 사악한 의도를 <깡패를 처단하는 경찰>의 모습으로 잘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후자에 무게를 두면서 세계 경찰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그리고 <힘에 의한 제압> 그것으로는 테러를 더욱더 지능화 다변화 시킬 뿐 테러를 막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현대의 테러는 과거의 그것과는 본질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배경이 다르고, 조직 체계가 다르고, 당연히 운영 방식이 변화하였으며, 무엇보다 테러를 행하는 이유와 전술이 다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테러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책은 현대를 경악게하는 테러의 주요 원인을 불균등한 경제발전과 그에 따른 <발전이익 소외지역>의 발생에서 찾고 있다. 경제발전이라는 숙제를 풀어 갈 수록 점점 차이가 드러나는 발전익의 편향적 분배는 부국과 빈국 간 빈부격차 심화를 초래하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맛보게 되는 빈국의 국민들은 <발전>이나 <개발>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이제 선진국들이 앞장 세우는 그 단어들은 <착취>나 <경제침탈>의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 결과는 신뢰의 상실로 이어져 불신은 원망과 적개심으로 발전되고, 스스로의 생계(그것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를 방어할 필요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되어 하나의 목소리로 드러난다. "적들을 막아라, 적들을 죽여라." 그리하여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으로서의 쇄국정신은 적들에 대한 <성전(聖戰)>이라는 기치아래로 전사들을 흡수하여 <테러>라는 극단적 행위를 경건하고도 자랑스럽게 치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조국수호와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기꺼이 인간폭탄이 되는, 그렇기에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는... 그 원인이 바로 심각한 경제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국 주도의 과학기술의 진보는 당연히 통신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고, 멋지게 펼쳐진 통신망들은 세계의 테러집단을 하나로 엮어간다. 조직은 상하로 구분되는 권위적(전통적인 방식의 상명하복) 위계질서를 배제한 채 자치집단의 연대 형식으로 구성되며,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하는 상부조직의 테러조직 운영에 대한 <원조>는 강력한 조직력을 뒷바침한다. 소위 원조 또는 지원이라는 바탕의 핵심에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이 놓여있다. 사우디 태생인 그는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은 재력가이며, 또한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된 테러집단의 연합체는 <메가테러리즘>을 지향하는 충성스런 구성원이 된다. 그런 이유로 과거의 테러가 특정 집단이 정치적 목표을 달성할 목적으로 특정인을 표적으로 하여 집행되었다면, 현대의 그것은 메가테러리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정집단은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테러집단의 연합으로 거듭났고, 대상 또한 특정인(개인, 또는 집단)에서 특정 국가로 확대되었다. 가장을 혐박하기 위해서 가족의 일원을 괴롭히듯이 국가(정부)를 흔드는 데는 국민을 괴롭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잘 아는 <메가테러리즘 연합>들은 해당국가의 국민 즉 민간인을 대량학살하는 방법들을 연구하게 되는데, 9.11 참상은 이상에서 설명한 테러의 본질적인 변화를 반증하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력에 의한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물론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저자는 미국의 수뇌부들이 더 잘 알고 있 것이라고 단정한다. 뻔히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당면한 곤혹스런 문제들(국내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팬타곤의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라고. 나 역시 동의한다.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테러는 이미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으며, 어느 국가나 정부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당연히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저개발 국가들의 빈곤타파를 위한 개발원조가 그것이다. 원조 비용의 조달을 위한 군사비용 감축, 무역세 신설, 선진 기술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저자의 대안들은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이런 일들을 집행하기 위한 기구로서의 <국가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세계 모든 국가들을 대표하는 정부로서의 <강력한 유엔> 창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또한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우선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현실이다 보니, 세계질서확립을 위한 강대국 눈치보기는 결국 또 하나의 <방울>로 남게 되는 셈이다. 그들이 스스로 목을 내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저자가 강력히 희망하는 바, 비정부기구(NGO)나 그 밖의 압력단체들의 결속과 저항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쁜 팬타곤 수뇌부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이끌어낼 수 있을까? 조심스런 예측 처럼 몇 번의 9.11이 있은 후에나 사고(思考)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인가? 오늘도 역사는 말없이 제 갈 길만 재촉한다. 먼 후대에 오늘은 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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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과 2장을 비롯하여 '메가 테러'와 관련된 저자의 모든 서술은 사실이 아닌 허구(공식 버전)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전쟁은 기만에 기초하고 있다"는 손자 병법의 명제가 국제테러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국제정치학도를 자처하는 저자는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메가테러>가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여 미국 사회 내부에서 미국 정부의 '반 아랍 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일어나는 것을 노린다고 말한다. 이른바 '아랍 음모론'이다. 미국의 심장부를 박살내는 그 초능력이면 이스라엘을 잿더미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아랍음모단'은 무엇때문에 맨하탄에 집착했던 것일까? 간단한 사실검증부터 해보자. 철근 빌딩이 불이 붙은 지 한 시간도 안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사건은 유사 이래 세 번, 2001년 9월 11일에만 일어났다. 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은 그렇게 사라지면서 뉴튼의 물리법칙도 폐기 처분했다. 무역센터 7번 건물은 여객기 충돌도 없이 쌍둥이 건물의 뒤를 이어 6.6초 만에 사라짐으로써 뉴튼의 역학을 '확인 사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9Xad6ooPo 납치된 여객기에 19명의 테러범들이 탔다는, 여객기에서 인질들이 전화를 했다는 아니 그날 그 4대의 여객기가 이륙했다는 스토리도 증거는 없다. 그래서 펜타곤에 충돌한 여객기를 보여주는 cctv 사진 한장 없고 블랙박스도 모두 '비공개' 아닌가? 이것은 그날의 무대에 '투명 여객기'와 '투명 인간'들이 출연했음을 말해준다. 웰즈의 공상과학소설이 현실의 과학이 된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 관계의 인식 없이 너무도 많은 (무)식자들이 매스미디어가 흘린,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아랍 음모론'을 몇년 째 염불처럼 외우고 있다.'좌파의 대부'라 불리우는 노암 촘스키가 911이 터지자 마자 '아랍음모론'을 주장하는 책을 낸 건 그의 천직이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2005년이 아닌가? 게다가 '아랍음모론'의 허구를 낱낱이 폭로한 제국의 꿈 작전 911 까지 일 년 전에 번역된 마당에 촘스키 흉내를 내는 건 우습지 않은가? "<메가 테러>를 벌이는 반미 테러 조직이 실재한다"는 <9.11공식 버전>의 핵심을 뒤집는 정밀한 고증작업은 이미 전세계의 비판적 지식인과 언론인, <9.11> 희생자 유가족들 (http://www.911citizenswatch.org/)에 의해 사건 직후부터 맹렬히 진행되었고 지금은 유사 이래 최초의 '글로벌 국제테러 연구 공동체'가 인터넷 공간에서 가동하고 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메가테러>란‘위기에 처한 권력이 그들의 숨겨진 정치 경제적 목적 (Secret Agenda)을 관철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조작하는 심리전의 한 기술’에 속한다. 클라우제비츠의『전쟁론』에서 한 구절을 원용한다면, 9/11과 같은 테러는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을 가지고 계속되는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관점에 따른다면 테러에 관한 고찰은 "지금까지 보다도 훨씬 정연한 통일을 얻을 것이며 또 모든 것은 쉽사리 해명될 수 있다". 구춘권의 <메가 테러리즘...>은 평가를 하건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마지막에는 차마 보아줄 수 없게 되었다. 별 하나도 아깝다.
p.s. 2005년 당시의 '911 유가족 홈피'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실종 상태'다. |
| 노무현 정부는 최근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신외교정책을 표방했다. 대통령이 외교정책과 관련해‘할말은 하겠다’는 발언 이후에 가시적으로 제출된 외교정책이어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제정치 상황이나 동맹의 역사적 의미에 근거하기 보다는 민족, 국민감정에 기초한 외교정책을 펼쳐나감으로써 준비도 없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편 이제는 당당한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어쨌건 ‘동북아균형자론’이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새롭게 형성될 한미관계의 올바른 설정을 위해 국제정치 질서를 올바로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국제 정치는 9.11 테러 이후와 이전으로 구분할 정도로 테러전쟁에 대한 시각차로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듯하다. 냉전 종식 이후 팍스아메리카로 대변되는 신냉전시대의 질서가 한층더 복잡성을 띤 테러전쟁시대로 진입하게 된것이다. 세계의 평화로운 질서를 위해 테러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은 대미관과 직결된 문제이며, 우리의 외교정책 수립에 근간이 될 것이기에 테러리즘, 테러전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 특히 한미동맹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대테러전쟁의 중요한 표적국 중의 하나인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시각차의 발생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수과제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은 유익한 면이 있다. 테러리즘의 역사적 연원과 냉전이후 미국의 대테러정책의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익함의 뒤편에 이상주의의 함정이 놓여 있기도 하다. 저자는 테러리즘과 반테러전쟁에 대한 비평을 가하면서 평화적으로 테러전쟁시대를 종식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때문에 바람직한 한미동맹의 재설정이라는 최근의 화두에는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바람직한 국제 질서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은 가능하게 한다. 즉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세계 질서 구축에 반대하면서 국제사회의 동의를 통한 집단안보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탈군사적인 방법으로 테러를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러를 확대하고 자초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이기 때문에 전세계의 평화주의적 국가들이 미국에 맞선 반미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과 논리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 내용이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핵 외교 전략에 대한 타당한 평가 없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중동 분쟁에 대한 구체적 분석 없이 세계 공동의 안보전략을 논하고 있다는데서 그 허점이 드러난다. 또 탈군사화된 방법으로 테러리즘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도 매우 부족하다. 역사적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테러리즘을 막아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정규군도 아니며, 통일된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지도 않는 무차별한 폭력성을 띤 집단을 탈군사화된 방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사유의 결과물일 뿐이다. 평화는 지켜져야 하고 지구적 범위에서 증진,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끔찍한 인권유린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사이비교주적 독재통치를 종식해야 하는 인류적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과 위험, 군사적 방법사용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마저 부인해서는 안된다. 이 책의 저자 구춘권씨가 극단주의적 테러리즘의 발호를 근본적으로 척결하고자하는 선의에서, 평화시대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면 결말은 나에게는 진정 아쉬운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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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끝난 지 18일이 지났다. 40여 일 언론의 중심에 자리 잡았던 그 사건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탈레반'은 테러집단으로 각인되었다. 테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오늘도 이라크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자연사가 아니라 누구의 테러에 의하여.
"테러리즘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테러라는 단어는 원래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지칭하는 데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시기부터 테러는 일반적으로 공포에 기반을 둔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보다 넓게 정의한다면, 테러는 정치적 동기를 지닌 폭력 일반을 지칭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당연히 사회 집단의 테러 행위는 물론 국가에 의한 테러 역시 포함된다." (본문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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