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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이야기” 설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읽는 내내 나는 하나의 증언을 들었다. 누군가의 사라짐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를 꿰매며 걸어가는 한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오래전에 잃어버린 우리의 심장을 되짚었다. 버드, 아니 노아. 더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게 된 한 아이가 있다. 어머니가 '파오'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얼굴이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감시받고, 침묵해야 하며, 지워져야 했다. 단지 어떤 ‘피’에서 비롯된 타자성이 이유였다. 나는 이 소년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지워진 존재들’이 함께 떠올랐다. 소설 속 미국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과, 어제 뉴스에서 본 장면들과, 우리가 싸워야 했던 수많은 권력의 얼굴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 ‘PACT’라는 이름 아래, 국가는 ‘순수’와 ‘애국’을 명분 삼아 폭력을 정당화한다. 소설은 그러한 국가 폭력이 어떻게 사적 감시와 분열, 혐오로 이어지는지를 잔혹하리만큼 정밀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너무나 가까운 디스토피아로 상상이 아니다. 반복되는 과거이며, 현재의 전조이고, 미래를 향한 경고다. 책을 태우는 대신 화장지로 갈아 넣는 문명화된 검열, 아이들의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납치하는 ‘정책’이라는 이름의 폭력.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버틸 수 없어 결국 써야만 했던 진실이다.” ‘우리’의 불행이 ‘그들’의 행복 때문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마치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향한 혐오가 늘 그래왔듯이. 이유를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장 비극적이다. 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기억의 저장소이자, 저항의 도구다. 노아가 그림 한 장을 붙잡고 어머니를 찾아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야기 덕분이었다. 시와 말, 고리처럼 이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공동체의 붕괴를 거슬러 올라가는 유일한 힘이 된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증언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다른 존재’였음을 말해줘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다시금 다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목격자여야 한다.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말할 책임이 있다. 침묵은 또 다른 폭력이며, ‘존재’ 그 자체가 죄가 되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은 곧 살아남는 일이다. #우리의잃어버린심장 #설레스트잉 #비채 #디스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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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월 26일 영국의 군인이자 식민지 행정관인 아서 필립은 11척의 배에 1500명의 선원을 태우고 1년을 탐험한 끝에 거대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허허 벌판의 빈 땅 '시드니'에 행정관 아서 필립과 천 오백명의 선원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서 이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첫 번째 이주민 상선에 포화 상태인 감옥의 죄수들을 가득 태워 보냈다. 영국의 감옥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 하자 마자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백인 죄수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호주 원주민 남자들은 죽여 버렸고 여성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강간 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영국 죄수들은 호주 원주민들을 애버리진(Aborigine/원래부터 있던 사람/속어로 미개한 사람)이라 부르며 인간 사냥을 벌였고 그 결과 혼혈 원주민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2차 상선에 미개척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탑승한 선교사들은 호주대륙에서 백인 이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하프캐스티드피플(half casted people)이라고 부르며 '신의 이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미개한 원주민 사회에서 구출 해야 한다는 구호 운동을 펼쳤다. 한 손에 성경책을 든 백인 선교사들과 각 지역을 담당하는 목사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원주민 혼혈 아이들을 백인가정에 입양 시켜서 호주 대륙에 원주민 흔적을 지우기로 합의 한다. 호주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원주민이 미개하다 못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가축을 키우는 농장 같은 우리에 가둬 버리고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입양 시켜 버렸다. 1900년에서 1972년 사이 3만5000명의 원주민 아이들과 백인 혼혈 아동들이 백인 가정에 입양 되었고 간신히 백인의 폭력과 살상에서 살아 남은 원주민들은 호주 대륙에서 가장 척박한 사막 지대로 쫓겨났다. 호주 정부는 1992년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이 가해자인 원주민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레드펀 연설(Redfern Speech)'을 하기 전까지 백인 이민자들이 원주민에게 가한 극악한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아이들을 빼앗은 사례가 아주 많다. 미 대륙을 차지한 영국과 프랑스계 백인들은 인디언 부족을 사멸하고 인종을 말살 하기 위해서 인디언 가정의 아이들을 백인 가정에 입양 시키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와 종교 시설에 보내 버렸다. 미 대륙 백인들은 인디언을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키고 나서 흑인 노예를 수입해 농장에서 가축처럼 부렸고 목사와 선교사들과 단합해서 교구 확장과 신자수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 아이들을 종교 시설에 강제로 보냈다. 미 대륙에서는 1978년에 제정된 아메리카 원주민 아동의 입양 및 양육에 대해 특별한 법적 보호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 외부와 단절된 미국의 남부 국경지역에서 강제 아동 입양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내 독일계들을 잠재적 스파이라며 집중 감시를 하면서도 부모와 아이를 분리 시키거나 강제 수용서로 끌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하와이 섬에 폭격을 가하자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몰아 넣었고 아이들과 분리 시켰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미 정부는 행정부가 바뀌어도 1982년 부터 미국 내의 특정 인종에 대한 감시와 차별법을 은밀하게 가동 시켜 왔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집권 초기 불법 이민자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그 자녀들을 교회 단체에 보내 버린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회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코로나 균의 진앙지가 중국이라며 아시아인 차별법을 시행해서 강제 추방을 시도 했지만 이 역시 의회 반대로 무산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시아인 차별법'은 폐기 되었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시행했던 일명 ‘차이나 이니셔티브(수천 명의 중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한 스파이 색출 작전)’라 불리는 행정 명령은 2025년 트럼프 2기 집권기부터 더 정교하고 더 차별적인 이민과 차별 정책으로 계승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와 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색 인종과 비 백인들. 유학생 체류 비자 발급도 중지 한다고 선포 하고 불법 이민자들 그리고 외국인 갱단과 친 아랍계들을 내쫓은 자리에 유럽 백인들과 남아공 백인들에게 유리한 비자를 주겠다며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 불법 이주민과 난민 가정의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자녀들은 미국 사회와 격리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이에 동조하는 백인 극우 단체들은 비백인과 이민자들, 아시안계들을 내쫓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인종 사회 미국에서 인종과 종교간의 갈등은 단 하루도 잠잠한 적은 없었지만 사회적 이목 때문에 그동안 내색을 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트럼프의 차별과 분노를 조장하는 정책에 크게 환호 하고 있고 정치권은 미국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중국이라 가정 하고 ,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차이의 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20세기 미국이 눈부신 번영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군사 경제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건 박해와 차별, 가난을 벗어나 미국 땅에서 성실하게 삶을 일구며 미래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 했던 이민자들과 난민들 덕분이였다. 이들 중에 상당수는 자국에서 뛰어났던 인재들로 전쟁과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해서 미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 세기 전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중국계 과학자 부부가 있었다.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셀레스트 잉의 부모는 1960년대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과학자였다. 영국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셀레스트 잉의 아버지 다니엘 잉은 NASA 설립 초창기 멤버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클리브랜드 주립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미 정부로 부터 핵심 인재로 우대 받았던 과학자 부모 아래서 성장한 셀레스트 잉은 아시안계들이 거의 없는 오하이오주 백인 사회에서 성장하는 동안 큰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백인들 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셀레스트 잉은 성장 하는 동안 겪었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인종에 대한 차별을 글로 적어 나가면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자 부모의 영향으로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고를 갖췄던 셀레스트 잉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예술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당시 단편 소설 부문 상을 받은 셀레스트 잉은 2012년 부터 다양한 온라인 매거진에 글을 기고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메사추세츠북어워드상, 미국도서관협회 알렉스상을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주목 받는 작가가 되었다. 201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작은 불씨는 어디에나》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단숨에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간 셀레스트 잉은 2022년 세번째 소설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으로 미국 타임스에서 ‘2022년 100권의 필독서’로 선정 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적’이지 않은 생각과 외모가 탄압 받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은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 시행에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의혹에 불과 했던 아시아계 출신 무명 시인 ‘마거릿’이 PACT’ 시행법을 비판하는 행동을 하며 정부 정책에 대항하는 반역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자 사람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시인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시인 '마거릿'을 본보기로 내세운 미국 정부가 아시아계를 겨냥한 감시를 노골적으로 시행하는 사이에 아홉살 짜리 시인의 아들 ‘버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사이렌과 고함이 울렸고 가끔은 총성도 들렸다. 아니, 폭죽 소리였나? 불안의 물결이 산불처럼 주에서 주로 퍼져 나갔고 전국이 바짝 말라 어떻게든 불타고 싶어 했다. -셀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중에서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에 위법 하는 행위를 저지른 부모들은 잡혀가고 그 아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가정이나 시설로 보내진다. 삼 년 후, 12살이 된 버드는 오직 그림으로만 채워진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받고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홀로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들의 이야기>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작가 셀레스트 잉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 정부에 탄압 받아 남편과 아들 모두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잃은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삶을 차용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리카르도 헌이 번역한 일본 설화의 뼈대를 작품의 토대로 사용했다고 후기를 통해 밝혔다. 근 미래 시대 미국의 전통문화 보존법 ‘PACT’의 탄압 받는 인종으로 중국계 여성 시인을 내세운 작가 셀레스트 잉이 펼쳐 보이는 근 미래 시대 미국사회는 그다지 암울하거나 암담해 보이지 않다. 작가 셀레스트 잉은 미국 정부로부터 과학자 우대 정책 특혜를 받아 별다른 차별과 어려움 없이 성장해서 인지 검열과 침묵이 일상이 된 근 미래 시대 미국에 홀로 남겨진 10대 중국계 아이가 행방불명된 시인 엄마가 남긴 흔적을 도서관에 비치 된 시집을 찾아 헤매는 모험 스토리처럼 펼쳐 보였다. 불과 반 세기 전까지 흑인 차별법을 시행했던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 하고 있는 차별법은 단계별로 시행 되고 있어서 이후에 들어서는 새 행정부에서 완전히 폐기 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떤 주에서나 적용 할 수 있는 새 차별법이 만들어 질 것이다. 미국에서 아시안계들이 받는 차별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걱정하고 우려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침없이 과학 굴기와 압도적인 영토 크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며 호령 하는 중국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상대국은 대한민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소멸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외국인 인구층의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계들로 중국인 부모를 두고 있는 자녀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 정부의 중요 기관에 취직해서 기밀을 빼돌리는 사건이 비일비재 하게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10대 후반, 20대 초반 중국 청년들이 한반도 내 군사보호시설에 몰래 사진을 찍거나 높은 곳에서도 선명하게 찍히는 드론으로 국가 주요 시설을 찍고 있다. 2023년 6월 중국인 유학생 3명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지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무단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야산에서 드론을 띄우는 중국계를 잡아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분석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진과 영상이 모두 국가주요시설물들 뿐이다. 이런 혐의로 잡힌 중국인들에게 한국 법 처벌은 고작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2개월 정도 출입국 금지를 내리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리고 있다. 한국 정부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는 동안 중국인들은 입을 맞춘 듯 '호기심에 찍었다' '경치가 좋아서 찍었다'고 둘러대면 이들은 과태료를 내고 풀려나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출입국 금지가 해제 되면 언제든지 한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보이스 피싱, 딥페이크, 금융 해킹 사고의 배후에는 거대한 중국이 있고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수차례 탈탈 털릴 정도로 국가와 기업의 안일한 법망과 보안 시스템은 너무 허술해서 전 세계 해커들에게 한국 통신망은 가져 갈 것이 많은 호구가 되었다. 한국에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중국계들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조선족 칼부림에 한국민이 희생 당하고 있다. 중국의 검은 세력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잠입해 있어도 마땅하게 처벌할 법도 없는 한국은 근 미래 시대에 국가의 존립 마저 위협 받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전 세계 대륙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식민지를 넓히며 현지인들을 착취하고 말살 시킨 백인 국가들은 국가의 존립과 기강을 위해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해서 촘촘하게 차별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민의 삶을 위협 하고 있는 마약과 갱단을 미국 밖으로 몰아 내고 있고 이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 보다 국적을 취득한 중국계의 인권을 더 중요시 하고 개인정보 보호는 소홀히 하는 사이 중국 대사관은 서울 중심 용산에 노른자 땅을 대거 사들였다. 정부는 이 또한 제재 할 방법도 법령도 없다며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이든 관광하러 온 중국인이든 법을 어기면 이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의 삶의 터전도 생명도 위협 받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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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PACT)이 시행된 가상의 시대.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탄압의 대상이 된다. 아시아계 무명 시인 마거릿은 반역 혐의에 연루된 뒤 사라지고, 남겨진 아들 버드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지운 채 살아간다. “krei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래. 그녀가 읽는다. 판단하는 거지. 체와 비슷하네.” 이선이 말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떼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krisis는 더 좋든 나쁘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뜻한대.”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일종의 krisis다. 누가 남고, 누가 사라질지를 결정짓는 조용한 심판대. 사람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으려 하고, 마치 금을 밟으면 죽는 오징어게임처럼, 모두가 위태롭고 경직된 모습이다. PACT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은 곧 체포와 격리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감추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다름’이 죄가 되는 사회.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사회가 만든 기준의 체에 걸러져 폭력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외모와 언어, 문화는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와 혐오의 표적이 된다. 디스토피아적 배경이지만,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의 풍경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버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점차 감시와 통제의 공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소설 전체에 드리운 감옥 같은 분위기는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그 문장 속 주어는 신에서 엄마, 선생님, 직장 상사, 이웃으로 바뀌고, 결국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감시는 법이나 제도보다 훨씬 깊게,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는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감시하며 ‘정상’이라는 틀 안에 조용히 자신을 가두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어린 버드가 엄마의 편지와 단서를 좇아가는 여정은 조마조마하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 소설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자유나 표현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권리,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 곧 우리 존재의 중심이자 생명의 순환을 담당하는 심장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감정과 연대, 윤리적 중심을 잃은 사회를 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감정이 흐르지 않는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다. 기계처럼 경직된 사회에서 마거릿은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을 대신해 이야기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말하려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심장을 되찾은 듯한 삶의 맥박이 느껴진다. “네가 배개 아래 묻어두었던 유치들을 박하사탕을 담던 작은 깡통에 모아두었어. 가끔 그걸 꺼내 손에 쏟고 손바닥에서 구슬처럼 서로 부딪히게 해.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알기를 바라. 내가 얼마나 바라는지” “네가 태워났을 때, 네 아빠는 네게 내 이름을 주고 싶어했어. 미우. 묘목이란 뜻이지.. 하지만 나는 네게 그의 성을 주었어. 가드너. 뭔가 자라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나는 네가 자랄 뿐 아니라 자라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어. 네 삶을 통제하고, 네 힘을 미래에 두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사람.” " 널 원했어. 그녀는 그렇게만 말한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자 버드가 들어야 할 전부다. 그녀가 그를 원했다. 여전히 그를 원한다. 그녀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어도, 끝내 말을 걸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의 여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언어와 사랑, 연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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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잃어버린 심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책입니다. 큰 사건이나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 깊은 곳을 천천히 두드리며 오래 남습니다. 이 책은 ‘말한다’기보다는 ‘들려준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상실과 두려움, 분노와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자주 외면해왔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감정들은 불편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지만, 책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안아줍니다. 특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잔잔하게 흐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떠나보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곱씹게 만듭니다. 엄마도, 우리도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불완전함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책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정직하고 강하게 다가옵니다. 읽고 나면 조용한 여운이 오래 남고, 한동안 다른 책을 쉽게 펼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 여운은 따뜻하고도 묵직한 것입니다. 조용한 문장 속에서 감정을 깊이 느끼고 싶은 분, 말보다 마음이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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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PACT(미국 전통문화 보존법)‘는 미국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아시아계 시민들 특히 중국계 미국인을 탄압하며 사람들을 이념의 틀에 가두고 공포로 지배한다. 반미국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를 들어 부모에게서 아이를 분리하고, 그 가족의 사랑과 유대를 파괴해버린다. 이 모든 과정은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편협하고 잔인하다. 읽으면서도 이 설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현실에서 우리는 유사한 정책들을 목격해왔고, 슬프게도 소설은 우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 주인공 ’버드‘와 그의 어머니 ’마거릿 미우‘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마거릿은 시인으로서 언어를 통해 저항했고, 그녀의 시는 정부의 검열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버드는 엄마가 쓴 시집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녀가 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 나간다. 그리고 읽는 독자도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소설을 읽는내내, 단순히 미국에 국한돼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한국 사회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산당’, ‘친중’, ‘반국가’ 등의 단어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혐오와 폭력은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다. 무언가를 비판하면 곧바로 사상 검열이 따르고, 경계하고 배척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보편적이며,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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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미국 속에 벌어지는 인종 차별, 특히 중국과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이야기다. 아마도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어릴 때부터 겪어온 수많은 경험들을 녹여낸 이야기들일 것이다. 미국 사회에 경제적 '위기'의 시기가 닥치고, 오랜 위기가 끝난 후 미국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PACT(독자정부같은 최고 권력기관)가 아이들을 납치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일들이 생긴다. 주로 중국계 아시아인에 의해 그들의 위기가 생긴 것이라는 확신이 전염처럼 미국에 퍼지고, PACT가 하는 일에 반기를 들거나 의문을 제시하면 예외없이 경찰에게 잡혀가는 공포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중국계 미국인 마거릿 미우는 백인 남편 이선과의 사이에 아들 버드를 두었다. '위기' 속에서도 사랑으로 가정을 잘 지켜오던 마거릿은 점차 자신이 쓴 시(특히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로 인해 PACT에게 반동분자로 찍히게 된다. 마거릿의 시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PACT에게 저항하는 정신을 가지게 되었고, 국가의 인종차별정책이나 아이들을 납치하여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일들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마거릿은 남편과 아들 버드를 위해 PACT에게 잡히기 전에 집을 떠나고, 이후 삼년 간 수많은 곳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 책은 어린 버드의 이야기로 시작하기에, 어느 날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는 어린 소년의 모험물이나 추리물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빠와 둘이 '튀지 않고', 엄마를 부정하며 죽은 듯이 살아가는 버드에게 어느 날, 엄마 마거릿이 보내온 편지 한 장이 도착한다. 고양이 그림만이 가득한 그 편지 한 장을 단서로 삼아, 결국 직접 엄마를 찾아 뉴욕으로 떠나게 되는 버드를 지켜보며 독자들은 궁금해진다. 왜 버드는 그렇게 이선과 함께 숨죽여 살아야만 했는지, 도대체 그의 엄마 마거릿이 어떤 반정부적인 일을 했는지, 버드는 과연 당국에 잡히지 않고 엄마를 만날 수 있는지. 그렇게 엄마를 찾아 떠나는 모험물은, 중반 이후 마거릿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종차별과 사회적 갈등, 인권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압권은, 마지막에 마거릿이 심어놓은 수많은 병뚜껑 스피커를 통해, 그동안 수집해온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서 낭송되는 것이다. 당국에 저항하는 마거릿의 시는,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을 멈춰 서게 하며 눈물을 흘리게 한다. 현재형 문체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인권에 대한 실상과 그 저항의 움직임을 다룬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탄압과 폭력이 현대에도 이루어질 수 있는 걸까. 미국이 중국과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시각 중 가장 극단의 반우호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그런 당국에 맞서 여러 가지 형태로 저항하는 시민들의 풍경이다. 마거릿 역시 직접 스피커를 만들며 도시 곳곳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파할 계획을 세웠지만, 그보다 앞서 페인트로, 뜨개실로, 여러 가지 예술적 작업들로 PACT에 저항하는 싸인을 보내는 숨은 저항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작가가 무엇보다 알리고 싶었던 건 바로 이 '저항'과 '회복'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을까 되새겨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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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며 '멋진 신세계'를 읽는 듯했습니다. 무엇인가 음식을 넘겨도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 강압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 까하고 말이죠. 현대를 살아가며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억압과 통제를 느끼면 부당함을 토로 하지만 소설의 그곳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구의 사실에서 현실로 가져온다면 상상의 이야기 인가? 하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답은 지금도 선명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이지 하며 간단한 답이 툭 튀어 나옵니다. 미국이라는 배경에선 왜 동양과 서양으로 편가르기를 하는가? 무역과 관세 전쟁을 일어나고 있는 현재 인종 협오는 보도되지 않은 어둠의 진실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꼬리를 물고 의문을 던져봅니다. 진실을 가리는 것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을 제거 한다면 문제는 그것으로 멈춰보리고 사라지는가? 인간의 생각과 판다는 하나이기 어렵다는 것 손 바닦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버드는 유명한 시인인 어머니와 6개국어를 구사하는 교수임에도 현실은 어머니의 사상과 인종이 다르다는 것으로 추출되었고 아버지는 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전락됩니다. 시련은 멈추지 않습니다. 언제 아들을 잃을 지 몰라 보호하고 함께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과 엄마의 행적과 부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버드에겐 밝혀내고 싶은 욕망에 있습니다. 지식이나 정보과 알면 알 수록 유리하고 편리한 건 만은 아니며 버드의 행동이 불행을 향하는 일일 지라도 인간의 행위는 정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pact는 인종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과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라고 대통령은 늘 말했다. -19 -그는 역사 시간에 본 사진을 기억한다. 마을 광장에 높이 쌓아올린 책이 불타는 모습,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사서는 그를 흘깃 보더니 낄낄대며 웃는다.-81 중국 진시황의 '문서갱유'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발언에 불만을 갖는 사상이나 근거를 불로 소멸시키는 것처럼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 민주주의에서 떠나 제국주의로 퇴보를 보여 줍니다. 책이라는 지식과 정보 사유를 주는 토양을 사라지게 하는 일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삶의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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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어떤 자격을 타고 태어난 이들은 없다. 다만 태어난 환경에 따라 그들의 신분이 결정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위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진짜 나다운 심장박동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미국적이지 않는 것은 모두 배제시킨다. 어느 누구도 미국적이지 않으면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다. PACT 그들은 이 법을 인종차별이 아닌 미국적인 마음가짐 자체라고 각인시킨다. 멀지않은 미래.. 미국은 어느 때보다 미국다워지고자 PACT라는 법을 내세우고, 그것에 반하는 이들을 반엽자라며 제거해버린다. 그 안에 살아가는 파오 "버드" 주인공. 자신을 "버드"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몇년전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엄마~!! 그녀로 부터 온 것이 확실한 편지 한장을 단서로 엄마를 찾아 나서는데.. 그 길에 알게된 것들은 무엇이며, 그는 과연 엄마를 찾을 수 있는지.. 🖋 당국에서는 파오라는 사실 자체가 범죄는 아니라고 늘 주지시켰다. PACT는 인종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과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라고 대통령은 늘 말했다. 💛 과학시간.. 사람의 피부색은 오랜시간 지나온 환경에 적응한 유전의 결과로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태어나는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게 유전자가 변형되어 살아남기 유리한 방향으로 태어나게 된다고 배웠다. 이 작품 처음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들은 이것이 인종차별이 아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애국심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인종이 아닌 미국인으로 보게 하는지 궁금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미국인이지만 어머니는 아시아계라 주인공은 파오라는 결과가 제시되어있는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건.. 어쨌든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면에 배척의 사상이 깔려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 소설의 설정은 멀지않은 미래이지만..우린 어쩜 얼마전부터 이란 모습의 미국을 확실히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굳이 상황이 미국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곳곳에도 이미 굳어버린 회복되지 못할 편가름이 누군가에게는 불평등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표현만 안했지, 그들과 같지 않은 이들은 이미 그들에게 사람이 아닌듯 하다. 실제 오늘도 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길 한복판에서 목격했다.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심장은 내 고유의 심박수를 가지며 울리고 공명으로 이어져 다른 이들이 살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글이라는 것이 참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작품. 어디서든 나의 심박수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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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미리 보지 않고 읽는 편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제목과 책 표지만 보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가 완전 좋아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 재미있는 내용이 아닌데 너무 신나게 읽어서 괜히 찔리네. 📓 아빠와 단둘이 사는 12세 소년 버드는 어느날 실종된 엄마의 편지로 추정되는 편지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 도서관은 열려있지만 책은 없고 전화와 통신은 되지만 시민들은 말하기를 포기하는 현실이 여기 있다 현재와 과거의 목소리가 혼재하는 이 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린 심장을 찾을 수 있을까. 📓 “우리의 모든 잃어버린 심장은 흩어져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운다” 📓 미국 우선주의임에도 바로 그 미국 안에서 소외된 사회공동체, 인종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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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중국, 한국, 일본과 관련 있는 거면 그 어떤 것이든 가까이해서는 안 돼. 그쪽 나라말로 대화하는 걸 보거나 관련한 이야기가 들리면 즉시 자리를 뜨는 거야. 알았어?"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모두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침묵하고, 외면했던 일들이.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한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침묵이 그들이 그렇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앗아가버렸다. 그러다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때야 울부짖지만 이미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게 된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중국계 미국인 엄마를 둔 버드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시녀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우리나라에 내려졌던 계엄령을 자꾸 상기시켰다. 그때 국회로 뛰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나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을까? 그때 계엄이 통과되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80년대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며 눈물 콧물 흘리며 매일이 데모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에도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덕에 나는 평온함을 지니며 살았다. 이 작품을 읽는데 자꾸 그때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심히 다니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말고, 데모대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들을 통해서 깨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을 배웠다...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전과 같은 듯 다른 시간이 시작되고 움츠려 있던 세상이 조금씩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때 그 원인을 '중국'에 돌려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퍼진 그 불신은 새로운 차별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정부에 반하는 일을 했거나, 할 예정이거나, 했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의 아이들이 사라진다. 경찰이 와서 아이와 부모를 떼어 놓는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위탁가정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고 부모와 아이의 끈은 끊어진다. 이것은 국가가 저지르는 명백한 '납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버드가 10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어린 버드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 버드와 아빠는 엄마랑 살던 집을 나와 대학에 딸린 자그만 아파트에 살게 된다. 엄마에 대한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버드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내고 엄마를 찾아 떠난다. 위기의 시대를 지나 이선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마거릿은 정원을 가꾸고 버드를 낳아 기르면서 시를 쓴다. 언젠가 책으로 나올 거라 믿은 그녀의 바람대로 시는 출판되었다. 100권만 팔린 시집.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다. 그 시에는 정원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생기는 감정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그녀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돌려달라.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어디에?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잊지 말라.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읽고, 듣는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게 바로 예술이다... 마거릿의 시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버드를 빼앗기지 않으려 마거릿이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은다. 버드는 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비로소 세상을 보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이 발길질을 당하며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그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올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론이 기능을 잃은 책 속의 세상과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닮아서.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결국 알게 모르게 내 일상을 쥐고 흔든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믿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잃고 누군가가 들려주는 소리만 믿게 되는 세상. 그 세상에 마거릿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외면하고, 믿지 않았던 진실들, 아이를 빼앗긴 부모들이 절절함을.. 묵직한 울림을 남긴 이야기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말 가치 있는 정보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야겠다. 누군가가 내지른 소리가 터무니없이 들리더라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그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이 이야기가 진심을 다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난 네게 그 두 가지가 모드 있어 행복해. 미래를 돌보는 보호자면서 이미 여기 있는 것을 지키는 전사니까. 버드가 이름처럼 자신의 세상을 보호하는 전사가 될까?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릴 소년으로만 남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시절은 끝났다. 미국은 조금씩 이 이야기 속 세상을 닮아가는 중이니까.. 우리는? 우리는 온전히 벗어났나? 책을 덮고도 이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한 건 없는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