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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사물의 실상이나 근본적 원리 즉 진리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관념의 산물일 수 있음을 논하고 있다. 그것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칸트의 이율배반, 그리고 보르헤스의 문학을 통해 접근하고 들어서고 있다. 물론 주주제 외의 이야기도 여러 인물의 일화들과 그들의 사유를 주주제와 씨실과 날실로 엮으며 논한다. 하지만 책이 다소의 어려운 수준이라 주주제만을 소소히 이해한 데 대해서도 만족한다.
우리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뚜렷한 실상이라는 것을 실체 그 자체로써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첫 명제이고. 이것이 하나의 오해라는 것이 두 번째 명제 같았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각각 관찰할 수는 있지만 둘을 한 번에 총체적으로 관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정의했듯이 칸트는 세계 인식에서의 이러한 모순을 이율배반이라고 정의했으며 보르헤스는 세계의 모순을 부정하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이해했다고 믿는 오류를 마법이나 환각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진리 이외에도 타자인 모든 것, 세계나 대상의 원리와 도덕 같은 관념들과 함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역시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결론짓고 있다. 우리는 모든 대상을 관념으로 내재화해 인식할 수 있을 뿐이지 실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면화하며 서로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세계에 대한 그리고 모든 타자에 대한 원하는 수준의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그 타자가 되어야 할 텐데 타자가 되어 자신이라는 개체성을 버려버리고서는 대상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타자와의 차이가 타자를 인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진리라는 우리의 기대 높은 수준에 맞춘 이해나 정의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되면서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고, 이해하려 타자로 남으면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부조리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이해가 가닿는 것은 사물의 표상 즉 대상에 대해 우리가 내리는 관념적 정의 이상일 수 없다는 말이다. 한정하고 제한한 대상의 상징, 한마디로 대상을 보고 깎아 만든 인형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대상 자체를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진짜 그 대상에 대한 염원이 깊어져 모두 가지려 하면 그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럼 그 대상을 가지려던 나는 사라진다. 그렇다고 그 대상을 사랑하려 하여 외부 대상으로 남는다면 대상에 대해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 아닌가 싶다.
소금인형으로서 바다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과 바다로 뛰어든 소금인형의 차이인데,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 수 없으면서 바다를 느끼고 싶어하는 소금인형이라는 말이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지도 않았고 바다를 만져본 적도 없는 소금인형이 바다를 만져본 것처럼 바다에서 수영을 한 것처럼 착각을 하며 열띤 토로를 하고 있는 것이 과학이던 다른 학문이건 모든 타대상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결론이 인다.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에서 데비여신은 자신의 사랑인 시바신에게 우주의 신비와 존재의 비밀에 대해 묻는다. 시바신은 그에 대해 설명하지만 결코 우주와 존재에 대한 정언적 학론을 펼치지 않는다. 그는 우주를 만끽하고 존재를 체험할 112가지의 명상 방편을 설명하는 것이다. 대상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고 대상이 되고 대상을 체험하는 길을 알려준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이해와 대상 자체가 되는 것은 다를지 모른다. 본서의 저자 윌리엄 에긴턴이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대상 자체가 되는 것도 대상을 이해하는 길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일체화되어본 이만이 대상이 되었던 순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조셉 캠벨이 원시신화를 설명하며 “신이 되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신앙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까닭일 것이다.
본서는 진리의 길, 진리를 추구하고 이해하는 길이 난해하고 지난한 길이기도 하면서 가닿을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그럼에도 이 추구하는 바가 지성으로서의 이해가 아닌 체험의 길이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
본서를 읽으며 다소 버거운 느낌이었으나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철학도든 과학도는 수행자든 일깨움이 있을 책이라는 감상이다. 한마디로 지적인 것을 추구하건 체험적인 것을 추구하건 누구에게나 깨우침을 줄 만한 책이라는 감상이다.
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천사들의엄격함 #윌리엄에긴턴 #까치글방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철학책 #철학책추천 #까치글방서포터즈3기 #도서협찬 * 이해를 위한 책속 문장
이 결정론은 하이젠베르크의 발견으로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과관계의 엄밀한 공식-현재를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에서 잘못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이다.” 후에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알려지게 된 이 원리는 현재 순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은 단지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필연적,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입증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도보 경주에 관한 제논의 역설에 대해-) 보르헤스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러한 순차적인 분해, 무한히 잘게 쪼개 들어가는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이 문제를 상상하는 것이 문제이다.” 보르헤스는 그러한 경주를 상상해서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이 우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보르헤스의 가정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마법사는 강력한 마법을 부려 헛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도록 그 자신마저 속이는 마법사였다 그는 “우리가 꼭 그렇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중략... “모든 관념론자가 인정하는 것을 인정해보자. 세계가 본래 환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떤 관념론자도 하지 못한 것을 해보자. 세계가 환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비실재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확신하건대, 칸트의 이율배반에서 그 비실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서 ...중략... 하지만 칸트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우리의 지각은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마음속에서 그 사물에 시공간적으로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구성하게 된 그 변형이다. 세계를 그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동등하다고 상상할 때-특히 공간과 시간이 근본적으로 실재한다고 가정할 때-우리의 이성은 결함을 가지게 되고, 과학은 역설적으로 응답하게 된다.
보르헤스의 마법사처럼, 세계를 관찰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한 지도 혹은 마음의 그림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도를 공간상 어디에나 존재하게 하고 시간상 영속적으로 존재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관해서 창조하는 그림에는 근본적인 결함, 즉 칸트가 이율배반이라고 부른 것이 있다. 완벽한 보석의 사소한 흠집처럼, 그것을 지우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결함은 지식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정확히 되살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당신이 기억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되고, 현재가 항상 그렇듯이 당신의 눈앞에서 가물거리며 사라질 것이다. 정말 완벽하게 재생한다면 그것을 재생한다는 의식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기억하는 자-즉 자아-를 구성하는 순간들의 연결이 지워질 테니 말이다. 완벽한 기억은 불가능하다. 완벽한 기억이 자아 그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먼저 살다 간 칸트처럼 보르헤스 역시 시간을 늦춰 단일한 프레임을 담는다는 생각, 관찰의 순간을 곱게 갈아 순수한 현재로 되살린다는 생각이 관찰 자체를 파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가까이에서 볼수록 현재는 우리의 이해로부터 더 멀리 달아난다는 것을 말이다.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한 지각과 생각이 언어의 두 측면을 조율하는 것에 달린 한, “실재에 관한 복잡하고 정확한 묘사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푸네스가 지각할 수 있다고 하는 방식대로 과학자가 지각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어떤 것을 관찰하는 행위 그 자체가 관찰자가 시공간상 두 순간의 차이-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를 일반화하고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겹침, 이 미묘한 거리두기가 없다면, 기준을 세우고 한동안 유지함으로써 어떤 미소한 변화를 표시하지 못한다면, 존재하게 될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다.
실재의 궁극적 성질을 안다고 가정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이해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불확정성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을 알 수 있지만, 둘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비시간적, 비공간적 관점은 관찰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어떤 지식과도 양립하지 않는다.
“그 ‘역설’은 단지 실재와 우리가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느끼는 실재의 충돌에 불과하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지식은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시공간상의 한계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을 할 때 연구하는 것은 세계 그 자체의 본성이 아니라 그 표상들이다. 여러 해가 지난 뒤 하이젠베르크가 사용한 표현에 따르면, 물리학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탐구 방법에 노출된 자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거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기준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절대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자기충족적인 우주를 가정하고, 우리가 절대 온전히 구현할 수 없는 완벽한 도덕법칙을 가정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판단할 때 우리는 절대로 그 사람의 생각에 접근할 수 없고, 그들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가 없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를 이미지로 구성하고, 그런 뒤 그 이미지는 우리가 만든 것임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실험자가 사건을 측정할 때처럼 우리가 발견한 것은 우리에게 부속된 것, 어떤 관계의 산물, 자연의 어떤 부분이 우리에게 그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역학의 관계론적 해석이라고 자신이 명명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재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상상할 때, 우리는 우주 바깥에서 우주를 바라본다고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세계를 부분적이며 서로를 반영하는 내면의 관점들뿐이다. 세계는 바로 이 관점들의 상호반영에 불과하다.”
어떤 것을 측정한다는 것은 내가 그것과 미세하게나마 돌이킬 수 없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며, 그래서 세계에 관해 무엇이라도 알게 될 조건 그 자체가 그것을 완벽하게 해낼 가능성을 폐기한다. 다른 한편으로, 완전한 존재, 즉 진실하고 완벽하게 그 흐름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차이를 전부 지워야 하고, 그래서 앎이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세계를 완벽하게 아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알고자 하는 세계와 동일해져야 한다. 또는 세계와 동일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세계를 아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하이젠베르크의 가장 유명한 원리가 운동량과 위치에 대해서 말해주듯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어떤 결과를 볼 때 우리는 바깥에서, 즉 공간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시간상 영속적인 세계에서 원인을 구한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세계는 그렇게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거기에는 실제로 엄정함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엄정함을 만든 체스 장인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천사들을 놓아주어야 한다. 실은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 |
인간의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온전히 지구상에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님 또다른 세계관이 있는 것인지 우리는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라고 불리는 실재라는 것은 과연 환상에 가까운 것인지, 인생의 진부함과 궁극적 본질을 깨달음을 주는 복합적인 학문으로부터 알아가게 되는 삶의 철학을 이 책에서 재삼사지(再三思之:여러 번 거듭하여 생각함)를 하게 해주는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삶에서 보여지는 실재라는 주제를 가지고, 문학가 보르헤스,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철학자 칸트의 관점이 담아진 복합적인 실재의 의의를 탐구해보는 서양 철학서다. 이 책에 서술된 3명의 학자들은 하나같이 각자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를 가지고 실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함을 넘어 심오한 철학서로 제작된 것으로 보여져서 한 번에 읽어보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는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가. 오감을 뛰어넘어 실재라는 걸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게 되면서부터 현실이라고 보여지는 실재가 문학과 물리학, 철학으로부터 비추어지는 해석이 달라진다는 걸 그들의 이견으로부터 시작된다. ![]() 이 책에서 전해주는 주제는 간단하다. 인생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다. 인간은 살면서 매번 문제를 안고 살기 때문에 늘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지옥같은 삶을 살아갈 때가 있다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기에 더더욱 여러 학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해주는 게 아마도 이 책에서 느껴지게 된다. 생명의 한도를 지닌 인간에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가. 삶은 한정적인데 어떤 깨달음이 필요하기에 이토록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가. 우주의 끝이 과연 무한대가 맞는가. 살아가면서 내 의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자체로부터 겪게 되는 이상향같은 주제를 다루어보는 거 같아서 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인문학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 이 책을 단순히 하나의 장르로 바라보기보다는 인간의 삶의 질서로부터 보여지는 여러 이면들을 다루어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한한 생명체가 얼마나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이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과연 어디까지 생각해보면서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는지를 신박하게 다가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말하자면, 인간의 삶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현지우현(玄之又玄: 그 심오한 뜻과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숨겨진 교훈)을 배우는 인생수업같은 책이라고 느껴진다. 이 책에 담아진 3명의 저자는 각자 독특한 인생관을 가지고 인간의 본질과 실재에 대해 설파하는 내용을 보면 천사만고[(千思萬考)여러 가지로 생각함]를 해주는 의미심장한 도서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천사들의엄격함 #윌리엄에긴턴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철학책 #철학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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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인간인식~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3인의 #지성을통해 #현실세계~의 실제를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이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3인의 인류학 특별엠버서더의 사상과 관점들을 조명하며 우리 뇌회로에 따끔한 정전기를 선물한다 즉 엄격함이란 고등한 단어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 #Borges 사랑의 #비통함 필연의 #명백한진실 아르헨티나 시인이 바라본 삶의 비통함속에 스며듯 상실감을통해 사랑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고 #하이젠베르크 #Heisenberg #양자역학 #부조리 양자역학에 존재하는 부조리, 왜 부조리로 칭했는지는 아마도 어렵기때문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개념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파인만의 유명한 해명을 발견했군요 #칸트 #ImmanuelKant #실수 #위대함 #인간이성 #한계 인간이성의 관념과 관점에대한 궁극적 본질에대해 한계가 있고 실수가 있지만 인류가 걸어온 받걸음을 돌이켜보면 과연 실망하숯있겠는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엄격함 #TheRigorofAngels 결국우린 손에잡히지않은 #실제라는현상 얼마나 거머쥘 수 있나의 #경이로움 #인간인식 한계까지 밀어붙인 3인 #지성을통해 #현실세계 실제탐구 #Borges #상실 진실 #Heisenberg #양자역학 #부조리 #ImmanuelKant #인간이성 ●#TheRigorofAngels #WilliamEgginton 지음 #김한영 옮김 #까치글방 출판 #출판사지원으로작성된서평입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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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실재는 없다 - 《천사들의 엄격함》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 (원제: The Rigor of Angels) 윌리엄 에긴턴 지음 | 김한영 옮김 [까치] (2025)
종종 한 권의 책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단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천사들의 엄격함》을 읽고 나서 입가에 맴도는 단어는 백일몽이라는 단어다. 인류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세 사람-칸트,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을 중심으로 ‘실재’란 무엇인가를 탐구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독서였다. 저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세 사람을 어떻게 주목하고 연결짓게 되었을까 놀랍다. 이 책에는 근대 철학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문학가이면서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서도 깊이 사색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양자 역학의 토대를 세우는데 기여함으로써 현대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이 세 사람이 이 책에 모여 연결될 수 있었던 단초는 철학자 칸트가 제공했다. 칸트의 사상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저자는 ‘세계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이 감각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의 감각은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는 창구이자 세계로 통하는 채널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를 파악하는 데 제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감각이다. 저자 윌리엄 에긴턴이 소환한 사상가 세 사람은 바로 실재의 본질을 탐구한 이들이다. 이들에게 ‘실재’란, 존재에 의해 감각되어 재구성된 이미지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에서 실재란, 측정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고, 칸트 역시 바라보는 존재(주체)의 절대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에 노출된 자연이다.”(115)이라는 하이젠베르크의 언급에서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저자가 보르헤스나 하이젠베르크가 모두 칸트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주목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생생한 인물의 모습으로 되살려 놓은 부분이다. 실재의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에 있어 현대 물리학의 역사 일부를 생생하게 들여다본 느낌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이라는 토대 위에서 ‘원자는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물체도 아니다’라는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은 상식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이, ‘실재하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무엇인가? 결국 이 문제는 존재와 우주의 근거를 설명하는 본질과 이어져 있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질문이 단순히 철학과 문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문제를 관통하고 있었다.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보는 방식을 마련해주었다. 그렇다면 칸트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에 인간이 파악한 ‘실재’란 같을 수 없을 것이고, 심지어 동시대인에게도 이 ‘실재’란 같을 수 없지 않겠는가. 나아가 각 존재에 의해 구성된 실재는 각 주체가 세계로부터 추출한 극히 작은 이미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파악된 실재’는 결코 실재와 동일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대한 에피소드는, 주체에 의해 파악된 실재의 이미지가 실제의 ‘실재’와 동일한 경우 그 주체는 자유를 잃고 그 ‘실재’에 구속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이 놀라운 능력과 반대로,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를 통합하여 의미를 추출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결국 ‘완벽한 기억’ 혹은 ‘완벽한 재현’이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존재는 내부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구조화하는 기능이 필요할 듯하다. 결국 주체가 세계를 파악하려면 세계로부터 흡수한 정보를 통합하고 의미를 추출하는 추상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양자 역학의 토대를 놓은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행렬 역학’으로 양자 역학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대화의 방법’이었다. 그는 ‘모든 진영에게 열린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 지식이나 현상에 대해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영역이 하이젠베르크가 생각했던 ‘중간 지대’에 가까운 것 같다. 하이젠베르크는 핵이나 전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정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와 다르고 때론 논쟁도 벌였던 닐스 보어, 이보다 더 큰 견해차를 지니고 대립했던 아인슈타인과도 ‘중간 지대’를 유지한 점에 주목해 본다. 이‘지대’는 그와 이 영역 내에서 공존했던 이들에게 서로의 논리를 다듬고 재점검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하이젠베르크의 ‘중간 지대’는 견해차에 따른 상대방을 배제하기만 하는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대’는 서로 이질적이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상가가 언급한‘실재’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큰 틀에서 주체가 파악하는‘실재’는 각 주체만큼이나 다양한‘실재’가 존재한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하이젠베르크의‘중간 지대’는 단지 학문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를 위해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혹은 의식 있는 주체에게 필수적인 요건 혹은 덕목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가 경직되고 메말라가는 지금, 기후 정의와 같이 시급한 인류 공동의 문제를 직시하는 데에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전후 하이젠베르크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동료 과학자이면서 나치에 의해 부모님 모두 희생당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구드스미스와 하이젠베르크의 인연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다. 구드스미스가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거둔 것은, 어쩌면 저자가 말한대로 자신을 위한 조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구드스미스 자신이 하이젠베르크라는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진 것은 아닐까 싶다. 다르게 말하면 타자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이 세상의 ‘실재’는 객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이젠베르크에게는 그만의 ‘실재’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부분은 나의 생각이지만, 타자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실재’의 개념을 마찬가지로 적용하면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담긴 세 사상가의 실재에 대한 주장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칸트의 사상이 보르헤스와 하이젠베르크에 영향을 주었고, 실재를 파악할 때 실재의 본질이 이를 바라보는 이, 곧 주체에 달려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 각자는 세계라는 이미지가 통과하는 다른 렌즈를 지닌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 책은 ‘실재란 무엇인가?’를 탐구한 현대 물리학사의 한 단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보른을 포함한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하는 집단과 슈뢰딩거 아인슈타인의 논쟁은 일단 현대 물리학계의 실험을 통해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해석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말이다. 또한 이 책은‘자유의지’라는, 사상사의 오랜 주제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생각해볼만 하다. 무엇보다 서로 무관해 보이기까지 한 세 명의 지식인들을 ‘실재’라는 주제로 엮어내는 저자의 통찰과 안목을 경험할 수 있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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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엄격함》은 문학, 물리학, 철학이라는 영역에서 정점에 선 세 거장,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를 통해 인간 인지의 한계와 실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현대언어문학과 교수이며 인문학 연구소의 소장인 윌리엄 에긴턴이 우주론과 문학과 철학에 관해 25년 이상 사유하고 가르치고 글을 써온 과정의 결실이다. 주제는 거창하지만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책이 아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다. 에피소드나 스토리를 활용한 소설적 서술 덕분에 세 거장의 흥미로운 썰을 풍성하게 들을 수 있다. 그 사이사이로 그들의 사상과 이론을 엮어 흔하고 흔한 주제가 아닌 저자만의 창조적 시선을 담은 책을 탄생시켰다. 천재들의 사유를 따라가고 이해하려니 사실 어렵긴 했다. (ㅎㅎ)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 20세기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20세기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천재들의 만남이다. 저자는 이들의 사상을 서로 연결하고, 충돌시키며,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마치 세 개의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무한한 심연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세 거장의 사상을 통해 인간 인지의 복잡성과 깊이를 탐구했다. 《천사들의 엄격함》은 세 거장의 삶과 사상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지의 틀을 깨고, 그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천사들의 엄격함'은 인간의 불완전한 인지 능력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보르헤스의 미로 같은 상상력,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 인지의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실재의 궁극적 본질'이라는 부제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실재를 인지한다고 믿지만, 과연 우리가 인지하는 실재는 객관적인 진실일까? 아니면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이 책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게 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세상은 확률과 불확정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했다. 보르헤스의 문학은 무한하고 복잡한 세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세상은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곳이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다. 보르헤스는 상상력과 허구가 제한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라고 말한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고 다층적이지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훨씬 더 신비하고 놀라운 가능성의 세계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다 알 수 없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추적할 수 있는 무한한 세계가 여기 있다. 어차피 알 수 없다며 체념하기보다, 알아야 하고 알 수 있는 미지의 존재가 실재했기에 끝없는 돌파로 지금의 문명에 이른 것 아닐까. 아직 알지 못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측면들을 더 깊게 이해해 나가는 기쁨을 누려 보자. 세상이 불확실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며,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옳고 그름에 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답을 찾기를. 그 여정에서 《천사들의 엄격함》이 멋진 대화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시간상으로 어느 한 순간을 경험하는 #도서지원 #천사들의엄격함 #까치글방서포터즈3기 #철학책추천 #윌리엄애긴턴 |
천사들의 엄격함 - 윌리엄 에긴턴![]() 그래서 저 같은 분들도 있지 않을까? 철학을 모르는데 철학이 좋고, 책이 너무 어려운데 자꾸만 읽고 싶고, 난해하고 낯선 단어들이 빈틈없이 부어져 있어도 그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휘저어가며 어떻게로든 나만의 언어로 바꿔 삼키는 과정을 싫어하지 않는, 그런 분이 또 계시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도서를 지원해 줬는데 설명 이따위로 할 거야! 싶을 것도 같은데 철학을 몰라도, 보르헤스가 누군지 몰라도, ‘실재의 궁극적 본질’같은 어려운 말을 몰라도 ‘이 책 뭐지? 무슨 책이지? 일단 한번 볼까?’하는 마음으로도 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하잖아요. 270페이지까지 읽었는데요(총 375페이지, 어제오늘 정말 정말 정말 바빴어요). 정말 너무 어려워요. 근데 너무 재미있어요. 실재하는 것,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혹은 보이지 않는 것도)의 ‘관계’나 ‘위치’에 따른 인식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이 말은 얼마 전 서평에서도 언급했는데 각자에게 보이는 것이 다 같지 않다는 건 정말 엄청난 거잖아요. 지금 내 눈앞에 테라 라이트 맥주가 부어져 있는 노란색 머그컵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말 신비롭잖아요. 이 책은 읽는 내내 저는 ‘시공간’과 ‘관계’, ‘위치’를 조금 더 상위 선상에 올려놓고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더군다나 이 책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전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세 명의 인물들을 안정적이게 한 테이블에 모았다는 것입니다. 세 명의 사상가는 감히 제가 그들의 삶과 업적을 운운하기에 더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 책 속에서 그들의 삶은 명확한 과학만으로 깊이 있는 철학만으로 심미적인 문학만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런 책은 한 번에 후루룩 읽고 이런 내용이야!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에요. 필요한 사람만 볼 것 같은 묵직한 무게와 온도의 책이지만 저같이 지적 공간을 채우기 위해 보시기에 좋은 책이에요. 뒷부분도 마저 읽을게요. 어떤 세계나 대상을 마주할 때 내가 마주하고 해석하는 것과 세계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철학이 어려운 건 정답이 없다는 건데 그럼에도 그것을 계속해서 떠올려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철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게 내뱉어봅니다. 가독성 정말 좋습니다. 칸트에 대한 정보나 궁금증이 있으신 분은 이 책으로 꼭 한번 만나보시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이런 책 정말 신선했어요. 각각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정한 트라이앵글 안에 모이는 에너지는 ‘이성’이라는 철학의 본질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책 스무스하게, 즐기면서 읽을 날이 저에게도 오기를 바라며 책은 추천합니다! @kachibooks #도서지원 #천사들의엄격함 #윌리엄에긴턴 #철학책추천 #까치출판사 #칸트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순수이성비판 #이율배반 #우주 #철학 #까치서포터즈 #책사애 #책벗뜰 #책추천 |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의 사유를 엮은 책이에요. 조금 어렵지만 흥미로웠어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 읽듯이 쓰여 있어서 좋았습니다. 세 인물의 연결과 깊은 통찰이 아주아주 인상적입니다. 철학, 물리학, 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당연하게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을 짚어보고 따져보고 헤쳐보게 해요. 묵직한 사유의 과정을 따라와 보세요. 나의 하루가 달라보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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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인식한다는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는 보통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면 객관적 실재를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천사들의 엄격함>의 저자 윌리엄 에긴턴이 말한다. 그는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의 주장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저지르는 실수들을 문학, 과학, 철학의 관점을 통해 설명한다. 인간이 세상을 인식할 때의 한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세 명의 인물은 인간의 편견을 뒤집어 문제를 해결했다. 먼저 핵심을 말하자, 우리는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때 인간의 거름망을 거친다. 칸트식으로 표현하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을 부여하여 형성된 직관을 오성이 정리한다. 그리고 이성이 이를 다룬다. 자, 그렇다면 실재는 그자체로, 그러니까 모든 것인 실재가 그대로 인간에게 와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틀을 거쳐 변형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틀'은(특히 시공간이 실재한다 여기는 틀) 항상 옳은 것일까? 진리의 도구일까? 우리는 우리만의 도구, 나쁘게 말하면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생산해 나가느냐의 문제에서 도드라진다. 그것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이 벌인 양자역학 논쟁과 칸트의 객관적 지식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난다.
먼저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습성을 살펴보자. 젊은 시절 사랑을 하며 갈등을 겪고 이별 후 고통의 시간을 보낸 보르헤스는 언어의 근본적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랑과 존재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뒤이어 그는 애인 노라 랑헤를 잃은 후 제논의 역설에 사로잡혔는데, 제논의 역설은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가는데, 거북이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쪼개서 따라가는 것으로 사고하면 결국 추월하지 못하는 역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흐르는 것, 연속성을 거부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해결하려 했지만 보르헤스는 그것을 해결이 아닌 해석이라 하며 '이 문제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제논의 역설에 나오는 경주 방식을 상상해서 문제로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이며 이들은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지속성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간은 시공간을 쪼갤 때 멋대로 연속성을 부과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거주하는 시공간상의 실재가 견고하고 연속적이라는 우리의 가정 때문에 제논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150p) 보르헤스는 시간과 공간, 인과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시공간상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신념을 잃어버리는, 지식과 세계의 단절을 경험하는 인물들을 창작한다. 그는 인간이 꿈을 꿔왔다고 말한다.(이는 우리는 환각을 경험한다는 말로 나타난다.) "우리는 세계가 공간상으로 고정되어 있고 불가사의하며 눈에 보이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신강상으로 영속적이라고 꿈꿔왔다."고. 그러나 이것이 헛것이라는 균열 또한 허용했다고 말하며 칸트를 암시한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문제점은 이것이다. 우리가 왜 실재가 우리의 관찰 및 측정과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느끼냐는 것이다. 저자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을 써가면서 변화한 사고를 보여준다. 칸트는 지적 세계와 감각할 수 이는 세계를 별개의 영역으로 두었지만, 두 주장의 극단적인 근거를 거부하면서도 둘을 연결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모순들이 생겨났다. 더불어 과연 객관적 지식이 가능할까?를 연구하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발견하게 되고, 이 틀을 비판하게 된다.
인간의 사고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시간과 공간을 관념으로 치부하는 굉장히 혁신적인 생각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전자들의 움직임이 문제가 된다. 뉴턴의 법칙에서는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 그리고 그 물체에 가해지는 힘들을 완벽하게 알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위치와 운동량을 완벽하게 알 수 있"었지만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하나를 확실히 알면 하나를 모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불확정성이라는 문제로,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을 알 수 있지만, 둘 다 알 수는 없다는 의미다. 보어나 슈뢰딩거는 고전물리학의 방식을 사용해 설명하려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런 사고를 반대했다. 그는 입자들이 측정될 때까지 실제로 확정된 경로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이중슬롯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가 나온다. 아인슈타인은 이 불확정성의 원리를 포함해 확률론적인 양자역학의 해석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의 접근방식을 거부한 아인슈타인도 기존의 고전물리학을 뒤집는 추론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관찰되기 전까지 모른다. "후에 불확적성 원리라고 알려지게 된 이 원리는 현재 순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은 단지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필연적,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입증했다." (20p) 어떤 관찰이든 그것은 그 대상과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한다. 오로지 현재 순간에 빠지면 무엇도 관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잘 곱씹어보자. 거꾸로 보라는 소리다. 우리가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오히려 인간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시공간상 다른 점들을 연결하는 것 뿐인데, 여기에 실재가 연속적일 거라는 기대를 하니 놀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속적이라는 개념을 대상의 속성으로 여겨버린다.
결국 실재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인간은 실재를 가정하며 환각에 빠져있을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인간의 이런 인식적 한계를 단지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제거한다거나, 관찰자 자체를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시공간적인 가정들을 고려하며, 다른 이해 방법을 찾아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자 100% 어떤 한 지점에 도착하면 되려 알 수 없어지는 모순에 봉착한다. 위의 이야기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입자라고 부르는 덧없는 것들에서부터 인간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입자 덩어리에 이르기까지 시간 속에 놓인 모든 실체의 본성은 항상, 그리고 오로지 관계로서만 존재한다고 이해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물리학과 논리학의 법칙에서 인간의 관계까지 그 지평을 넓힌다. 우리는 저 너머의 진실을 알 자격이 있을까? 아니, 그것에 집착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있다는 건, 관계를 맺고있다는 의미일 것이며 지식과 도덕적 옳고 그름도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사고 틀, "형이상학적 편견"을 한 번 더 강조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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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천사들의 엄격함 by윌리엄 에긴턴 ~고대 지식인들은 과학자가 철학을 하고 글을 썼으며 그림도 그렸다. 그들의 눈에 세상이 주는 깨달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고, 모든 것이 '존재' 를 탐구해가는 과정이었다. 이 책은 다르지만 또 같아보이는 세 사람의 삶과 사상을 교묘하게 줄을 타듯 이어가며 독자와 함께 탐구해가는 과정을 담고있다. 작가 보르헤스,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철학자 칸트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지향점은 하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부터 세상 모든 만물의 존재까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언제부터, 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와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는 왜 다른 것일까? 무엇이 진실일까? 그들은 각자의 시간속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존재를 느끼고 향유하고 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들의 말과 사상을 통해 세상을 성찰할 기회를 가진다. 세 지식인들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 보자면 아래와 같다. "보르헤스" 는 '기억이 자아의 핵을 이루지만, 사실은 사슬처럼 연결되어 하나가 다른 것을 불러내는 일련의 인상에 불과하다' 고 했다. 기억을 되살리려 할수록 기억하는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는 사라질 것이니 완벽한 기억은 불가능하다. "칸트" 는 <순수이성비판> 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지각할 때 그 생각이나 지각은 우리 안에 어떤 변화 즉, 마음의 변화를 일어나게 할 때에만 생각이나 지각이 될 수 있다' 고 했다. 변화가 없다면 인식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이젠베르크" 는 '인간의 이해능력에는 한계가 없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에 관하여 우리는 말 할 수 없다' 고 했는 데, 이는 실재의 궁극적인 성질을 안다고 가정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이해능력을 제한한다는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며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살아온 것들이 사실은 진리가 아닐 수 있다. 나의 모든 인식은 그저 나와 연결된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쉽게 이해하면 선과 악도 절대적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자도 자식에게 만큼은 최고의 사람인 것 처럼 모든 인식은 나와의 관계에 따라 해석도 진실도 달라진다. 고로 우리는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궁극적인 진실이자 상식이라며 확답을 내릴 수 없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다 보면 볼수록 내용의 깊이가 느껴져서 '존재와 실재' 의 의미를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 전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적이며, 안다고 느끼는 순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자면 쉬워서 책을 읽는 동안 아주 푹신한 침대속으로 계속해서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인식의 세계는 하나를 알면 둘을 모르는 미로같아서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이 세상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무지를 느꼈고 겸손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다. 천사는 아무에게나 진리의 세계를 내어주지 않을 만큼 엄격하다. @kachibooks #천사들의엄격함 #윌리엄에긴턴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철학책 #철학책추천 #까치글방 #써포터즈3기 #서평단 #도서협찬 < 까치글방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 윌리엄 에긴턴의 ‘천사들의 엄격함(The Rigor of Angels)’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제한된 관점과 해석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불확정성 원리를 주창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는 세 인물의 삶과 저작을 독창적으로 연결하여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의 생각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이 절대적인 법칙이나 확실한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한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는 우리의 인식 방식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는 각자의 삶에서 겪은 고민과 집착을 통해 상상력, 관찰, 사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가 종종 잊고 있는 ‘이율배반’을 밝혀냈다. 이율배반이란, 두 가지 명제가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모순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겉으로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은 각각 일부분만 맞거나, 때로는 둘 다 틀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며 각 부는 다음과 같은 이율배반 중 하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 공간과 시간은 무한정 나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뉠 수 없는 덩어리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 조건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까, 아니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달려 있고 다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까? - 우주에는 공간이나 시간의 끝이 있을까, 아니면 시작이나 경계 없이 무한히 펼쳐져 있을까? - 우리는 삶의 길을 자유롭게 선택할까, 아니면 우리의 모든 선택이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에 의해 결정될까? 각 부는 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중 한 명과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들을 다룬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 그가 과학이나 문학 또는 철학의 영역에서 그 이율배반과 어떻게 씨름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그러한 분투를 통해서 결국 지식이 실재를 구축해나가는 방식과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는가에 집중한다. 이 책은 ‘칸트의 철학이나 인식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문학적 사고가 철학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과학이 인간의 사고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한 독자에게도 유익할 것 같다. 평소 이율배반적 사고에 관심이 있거나 ‘모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타당한 두 개념’을 깊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믿는 현실이 객관적이고 확고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인식 방식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고민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 ‘천사들의 엄격함’은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깊게 정독하면서 사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평소 쉽고 가벼운 책에 익숙한 독자라면, 한 번쯤은 깊은 사유를 요하는, 심오하고 어려운 책을 접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고, 사유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지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장에 아끼는 보물처럼 간직하다가, 독서의 깊이가 더해질 때마다 다시 꺼내어 음미하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ㅡ '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글방'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