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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이 할인을 많이 해 사고 싶었지만, 비평을 하려면 원서를 읽어야 할 듯해 원서를 샀다. 생각보다 쉬운 단어와 문장이 나와 왠지 금방 읽을 듯했으나 두께가 꽤 되어 시간이 걸렸다.
카프카 소년이 사는 현실세계와 나카타 씨와 트럭운전사 청년이 있는 세계는 같은 세계면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세계다. 처음엔 혹시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 씨가 언젠가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으면서도 서로의 그림자인 그들이 만나면 전체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나카타 상은 죽었으니 영원히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한 장소에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약간 오컬트스럽기도 하고 판타지소설 같기도 한 설정이 떠올랐다. 중간에 소년이 숲에 들어가서 다른 세상에 도착하는 부분에선 <미사고의 숲>(로버트 홀드스톡 저/열린책들)이란 소설을 떠올렸다. 작품 내에선 오이디푸스 신화가 자주 언급되고, 아버지 살해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간접적으로나마 나와 신화 구조를 차용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도서관에 나타난 두 여인에 대한 오오지마 씨의 비판은 수긍 못하겠다. 무라카미가 본 페미니스트 상은 겨우 그 정도였단 말인가? 상당히 저급한 수준이었다. 처음엔 오오지마 씨가 여자에, 젠더는 남자고 더불어 게이라니 충격을 받았지만, 그가 카프카 소년에게 자신이 혈우병 환자라고 밝혔음을 떠올리면서 장난하느냐 라고 생각해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있긴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극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니까 어떤 식의 비판을 하든 용납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성 화장실 설치 문제에 대해 말하는 두 여인은 꼭 일부 멍청한 마초들이 여성부가 조리퐁 모양 가지고 딴죽 걸었다고 헛소리 지껄이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작은 도서관에서 남녀 따로 화장실(-_- 왜 이런 허리하학적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지 한심할 정도지만)은 어렵긴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남녀 공용 화장실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럼 수영장 탈의실도 작으면 공용으로 하냐? 여성 편의시설 늘어나는 데 대한 남성의 불만을 대변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이름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오오지마 씨 의견에도 반대한다. 학생 시절에 출석부 순서대로 선생님이 질문하거나 칠판에 수학 문제를 풀게 했을 때 긴장하면서 될 수 있으면 자기 순서가 늦게 오는 쪽으로 선생님이 이름을 앞에서 부르든가 뒤에서부터 부르길 바랐던 게 생생하다. 뭐 이것도 좀 상관없는 이야기인 듯하지만 오오지마 씨가 든 예도 치졸하긴 마찬가지다. 오오지마 씨는 자기가 사랑하는 도서관에 딴죽 거는 사람이 싫었던 것뿐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캐릭터 묘사에서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 씨는 그래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편이라 생각했으나-카프카 소년은 처음에 주변에서 가끔 보는 `중2병`걸린 소년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소년의 아버지의 언어폭력에 가까운 예언을 계속 듣는다면 그렇게 될만도 하다고 수긍했다. 나카타 씨는 고양이와 대화를 하고, `나`라고 자신을 지칭하지 않고 `나카타`라고 굳이 이름을 지칭하는 면에서 어린아이같은 느낌을 받았다.-트럭 운전사 청년 묘사부분은 좀 억지스러웠다. 우선 청년이 나카타 씨 말을 고분고분 다 듣는 건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그렇다 쳐도, 청년의 내적 변화를 그리기 위해 클래식 음악가 일화를 마구 늘어놓아 오히려 청년의 심리에 공감하지 못했다. 하루키 소설답게 다른 문학작품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텍스트만으로 한 캐릭터의 내적 변화를 잘 드러낼 수 있을진 의문이 든다. 그래서 청년 캐릭터는 깊이 없이 얄팍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를 삼차원 캐릭터보다는 이차원 캐릭터에 가깝게 그린 건 그 청년과 나카타 씨가 사는 세계는 카프카 소년이 사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카프카 소년이 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현실 세계에서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일어나 성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지금처럼 평평한 세계-근대-에서 옛날처럼 한 소년이 여행을 통해 제대로 성장을 하긴 어렵지 않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