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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만나게 될 다섯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만나게 될 다섯 사람은 누구일까?" 내용보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인 미치 앨봄의 2번째 작품이지만, 첫 번째 작품에 이어 유명세를 타고 곧바로 출간되지는 않았다. 저자는 약 7년여 시간을 두고 다듬고 또 다듬은 이후 이 작품을 출간하였다고 보아도 좋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작품 역시 죽음과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죽음의 어두움을 설명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내가 만나게 될 다섯 사람은 누구일까?" 내용보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인 미치 앨봄의 2번째 작품이지만, 첫 번째 작품에 이어 유명세를 타고 곧바로 출간되지는 않았다. 저자는 약 7년여 시간을 두고 다듬고 또 다듬은 이후 이 작품을 출간하였다고 보아도 좋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작품 역시 죽음과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죽음의 어두움을 설명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강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강한 의지"라는 자유론의 구절이 이 작품의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이 책의 출간과 동시에 내 손에 책이 들어왔건만 이 책은 2판 2쇄라는 희한한 기록이 펼쳐지고 있다. 2003년 12월에 출간된 [에디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새로운 제목으로 재판하게 되어 2판이 되었고 그 유명세 덕분에 서점에 채 깔리지도 전에 2쇄를 들어가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이 책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그제서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떠 올리게 되는 우리의 기억력은 참으로 믿을게 없다. 책의 뒤편에 출판사인 세종서적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 엽서가 눈에 띈다. "천국에서 만나고 싶은 다섯 사람"을 적도록 되어 있는 이벤트 엽서를 보면서, 아마 천국에서 만나고 싶은 나의 지인 다섯명은 누구일까를 되새긴다. 가족과 옛친구, 그리고 누굴까? 인생에서 의미깊었던 딱 다섯명을 골라낸다면 누구를 골라야 하는 기대감과 고민을 뒤로 한 채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전율과 충격이 함께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디는 죽음과 동시에 천국에서 다섯명을 만나게 되며 한 명 한 명의 의미는 내가 엽서에 적으려는 다섯명과는 무관하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한 명만이 겹치는 공통점이라고 할 것이며, 나머지 4명은 주인공인 에디 자신도 전율과 충격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인연의 장, 희생의 장, 용서의 장, 사랑의 장, 화해의 장이라는 목차를 보고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뻔한 인연과 희생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도덕책이라고 넘겨짚지 않기를 권한다. 나 역시 도덕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리며 후다닥 읽어 넘기려는 시도를 했었다. 분명하게 에디가 첫 번째 사람을 천국에서 만나는 그 순간 에디가 느끼는 전율을 나 역시 똑같이 느끼며 그 때부터 이 작품은 분명히 뻔했을 인연과 희생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결론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인생 모두가 의미깊고 존재가치가 있다는 명제로 요약이 되겠지만 이 책이 가치있는 것은 이런 결론을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배경속에서 논하지 않고 마치 문학작품처럼 또는 뛰어난 소설처럼 엮어내는데 있다. 그제서야 이 책이 7년만에 출간된 2번째 작품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한 줄 한 줄,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제 꼼꼼히 가능한 천천히 읽으려는 시도가 뒸따른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을 만나면서 쉽게 쉽게 써 내려가지 않고 하나의 문장마다 은유와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섯 명의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의 이벤트엽서가 눈에 띈다. 더 이상 다섯 명으로 누구를 골라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다. 주인공 에디가 그러했든 내가 만나게 될 다섯 명 중 기껏 한 명 혹은 두 명 정도만 짚어 낼 수 있으며 나머지 서너명은 내가 천국에 가게 되는 순간 알게 될 것이고 에디처럼 나 역시 충격을 받게 되리라. 이제 이런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마지막 만남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하나인 이야기"라는 저자의 에필로그에 들어서면 한 순간 한 순간 의미있는 삶이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있으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매 순간에 충실하고 존재가치를 되새겨야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하게 된다. 자신 스스로와 화해하여야만 "마침내 진짜 모습과 만나는 나라, 그곳이 천국이라"는 표지의 글을 끝으로 책을 덥게 되지만 에디와 함께 한 천국에서의 다섯 사람은 오랫동안 내 삶에서 자리를 지키게 되리라 생각한다.
d****o 2005.03.29. 신고 공감 3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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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었다.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었다." 내용보기
이 책은 내게, 다른 여느 책들이 가르쳐주는 삶의 교훈만을 주지 않았다. 책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넘어,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했고, 앞으로 내 삶에 있어 좀더 신중할 수 있도록 내게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던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었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쩌면 이리도 무책임하게 살아왔던 나였던가?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었다." 내용보기
이 책은 내게, 다른 여느 책들이 가르쳐주는 삶의 교훈만을 주지 않았다. 책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넘어,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했고, 앞으로 내 삶에 있어 좀더 신중할 수 있도록 내게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던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었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쩌면 이리도 무책임하게 살아왔던 나였던가? 그동안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한마디, 혹은 하나의 행동을 하고 나서 돌아서면,난 비록 그걸로 끝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에 대한 나도 모르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내 말에, 내 행동에 웃었을지도, 상처받아 울었을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을 말이다. 난 책을 깊게 읽어내려가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결국은 커다란 틀 안에서 있어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있었던,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던 내 행동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스스로가 모든 구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잠깐만. 한 가지만 말해주시오. 내가 루비 가든에서 그 여자애를 구했소? 내가 아이를 구했소?" 파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고 에디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내 죽음은 낭비되었군요. 내 인생살이처럼." 파란 사내가 말했다. "낭비된 인생이란 없어요.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란 외롭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 뿐이지요."
w*****s 2005.05.24.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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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아름다운 상상
"죽음, 그 아름다운 상상" 내용보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접했던 것은 노인복지학이라는 전공 수업을 통해서였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연찮게 접한 이 책 역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가장 큰 관심사가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아직 모리 교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
"죽음, 그 아름다운 상상" 내용보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접했던 것은 노인복지학이라는 전공 수업을 통해서였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연찮게 접한 이 책 역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가장 큰 관심사가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아직 모리 교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 그 이후에 어떠한 세상이 펼쳐질지, 아니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지 여부 자체가 우리에겐 의문일 정도로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죽음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죽음을 또 하나의 시작으로 설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디는 죽음을 통하여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물론 이야기 속에는 그의 두 번째 삶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존재치 않는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게 두 번째, 이 세상에서와는 다른 영원한 삶이 허락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죽음 이후 에디는 자신의 삶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서서 자신의 두 눈을 통해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자기 중심적일 수 밖에 없다. 에디 역시 그러했다. 전쟁을 겪으며 다친 다리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차가운 아버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에 꽂혔고, 그 말들과 함께 그는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엔 원망만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일찍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삶은 무기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가 결코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있었다. 이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었음을, 더 나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도 많은 이들과 연관된 삶을 살고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었다. 죽음은 그에게 잃어버렸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단편적으로만 이해되던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맥락이 되어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끝끝내 선택했던 것이 용서였음을, 주변의 많은 이들이 택했던 것이 희생이었음을 그는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직 죽음을 경험치 않은 존재이며,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알지 못하지만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강한 확신만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되는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자기 파괴의 욕구가 강렬히 솟구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길 꺼린다. 하지만 죽음은 일종의 통과의례이며 삶의 완성이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이미 다섯 사람이 예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다섯 사람이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05.04.06.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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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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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기대감으로 첫 장을 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기대감을 넘어서 마음을 크게 울리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자 미치 엘봄의 전작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듯한 마음을 느낀 바 있었지만, 이<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하여 삶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때로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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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기대감으로 첫 장을 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기대감을 넘어서 마음을 크게 울리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자 미치 엘봄의 전작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듯한 마음을 느낀 바 있었지만, 이<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하여 삶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에 회의를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는다는 생각에 불쾌해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인연의 끈으로 질기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 역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꼭 필요한 구성요소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경에 사는 나비의 날개짓 때문에 브라질에서 폭우가 내리게 될 수 있다는 말처럼 특별한 생각없이 행한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전제는, 인연의 고리에 얽혀있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하기 전에 매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날 가운데 후회할 일이 무엇이었던가? 그때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선택하지 못한 삶의 길을 택하였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선택한 길을 살아오면서 최선을 다해왔던가?

저자는 83세가 되는 생일날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에드워드라고 하는 평범한 노인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이 살아온 평범해 보이는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살아오면서 마음 속에 깊이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어나갑니다. 죽음 이후에 만나는 다섯 사람을 통하여 삶에서의 인연이 얼마나 교묘하게 얽혀 있으며, 한 사람의 죽음이 덧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밖으로 보이는 것 이외에 그 사람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잘 못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바로 새로운 시작입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의 시작이며, 자신과 얽혀 있는 누군가에서 삶의 의미를 이해시켜야 하는 시간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갑니다. 사람에 따라 주어진 역할이 있게 마련입니다. 최근 들어서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하여 기를 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나도 저 사람만큼 살 수 있는데 왜 안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생을 소모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닐진대 주어진 몫을 최선을 다하여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에디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은 삶과 죽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음은 그저 어떤 사람을 데려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옆을 슬쩍 비켜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음이 데려가고, 다른 사람은 옆을 비켜가지요. 둘의 생사가 엇갈리는 겁니다. 당신은 나대신 당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상에서 살 때, 다른 사람들도 나대신 죽었어요.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번개가 내려치기도 하고, 막 놓친 비행기가 추락하기도 해요. 또 옆의 동료가 병들었을 때 우리는 괜찮기도 해요. 또 옆의 동료가 병들었을 때 우리는 괜찮기도 하지요. 우린 그런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요. 하나가 시들면 다른 하나는 자라나요. 태어나고 죽는 것이 전체의 일부분이고요.....”

몇 일전 중국에서는 열차사고로,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는 극단주의자의 광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마도 몇 초 늦게 플랫폼에 도착하는 바람에 열차를 타지 못했거나, 깜박 잊고 연수신청을 하지 못해 참가하지 못하는 바람에 목숨을 구한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에디의 첫 번째 사람이 말한대로 아니겠습니까? 그 열차사고를 낸 젊은이는 자신의 결정이 엄청난 사고로 이어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까요?

책을 읽고는 요즘 유행병처럼 번지는 자살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살을 보게 되면 더욱 먹먹해집니다. 세상에 왔을 때는 무엇인가 주어진 역할이 있었을텐데 그 역할을 다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자살이 아닐까요? 자신과 엮여진 누군가가 인연의 끈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삶을 마치고 천국에 갔을 때, 자신이 만나야 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세상에 의미가 없는 삶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y*****2 2011.07.26.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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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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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넘 좋은 마음으로 읽은 터라, 미치 앨봄이 쓴 두번째 이야기라는 안내문구가 나를 이 책으로 끌어 당겼다.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졌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이 책도 실화의 이야기인가? 라는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쳤으나, 의외로 저자의 필력과 상상력, 그리고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또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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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넘 좋은 마음으로 읽은 터라, 미치 앨봄이 쓴 두번째 이야기라는 안내문구가 나를 이 책으로 끌어 당겼다.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졌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이 책도 실화의 이야기인가? 라는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쳤으나, 의외로 저자의 필력과 상상력, 그리고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또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습관처럼 챙겨 보는 인쇄상황을 보니, 초판이 11쇄까지 발행되었고 2판이 나오고 나서도 벌써 2쇄에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다. 낯선 책인데... 따로 광고나 선전에서 접하지 못한 책인데... 라는 의아함과 더불어, 늦게 발견한 내 스스로가 머쓱해져서 곧바로 책 안으로 발을 내 딛었다. 책 제목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다. 천국.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텐데 아마 이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바로 이 책이 줄 것이라 확신한다. 평상시 살아가던 환경에서 내가 알게 모르게 만났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내 인생에 대단한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얼개로 이 책은 구성되어져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많인 이들이 대충 머리 속에 상상할 수 있을텐데 저자는 그러한 독자의 일반적인 상상력을 외면하고, 더 독특하고, 더욱 색다른 이들과의 만남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인생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예기치 않았던 다섯 사람과의 만남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 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던 감추어진 비밀들을 알게 되고, 때론 기뻐서 울고, 마지막에서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울고,... 결국 자신과의 화해... 저자는 이러한 자신과의 화해를, 이 화해의 인정 및 완성을 천국이라고 이야기 했나보다. 낯선 카메라 이동과 독특한 카메라 앵글, 특이한 음악, 처음보는 칼라 구성이 가득한 영화를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터라 이 책의 독특함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이정도 분량의 한국 소설이었다면 분명 이런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텐데.. 라는 막연한 생각도 해 본다. 흡사 대학시절 처음으로 이상문학집을 통해 단편 소설의 맛을 느꼈던 그런 느낌이랄까? 여하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이 천국일거라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 본적 없었을 나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만약 내가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다섯명으로 한정되어 있다면... 누구 누구를 이야기 해야 할까? 그냥 머리 속에 한번 그려보고, 지워보고.... 이 책에서처럼 그 누군가가 내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섯 사람을 선정해 두었다면 누구일까?.... 마냥 궁금해진다.

[인상깊은구절]
다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다른 사람은 그 옆의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세상에 사연들이 가득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인 것을.
o*****o 2005.03.3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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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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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외로워질떄면 ''나는 혼자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나만 잘 지내다가 가면 되지..이러한 생각들 말이죠.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 이라는 책을 샀을때, 베스트 셀러고 유명한 책이라서, 그리고 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꼐한 화요일』과 비슷한 류의 책이라는 소리에(괜찮은 느낌의 책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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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외로워질떄면 ''나는 혼자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나만 잘 지내다가 가면 되지..이러한 생각들 말이죠.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 이라는 책을 샀을때, 베스트 셀러고 유명한 책이라서, 그리고 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꼐한 화요일』과 비슷한 류의 책이라는 소리에(괜찮은 느낌의 책이었기에..) 구매를 했습니다. 늦은 밤, 가장 차분해지는 시간에 잠이 안오기에 책을 폈습니다. 술술 잘 읽히더군요. 조금만 읽다 자야지~했는데..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결코 생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그냥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내 관심밖의 사람들이.. 내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면서 주위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더군요. 사람들이 싫어지고, 배척하고 싶어질때, 그리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때 한번쯤 읽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s********n 2006.02.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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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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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것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때문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때문에 미치 앨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 졌고, 그로 인해 이책도 알게되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 나는 천국에 관한 호기심이랄까? 그런 것때문에 이책을 읽게 되었다, 내 생각과는 다른 책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에디는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나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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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것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때문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때문에 미치 앨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 졌고, 그로 인해 이책도 알게되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 나는 천국에 관한 호기심이랄까? 그런 것때문에 이책을 읽게 되었다, 내 생각과는 다른 책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에디는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나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첫번째 사람인 파란사내가 가르쳐준것은, 사람마다 다 모르지만, 서로의 삶은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것, 그것이 나는 참 신기 했다. 그리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사람인 대위는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사람을 살리고 하는 그런것을 보여준다. 대위는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로인해, 동료들이 살았다고 했다. 세번째 사람, 루비, 에디는 한평생 루비 가든에서 일했지만, 루비가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것이다. 또한 그가 그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아버지도 착하고 불쌍한 사람같다. 네번째 사람, 아내인 마거릿, 다섯번째 사람, 에디 때문에 죽었던 여자아이, 이 다섯사람은 에디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랑, 용서, 같은 것들을,,,,,,,,,, 지난달을 되돌아보고,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 나의 다섯사람은 누가 될까?
m*****n 2005.06.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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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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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을만한 책 한권을 고르러 YES24에 들어와봤더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 3등에 오른 것이 눈에 띈다. 그러면 그렇지.... 예스에서 산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남들보다 한발 앞서 고른 책이 뒤늦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볼 때, 나의 책고르는 눈에 은근히 자만심을 갖게 된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책『천국에서 만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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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을만한 책 한권을 고르러 YES24에 들어와봤더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 3등에 오른 것이 눈에 띈다. 그러면 그렇지.... 예스에서 산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남들보다 한발 앞서 고른 책이 뒤늦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볼 때, 나의 책고르는 눈에 은근히 자만심을 갖게 된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책『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은 바로 이 "좋은" 내용 때문에 곧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예감했다. 흙속의 진주는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발견되는 법이다.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히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위에 훌륭한 리뷰들이 많고, 내용 요약에 핵심 메시지가 다 들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 책의 깊이와 감동에 대해서만 한두마디 하고 싶다. 끊임없는 궁금증과 읽는 재미를 일으키며 진행되는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책이 가진 깊은 메시지가 가슴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 에디가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온 사랑(먼저 간 아내에 대한)을 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아내가 왜 당신은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했느냐...당신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느냐...,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무가치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라고 조용히 질책할 때, 아아, 사랑의 의미가 이런 거였구나, 라는 번개같은 충격이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에서, 에디에게 죽임을 당한 필리핀 소녀 탈라가 에디를 용서하며, 나도 이렇게 아저씨를 용서하는데....아저씨도 자신의 삶을 그만 용서하도록 해요....라고 말하는 데서 결국은 눈물을 쏟게 된다. 우리는 이미, 타인에 대한 평생의 죄책감을 자기 삶에 대한 회한으로 갚아나가고 있는 것이며, 이런 죄책감을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와 인연으로 갚아나갈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미치 앨봄... 그 유명한 책『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도 이미 느꼈던 바지만, 대단한 작가다. 그는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삶의 의미를 흔한 처세서처럼 쉽게 용인하고 쉽게 긍정하지 않지만, 결국은 우리네 개개의 삶이 온 우주에 얽힌 관계와 인연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투영하고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 소개에 있는 그대로 "서투른 감상"에 빠지지 않고 말이다.
a*****3 2005.04.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삶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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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 믿음을 전적으로 신뢰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끝이면서 시작인 이야기로 에디의 삶을 들여다보는 첫 장을 연다. 루비 가든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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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 믿음을 전적으로 신뢰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끝이면서 시작인 이야기로 에디의 삶을 들여다보는 첫 장을 연다. 루비 가든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에디는 그것이 꿈인지 죽음인지 모른채 천국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에디에겐 지나온 삶을 이해하고 돌아보기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다섯 사람 이외에도 에디의 인생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죽기 전까지 결코 알지 못했던 사실도 깨닫게 되며, 분노와 증오도 용서로 탈바꿈한다. 에디 자신에게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던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의 진실을 깨닫고 그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느 구석진 곳의 남루한 삶일지라도 그 삶의 자리에 꼭 있어야할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로 자신이라는 걸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빛나는 자리에서 명예롭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명인들의 인생만 소중한 것이 아니며 이제는 그런 진부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천국이라는 곳의 존재의 유무를 떠나서 그곳에서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기 이전에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의미를 미리 되새겨두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 많은 책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과 번뇌를 이야기한다. 수 백번, 수 천번 되새겨도 새로운 깨달음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이 책 또한 그 과정에 서 있는 우리에게 깨달음이라는 새싹을 돋게 해 줄 빛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놓아버린다. 자식들은 부모를 벗어나고 떠나버린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칭찬하거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그들의 존재가 확인됐지만, 이제는 스스로 업적을 이루어간다. 자식은 나중에 피부가 늘어지고 심장이 약해진 후에야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살아온 내력이, 이룬 일이 부모의 사연과 업적 위에 쌓이는 것임을. 돌을 쌓듯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을. 그들의 삶의 물살 속에 그렇게 쌓여 있음을. p.158 "내가 슬펐던 것은 삶에서 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헤매고 다녔지. 난 그곳에 있으면 안 될 사람 같았어." 탈라는 물에서 파이프 청소 도구로 만든 강아지를 꺼냈다. 아이가 말했다. "거기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어디? 루비 가든에?" 탈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기구를 고치면서? 그게 내가 사는 이유였나? 왜?" 에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당연한 얘기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어린이 때문에. 아저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니까. 나한테도 잘해주니까." 아이는 개를 에디의 셔츠에 대고 흔들었다. "거기가 아저씨가 있어야 될 데였어요." 탈라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면서 그의 셔츠 앞섶을 만졌다. 그리고 덧붙였다. "에디 메인-트-넌스." p.237-238
YES마니아 : 플래티넘 a*****y 2006.12.0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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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은 죽음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끝은 결국 또 다른 시작을 알려준다. 이 책은 에디라는 인물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출발임을 알려 준다. 죽어서 만나 첫번 째 사람. 그는 어린 에디가 길에서 놀다 공을 집는 것을 보고, 핸들꺾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에디의 인생에 연관된 다섯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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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은 죽음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끝은 결국 또 다른 시작을 알려준다. 이 책은 에디라는 인물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출발임을 알려 준다.

죽어서 만나 첫번 째 사람. 그는 어린 에디가 길에서 놀다 공을 집는 것을 보고, 핸들꺾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에디의 인생에 연관된 다섯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에디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군대의 상관이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에디의 다리에 총 쏴버린 사람. 에디는 죽어서야 자신의 다리가 절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에디가  원했던 삶이 전쟁을 통해서 망가진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순간 분노가 쏟아 올라 상관이었던 사람에게 돌진하였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미움도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났다. 루비 가든을 만들게 했던 아름다운 귀부인을. 그녀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그리움을 깨닫지만, 아버지는 그를 알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죽어서 만난 아버지.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그 일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였다. 아내와 만나 그녀에 대한 그리움. 사랑을. 그녀 없는 인생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만난 사람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가 전쟁터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들어가려던 그곳의 사람을. 그녀를 목욕시키면서 불에 그을려진 살갗을 씻어내면서, 마음과 몸으로 미안해 했다.

우리는 살면서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많은 실수를 한다.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용서해주기도 하고 용서를 빌기도 한다. 그의 마음이 가벼워졌을 때는 진정 그는 행복해 할 것이다. 자신이 목슴을 다해 구해 주고 싶었던 아이에 대한 궁금중을 느끼면서...

우리는 에디일 수도 있고 에디의 옆집에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문 앞에 마주서서 바라보는 다른 인물일 수도 있다. 에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바라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조차도 하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누구가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듯이 우리의 삶에 우리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떨까?

a****5 2011.08.19.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