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내 말이~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내 말이~" 내용보기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셀로>에 대한 글을 쓰려고 여기 저기 참고 자료를 찾다가 만난 책인데,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점을 구체적 원문 인용과 함께 구체적 언어로 찍어 표현해주셔서 읽어 가면서 속이 시원했다. 독학생에다가 야매(김어준씨 스타일의 표현)인 내 주제로는 기껏 표현해봐야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내지는 '이건 문제 있다고 봐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내 말이~" 내용보기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셀로>에 대한 글을 쓰려고 여기 저기 참고 자료를 찾다가 만난 책인데,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점을 구체적 원문 인용과 함께 구체적 언어로 찍어 표현해주셔서 읽어 가면서 속이 시원했다. 독학생에다가 야매(김어준씨 스타일의 표현)인 내 주제로는 기껏 표현해봐야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내지는 '이건 문제 있다고 봐'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어 스스로의 사고와 언어의 빈곤에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이 책처럼 '바로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 분이 벌써 써 놓으셨네!' 하는 책을 만나면 감전된 것처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블로그에서 몇 번 썼지만, 난 어릴적 세계명작전집을 읽으면서 정말 궁금한 것, 못마땅한 점이 많았다. 커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세계명작이라고 읽는 책들은 대부분 유럽인, 백인 남성 중심, 기독교인, 제국주의자의 편협한 시선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아찔했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그 시절에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는 스토리에 따라 붙은 위험한 가치관까지 습득해 성장한 사람들 중에,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며 남을 괴롭히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또 무서운 점은, 이런 서구의 명작이란 것들이 거의 개화기나 일제 시대에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라는 점. 셰익스피어 읽기만 해도, 고대 로마 제국을 동경하는 영국, 그 대영제국을 동경하는 일본, 이런 삼중 제국주의 관점이 위험하게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이 점을 고민하고 궁금해했지만 내가 부족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쓰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오늘 이 책을 만났다. 행운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깔린 제국주의적 시선을 드러내 주는 책이다. 이 쪽 전공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해설을 읽어보면 대개 그의 인간성격 묘사의 위대함 위주로 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가나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살아 집필했던 그 튜더 말기에서 스튜어트 왕조 초기는 대영제국의 기틀이 잡혀가는 시기였다. 그리고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분은 바로 이 시대의 아들로서 셰익스피어를 논한다. 시대를 초월한 명작의 작가로 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원전의 표현들을 밝혀서 번역본으로 읽으면 미처 모르고 지나갔을 부분까지 조목조목 지적해 주신다.

내 경우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 배경으로 단순히 작품 속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만 보고 교황당과 황제당의 대립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분은 작가의 시대까지 꿰뚫어 보시고  두 연인의 죽음으로 이루는 '양가의 화해'란 점에서 장미전쟁 이후 튜더가가 이룬 화합까지 논해 주신다. 내가 어렴풋이 <오셀로>의 배경이 영국이 아니라 베네치아인 점이 우리의 <사씨남정기>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오셀로가 흑인으로 설정된 이유가 상당히 인종차별적 이유가 있다, 이 정도 생각했던 점도 저자는 통쾌하게 O J 심슨의 예까지 들어 그 부당함을 설명해 주신다. 아, 미치겠다.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내 발등에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졌다. 내 심장인 것 같다. 늘 책 읽을 때 내 발등을 찍는 것은 도끼가 아니라 심장이다. 허겁지겁 전작 읽기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거울을 보니 내 두 볼은 발그레하고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난다. 평생을 두고 전작 읽기를 할, 또 한 분의 멋진 저자분을 만나게 되어 나는 지금 미칠듯 행복하다. 도대체 노동법을 전공하신 분이 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그것도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많은 저술을 남기셨는지, 오우!

(리뷰를 이따위로 써도 되는 건지, 오히려 저자분께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리, 다 사실인데!)



m******n 2011.11.13. 신고 공감 10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강의가 곧 저작이 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
"강의가 곧 저작이 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내용보기
[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일명 얼치기 '박홍규論' ] 박홍규 교수에 대한 두 가지 느낌이 있다. 하나는 그의 깊고 넓은 인문적 소양과 그칠 줄 모르는 학구열·창작열에 대한 존경심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열정이 매번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머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안타까움 쪽에 치우
"강의가 곧 저작이 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내용보기
[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일명 얼치기 '박홍규論' ] 박홍규 교수에 대한 두 가지 느낌이 있다. 하나는 그의 깊고 넓은 인문적 소양과 그칠 줄 모르는 학구열·창작열에 대한 존경심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열정이 매번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머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안타까움 쪽에 치우쳐 있는 편이다. 하여 더러 그의 책을 읽다보면 공연히 상념에 젖곤 한다. 박 교수의 학문적 열정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솜씨는 이미 학계와 출판계에 정평이 나있는 터다.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최근간), 토머스 페인의 <상식, 인권=""> 등은 박 교수의 학문적 열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들이라 할 수 있다.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자인 박 교수는 전공과 관련해서도 꾸준한 연구활동으로 다양한 저작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전공 외적인 분야, 즉 철학과 예술에 대한 왕성한 번역과 창작활동을 통해 확인된다. 그의 손을 거쳐 우리 곁에 다가온 예술가 혹은 사상가로는 고흐와 고야 등의 화가를 비롯해서 카프카, 카뮈, 조지 오웰,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가와 몽테뉴, 에리히 프롬, 미셀 푸코, 머레이 북친 등이 있다. 하나같이 시대와 학문적 스펙트럼을 달리 하는 인물들이라 하겠다. 이쯤 되면 그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 창작열은 가히 전(全)방위적이며, 수준 또한 시쳇말로 "물이 올랐다"고 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우리 학계에서 보기 드문 '진정한 인문학자' 혹은 '진정한 르네상스인'이라는 찬사가 따라 붙기도 한다. 나 역시 그에 기꺼이 동의하는 바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그의 학문적, 예술적 열정과 수고가 우리 사회의 척박한 인문학적 지형과 빈약한 출판환경 탓에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은커녕 별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의 비판과 적의 표출에도 불구하고 TV와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고있는 도올 김용옥에 비하면, 오로지 '글'로만 승부하는 박 교수는 학계는 물론 대중으로부터도 이렇다할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 - 특히, 인문학 서적을 - 거의 읽지 않는다'라는 캐캐묵은 얘기를 되새길 생각은 없다. 그가 애초 일반 대중의 열렬한 반응이나 대단한 환호를 염두에 두고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뭔가. 그가 그토록 안 읽히는 인문학 서적 저술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그 정도의 노력으로 대중적인 처세술 책 몇 권 낸다면 부와 명예는 물론 인기까지도 동시에 낡아 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추측컨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우선 그는 현실의 문제에 개입할 적극적 의지를 가진 전형적인 진보적 지식인이다. 하여 그는 책의 서문에서 '나는 제국주의자인 부시와 셰익스피어가 모두 싫다'라고 거침없이 외치기도 한다. 한편 그는 가장 보수적인 논리의 집합체인 '법'을 연구하는 법학자이기도 하다. 진보적 지식인과 보수성의 상징인 법을 연구하는 법학자. 두 개의 어울리지 않는 정체성을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바로 그가 학문에 정진하는 주된 동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가 자신의 다양한 저작들 속에서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저작을 읽다보면 대단히 뛰어난 탁견들 사이에 간혹 논리의 비약이나 논리적 모순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가령, 어떤 강렬한 주장을 펴다가도 느닷없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다'라고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그게 바로 박 교수의 한계이자 발전가능성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계는 그의 몫이지만 발전은 단지 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사회와의 끝없는 상호작용, 그것이 곧 그의 발전을 견인하는 힘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박 교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 주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는 박 교수의 흔들리는 자의식과 자기완결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논리를 바로 잡아 줄 눈밝은 독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학문적 열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실성을 가진 데다 필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당대를 대표하는 석학은커녕 빼어난 저작이라고 보기엔 2% 정도의 함량 부족이 엿보이는 고만고만한 책들을 끝없이 자기 복제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곧 능력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비평문화의 결핍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자라고 단정하는 그의 논리는 얼마나 당돌하고 논쟁적인가. 그런데도 우리 영문학계는 요지부동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체 무시인가, 무심인가, 아니면 무식하기 때문인가. 내가 보기엔 명백한 직무유기다. 위대한 석학의 탄생은 사회전반에서 학문적 풍토가 조성되고 다양한 저작들에 대한 건강한 비평문화가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걸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앞서 눈 밝은 독자라 했는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대학교수로 대변되는 지식인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박 교수의 수고에 좀더 적극적인 비판과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내준다면 그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강의가 고스란히 저작이 되고, 저작이 다시 강의자료로 활용되는 풍토. 서구 학자들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단지 강의내용이었던 것을 책으로 역은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그저 부럽기 만하다. 그대로 정리하면 훌륭한 저작물이 되는 수준 높은 강의, 그런 강의를 들으며 학문적 소양을 쌓아 가는 서구의 학생들과 그들로부터 존경받는 훌륭한 교수... 강의 부담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고, 연구하느라 강의준비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동어반복의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2, 30년 동안 단 한 권의 저작도 없이 강단에 버티고 있는 우리 대학사회의 교수들을 생각해 본다. 그에 비하면, 솔직히 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결례이겠지만. 전공은 물론 그 외 다양한 인문학 분야의 저작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박홍규 교수의 학문적 열정에 다시 한 번 깊이 고개숙여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y****y 2005.05.16. 신고 공감 9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셰익스피어 불편하게 바라보기
"셰익스피어 불편하게 바라보기" 내용보기
박홍규는 셰익스피어를 불편하게 바라본다. 셰익스피어를 새로운 시각, 정확히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 시각은 셰익스피어를 무조건 위대한 작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렇게 했더니 그의 작품은 제국주의적 요소를 가득 안고 있다는 게 보인다(실은 제국주의자라는 의심을 가지
"셰익스피어 불편하게 바라보기" 내용보기

박홍규는 셰익스피어를 불편하게 바라본다.

셰익스피어를 새로운 시각, 정확히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 시각은 셰익스피어를 무조건 위대한 작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렇게 했더니 그의 작품은 제국주의적 요소를 가득 안고 있다는 게 보인다(실은 제국주의자라는 의심을 가지고 분석했더니 정말 그렇게 읽힌다는 게 더 맞는 얘기긴 하다).

 

여기서 박홍규가 얘기하는 제국주의라는 얘기는 유대인, 흑인,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편견과 같은 말이다. 『리처드 2세』와 같은 초기 사극에서,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같은 널리 알려진 작품에도, 『오델로』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작품에도,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태풍』에도 그런 편견이 가득하다는 게 박홍규의 분석이다.

 

그런데, 솔직하게 여기서 제국주의라는 게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걸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앞의 편견이라는 걸 제국주의의 한 요소이지, 그것 자체가 제국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식민주의를 알게 모르게 옹호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말고도 이미 알고 있었던 바이긴 한데, 제국주의의 정의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모두가 알고 있는 그것이라는 듯이 시작하고 나니 정말 셰익스피어가 제국주의자가 맞는지 의문스러워진다.

 

셰익스피어는 (박홍규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대중작가였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고, 나아가 왕실의 요구에 적극 호응하는, 특별한 어떤 주의도 없이 인기를 위해, 돈벌이를 위해 희곡을 쓰고, 연극을 상연하는 그런 작가 말이다. 그러니 당시 영국의 상황에 따라 당연히 유대인을 풍자하고, 흑인을 무시하고, 식민주의를 옹호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 열광을 했을 테니. 그런데 그 때는 아직 제국주의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은 때고, 그 때의 영국을 제국주의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아직 그런 용어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한 제국주의자라 부르는 것은 너무 현대의 시각, 우리의 시각에서만 그를 바라본 것은 아닌지 싶다(그런 시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더 아쉬운 것은 자꾸 다른 이(거의 김재남)의 번역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다. 김재남의 번역을 문제 삼는 게 그의 시각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조건적 절대화의 시각으로 이어졌다는 의미에서는 의미 있지만, 내용이 셰익스피어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찾아내 증명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인지, 번역을 바로잡자는 게 목적인지가 헷갈릴 때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잘못된 번역은 아예 무시하고 자신의 해석만을 가지고 썼으면 더욱 명확하지 않았을까

YES마니아 : 로얄 n*****m 2017.02.06.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