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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결핵이 무서운 질병이며, 예방과 치료를 위해 국가적으로 나섰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결핵이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결핵환자를 만나기 힘들다. 신생아 때 BCG예방접종으로, 특히 척추결핵은 한국에서 사라졌다. 한국의 척추결핵에 관한 임상연구와 활동을 열심히 했던 영국의 선교사 닥터 패티슨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초등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한국인들의 성공과 출세에 대한 열망과는 반대로, 그는 자신의 의학기술로 자신의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무료로 치료하며 헌신했던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는다. 1970년대 닥터 패티슨은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다. 그는 가난한 척추결핵 어린이들을 무료로 치료할 뿐 아니라 한국성서유니온을 세워 Q.T(경건의 시간)운동과 어린이·청소년 사역, 그리고 OMF를 설립하여 우리나라도 다른 다라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닥터 패티슨이 한국에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전을 준 청년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김진경. “피터! 당신은 영국이나 유럽에선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한국에는 전쟁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최연소 학도병이었던 김진경은 15살 때 자원입대했고 그와 함께 떠났던 800명 중 17명만 살아남았고 그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했고 닥터 패티슨에게 도전을 주어 한국을 섬기게 했다. 패티슨이 한국을 위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했는지 곳곳에 그의 손길을 미치는 곳마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다. 부모와 절연하기까지 육적으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물론 영적으로 죽어있던 자들에게 놀라운 처방과 진단, 그리고 치료로 말미암아 지금의 한국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기독 의사들에게 좁고 험난한 길이지만,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도록 도전했고 많은 의학도들이 헌신하는 한국누가회(CMF)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부르심에 귀 기울이길 바랍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단 위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듯, 우리 삶 속에 그 불꽃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1937년에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닥터 패티슨은 지금도 생존해계신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많으셨다보다. 그의 삶이 닳아 없어지기까지 크게 쓰임받은 그의 모습을 보며, 내 속에 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