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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 『리스펙토르의 시간』 , 두 작가의 문학적 대화
"문학 비평 『리스펙토르의 시간』 , 두 작가의 문학적 대화" 내용보기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프랑스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사상가인 엘렌 식수(Hélène Cixous)가 브라질 출신의 독창적 여성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의 작품 세계와 삶을 조명한 평론집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엘렌 식수라는 작가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는 작가를 동시에 만난 셈이었다. 책 소개에서 두 여성 작가의 언어적 실험이 교차하는 ‘텍스트의 향연’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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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시간』은 프랑스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사상가인 엘렌 식수(Hélène Cixous)가 브라질 출신의 독창적 여성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의 작품 세계와 삶을 조명한 평론집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엘렌 식수라는 작가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는 작가를 동시에 만난 셈이었다. 책 소개에서 두 여성 작가의 언어적 실험이 교차하는 ‘텍스트의 향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리스펙토르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식수 특유의 시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해석한다. 거친 질감의 패브릭 같은 느낌을 주는 겉싸개를 만지작 거리며 150여페이지의 얇은 책을 오래 음미한 시간이었다.


엘렌 식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사랑했다. 평면적인 감탄이나 존경을 넘어 리스펙토르의 문장이 자신을 감싸 안았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 문장 안에서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의 목소리로 리스펙토르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 나는 "클라리시"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클라리시가 당신들 역시 불렀으면 싶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신들에게 말했으면 싶다.
나는 당신들에게 클라리시를 말하고 싶다. 클라리시Clarice를 그녀의 영향 아래에서 클라리시하게claricement 말하고 싶다. 당신들에게 "클라리시!"라고 상기시키고 싶다.
- p50, 오렌지살기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나는 엘렌 식수의 문장을 읽어갈수록 더욱 궁금해졌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작품들이 있는 것일까. 작가에 대해 검색하고 국내에 소개된 작품을 카트에 담는다. 리스펙토르의 작품을 읽고 난 후 이 책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재독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이 책에서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 을 비롯하여 『G.H.에 따른 수난』, 『어둠 속의 사과』, 단편 <외인부대> 등에 대해 다뤄진다. 국내에는 『별의 시간』 , 『G.H.에 따른 수난』, 『달걀과 닭』 , 『아구아 비바』,『야생의 심장 가까이』, 『세상의 발견』 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으며, 단편 <외인부대> 는 『달걀과 닭』 에 수록되어 있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에서는 앎에 관한 모든 교훈이 우리에게로 스며들어 오지만, 그것은 사는 법에 관한 앎이지 아는 법에 관한 앎은 아니다. 사는 법에 관한 첫 번째 앎은 알지 않는 법을 아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 않는 법을 아는 것, 앎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거나 더 적게 아는 것, 이해하지 않는 법을 아는 것, 결코 이편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이다. 이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무엇인가 알게 될 때마다, 그것은 넘어서는 발걸음이 된다. 그 다음에는 비-앞을 향해 도약해야 하며, "손에 사과 한 알을 든 채" 어둠 속을 걸어가야 한다.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탁월한 글쓰기가 아닐까.
- p122, 진정한 저자


리스펙토르의 글은 “문학이 아니라 주술”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언어의 경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본질' 과 '존재하는 기쁨'을 탐구한다는 평을 받는다. 저자는 이런 리스펙토르의 언어, 존재론, 그리고 여성적 글쓰기를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한다. 즉, 리스펙토르의 작품을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의 전형으로 해석하면서 리스펙토르의 서사가 전통적 남성 중심 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언어의 한계와 침묵, 욕망,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데 탁월하며, 비배타적 차이와 타자성의 윤리를 지향한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리스펙토르의 작품이 지닌 난해함과 신비로움을 오히려 문학적 힘으로 전환시킨다는 점과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비평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문학 비평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두 여성 작가의 영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글쓰기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기록이자 두 작가의 문학적 대화이기도 하다. 정제되지 않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말이 아니라 거의 감각에 가깝게 다가오는 엘렌 식수의 문장은 쟉가 자신이 말했던 ‘여성적 글쓰기’ 그 자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엘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한 뒤 줄곧 그 길에 따른 글쓰기를 추구해 왔다.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읽는다는 건 리스펙토르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엘렌 식수의 리스펙토르를 만나는 일이다. 식수는 리스펙토르의 글쓰기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자,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식수는 그녀의 글을 따라가며 자신의 글쓰기를 다시 발견한다. 그리고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한 작가론을 넘어, 문학과 삶,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여성적 글쓰기와 현대 문학 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추천해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25.05.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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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날숨과 식수의 들숨이 호습하는 텍스트
"리스펙토르의 날숨과 식수의 들숨이 호습하는 텍스트" 내용보기
느른한 혼침에서 흔들어 깨우는 음성과 향기. 내면의 가장 어둡고 외진 바닥에 무겁게 침전되어 있던 존재의 입자들이 누군가의 향기로운 입김에 동요하며 먼지처럼 가벼이, 사방으로 부유하며 떠오른다. 그 입김은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의 날숨이며, 엘렌 식수의 들숨이다. 달큼한 그 숨결에 나라고 불리는 그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은빛으로 날아오른다. 이 텍스트는 시인가. 주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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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른한 혼침에서 흔들어 깨우는 음성과 향기. 내면의 가장 어둡고 외진 바닥에 무겁게 침전되어 있던 존재의 입자들이 누군가의 향기로운 입김에 동요하며 먼지처럼 가벼이, 사방으로 부유하며 떠오른다. 그 입김은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의 날숨이며, 엘렌 식수의 들숨이다. 달큼한 그 숨결에 나라고 불리는 그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은빛으로 날아오른다. 이 텍스트는 시인가. 주문인가. 기도인가. 응답인가. 아니면, 오렌지의 황금빛 노래? 시초에서 들여오는 누군가의 부름? 천둥? 모든 것인가, 그 어떤 것도 아닌가. 



오래된 동굴 속 벽화를 만지듯,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의 단어들을 더듬다보면, 내가 읽힌다는 숨죽인 기쁨에 가슴이 죄어든다. 은총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늘 거기에 머무르기에 가장 익숙하지만 가장 외진 장소. 그곳에 도달하는 한 줄기 빛, 발견됨의 안도감, 기이한 공포감. 탐독되기를 바래온 묵은 페이지, 독해를 기다려온 뭉개진 비문. 비석의 축축한 이끼에 닿는 따스한 손길. 섬광 같은 구원. 하지만 이내, 궁극의 무명으로 되돌려놓는 섬뜩한 지혜, 자애로운 배려, 최후의 은총. 내가 너무도 간절하게 원하고 원하는 그것. 



“나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 (9p)


엘렌 식수는 이 책을 여는 글, <오렌지 살기>를 이 한 문장으로 연다. 망설임과 유보의 유혹, 그럼에도 말해야 한다는 당위가 문장을 압박한다. 나는 단번에 알아차린다. 내가 들은 목소리를 원형으로 간직하고 싶은 조바심, 그 목소리와 함께 달아나야한다는 절박함. 언어가 그 목소리를 얼어붙게 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 세계를 직관으로 알아채는 커다란 귀이자 “고통을 끊임없이 기쁨으로 맞바꾸는” 선한 목소리. 이 책은 그 목소리에 대한 사랑으로 출렁인다. 그 목소리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이다. 



“그것은 단순한 글쓰기 이상이었고, 위대한 글쓰기, 먼 과거의 글쓰기, 대지와 식물의 글쓰기였다.” (13p) 


혀가 전부 죄어든 시대에 글쓰기의 자기 심판에 절망하던, “눈물 한 방울이 된 영혼”, 엘렌 식수다. 그에게 반짝이는 손이 다가온다. 그 손은 식수를 찾아내 열망과 믿음과 음악을 되돌려 준다. 그것은 놓아주고, 보살피고, 구원하는 손이다. “무한히 섬세한 손길”은 존재에 빛을 비추고, 신비를 보호했다. 생명을 감싸고 흙을 어루만졌다. 우리의 영혼을 만나러 “손으로 변모한 목소리”, 약속과 기도로 번역된 목소리. 리스펙토르의 목소리가 식수를 울린다. 



“오렌지는 하나의 순간이다. 오렌지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7p)


리스펙토르는 “오렌지를 구해야 해”라고 식수의 귓가에 속삭인다. 말라가던 식수의 심장이 오렌지의 힘으로 솟구친다. “현전하는 빛의 구”, “초록빛 밤으로부터 내려온 붉은 낮”, 오렌지. 태양과 대기와 대지로부터 잉태된 오렌지. “모든 오렌지는 기원적이다.” 무한한 시간을 응축한 오롯한 한 순간인 오렌지. “근심 없이, 두려움 없이” 시간의 과즙을 탐하여, 오직 생명의 기쁨으로 찬란한 과육을 길러내는 오렌지. 순간이자 영겁인 오렌지. 리스펙토르의 “기원을 향한 사랑”이 식수를 가늠조차 어려운 시간으로 데려간다. 오렌지의, 오렌지를 위한, 오렌지로 사는 것. 시간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로, 현재로 순환하며 황금빛 알갱이로 영글어간다. 



“그것은 누구도 되지 않는 것, 마치 장미처럼, 모든 이름을 앞선 순수한 기쁨이 되는 것이다.” (30p)


리스펙토르는 이름들을 벗어던진다. 그가 무한히 변신하며 관통해온 시간의 터널 속에서 호명되었던 무한한 이름들. “벗어던짐의 규모는 무한힌 뻗어간다.” 왜냐하면 이름 속에서 그녀는 질식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아의 막을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은 나라고 불리는 그것이, 본래 세계와 하나였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세계의 맥박, 그 혈류와 한 몸임을 자각하는 것. 그렇게 껍질을 벗어던진 리스펙토르가 당도한 장소는 “원초적이고 온전한 우리, 번역 이전의 살아있는 우리”로 차오른다. “죄의식의 신분증”없이 현존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숭고한 야생성”으로 충만하다. 이 장소로의 여행은 오렌지, 오직 오렌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오렌지는 장미이며, 동시에 바퀴벌레이다. 리스펙토르이며 식수이며, 나이다. 



"그녀는 나를 읽었다, (중략) 나는 그녀가 나를 읽게 했다. 그녀는 내 안에서 자신을 읽었다.” (34p)


이 문장을 읽고 놀라 안으로 탄성을 삼켰다.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읽으며 늘 해온 생각, 이 문장으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어떤 것. 이해, 공감, 교감 같은 언어로는 턱 없이 부족한 것. 이 책을 처음 펼치는 순간에도 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나를 읽어. 세상은 참 신기해. 식수가 썼듯 “어떤 여자들은 경계심 없이 창문을 열어두는 힘을 지녔다” 그 창문으로 뜻밖의 은총이 찾아든다. 어떤 저자와 독자는 서로를 알기도 전에, 영원히 만나지 못해도, 서로를 읽는다. 서로를 쓴다. 세상은 참 신기한 곳이다. 



“별과 나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얼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가.” (148p)


식수가 더없이 느리게 노 젓는 배에 올라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나아간다. 희부연 은하수 안에 별의 항로를 떠간다. 영영 길을 잃기 위해 나아간다. 그러나 언제나, 영영 돌아온다. 그 길을 따라 광대하고 둥근 존재의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다. 별의 시간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나라 불리는 그것이 별의 시간 안으로 쏟아져 흘러나간다. 나는 무궁한 자유 속에 헤엄친다. <리스펙토르의 시간>, 그러니까 <별의 시간>은 마카베아의 시간이며, 리스펙토르와 식수, 그리고 나의 시간이다. 가난하고 부유한 시간이다. 





a*******e 2026.05.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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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시간#엘렌식수지음#황은주옮김#을유문화사#리스펙토르#도서협찬#고래독서모임엘렌 식수(Helen Cixous)는 알제리 오랑 출생으로 여성주의 작가이자 비평가이다.클라라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는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갔다법대에 진학했지만 작가로서의 삶을 열망했던 그녀는유럽과 미국 등지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계속했다.대표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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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시간
#엘렌식수지음
#황은주옮김
#을유문화사
#리스펙토르
#도서협찬
#고래독서모임


엘렌 식수(Helen Cixous)는 
알제리 오랑 출생으로 여성주의 작가이자 비평가이다.

클라라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는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갔다
법대에 진학했지만 작가로서의 삶을 열망했던 그녀는
유럽과 미국 등지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대표작으로는
『별의 시간』을 비롯해 『G.H.에 따른 수난』, 『아구아 비바』 
등이 있다.


『리스펙토르의 시간』

비평가 엘렌 식수가 클라라시 리스펙토르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보고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특별한 책이다.

띠지에 쓰인 ‘ 잊히지 않는 화음처럼 쏟아지는 텍스트’라는 글처럼
이 책은 쉼표 없는 악보같이 보인다.
이 책을 하나하나 뜯어 이해하기는 난해해보이고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감상해야 할 것 같다.

쉼표와 여백이 있는 소나타 2악장도 있지만
빠른 악장인 3악장도 역동적이며 마음을 울리듯이 말이다.






두 작가는 모두 유대인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마치 성경속의 말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점묘화 같이 전체로 보여야 보이는 글 같이 다가오기도한다.


이 책의 구성 

오렌지 살기 ...........7

사과 한 알의 빛으로 .........81

진정한 저자 ............ 89


이 책은 식수가 리스펙토르를 존경하며 
그의 작품과 삶을 그려보고자 
한 작품이니 만큼,  
나도 누군가의 글을 기다리며 그 글을 읽고 새길 때의 감정을
생각하며 어설픈 나만의 해석을 해보기로 한다.

- 1부 <오렌지 살기>

‘나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
말함으로써 멀어지고 싶지 않은 여자들, 사물을 비껴 나가는 말로 말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

내게는 차마 소음을 일으키며 흘러나오는 말에 기대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는 여자들이 있다.‘ p. 9

리스펙토르 그녀가 사람이자 작품으로
귀하고 귀하여 이렇게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마음이지 않을까.

소중한 건 숨겨야 하는 것인만큼...


여성적인 글을 썼던 두 작가이니 만큼
리스펙토르를 오렌지에 빚대었다.

‘거기에는 주어진 오렌지 한알로부터 한 연자가 키워 낼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이 있다.
삼, 죽음, 여자들, 형식들, 부피들, 운동, 질료, 변신의 길들, 
과일과 몸 사이 보이지 연결들, 향기의 운명, 파국의 이론... 
그리고 거기에는 오렌지의 모은 이름들이 있다. “ p.16


- 2부 <사과 한 알의 빛으로>

2부는 단 5페이지로 쓰여있는데.
식수가 그녀의 글과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는
2부 먼저 읽고나서 1부를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녀는 거의 믿어지지 않는 여자였다.
아니, 그보다는 하나의 글쓰기였다.' p.83



-3부 <진정한 저자>

‘나는 항상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텍스트를 꿈궈 왔다.
남아 있는 마지막 힘, 최후의 숨결로 쓰인 텍스트를...

별들로 채워진 임박한 침묵 앞에 서둘러 모여들어서는
본질을 말할 것이다. ‘ p.91


마지막 한 텍스트.
작품의 처음과 끝은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그녀가 했으나 
마지막 텍스트는 본인이 끝맺고 싶은.

그녀의 삶에 내가 잠시 들어갈 수 있을 수 있다는 
바램이자 희망처럼 다가왔다.

『별의 시간』 은 인간 삶의 미미한 조각 하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충실하게
즉, 미미하고 단편적으로. p. 93

그녀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꼭 한번 읽어봐야
이 작품의 이해도 쉬울 것 같다.

악보같기도 성경같기도 
시 같기도 한 이 작품.

새로운 형식의 작품에 빠져보는 시간이 되었다.


- 고래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x******m 202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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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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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고래독서모임 리스펙토르 작가님과 엘렌 식수 작가님에대해 조금 알게 된 책이에요. 이 책은 프랑스 저명한 엘렌 식수 작가님이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 세계와삶을 조명한 책이에요 두 작가님의 독특한 문학세계 저는 처음에 읽으면서뭐지? 이제껏 읽은 책과 다르다!! 를 확~ 느꼈어요 이런 느낌을 책은내용을 멀리서 내려다 보는 느낌으로읽어야 해요 쭉 읽으면서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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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고래독서모임 





리스펙토르 작가님과 엘렌 식수 작가님에
대해 조금 알게 된 책이에요. 






이 책은 프랑스 저명한 엘렌 식수 작가님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 세계와
삶을 조명한 책이에요 





두 작가님의 독특한 문학세계 




저는 처음에 읽으면서
뭐지? 이제껏 읽은 책과 다르다!! 
를 확~ 느꼈어요 



이런 느낌을 책은
내용을 멀리서 내려다 보는 느낌으로
읽어야 해요 




쭉 읽으면서 좋은 글들이 보였고
다음에 <별의 시간>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제가 제일 마음 들었던 글 2가지
올려 드려요 




삶은 인간 정념의 모든 역설적인 운동들,
반대되는 것들의 고통스러운 결합들로
이루어진다.
두려움과 용기, 광기와 지혜, 결핍과 민족,
갈증은 곧 물이며....
그녀는 우리에게 이 모든 비밀을 밝혀주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상의 열쇠
수천 개를 건넨다. 





글쓰기란 신비를 건드리는 것이다.
신비를 짓밟아 진실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말의 끝으로 조심스레 
만지는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n*******2 202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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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내린다, 꾸준하게. 그녀의 글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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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식수에게 리스펙토르란 어떤 존재인가. 짧지만 3편의 글로부터 우리는 왜 그녀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절감한다. 그리고 리스펙토르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싶게 만든다. 본질에 파고드는 작가와 그 작가를 파고드는 엘렌 식수 덕에 우리는 '깊이'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리스펙토렌지 란 단어를 만들만큼, <오렌지 살기>란 리뷰를 통해 물흐르 듯 쏟아지는 찬사와
"기쁨이 내린다, 꾸준하게. 그녀의 글로 인해." 내용보기
 엘렌 식수에게 리스펙토르란 어떤 존재인가.

 짧지만 3편의 글로부터 우리는 왜 그녀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절감한다. 그리고 리스펙토르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싶게 만든다. 본질에 파고드는 작가와 그 작가를 파고드는 엘렌 식수 덕에 우리는 '깊이'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리스펙토렌지 란 단어를 만들만큼, <오렌지 살기>란 리뷰를 통해 물흐르 듯 쏟아지는 찬사와 <사과 한 알의 빛으로>로부터 리스펙토르의 악착스러운 시선과 고갈되지 않는 신비를, <진정한 저자>에서는 '별의 시간'을 모티브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주체적인 독자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더불어 무언의 신뢰로부터 하나의 힘이,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본다.

P.129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은 이미 타자를 향해 영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손을 내민다는 것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맞아들이고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필요로 한다는 것은 무언의 신뢰다. 그것은 하나의 힘이다.
YES마니아 : 로얄 b******p 202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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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리스펙토르의 시간(엘렌 식수 지음,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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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 순간에, 미세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가 있다. 사소한 존재에 날갯짓같이 세심한 눈짓과 손길로, 동시에 빛처럼 강렬하고 물체를 궤뚫는 집요함으로 그 본질에 가닿고자 파고드는 작가가 있다. 이러한 ‘여성적 글쓰기’를 정립한 작가의 이름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고, 엘렌 식수는 <리스펙토르의 시간>에 실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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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 순간에, 미세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가 있다. 사소한 존재에 날갯짓같이 세심한 눈짓과 손길로, 동시에 빛처럼 강렬하고 물체를 궤뚫는 집요함으로 그 본질에 가닿고자 파고드는 작가가 있다. 이러한 ‘여성적 글쓰기’를 정립한 작가의 이름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고, 엘렌 식수는 <리스펙토르의 시간>에 실린 세 편의 글을 통해 그와 그의 언어, 그의 글쓰기를 찬미한다. 엘렌 식수는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연결’되고,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파고들며, 목소리의 한계를 뚫고 나가고자 치열하게 고민한다. 


“원천으로 가야 해. 원천을 잊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야.”

“그녀의 글쓰기는 용감했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뿌리뽑는 무시무시한 운동 속에서 글쓰기의 진실로까지 전진했다. 그것은 진짜 광기, 진실의 광기였고 역사로부터 멀어져버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존재들의 기원으로 다가가려는 열정이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엘렌 식수의 글은 난해한 면모가 있음에도 독자를 끌어당긴다. 두 작가 모두 글에서는 주로 ‘오렌지’로 서술된(이는 때때로 사과가 되고 장미가 되고 심지어 ‘클라리시’가 되기도 한다) ‘본질’과 ‘존재’에 가닿고자 하는 치열한 고민과 시도의 연속을 글로 묶어 펴냈기 때문이 아닐까. 치열함과 열정적인 사랑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기에 나 역시 두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고 규정되던 하나의 존재를 리스펙토르는 ‘여성적 글쓰기’라 명명된 손길로 과감하고 세심하게 다뤄 특별함을 부여하고, 그 존재에 속하는 대상들, 다양한 사람과 사물 - 어쩌면 우리까지 - 은 빛을 발하게 된다. ‘여성적‘이라 일컬어지는 시선은 물체를 조심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심히 살피면서도 이에 심판을 가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고유성을 지닌다. 이를 받아들이는 존재와 그 의미는 점점 넓어지며, 보다 보편적인 존재인 ‘여성’과 ‘우리’를 포함하고자 손을 뻗는다.


엘렌 식수는 ’오렌지‘에 가닿는 리스펙토르를 열정적으로 찬양한다. 오렌지를 알아보는 눈길로부터 글쓰기를 통해 무언가를 오렌지로 명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이 과정에서 식수는 리스펙토르와 자신을 작가이자 여성으로서 동일시하기도 한다. 식수의 글은 리스펙토르의 여성적인 시선과 글쓰기에 대해 찬미하면서도, 같은 작가로서 느끼고 파고들었던 쟁점을 동시에 얘기한다. 식수는 글쓰기를 하며 시대와 외부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자신과 자신의 글을 보고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며, 이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거나, 자신 그리고 자신의 글을 최종적으로 수용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글쓰기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면적인 시선을 던지기 때문에, 화자와 대상, 그리고 화자와 화자가 섞이면서 이야기는 전개되거나 머무르기 때문에 리스펙토르와 식수를 난해하다 여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리스펙토르의 시간>에 나오는 식수의 날것 그대로의 고민은 그와 그의 글을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매력적으로 만든다. 고민을 서술하는 방식이자 쟁점에 가닿는 통로인 그들의 ’글’ 자체에 담긴 아름다움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통찰에서 기인한 식수의 아포리즘의 아름다움에서 이 책의 매력을 느낀 독자 역시 많으리라 생각한다(나도 그렇고). 


“오, 삶이여,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영예다. 자신을 ’무엇‘으로 여긴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데 ’누구‘로까지 여겨질 수도 있을까?”

“그리고 등장인물들에게는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불어넣어 주기 가장 유리한 처지에 있는 저자를 지닐 권리가 당연히 있지 않은가?”


<리스펙토르의 시간>에서 주로 소개된 작품인(다른 작품을 더 선호하더라도, 리스펙토르의 광팬이라면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메타포(그 예시로 달걀이 있다)가 등장한다) <g.h에 따른 수난>, <별의 시간>을 읽었다면 리스펙토르가 주목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란 무엇인지, 그 시선이 얼마나 눈물겹게 따스한지 바로 알아챌 수 있으리리 믿는다. 바퀴벌레의 죽음을 향한 여정과 마키베아라는 한 보잘것없는 여성의 생애를 따라 우리는 당연히 지나칠 것이라 믿는, 어쩌면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쳐가기를 바라는 존재를 그 모습과 본질 그대로 포착하게 된다. 특히 <별의 시간>에 등장하는 마키베아에 대해, 그가, 혹은 그의 입을 통해 리스펙토르가 말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통해 식수는 리스펙토르와 마키베아를 넘어 삶 자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대상과 존재 역시 자신에게 걸맞는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통해 식수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뒤바꿔놓는다. 


“나는 클라리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녀에 대해 말하는 대신 그녀의 글쓰기를 듣고 싶다. 이것은 일으켜 세움의 문제다. 내가 클라리시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당신들에게 말하는 문제다. 클라리시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 그리고 당신들 역시 자신을 클라리시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집, 즉 <야생의 심장 가까이>, <아구아 비바>, <별의 시간>을 애정하는 독자로서 엘렌 식수의 신간이 나왔다는 말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식수가 리스펙토르를 만났듯이(반대로 리스펙토르가 식수를 만났듯이) 영혼과 공명할 수 있는 작가와 평론가 혹은 독자, 또는 대등한 입장(작가와 작가, 독자와 독자)를 만난다는 영예를 누린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오렌지’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되듯,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엘렌 식수라는 시선을 통해 영광스러운 의미를 선사받는다. 작가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말은 얼마나 큰 애정이 담겨있는 찬사인지. 

리스펙토르와 식수는 글쓰기를 통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원천에 손을 뻗는 것에 관한 용기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오렌지’에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할, 그리고 이를 있는 그대로 기억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리스펙토르와 식수는 ‘기억’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바퀴벌레, 마키베아, 심지어는 ’클라리시‘를 들여다보며 독자를 설득한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모두가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미 그러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 곧 리스펙토르와 식수의 글쓰기이다. 

리스펙토르와 식수를 통해 나와 우리는 유의미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글과 사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모든 사물을 날카롭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고 싶게 만드는 책이 곧 <리스펙토르의 시간>이다. 


r*****t 202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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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렌지와 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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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서평단으로서 자유롭게 읽은 감상을 전합니다)『리스펙토르의 시간』은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독서였다. 나는 그녀의『아구아 비바』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고, 리스펙토르의 문장이 가진 감각적이고도 기이한 자유로움에 오래 매혹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만의 독창적인 글의 바다안에서 유영하는 감각으로 읽어나가는 텍스트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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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서평단으로서 자유롭게 읽은 감상을 전합니다)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독서였다. 나는 그녀의『아구아 비바』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고, 리스펙토르의 문장이 가진 감각적이고도 기이한 자유로움에 오래 매혹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만의 독창적인 글의 바다안에서 유영하는 감각으로 읽어나가는 텍스트는 ‘읽기’의 행위가 아닌 그저 ‘체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로 을유문화사에서 이 책이 나왔을때 제대로된 비평서를 읽어본 경험이 없음에도 누구보다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기대와는 달리 첫 장부터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존의 글의 형태나 형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조금만 주의를 돌리면 문장으로부터 달아나버리기 일수였다. 온통 은유로 가득차있어서 쉽게 읽히지 않고 해석하기가 까다로웠다. 후에 이는 작가의 의도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덕분에 “여성적 글쓰기”의 개념을 처음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비유와 은유, 시적이고 직관적인 서술 방식은 여성적 글쓰기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내가 낯설어했던 ‘쉽게 읽히지 않고 해석이 어려운 글’은 단순히 난해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남성중심적 글쓰기 방식에 대한 의도적 저항과 해체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낯선 식수의 스타일이 오히려 더 강렬했던걸까 「오렌지 살기」챕터가 가장 여운에 남는다. ‘오렌지’에 대해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된다. 그녀가 나고 자란 지리적·언어적 배경에과 오렌지 발음과의 관계에도 주목하게 된다. 불어라는 모국어 안에서도 ‘이방어처럼 느껴지는 언어’의 감각은 그녀가 자라온 알제리의 복잡한 언어 풍경에서 기원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생 자체에서 날카롭게 다듬어졌으리라 짐작해본다. 식수에게 오렌지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발음할 때 혀끝에서 부서지고 흔들리는, 신체의 리듬과 감각이 깃든 언어다. ‘오랑’, ‘오렌쥬’, ‘오렌지’—그 모호하고도 낯선 발음 속에는 그녀가 속했던 식민지 알제리의 복잡한 언어적 정체성이 담겨 있다. 이 오렌지는 식수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할 때 꺼내드는 하나의 심벌이자, 말해지지 않지만 감각되는 글쓰기의 덩어리이자 여성 그 자체이다.

 리스펙토르에게 ‘아구아 비바’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물이다. 끊임없이 흐르고, 형태가 없고, 중심이 없으며, 순간마다 달라지는 그 물은 글쓰기의 비형식성, 즉 여성적 시간성과 존재 방식을 상징한다.

나는 이 두 대상—오렌지와 물—이 각각 식수와 리스펙토르의 고유한 글쓰기 감각과 정체성을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구현한 심벌이라고 느꼈다. 그것들은 분석되지 않고, 명명되지 않으며, 단지 몸과 문장 사이를 떠다니는 감각으로 존재한다. 오렌지의 과즙처럼 퍼지는 문장들, 물처럼 정해지지 않은 언어의 흐름. 그리고 그 감각은, 독자인 나에게까지 번져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해한다’는 감각 대신 ‘같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다’가 아니라 ‘함께 유영한다’는 감각. 이처럼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두 여성 작가의 몸, 언어, 침묵, 리듬으로 이루어진 연대를 하나의 긴 호흡으로 풀어내며, 여성 독자인 나에게도 그 연대의 한 자락을 건네준다.

 엘렌 식수는 이 책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비평하지만, 그것은 분석이나 해설의 말투가 아니다. 그녀는 리스펙토르의 문장을 해체하지 않고, 그 문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 잠긴다. 해석보다 감응이 먼저이고, 구조보다는 리듬이 앞선다. 그 낯선 서술 방식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해를 포기하고 감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성적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이론으로 배우기보다, 문장 안에서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었다.

 이 책은 분명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이 바로 이 책의 방식이며, 여성적 글쓰기의 근본적 태도이기도 하다. 명확히 말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다만 흔들리는 문장을 통해 감각과 직관을 꺼내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리스펙토르를 해석하는 책이라기보다, 그녀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다른 숨결로 살아내는 텍스트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장 특별하게 다가온 지점은, 식수와 리스펙토르 사이에 흐르는 문학적 연대감이 나에게까지 조용히 이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의 몸과 언어, 감정과 존재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그 모든 것이 모호하고 곧잘 부서지는 경험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문장이 내 안에서 진동할 때, 나는 이 연결이 이론이나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에 관한 감각적 연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수가 리스펙토르에게서 읽어낸 그 섬세한 떨림은, 나에게도 언어를 잃지 않고도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책은 여성들 사이에 가능한 쓰기와 읽기의 연대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실현해 보이는 하나의 응답이었다.

c******c 202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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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글을사랑한다면 꼭 봐야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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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펙토르의 시간_엘렌 식수_황은주 옮김표면적으로는 김춘수의 [꽃], [어린왕자]가 떠오른다.리스펙토르에게, 리스펙토르에 의한, 리스펙토르를 위한 책으로, 엘렌 식수같은 작가로 하여금 이런 글을 써내게 한 리스펙토르가 한없이 부럽다.페미니즘을 찬양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적 글쓰기'라고 칭해지는 식수의 문체와 글의 흐름은, 처음 맛보아 낯설지만 뱉고싶지 않은 사탕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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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펙토르의 시간_엘렌 식수_황은주 옮김

표면적으로는 김춘수의 [꽃],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리스펙토르에게, 리스펙토르에 의한, 리스펙토르를 위한 책으로, 엘렌 식수같은 작가로 하여금 이런 글을 써내게 한 리스펙토르가 한없이 부럽다.

페미니즘을 찬양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적 글쓰기'라고 칭해지는 식수의 문체와 글의 흐름은, 처음 맛보아 낯설지만 뱉고싶지 않은 사탕같았다.

헌사이면서 편지이면서 자서전이면서 철학서, 그리고 평론같은 이번책에서는, 변화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강한 생명력과 생동감이 크게 느껴진다.

읽는 내내 문득 글쓰기란, 문학이란, 언어란 뭘까. 에 대한 생각이 든다.

리스펙토르를 거쳐, 엘렌 식수를 거친 우리의 관계와 삶을 아우르는 언어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리스펙토르만이 가진 언어와 엘렌 식수의 언어가 모두다 고스란히 다가오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별의 시간'이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다.
(+메두사의웃음)

📌 
-우리 기원을 사랑하는 자들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백함은 존재한다. 클라리시의 광채는 존재한다.

-기쁨을 불어 꺼트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나 자신의 결백함을 용서할 만큼 겸손하지 않다. 결백함의 끔찍한 기쁨을 견딜만큼 용감하지 않다. 

-내 창문을 감싸고 있는 클라리시의 결백함은 이제 진실한 나의 빛이다.

-우리가 사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에게서 그렇게나 멀리, 우리 자신에게서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연약한 망각의 시대에, 이 슬픈 망각의 시대에, 시선은 연약하고 짧아져서 사물들을 비껴가 떨어지고, 살아 있는 사물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는 읽을 줄 모르고, 의미를 빛나게 할 줄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무기력의 시대, 귀 기울이는법과 듣는 법을 잊어버린 시대에, 우리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두 팔은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클라리시는 자신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그 순간 온전히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에 관한 모든 개념에 앞서 사물 하나하나를 심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무들을 아는 것, 그것이 곧 삶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망각한다.

-삶은 인간 정념의 모든 역설적인 운동들, 반대되는 것들의 고통스러운 결합들로 이루어진다.

-글쓰기란 신비를 건드리는 것이다. 신비를 짓밟아 진실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말의 끝으로 조심스레 만지는 것이다.

-삶의 끝과 죽음 앞에서, 카프카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어떻게해야 우리 인간 존재의 진리를 실현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리스펙토르의시간 #을유문화사 #엘렌식수 #helenecixous #claricelispector #도서제공 #문학 #글쓰기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YES마니아 : 로얄 k*******6 202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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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추앙한 자의 뜨거운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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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앞에서의 고백처럼, 나의 (성인 이후)첫 고전이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부터, 내 마음속 넘버원 소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다빈치코드>,<인페르노>3부작의 로버트 랭던 교수까지, 이토록 충분한 이유로 기호학을 사랑한다.⠀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온갖 지식들을 교묘하
"열렬히 추앙한 자의 뜨거운 간증. "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앞에서의 고백처럼, 나의 (성인 이후)첫 고전이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부터, 내 마음속 넘버원 소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다빈치코드>,<인페르노>3부작의 로버트 랭던 교수까지, 이토록 충분한 이유로 기호학을 사랑한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온갖 지식들을 교묘하게 바꿔 기시감을 갖게하고, 그로인해 숨겨진 의도를 찾아나서게 하는 그 스마트함이 멋졌고 동경했다.

#엘렌식수 의 #리스펙토르의시간 (#을유문화사 출판)을 읽으면서 기호학이 떠올랐다. 리스펙토르의 글을, 로버트랭던이 기호학적 사실들을 줄줄 외우고 있을만큼 덕후였구나 느껴질만큼, 엘렌 식수도 ‘덕질’했다.

직업이라는 카테고리의 무언가 하나를 평생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덕질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 만큼 좋은(행복한)것은 없다고,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딱 그 행복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정한 덕업일치👍🏻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했다는 저자의 이 책에 수록된 첫번째 글 ‘오렌지 살기’에서 아, 이런것이 여성적 글쓰기인가? 랄 만큼의 글을 보여준다.

열렬히 사모 대상에게 보내는 온갖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인, 그러면서도 남성이 쓴 그런 문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힘을 분명히 준 문장인데도 힘을 주지않은 것 같은 문장이다.
‘너를 처음 본 순간 하늘이 어찌저찌했고 내 심장은 이러쿵저러쿵 했으며’하는, 충분히 낯이 뜨거워질 글임에도 전혀 달아오르지 않는다. 절절하게 끓는데도 뜨겁지 않다. 사람사이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절대자를 찬양하는, 찬양하지만 너무나 많이 그분이 행한 기적들에 이미 감화되어 일상이 된 듯한 차분함이 담겨있다.
연애편지보다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성스러움이 담겨있다.
유럽권 언어가 가지는 남성형, 여형성 명사표기를 이용해서(모든 단어들을 여성형 명사로 굳이 다 바꿔놓는다)자기가 고안하고 자기가 가장 자신있는 글쓰기 방식으로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형 명사를 넣는 행위 중 하나로 리스펙토르를 이용한 느낌마저 든다.

아마 엘렌식수를 덕질하고, 그 덕질의 일환으로 리스펙토르의 책까지 섭렵하는 찐 덕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엘렌 식수가 리스펙토르를 얼마나 오마주해서 이 글을 썼는지, 여성적 글쓰기가 리스펙토르를 통해 극대화된 것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저자와 독자로서 만나 주고받는 기호학이 되는 것이겠지.

그 어느쪽도 해당되지 않는 삐약이라 그러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머글인 나도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알아듣지 못함의 연속이었으나 그래도 찬란했다)느꼈고, 외국어능력이 있었다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운율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번역이 되었는데도 산문시같은 운율감이 느껴졌으니.
#황은주 번역가님 정말 대단하시다. 리스펙트🙏🏻

이러한 엘렌식수의 덕질은 세번째 글 <진정한 저자>에서 거의 정점에 다다른다.

리스펙토르의 유작 <별의 시간>을 눈에보이지 않는 원자수준으로 쪼개어 그 하나하나 안을 모두 들여다본다.
<별의 시간>속 호드리구가 쓴 소설 속 마카베아 까지 분석한다.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별의 시간>의 저자와 호드리구, 호드리구와 마카베아 사이에서 펼쳐지는 복잡한 관계성까지 남김없이 탈탈 털어 적어놓았다.

원자라는 단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것들을 진리처럼 믿는 것들이 많다라는 글이 나온다.
엘렌식수에게는 리스펙토르의 생각와 글이 세상 제일가는 진리였다. 원자라는 단위가 있다라는 사실보다 더.

누군가를 그렇게 열렬히 깊이 파고, 체화해서 내가 곧 그가 되는 합일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걸 어느정도 살아가다보니 알게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것이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확실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글쓰기 외의 엘렌 식수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글쓰기 인생만큼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 글쓰가 전부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처음에 말했던, 기호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의 독서는 성공적이지않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않고, 나도 이 기호학 재미있게 읽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겼다.
아 글은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영업하는(?)글이 분명하다.
그런면에서는 난 이 글을 똑바로,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냈다😇
이달의 사락 k********4 202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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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숨결로 쓰인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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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의 찬란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죽음으로부터,죽음의 은총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이 그 모든 불행과 즐거운 속에서 지니는 보물들을 기억하게 된다.그러기에 마지막 문장은 삶을 향한 감사의작별인사라고 말한다.나의 마지막 문장은 과연 어떻게 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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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의 찬란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죽음으로부터,죽음의 은총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이 그 모든 불행과 즐거운 속에서 지니는 보물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기에 마지막 문장은 삶을 향한 감사의
작별인사라고 말한다.

나의 마지막 문장은 과연 어떻게 쓸지 궁금해진다
k******v 202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