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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
"향성" 내용보기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소설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일어나는 움직임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익숙한 사건도, 뚜렷한 갈등도 없어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몇 장을 읽고 나니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이야기보다 '감정이 생겨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 스쳐 지나갈 법한 표
"향성" 내용보기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소설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일어나는 움직임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익숙한 사건도, 뚜렷한 갈등도 없어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몇 장을 읽고 나니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이야기보다 '감정이 생겨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 스쳐 지나갈 법한 표정 하나,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까지. 사로트는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떨림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포착한다.


제목인 '향성(Tropismes)'은 식물이 빛이나 중력에 반응해 움직이는 현상을 뜻한다. 사로트는 이 개념을 인간의 내면으로 가져온다. 우리는 어떤 말 한마디에 이유 없이 위축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대부분 놓쳐버리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찰나를 붙잡아 천천히 확대해 보여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나도 분명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라는 기시감이 자주 찾아온다.


짧은 단편들이 이어지는 구성도 인상적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지만 모두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욕망, 불안과 허영, 소외감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품고 있다. 가족과 타인 사이, 군중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 평범한 대화 속에 숨은 권력 관계까지. 특별한 사건 하나 없이도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하게 움직이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명확한 인물과 기승전결을 기대한다면 다소 막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난해함마저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문장을 따라가기보다 감정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한 번에 몰아 읽기보다는 문장 하나를 오래 붙잡고 천천히 음미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향성』은 프랑스 누보 로망을 대표하는 작가 나탈리 사로트의 문학 세계를 가장 응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거대한 사건 대신 아주 작은 감정의 파문을, 극적인 대사 대신 침묵 속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소설. 읽는 동안 화려한 재미보다는 조용한 집중이 필요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인간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래 바라볼수록 새로운 결이 드러나는 그림처럼, 읽고 난 뒤에도 문장보다 감정이 더 오래 남는 독특한 고전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5 2026.07.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