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을 덮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기괴스러운 공포, 골치 아픈 환상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도대체 포우가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셔는 왜 그토록 심한 우울증과 공포에 사로잡혀야 했는지, 갑자기 메델라인은 왜 살아나서 어셔에게 다가와 죽음을 맞이했는지, 하여튼 의문투성이였다.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났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레메디오스가 승천하는 장면, 이름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어 버리는 등등의 라틴 문학의 전형적인 환상적인 수법에 머리가 아팠는데 이런 느낌을 다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어셔는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이고, 공포를 일으키는 절대적 영향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이런 환영과 싸우는 동안 생명과 이성도 모두 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울증의 원인이 메델라인의 오랜 병과 그녀가 곧 죽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수세기 동안 그 집의 운명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모든 식물과 무기체들까지도 감각이 존재하는(특히 그 잿빛 돌담)그 암울하고 무서운 힘의 결과라고 말한다. 어셔가 느끼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는 그의 내적인 원인, 특유의 우울함과 더불어 어셔의 집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늪지대에 세워진 집의 기반은 약할 수밖에 없고 긴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퇴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의 집 주위 환경은 ‘내’가 느끼기에도 암울하고 적막한 것이다. 어셔의 황폐해진 마음과 그 붕괴해 가는 집은 하나의 구조 안에 맞물려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의 ‘나’는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셔의 집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사실들이다. 어떠한 실증적인 접근방법으로도 이 사건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과학의 시대라고 명명되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영적 현상을 들 수 있다. 가짜 사기극도 있긴 하지만, 무속인들의 작두 타기, 신내림, 가위눌리는 것등은 아직도 정신 분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다. 포우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의외적인 착상, 기분 나쁠 정도의 표현의 탐미주의로 보들레르마저 전율시켰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문명만으로는 해결되어지지 않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포우는 분명 포착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