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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90년 무렵 비트루비우스 인간, 혹은 비트루비우스 인체도라 불리는 유명한 그림을 역시 유명한 자신의 노트에 그렸다. 원과 정사각형 안에 벌거벗은 남자를 그린 그 그림은 어디에나 있다. 이상적 인간을 나타낼 때도, 예술과 과학의 위대함을 나타낼 때도, 인간 정신의 잠재력을 나타낼 때도, 온갖 것을 표현할 때 언제나 등장한다. 오히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과연 이 그림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가 헷갈릴 지경으로 다양한 의미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우리 곁에 불쑥불쑥 등장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유명한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얘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태어나기 약 1,500년 전부터 시작하여 다 빈치가 생애의 황금기에 이르기 전에 끝이 난다(그 후의 얘기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각주다). 그러니까 단순히 다 빈치가 어떻게 해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묘한 그림에는 고대의 이상과 그 이상의 변화와 다 빈치와 그의 동료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이용하려 했는지가 담겨 있다. 바로 그것을 저자 토비 레스터는 보여주고자 한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비트루비우스라고 하는 로마 시대의 건축가에서 비롯된다. 그가 『건축십서』에서 얘기한 그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그린 것이 바로 다 빈치니까. 하지만 그 비트루비우스라는 한 사람이 그 책에서 쓴 표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책이, 그 책의 표현이 시대를 거치며 사라지지 않고 남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까지 알려졌다는 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트루비우스와 그의 생각은 그 시대를 표상한다. 한 인간의 모습에 세계, 우주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 플라톤적인 생각이 살아남은 것은, 단순히 그 책이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수도원에 보관된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이러저러한 변주를 거치며 수많은 철학자와 건축가, 미술가들의 표현과 작품 속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하게 이어져 오던 인간의 이상적 표상은 드디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르러 위대하게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위대함이라면 굳이 이 책을 들 필요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레오나르도는 그의 천재성을 다 드러내지 못한 청년일 뿐이다. 아직 세상의 완전히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안정되게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다녔던, 아직은 비정규직 예술가이자, 건축가였다. <모나리자>를 그리기도 전이며, 당연히 <최후의 만찬>도 그의 별로 많지도 않은 작품의 목록에 들어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오히려 다 빈치에게서 비로소 구현된 비트루비우스 인간(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다 빈치의 유령')을 통해서 서양 정신사의 한 흐름을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온갖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상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한 천재에게서 그 서양 정신사가 어떻게 모아졌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가치가 있다.
500여 년 전 어느 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 스스로의 연구 끝에 찾아낸 인체의 비율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비록 비트루비우스에게서 출발했지만, 그가 당시 해부학에 의문을 가졌듯이 비트루비우스의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연구와 유추에 바탕을 둔 창조적 작업이었다.
"이것은 이상화된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 속에서 벌거벗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 레오나르도는 자기 몸을 측정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영원한 희망, 어쩌면 만물의 웅대한 계획에 우리가 끼게 된 방식을 이해할 정신력이 우리에게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표현한다." (15쪽)
"인체 비례의 연구이자 인체 해부에 관한 개관, 건축적 이상에 대한 탐색이자 고대의 한 문헌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나타낸 삽화, 제국의 전망, 작은 세계에 대한 우주구조론, 미술의 힘에 대한 찬미이자 하나의 형이상학적 비례로서 말이다. 결국 그의 천재성이 이 모든 것을 그러모아 일종의 우주적 자화상으로 묶어냈던 것이다." (238쪽) (2014.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