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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많이 듣고 배워서 다 읽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작품들이 있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이하 ‘김만중’)의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사씨남정기>는 숙종의 외척(外戚)1)인 김만중이 쓴 한글소설로 겉으로 보면 애정소설에 속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유한림, 교씨, 사씨부인을 내세워 숙종(肅宗)과 희빈(禧嬪) 장씨(張氏),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일을 풍자한 작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김만중은 왜 숙종이 희빈 장씨를 총애하는 것을 문제 삼았을까? 먼저 당시 정국을 살펴보면, 서인과 남인이 각각 붕당(朋黨)을 이뤄 맞서고 있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왕이 사대부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남인(南人)과 왕과 사대부는 동등하며, 왕은 사대부의 대표라고 여겼던 서인(西人)이라는 근본적인 갈등관계가 한 몫하고 있다. 게다가 숙종은 남인과 연결된 희빈 장씨와 서인에 속한 인현왕후를 핑계로 환국(換局)이라는 방식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휘둘렀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으로 볼 때, <사씨남정기>는 서인 지도부에 속한 외척인 김만중이 숙종에게 보낸 경고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사씨남정기>의 내용을 살펴보자. 명(明)나라 개국공신 유기(劉基, 1311~1375)2)의 자손으로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했던 유희(劉熙)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유연수(劉延壽, 이하 ‘유한림’)라는 아들이 있는데, 얼굴이 잘생기고 글 솜씨도 뛰어나 15세에 향시(鄕試)3)에 장원하고, 회시(會試)에 3등4)으로 급제했다. 그리고 한림원(翰林院)의 편수(編修)5)로 임명된다. 소위 ‘소년급제(少年及第)’에 성공해서 출세의 지름길에 접어든 셈이다. 여기서 유희는 부유하고 세력이 강한 승상 엄숭(嚴嵩, 1480~1567)의 손녀 대신 청렴 강직한 급사(給事)6) 사담(謝潭)의 딸, 사정옥(謝貞玉, 이하 ‘사씨 부인’)을 며느리로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필 사씨 부인에게 9년간 자식이 생기지 않으면서 이야기는 급변한다. <사씨남정기>의 배경이 되는 중국 명(明)나라는 자식이 없어 대(代)를 잇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不孝)로 여기는 시대였다. 이런 관념과 사회적 시선 때문인지 사씨 부인은 유한림에게 첩을 들이라고 권유한다. 나아가 일처일첩(一妻一妾)은 사대부에게 떳떳한 일이라며 사족(士族)의 딸인 절세미녀 교채란(喬彩鸞, 이하 ‘교씨’)를 매파를 통해 직접 구한다. 덕분에 교씨를 통해 아들 장주(掌珠)를 얻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사씨 부인이 아들 인아(麟兒)를 낳았으니 조금만 더 참았다면 교씨로 인해 사씨 부인과 유한림이 고난을 겪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다.
여기에 유한림은 ‘소년급제’를 할 만큼 공부 머리는 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책상물림’인 셈이다. 사씨 부인도 교씨를 선택한 것에서 보듯이 오십보백보로 보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유한림과 사씨 부인은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제는 유한림이 요망한 교씨와 간교한 동청(董淸), 그리고 동청의 허물을 알고도 그에게 천거한 친구 이부낭중(吏部郎中) 석씨(石氏)를 신임했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사씨 부인을 오해해서 쫓아내고, 서장자(庶長子) 장주가 살해되고, 적자(嫡子)인 인아도 잃고, 자신도 죽을 뻔하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다. 다행히 유연수와 사정옥의 혼인을 중매했던 묘희(苗姬) 스님과 그녀의 조카딸 임씨(林氏)덕분에 사씨 부인도, 인아도 되찾고 그의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간신(奸臣) 엄 승상과 그의 일파가 쫓겨나면서 유한림도 복권(復權)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임명되었으니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말까지 다 읽고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사씨남정기>도 <구운몽>처럼 유교적 이상향을 구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씨에 그렇게 데이고도 임추영을 다시 첩으로 맞이하여 세 명의 아들을 얻은 유한림의 모습이나 투기를 비롯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내비치지 않는, 사대부의 이상적인 부인 그 자체인 사씨 부인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시아버지 유희와 며느리 사씨의 문답으로 봐도 알 수 있다.
“신부가 이제 우리 집에 왔으니 장차 어떻게 남편을 도와 바른길로 이끌 것이냐?” “첩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본래 배운 바가 없으니 어찌 밝은 물음에 받들어 답하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님이 첩을 보내실 때 중문(中門)에 이르러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여 지아비의 뜻에 어긋나지 마라’고 하셨으니, 그 말씀이 아득하게 귓가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만약 첩이 마음을 다해 이것에 힘쓴다면 큰 허물은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아비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실로 부도(婦道)이다만 남편이 잘못된 행동을 할지라도 순종할 것이냐?”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말에 ‘부부의 도리 또한 오륜에 속해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간언하는 아들이 있고, 나라에는 간언하는 신하가 있으며, 형제는 바른 도리로 서로 격려하고 벗들은 착한 행동을 서로 권하는데 어찌 오직 부부의 경우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허나 예부터 남편이 부인의 말을 들으면 해롭기만 하고 이로움이 없었으니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p. 28]
이처럼 사씨 부인은 당시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여인상을 실체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7)
또한 <사씨남정기>가 숙종과 희빈 장씨, 인현왕후와 무관하다는 주장8) 9) 10)도 있다고 하니, 이 책 <사씨남정기>를 <구운몽>과는 다른 형태로 유교적 이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김만중의 형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 1633~1687, 이하 ‘김만기’)가 숙종의 장인이었다. 경신환국(庚申換局)때 김만기는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김석주(金錫胄, 1634~1684) 등과 옥사를 일으켜서 남인들을 많이 숙청했다. 2) 서달, 이선장과 더불어 명나라 3대 개국공신으로 꼽힌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책사로 당대 사람들은 그를 제갈공명에 견주었다. 3) 향시는 지방에서 치르는 과거로 여기에 합격하면 거인(擧人)이 되어 수도(首都)에서 치르는 회시에 응시할 수 있다. 4) 회시의 1갑(甲) 3등인 탐화(探花)를 말한다. 5) 편수는 역사서 편찬을 담당하는 정7품의 벼슬이다. 6) 급사는 급사중(給事中)이라고도 하며 황제의 시종(侍從), 간언(諫言) 등의 일을 하는 정7품~종7품의 벼슬이다. 7) 韓淸, “가정소설 <사씨남정기>의 여성인물 유형 연구”, <국제문화연구> Vol. 9 No 2. (조선대 국제문화연구원, 2016), p. 136을 보면, 사씨는 부귀나 명예 등 현실적인 이해관계보다는 유교적 관념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던 것이다. 사씨는 자신의 행동과 선택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유교적 관념을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런 점을 통해 사씨는 철저하게 유교적 관념으로 무장되어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8) 이원수, <사씨남정기>의 창작 동기 및 시기 논란, <배달말> 통권 44호(2009. 6), p. 204에 따르면 “<사씨남정기>의 창작 시기는 작자의 1) 선천 유배(1687) 이전, 2) 선천 유배 이후 모부인 졸년(1689) 이전, 3) 남해 유배 기간(1689~1692) 등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3)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3)이 전제하고 있는 장희빈 사건과의 관련성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고, 이 작품이 유배 기간에 창작되었다는 추정 또한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한다. 9) 문학동네판 <사씨남정기>를 번역한 류준경 교수도 김만중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씨남정기>를 창작했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10) 사씨 부인의 모델이 인현왕후가 아닌 이상적인 현모양처(賢母良妻)로 이름 높았던, 연산군의 처, 폐비 신씨(1474~1537)라는 주장도 있다. 그녀는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지만 존중 받았고, 중종 16년에 복권되어 빈(嬪)의 예우를 받으며 살다가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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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이 만한 책은 없다. 고전 소설을 번역한 책 중에서 가장 질이 좋고 읽기 쉬우면서도 감동은 그대로 담은 시리즈다. 우리 글 우리 소설을 정말 좋아하지만 시중에 나온 책들의 대부분은 요약본인데다 제대로 찾았다 해도 고어와 한자가 많았던 터라 국어국문을 배우지 않은 내가 읽기는 매우 어려워서 다가가고 싶어도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좋은 책이다. 찬사를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이 나와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열심히 번역해준 번역가들과 이 시리즈를 만든 문학동네에게 고맙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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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나온 한국고전문학전집 시리즈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