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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문화의 전파와 표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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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선물받은 책. <K-픽션>시리즈로 어떤 책을 받을 지 몰랐는데..나에게는 002-아르판(Arpan)이 도착했다.   박형서..익숙한 이름의 작가는 아니지만, 일단, 나와 동갑이다.  그래서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지 궁금함에 책을 펼쳤다.    책은 휴대용처럼 가볍고, 한쪽에는 영어의 번역본이 있다. 영어공부하기에도 좋을 듯 아마도 <K-픽션>의 의도로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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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선물받은 책.

<K-픽션>시리즈로 어떤 책을 받을 지 몰랐는데..나에게는 002-아르판(Arpan)이 도착했다.

 

박형서..익숙한 이름의 작가는 아니지만, 일단, 나와 동갑이다. 

그래서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지 궁금함에 책을 펼쳤다.

  

책은 휴대용처럼 가볍고, 한쪽에는 영어의 번역본이 있다. 영어공부하기에도 좋을 듯

아마도 <K-픽션>의 의도로 만든 것같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힘이 강해지며 한류에 대한 관심은 이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넘어 의료, 관광, 화장품 등 더욱 세분화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쳐, K-팝 등 한국의 최신 문화는 실시간으로 세계에 소개되고 있지만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는 오래된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로 인해 생긴 한국 문학은 고루하고 낡은 것이란 오해를 불식시키고 개성 넘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한국 문학을 세계에 실시간으로 소개하려는 시도가 바로 <K-픽션이다.

 

이 책은 아르판의 이야기와 창작노트, 해설, 비평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읽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읽고난 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인 <<자정의 픽션>>도 찾아보고..여러가지를 생각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르판은 태국과 미얀마 접경 고산지대에 사는 와카족 마을에서 유일하게 와카 글자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로서 제대로 된 인정조차 받지 못하던 는 아르판의 소설을 표절(번안)함으로써 간신히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사실 아르판을 한국에 초대한 것은 가 표절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다. 원본과 사본을 가른다는 것의 무의미함 혹은 불가능함을 말하며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이 지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문제작이다.

 

라는 소개글이 이 책의 줄거리 전부이다. 다만, 읽고난 후에

나는 fiction(허구)보다는 왠지 nonfiction(사실)일 것만 같은 예감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 소통이 잘된다는 뜻이다.(47쪽)

 

이 말은 공감이 간다.

아무리 멋진 작품을 썼어도 읽는 독자가 없다면..그 작가와의 소통은

하지만, 그렇다고 베스트셀러가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읽은 사람들로부터 많이 회자되어야하지 않을까..

 

 

주인공인 '나'는 '아르판'의 소설을 표절해놓고 당당(?)하게 설득하고자 한다.

아니, 자신의 일에 대한 합리화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르판의 반응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때, 작별인사를 하면서

"아리, 도미알라."

라고 이야기하며 떠나는 아르판.

 

아르판은 친구를 의미하는 '도샤'대신 아들 또는 후손을 뜻하는 '아리'를 사용했다.

아리, 내게서 생명을 받아간 자. 내게서 모든 걸 물려받은 사람.(82쪽)

 

이 말로..아르판의 마음이 어떠했는지..공감이 되었다.

 

창작노트에 작가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소설 [아르판]을 쓰며 나는 특히  세 가지를 고민했다.

그 하나는 '문화의 전파'다. 다른 하나는 '표절'이다.

마지막 하나는 '둘이 얼마나 다르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다.

 

또한, 비평의 목소리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평의 글들도 있다.

 

 

 

가벼운 사이즈의 책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영어의 번역본은 가끔씩만 보고..

문화의 전파, 표절..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작가의 작품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결한 내용이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색다른 독서를 한 느낌이다.

 

다른 <K-픽션>시리즈도 궁금해졌다.

s***y 2014.10.24.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아르판 - 박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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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아시아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영화 <아마데우스>는 작곡가인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느끼는 질투, 좌절, 복수를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천재를 넘어설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고뇌를 영화 속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르판>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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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아시아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영화 <아마데우스>는 작곡가인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느끼는 질투, 좌절, 복수를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천재를 넘어설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고뇌를 영화 속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르판>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바로 창의성에 대한 질투를 말이다. 주인공이 작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창의성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을 세계를 이루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가는 남과 다른 생활이 곧, 예술가의 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태국과 버마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와카족의 거주지로 여행을 떠난다. 그 속에서 작가로서의 예술적 열정을 되찾으려고 하는 그의 모습은 비록 현재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예술에 대한 열정의 갈구를 통하여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려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가 모짜르트를 만나기 직전처럼 말이다.

 

 남과 다른 생활의 장소인 와카족의 거주지에서 딱히 그가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는 운명적으로 아르판을 만난다. 와카족에서 유일하게 와카어를 글로 쓸줄 아는 사람으로서 소설까지 쓰는 작가였던 아르판. 주인공은 아르판을 훔쳐 보면서 그동안 깨닫지 못한 글쓰기의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중략) 그를 처음 본 날부터 나는 매일 오후 두 개의 산을 왕복 두 번씩 넘었다. 그리고 어둠에 저항하는 오두막의 호롱불 빛을 들여다보았다. 이야기의 꽁무니를 이어나갈 때마다 아르판의 얼굴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는 소설이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는 공동체의 언어를 가꾸고 다듬는 일에 대가 없는 행복을 느끼는 진짜 작가였다. 막 데뷔하여 글감을 찾아 주유하는 병아리 소설가로서, 나는 밤마다 아르판이 보여주는 문학 강연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중요한 건 기교가 아니었다. 타인의 자유로운 영혼에 간섭할 고상한 메시지도 아니고, 미래를 포장하는 허황된 웅변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이었다. - p. 34 -

 

 아르판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와카어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내가 작가로서 주목을 받지 못하여 고뇌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글쓰기 자체에 재미를 찾는 아르판의 순수한 모습이 주인공의 감정을 뒤흔든 것이다. 또한 주인공은 직접 읽어본 아르판의 작품을 통하여 그의 이야기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맛깔나게 쓰는 그의 재주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주인공은 아르판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그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마음에 들뜬 기분으로 갈 수 있었으나, 아르판을 보고 나면 그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인하여 발걸음이 무거워짐을 알게 된다.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좌절감을 느꼈다면 주인공은 이 대목에서 아르판으로부터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배웠다는 점과 그의 글재주에 질투심을 갖게 된다. 더욱이 미개해보이는 와카족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이 우러러 보게 될 아르판이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한국으로 귀국하여 주인공은 나름의 글을 써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주목을 받지 못한다. 결국 그는 아르판의 작품을 표절하여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한 주인공은 제3세계의 문화를 소개하는 강연을 핑계삼아서 아르판을 초대한다. 사실 이 부분부터 그동안 응축이 되었던 주인공의 질투심이 폭발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아르판의 작품을 표절하였어도 그가 오지에서 외부 세계로 나올 일이 없기 때문에 굳이 그를 초대하지 않았다면 그의 표절 행위가 밝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르판을 초대하고 심지어 그에게 자신이 표절하였음을 당당히 고백한다. 참회를 위하여 고백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인공은 자신의 표절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아르판을 논리적으로 제압을 하려고 한다. 아르판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으나, 한편으로는 아르판으로 상징되는 원전(原典)에 대한 질투심에 의하여 그러한 일을 벌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표절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표절은 어떻게 보면 도둑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오히려 자신의 표절을 하나의 문화로서 아르판을 설득하려고 한다. 이쯤되면 이 책의 저자도 작가노트를 통하여 밝혔지만, '문화의 전파'와 '표절', 그리고 이 둘의 사이를 다루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중략) 문화란 본디 섞이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화가 영원히 살아남는 방법이 뭔 줄 아세요? 남의 문화를 흡수하거나, 아니면 더 큰 문화에 흡수되는 길뿐입니다.(중략) 문화란 그런 식으로 쌓여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다간 저 와카의 머리 장식에 목이 부러진 노파처럼 죽어버리고 마는 겁니다." -p. 66 ~ 68 -

 " (중략) 당신 혼자이잖습니까? 당신 뒤로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잖습니까? 문명세계는 와카의 문학을, 와카에도 문학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겁니다." -p. 72 ~ 74 -

 " 네, 나는 당신 것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덧칠함으로써 더욱 멋지게 살려냈습니다. 내가 훔치지 않았더라도 당신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드러났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그 이야기는 머지않아 당신과 함께 영원히 묻혀버릴 겁니다.(중략)" - p. 74 -

 

 주인공은 이렇게 아르판 앞에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 대화 내용을 좀더 깊게 들여다본다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다. 문화가 본디 섞이는 것이라는 뜻은 결국 문화에서 원본에 대한 논란이 의미가 없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영원히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장단점을 통하여 개선되고 발전하기 때문에 문화라는 것이 완벽하게 독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주인공의 표절 행위가 오히려 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으로서 포장이 되고 있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수긍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와카족의 문화가 극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지만, 분명 자신의 글을 사용하지 않은 채 사라져가는 와카족의 문화가 주인공의 표절을 통하여 외부 세계에 알려지게 되는 것을 표절의 긍정적인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과연 수긍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방 또는 표절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의 말은 궤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주인공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르판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주인공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아르판은 왜 그랬을까? 주인공은 이미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였지만, 이미 내적으로는 합리화에 실패한 상황이었는데! 아르판의 이러한 행위는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모방의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아들을 바라보듯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아르판은 자신이 의도한대로 주인공의 모방을 통하여 와카족의 문화가 전승되었음에 만족을 한 듯하다. 이는 아르판이 문화의 독창성 내지는 순수성을 논한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처럼 보여진다.

 

 <아르판>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픽션이다. 하지만, 표절을 한 주인공의 자기 합리화의 시도와 이를 바라보는 아르판의 모습을 통하여 문화의 본질에 대한 논란과 함께 모방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어서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저 표절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우리에게 문화 자체의 순수성을 거론하면서 원전(原典)과 가짜의 구별이 무의미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저자는 표절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작가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던 창작과 표절을 문화의 순수성과 관련지어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바보야, 세상 모두가 와카라니까."

g*******7 2014.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