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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건축의 형태를 빚었고, 건축은 그 철학을 공간에 새겼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던가? 돌이켜보면 그랬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보면, 마치 복고풍 유행이 돌아오듯, 시계추가 저 끝단을 향해 나아가다 이곳을 향해 되돌아오듯, 일종의 진자 운동을 그리는 듯싶기도 하다. 어느 순간에는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며 모든 장식을 죄악시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놀라우리만큼 화려하고도 기이한 비정형이 유행한다. 직전 시대에 세워놓은 모든 질서를 해체한다. 어느 순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좇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직관적으로 보이는 가치를 좇는다. 핑퐁을 거듭하며 한쪽 극단을 치닫고는 다시금 반대편 극단을 향해 내달린다. 어딘지 새로워 보이는 운동이다 싶으면 이전 시대에서 그 계보가 딸려나온다.서양 철학의 역사는 곧 플라톤의 각주라고 하던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인 듯싶다. 그 플라톤의 제자라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의 대립 구도로 저 오랜 서양 건축의 역사를 풀어보기 시작하면, 얼추 도식화가 들어맞는다. 예술에 초점을 맞출 경우,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는 비결정론적 태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은 저세상에 초점을 맞추는 플라톤의 미학과는 대척점에 있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MBTI가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S였다면, 플라톤의 것은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N이지 않았을까 싶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하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곧 예술가의 창작 가능성에 대한 지지 여부로도 연결된다. 플라톤의 주장대로 예술이 이데아에 대한 묘사에 불과할 경우, 겉보기에 완벽한 것보다는 상상하기에 완벽한 관념적인 것이 중요하게 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따를 경우, 시, 회화, 건축 등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만드는 기술들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이 책은 미학의 관점에서 건축사를 바라본다. 미학이 작동하는 지점은, 기술과 자연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각 시대의 '색안경'이자 '관점'으로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제시해 주는 세계관이다. 시대마다 어떤 순간에는 플라톤적인 세계관이 우세하였으며, 다음 순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이 지지받았다. 한 시대에 아름다웠던 것은 다음 시대에 추한 것이 되었다. 아테네의 민주정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소피스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선취하여 예술에 대한 비결정론적 태도를 취할 때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은 괸념적이고 이상적인 원기둥이 아닌, 겉보기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배흘림기둥이 만들어졌다. 실재와 이상 중 실재를 택하였다. 로마의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자신의 일자론으로 차용하였을 때, 로마 판테온에는 투시도나 입면도로 겉보기에는 보이지 않을 관념상의 구를 평면도와 단면도 속에 완벽하게 구현하였다. 방문객이 실제로 돔을 보지 못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면상의 이상을 추구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계보를 잇는 교부 철학을 구축함에 따라, 신의 은총으로서의 빛이 희뿌옇게 감싸안아 주는 '경이로움'과 '안전함'이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의 지향점이 되었다. 현실에 비친 이데아 즉, 일자의 불완전한 표현으로서의 빛은 안개 속에서 신비롭게 내려앉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토대로 스콜라 철학을 형성함에 따라, 빛은 신의 은총만을 경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명확하게 보기 위한, 인간을 위한 새로운 빛이 되었다. 중세 프랑스의 대수도원장이자 건축가인 쉬제르에 의해 추구된 고딕 양식 속에서 빛은 현실을 보완해 이데아로 향하게 하였다. 이쯤 되면 그 이후 시대의 르네상스도, 반종교개혁의 바로크 양식도, 계몽주의도, 절충주의도, 플라톤적인 모더니즘도, 해체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사이를 번갈아 오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앞서 운을 떼며 이야기를 꺼냈던 모더니즘과 해체주의의 대립 구도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으로 다시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건축 형태는 우연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시대가 끼운 미학의 색안경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시애틀 도서관까지, 이 책은 열 개의 건축물을 통해 미학이 어떻게 건축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철학이 어떻게 건축을 바꾸었는가를 성찰한다.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고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상현, 『건축으로 미학하기』, 효형출판,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