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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ebook 리뷰입니다. 9·11 테러라는 거대한 사건 이후, 아메리칸드림을 완성해가던 파키스탄 출신 엘리트 청년 '체인지'가 겪는 정체성의 균열을 다룬 작품입니다. 라호르의 한 카페에서 미국인 방문객에게 들려주는 서스펜스 넘치는 독백 구조를 통해, 미국 사회가 지닌 자본주의적 오만함과 '타자'를 향한 은밀한 차별 및 편견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화려한 자본의 중심부에서 이방인으로 밀려나는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문명의 갈등과 타자화의 비극을 차분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밀도 높게 파고드는 현대의 수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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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배경] 9.11 테러: 서로를 의심하게 된 시대의 시작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소속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며 전 세계는 거대한 충격에 빠집니다. 수많은 시민과 구조대원을 포함해 약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무슬림과 중동권 사람들을 향한 편견과 혐오는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한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바로 모신 하미드의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속 찬게즈의 이야기입니다. 아메리카(America)에서 'A'를 빼면 에리카(Erica)가 된다. 파키스탄 출신의 엘리트 청년 찬게즈.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뉴욕의 초일류 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왜 돌연 조국으로 돌아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되었을까요? 작가 모신 하미드는 9.11 이후 흔들리기 시작한 아메리칸 드림의 균열을 찬게즈의 목소리를 통해 끝내 밀어붙입니다. 1.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인, 그리고 숨 막히는 독백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불편한 긴장 속에 붙들어둡니다. 찬게즈가 라호르의 한 카페에서 낯선 미국인에게 말을 거는 '극적 독백' 형식을 취합니다. 상대방의 대답은 철저히 지워진 채 찬게즈의 목소리만 들려오지만, 정중한 말투 사이로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독자를 시종일관 불안하게 만듭니다. 소설이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힘은 바로 이 열린 결말에서 나옵니다. 상대방이 꺼내려던 것은 지갑이었을까, 권총이었을까? 독서모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이 불확실성은, 9.11 이후 서로를 의심하게 된 세계의 공기를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2. 에리카와 죽은 남자친구: 제국의 향수와 신기루 같은 사랑 찬게즈가 사랑한 여인 에리카(Erica)는 그 이름부터 아메리카(America)의 상징입니다. 찬게즈에게 그녀는 동경하던 미국 그 자체이자,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신기루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에리카가 죽은 옛 연인 '크리스'를 잊지 못해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설정입니다. 크리스가 찬란했던 과거의 미국(제국주의적 영광)을 상징한다면, 이방인인 찬게즈는 결코 그 유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에리카가 과거에 함몰되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은, 허상을 붙든 채 자기 얼굴을 잃어가는 제국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3. 무너지는 쌍둥이 빌딩 앞에서 지은 미소 소설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대목은 9.11 테러 뉴스를 보며 찬게즈가 짓는 '미소'입니다. 찬게즈는 고백합니다.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73 이는 희생자를 생각하지 않는 잔인함이라기보다, 난공불락이라 믿었던 거대 권력이 타격을 입었을 때 느끼는 피지배 계층의 본능적인 카타르시스에 가깝습니다. 작가는 이 금기된 진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우리가 ‘보편’이라 믿어온 가치 아래 무엇이 눌려 있었는지를 불편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4. '예니체리'가 된 엘리트의 주저함 찬게즈는 자신을 '근대적인 예니체리'에 비유합니다. 과거 오스만 제국이 피정복지의 아이들을 데려다 이슬람 전사로 길러 제국을 위해 싸우게 했듯, 찬게즈 역시 미국의 시스템에 복무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찬란했던 꿈에서 깨어나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기업 가치의 '근본'을 분석하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정작 자기 삶의 '근본' 앞에서는 주저하고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제목은 가장 날카로운 역설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작가는 '근본주의'라는 단어에 씌워진 종교적 편견을 걷어내고, 인간으로서 끝내 지켜내야 할 진정한 근본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5. 마치며: 끝내 누구를 의심하고 있었는가 찬게즈는 저자 모신 하미드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는 자칫 복잡하고 무거울 수 있는 담론을 ‘찬게즈의 고백’이라는 형식 안에 가두지 않고, 오히려 그 목소리를 통해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밀어붙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찬게즈의 독백이 끝난 뒤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우리는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안의 의심과 편견을 함께 듣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불편한 긴장감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곁에 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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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어떤 낯선 미국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마치 독자가 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긴장감과 몰입감이 높아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파키스탄 출신의 청년으로, 미국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유명 기업에 취업하고, 미국 사회 속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미국인 여자친구 에리카와 사랑에 빠지면서 미국 사회에 깊이 스며들게 된다. 에리카와 주인공의 사랑은 불타는 청춘의 사랑과는 차이가ㅜ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미국과 파키스탄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가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된 것처럼 보이며, 미국식 성공을 이룬 인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미묘한 감정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완전히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 강국 미국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며 그들의 사회에 적응해 왔지만, 자신의 근본은 파키스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근본’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다른 나라 또는 조직에서 생활하며 그 사회에 적응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완전히 잊을 수도 없고 버릴수도 없다는걸 느꼈다. 또한 9.11 사건 이후 미국 사회가 외국인, 특히 이슬람권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한 사회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의 근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 또한 나의 근본을 잘 간직하며 이 사회에 굳건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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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책의 소개글로 9.11 사태이후 외국에 나갔을 때, 중동사람들에 대한 이중입국절차를 밟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 생각나서 였는지도. 이 이야기는 주인공 찬게즈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미국 프린스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분석가로써 언더우드샘슨에 취직해 꽤나 높은 월급을 받는다. 에리카라는 여자친구와 잘 사는 친구들로 미국 상류층 사회로의 진출을 꿈꾼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이랄까…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 되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자신과, 미국에서 자신간의 괴리감에 묘한 이상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9.11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달라진 시선을 느낀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에서 미국이 제 3세계를 대하는 행위로 인해 파키스탄의 가족들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을 듣고 보면서, 스스로도 미국 안에 있는 이방인으로써 불편함이 생겨난다.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끓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74 찬게즈의 이 말은 미국의 상류층을 꿈꿨던 자신, 하지만 9.11 사태를 바라보며 이방인으로 미국에 대한 이상한 적대감에 대한 양가적 감정의 직접적 표현이다. 저 앞의 말이 9.11을 두고 "어째서 나의 일부가 미국이 해를 입는 걸 보고 싶어했을까요? p.74" 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친구가 혹시나 저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다. 찬게즈는 에리카를 사랑했지만, 에리카는 전 남자친구 크리스를 잊지 못하면서도 찬게즈를 사랑한다. 하지만 에리카는 죽은 크리스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놓지 못하기에 스스로 어쩌지 못해 우울증이 더 깊어진다. 이런 두 사람은 그저 남녀의 애정관계에 얽힌 이야기쯤으로 보인다기 보다, 둘의 관계를 통해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 에리카와 외국인 찬게즈의 차이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무엇을 보여주는 느낌...? “나는 만약 이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한테 최우선적이라면, 그런 살인자들과 같은 땅에 사는 우리들의 목숨은 어쩔 수 없는 민간인 희생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p.170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보이는 행위는 only 미국이다. 현재도 오로지 미국은 과거의 영광(Great America again!) 이라는 구호아래 미국과 비 미국 이렇게 이분법으로 미국이 아닌 대상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예니체리로 살았던 찬게즈의 독백은 슬프기도 하면서, 그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한편 이해가 되는 바이다. 나 역시 비미국인이니까.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뭘까? 찬게즈의 말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정확한 그의 의도,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상대의 직접적인 의도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 수록 찬게즈가 누구지? 상대는 누구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찬게즈는 파키스탄에서 대학강사로 일하며, 미국의 9.11 사태를 통해 이라크 공격을 공식화하며 민간인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판하는 사회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맨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찬게즈는 없다. 화자인 찬게즈가 만난 이와 찬게즈의 대화가 진짜 누구지?라는 의문이 더 크게 다가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도 미국인도 아닌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는 두 나라간의 관계. 그것도 평범한 시민이였던 찬게즈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결코 “정의”는 아니였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라고 분명한 기준이 있을까 누가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복잡한 세상. 역자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서구와 제 3세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담고 있어서 더욱 좋다 p.186“ 이 말에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미국을 바라보는 이 양가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읽다가 그만두게하기보다는 차라리 두번 읽게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는 성공한 듯. 묘한 느낌의 이 책은 다시 첫장을 펴게 만들었으니까. 그 첫장은 처음 읽었을 때의 첫장이 아니다. 읽을수록 의문만 남는 책.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