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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기르려면 열심히 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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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어지럽혔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정돈하는 것이다."(360쪽) 감히 누가 '포이어바흐의 위대한 테제'를 이토록 무식하게 훼손한 걸까? 일단 봉변을 피하기 위해 범인(?)부터 밝히건대, 그 무모한 '장난'을 친 장본인은 '진중권'이다. 근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에서 저자 진중권은 포이어바흐의 테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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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어지럽혔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정돈하는 것이다."(360쪽) 감히 누가 '포이어바흐의 위대한 테제'를 이토록 무식하게 훼손한 걸까? 일단 봉변을 피하기 위해 범인(?)부터 밝히건대, 그 무모한 '장난'을 친 장본인은 '진중권'이다. 근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에서 저자 진중권은 포이어바흐의 테제를 엉뚱하게 변형시켜 놓는다. 평소 도발적 언행과 튀는 글쓰기를 통해 상식과 몰상식을 전도시켜 왔던 저자의 이력을 생각해 볼 때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인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일단 걱정은 접어도 될 듯하다. 이번 패러디는 순전히 저자의 전공분야인 미학적 패러디일 뿐이니 말이다. 이렇게 해명을 해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리 심한 장난을?"하고 혀를 찰지 모른다. 그래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진중권은 책 전체를 통해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 즉 '말바꾸기'와 '패러디'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며, 그러한 '놀이'야말로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임을 강조하고 있다. 진중권식(式) 패러디를 재차 활용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미디어학자 발터 벤야민, 미학자 아도르노 등이 놀이의 상상력에 '분석'의 메스를 들이댔던 사람들이며,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자바체프 크리스토, 쿨레쇼프 등은 그것을 '실천'한 예술가들"이었던 셈이다. 사실 '놀이'의 상상력을 통해 창작된 예술작품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놀이가 무려 20가지이며 소개된 작품도 2백여 점이나 된다. 가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고, 새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아크로스티콘 놀이', 다빈치 코드에 등장했던 알파벳 철자의 순서를 바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놀이', 왜곡의 진리를 선물하는 '아나몰포시스 놀이', '주사위', '체스', '카드' 등의 게임과 '물구나무', '인형놀이', '불꽃놀이', 그밖에도 라테르나 마기타(마법의 등불), 팰린드롬(회문回文), 앰비그램(거꾸로 읽기), 리버스(수수께끼 그림) 등 놀이를 하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재미있게 기를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저자는 놀이와 상상력에 기초한 사유의 특징을 비선형성·순환성·파편성·중의성·동감각·상형문자·단자론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이를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라 명명한 건 양념이다. '아는 것이 힘'이었던 근대의 세계관이 '상상력이 힘'인 세상으로 변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읽다보면 문득 과학계의 화두가 떠오르기도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에 봉착한 과학계 역시 과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대두된 비평형계 과학에서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된다. 단순한 놀이에서 거대한 상상력의 광맥을 캐내는 예술이나 작은 동인에 의해 어마어마한 변화가 초래되는 우주의 원리를 읽어내려는 과학의 새로운 모색은 꽤 닮아 보인다. 결국, 진중권의 '유쾌한 상상력 프로젝트'는 예술은 물론 과학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직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풀기 위한 열쇠이기도 한 셈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사회를 꿈꾸었다. 리눅스 운영체제를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유희(재미)'의 추구를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놀이를 통해 즐기는 재미, 그 재미를 통해 길어 올린 상상력, 그것이 곧 인간행위의 지고한 가치를 창출하는 최선의 길이다. 끝으로, 저자는 창조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면,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바로 저자가 말하는 상상력의 원천인 놀이의 주인공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500년 전에 이미 기술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다빈치. 그는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이었다."(373쪽)
y****y 2005.04.19.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재미있는 인문학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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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렵고 지루한 미학을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는 진중권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주저라할만한 미학오디세이를 '미학'그 자체의 난해함과 내 입장에선 굉장히 모호할 따름이었던 그 목적성(?) 때문에 2권 중간에서 읽다 관둔터라 그 책의 응용편 격으로 보이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애초에 추호도 없었다.-_-v 하지만 어느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점에서 기다리다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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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렵고 지루한 미학을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는 진중권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주저라할만한 미학오디세이를 '미학'그 자체의 난해함과 내 입장에선 굉장히 모호할 따름이었던 그 목적성(?) 때문에 2권 중간에서 읽다 관둔터라 그 책의 응용편 격으로 보이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애초에 추호도 없었다.-_-v 하지만 어느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점에서 기다리다가 그 예쁜 표지 디자인과 말랑말랑한 제목, 아울러 어쨌건 '진중권'이라는 호기심 때문에 서점에서 스리슬쩍 읽는데, 오호라? 재미있더라. 그리하여 이 책은 결국,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진중권씨의 책이 되고 말았다.

책을 쓸때마다 일종의 형식실험(?)을 한다는 진중권씨는 이 책에서 또한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무지개 색깔만큼 놀이들을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단순한 소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학술적이고 난해한 분석을 하는 것 또한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수필같기도 하고, 서사시를 쓴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건 제목만큼이나 개방적이고 즐겁게, 우리와 '함께'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미학 오디세이'에서도 그랬지만, 미학관련 서적을 통해 보여지는 진중권씨의 모습은 익히 '사회적으로'혹은 '정치적으로' 알려진 그 '까칠한' 진중권씨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이처럼 놀이를 소개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며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근대의 화두는 오로지 '이성'이었고 '합리성'이었다. 상상력이나 환타지, 몽상같은 것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장난일 뿐이었으며,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낭비였을 따름이다. 이런 사고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요즘도 아이들의 유희와 규칙없는 놀이는 그저 시간낭비, 혹은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 정도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주위를 둘러보자. 시간낭비로만 보였던 상상력은 하나, 둘 현실이 되기 시작했고 장난같은 발상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특성을 보이는 상상력은 종종 일원적이고 배타성인 특성을 드러내는 이성을 극복한다. 게다가 '노동해방'이란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사회임을 생각해 본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상상력이 중요함을 재삼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상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오늘날 우리가 상상력을 '갖는다'라는 것은 따지고보면 '되찾는'것일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어린시절 했던 수많은 놀이들과 몽상들 속에 이미 화려하게 빛났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사고, 정해진 틀, 그에 따른 정해진 호기심과 정해진 놀라움을 벗어나,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은 결국 어린시절의 눈을 되찾는 것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이야기한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500년 전에 이미 기술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다빈치. 그는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이었다"라고.

사실 거창한 의미를 찾을 필요없이, 그저 즐기기 위해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쉽고 굉장히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도 인문학 서적을 '한달음에'읽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아마 처음인듯^^)
j***8 2006.05.03. 신고 공감 9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유는 원래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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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사실 노동이 아니다. 철학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긴다면 철학은 인간의 본능이자 놀이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던 고대의 인간을 생각해보자. 그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험을 한 인간이다. 어느날 문득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삶을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신일까? 아니면 원리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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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사실 노동이 아니다. 철학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긴다면 철학은 인간의 본능이자 놀이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던 고대의 인간을 생각해보자. 그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험을 한 인간이다. 어느날 문득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삶을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신일까? 아니면 원리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고통인가 아닌가?'' ''인간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등등. 삶에 대한 고찰이 죽음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는 좀 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우주의 원리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사유의 유희 차원에서 철학을 시작하게 됐다. 이것이 아마 철학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유는 유희였고 자유로운 활동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조금 다르다. 사유는 중노동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억지로 사유를 해야 했으며 리포트나 논문을 쓰기 위해 철학적 ''지식''을 쥐어 짜내야만 했다. 어느 순간 철학은 사람들에게 노동으로 다가왔고, 사유를 통해 얻은 지식은 노동의 산물이 되어버렸다. 그 때 부터 사람들은 좀 심각한 인간이 되었다. 사소한 문제도 노동 차원의 사고를 하려 들었다. 실연을 당한 친구에게 노동의 산물인 니체의 ''초인사상''을 들려주었고, 현대의 문제점을 세련되게 비판하기 위해 엘리엇의 ''황무지''를 끄집어냈다. 현대인의 사유는 기계적으로 이뤄졌다. 점점 사람들의 지식은 박제화된 지식이 되어 버렸다. 엘리엇의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엘리엇이 비판하는 현대인이 되버린 것이다. 사유/지식과 삶의 괴리, 이 시작점은 사유가 노동이 된 순간이었다. 그래도 난 내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노동과 같은 사유를 통해서였을까?'' 아니다. 미학자 진중권씨가 사유는 원래 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책,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진중권씨는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상상력은 정신의 놀이다. 동시에 상상력은 미학의 영역이며 진위와 선악의 피안에 존재한다. 어린아이가 철없이 노는 것처럼, 우리도 상상력을 이용해 사고하고 철학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의 사고와 철학은 놀이의 한 방법이다. 사유를 노동으로 바꿔버린 근대이성주의자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택해야 하는 방법인 것이다. 진중권씨는 과거 사람들이 보여줬던 다양한 상상력의 놀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 놀이를 보며 함께 상상력의 놀이에 동참하게 된다. 독자들은 내용이 지겨우면 한 장(chapter)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책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90도 각도로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책 자체가 하나의 장난감이다. 하지만 그 장남감 속에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 뒤에 그 어떤 노동적 철학보다 예리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아이들이 사물을 배우듯, 독자들은 놀다보면 자연스레 그 메시지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는 책에서 만화경을 소개한다. 다양한 삽화를 통해 독자들은 여러 만화경을 보는 듯한 재밌는 체험을 하게 된다. 고대 아랍의 만화경부터 근대 유럽의 만화경까지. 만화경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만화경이 드러내는 화려한 모습을 본다. 그 뿐이다. 그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조그만 만화경을 보듯이 책을 읽는다. 그 와중에 만화경이 갖고 있는 기묘한 특성이 드러난다. 진중권씨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 만화경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차가운 수학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철의 필연성을 따른다...... 만화경이 가진 또 다른 면모는 포근한 동화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집시의 요술구슬이다....... 엄격한 수학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 효과, 이 패러독스가 바로 만화경의 매력이다." 우리의 사고는 만화경을 가지고 놀던 차원에서 우주적 원리를 고민하는 차원까지 확장된다. 근대 유럽을 휩쓸던 Deism. 신을 포함한 이 세상은 이성의 법칙 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다고 믿던 사람들.. 그렇기에 이들은 신도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Deism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세상. 그들에게 세상은 변덕스러운 신의 장난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의 원리를 깨닫기는 불가능 했다. 하지만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신화의 세상은 낭만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는 어디에 더 가까울까? 만화경의 원리를 통해 알 수 있듯, 두 세상은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만화경과 같다. 그 안에 자연과학의 법칙도 있고 제우스신과 헤라여신의 부부싸움도 존재한다. 만화경을 바라 보다 우주의 원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놀다가 발견한 깨달음! 진중권은 상상력을 통한 사유가 철저하게 이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작정 노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란 의미다. 베얼리의 놀이와 만화경에서 알 수 있듯, 상상력 뒤에 숨어있는 이성도 발휘되어야 한다. "상상력 혁명은 논리적, 추론적, 선형적 사유를 배제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을 전제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뿐이다. 그것은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이 아니다.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행하는 즐거운 반역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유머다. 진지함을 걷어내야 한다. 부담없이 놀아야 한다. 그 와중에 상상력 혁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놀면서 웃으면서 자연스런 사유를 시작할 때다.
YES마니아 : 골드 h*****0 2006.07.1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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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소년이 되고 싶은 자! 상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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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은 상상은 정신의 놀이라고 한다. 상상을 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놀이를 한다나...이 재미난 상상력 프로젝트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제목 그대로 놀이가 만드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몇 달 전에 조카를 데리고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그 곳에서 [뱀 주사위 놀이]를 사가지고 놀이를 했는데 어릴 때 무진장 많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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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은 상상은 정신의 놀이라고 한다. 상상을 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놀이를 한다나...이 재미난 상상력 프로젝트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제목 그대로 놀이가 만드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몇 달 전에 조카를 데리고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그 곳에서 [뱀 주사위 놀이]를 사가지고 놀이를 했는데 어릴 때 무진장 많이 논 기억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진중권의 이야기처럼 간첩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벌이어서 미끄럼을 아주 많이 타야했는데 그 땐 한번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금은 왜 그리 웃긴지...그렇거나 말거나 어릴 때 열심히 주사위 던지며 논 기억이 새록 떠올라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 걸 안하고 노나? 그런 생각도 잠시 했었다. 이 책에는 주사위 외에 이게 놀이였던가? 하는 것들도 몇 가지 있다. 그런데 읽어보니 정말 그런 것도 다 놀이가 되더라는...놀이가 놀이란 걸 모르고 지냈으니 지금이라도 그 재미난 놀이를 한번씩 해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림자 놀이, 물구나무, 미로,종이접기,만화경,인형풍경, 그림자 놀이 등등.. 따지고 보니 직간접적으로 한번씩은 다 경험을 한것이나 지금은 잘 하지 않은 것들이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상상력이 줄어 든 까닭인가? 아니면 그 놀이들의 비밀들을 나름대로 다 알아 차린 이유일까? 그래도 카메라 웁스쿠라는 요즘 디카가지고 노는 어른들에게도 아주 유용한 놀이가 될 것 같았고, 존 내쉬를 정신병으로 몰아 넣은 코드분석은 왠만한 머리로는 만들어 낼 수도 없으니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못할 놀이는 없는 것 같다.쌩뚱맞기는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놀이들에 열중하다보면 치매예방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만화경을 닮은 만다라는 불꽃 놀이를 닮았고 그 찰라와도 같은 순간이 화려한 만다라의 완성과 함께 아무 애착도 없이 손으로 문질러 그림의 자취를 없애버리는 티벳승려들의 수행을 떠올리게 한다니...놀이를 통해서 우린 삶에 대한 집착도 단호하게 버릴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조카와 함께 100피스짜리 퍼즐을 같이 열심히 맞추고선 그만하자 말도 꺼내기 전에 다시 부셔버리고 마는 조카에게 지겹지도 않나? 말을 해대지만 어쩌면 난 그 놀이의 쾌감을 모르고 있는지도...그래서 1000피스의 퍼즐을 맞추는 날 과감히 부셔버리는 놀이를 해 보리라 다짐을 한다. 500년 전에 이미 기술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다빈치는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기술력은 있으되 상상력이 없는 어른들에게 이 책은 무한한 상상력을 되돌려 줄 지도 모른다.
j****o 2005.12.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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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 없이도 볼 수 있는 신나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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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낯이 익은 멋쟁이 아저씨가 날 빤히 보고 있다. 나의 움직임, 나의 생각, 나의 인생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던 저편의 ‘그’는 세월의 주름을 하나씩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속의 ‘그’는 현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증인이 아닌가. 시간의 화살을 묵묵히 증언하는 ‘그’에게 말을 걸어 본다. "기계적인 일상을 숨기기 위해 알코올을 흡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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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낯이 익은 멋쟁이 아저씨가 날 빤히 보고 있다. 나의 움직임, 나의 생각, 나의 인생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던 저편의 ‘그’는 세월의 주름을 하나씩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속의 ‘그’는 현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증인이 아닌가. 시간의 화살을 묵묵히 증언하는 ‘그’에게 말을 걸어 본다. "기계적인 일상을 숨기기 위해 알코올을 흡수하고, 자본의 목마름이 나의 의지를 간섭할 때마다 유년의 감각을 하나씩 떨궈내더니 도대체 남은 게 뭐더냐?" ‘그’가 대답하길, "유년의 추억 속에는 놀이와 처벌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맞은 기억은 아픔으로. 비난의 기억은 상처로. 부끄러움은 나약함으로 부활할 테니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중 처벌이다. 보송보송한 과거, 세상의 시름이 비켜가던 그 시절...' ‘친구야 놀자’라는 암호로 그들을 호출하여 동네 여기 저기를 배회하다가 딱지, 구슬을 발견하면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쇼부’를 보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서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적절히 음미도 하고, 흙집을 두꺼비에게 분양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던 그 때의 기억들은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이것 또한 무의미 하지 않는가. 세속의 굴레 속에서는 오직 현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미래를 결정 짓고 있음을 명심하라." 거울 속의 ‘그’는 그렇게 삶에 적응해 왔다. 이 책은 ‘그’의 목소리는 이미 노쇠하여 생명력이 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때는 ‘경험’이 ‘재미’였고, ‘시도’가 ‘흥분’을 불러왔다. 내 몸의 감각적인 반응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문은 원하면 언제든지 열리고 나를 받아들였다. 세상에 규칙이란 없다. 나의 방식, 나의 시선은 창조 자체가 되었다. 프뢰벨은 "놀이는 어린이의 내적 세계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며, 아동기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산물이고, 인간생활 전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 자기 내외(自己內外)의 편안함과 세계와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놀이의 실루엣은 너무나 흡사한 것이고, 이 책은 그것의 누드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탐미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상상 속에서는 무의미하다. 기술과 문명은 이미 진화했고, 그것을 답보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한 복제의 시대는 복제된 사고를 거부하고, 변형, 기형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놀아라, 놀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의 7개의 단락은 특별한 연계성을 띄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끈끈한 유기성을 보이는 데 그것은 2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식의 전환(시선, 빛, 공간, 시간, 의미, 왜곡, 숨김, 사라짐 등)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식의 전환은 형식, 의미, 전통, 규칙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한다. 공간에 대한 반전, 시간에 대한 역전, 왜곡된 형상, 빛의 반사와 굴절, 존재와 부재의 쉼 없는 교차는 극과 극을 대면하게 하여, 그것의 융합과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중권이 썼다는 점이다. 진중권은 사실 글의 구조에서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미장센을 괜히 두지는 않는다. 미술로 따지자면 설치 미술쯤이 아닐까. 무지개 빛으로 나뉜 각 단락은 정신분석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선형, 비선형의 교차를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는 빨강, 왜곡과 역상의 광기를 보이는 노랑, 논리적 체계성과 감성의 날카로움 겸비한 수수께끼의 녹색, 신화적 상상과 예술적 미를 상징하는 보라 등 그 상징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의 Over the Rainbow'가 연상된다면, 그리고 무지개의 건너편 땅 속에 난쟁이의 보물이 있다는 상상이 떠오른다면, 그래서 그것이 인간의 창조성을 의미한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일단은 방대한 지식의 배치와 구도는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장엄함이 있다. 이 책의 유별난 재미는 책이 장난감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만화경마냥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단순히 책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은 놀이의 장이 되어 준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이 yellow의 아나몰포시스, 인형 풍경이다. 누구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여기의 재미는 공간의 재해석을 느껴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구의 중력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간의 왜곡이 무엇인가를 의미한 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장 웃겼던 페이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정리한 베얼리의 작품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들’의 방을 정리한 할머니의 행동을 예술의 파괴, 반달리즘에 비유하다니…. 우하하하 누구에게는 예술이, 누구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진실을 베얼리의 작품으로 설명한다. 그것이 진중권의 ‘언어 유희’와 ‘절묘한 비유’로써 책에서 얻게 되는 ‘숨은 그림 찾기’ 이자 ‘애너그램’이다. 다른 한 곳을 더 보자면, 137p의 왜상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정치 풍자도 가능할 것이라는 명제를 내놓고, 예를 드는 것이 ‘저 그림 속 네 인물의 자리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을 그려넣고, 가운데에 피라미드 거울을 올려놓으니, 노무현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하면서 정치풍자를 하고 있다. 예를 드는 척하면서 실제로 정치 풍자를 하는 장난끼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낸다. 어렵고 전문적인 주제, 방대한 자료를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미학을 쉽게 펼쳐보이는 이 책은 너무나 명랑하고, 놀이의 유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k*******0 2005.08.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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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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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야말로 창조와 생산의 시작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일상의 당연한 명제라는 사실을 얼마나 잊고 살았나. 한심한 일, 이 책을 통해 존재 이전에 망상과 혼돈과 뒤엉킨 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생산과 창조 이전에 상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걸 존재하게 만든다. 그러니 상상력은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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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이야말로 창조와 생산의 시작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일상의 당연한 명제라는 사실을 얼마나 잊고 살았나. 한심한 일, 이 책을 통해 존재 이전에 망상과 혼돈과 뒤엉킨 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생산과 창조 이전에 상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걸 존재하게 만든다. 그러니 상상력은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극히 온당한 사실을 왜 이렇게 자주 잊어버리는가.   예언자는 눈멀었기에 상상의 극한으로 시간의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는 밝은 눈을 가졌기에 과거의 순간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본다, 그러므로 상상하지 못한다.  ‘본다’ 는 그러니 무수한 모든 걸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오로지 단 하나만을 본다는 걸 말한다. 본다는 것의 부질없음과 몽상하지 못함의 피폐가 내 앞의 나를 보지 못하게 한다. 나를 볼 것인가, 나를 보지도 못하면서 지나가는 다른 것들을 볼 것인가. 지금 내 생각은 상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엇에 의해 촉발된 것인지, 완전히 내 것인지, 내가 아닌 것들로 말미암은 것들인지?   ‘불꽃놀이의 현상은 예술 작품의 원형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속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지만 경험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하늘의 부호이며, 또한 경고이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빛나면서 사라지므로 의미를 추적하여 읽을 수 없는 문자이기도 하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하나의 다양하고도 기발한 불꽃놀이와도 같다. 진실은 나타나자마자 즉시 그림자 속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춘다. 신은 드러나자마자 예언 속으로 자신의 뜻을 감춘다. 그러니 이 책 역시 나를 위해 예비된 기억 속으로 각인되어 어느 순간 맹렬히 하나의 창조를 위해 정성을 쏟을 때 부싯돌의 불꽃처럼 튀어오를 것이다.   불꽃을 본 순간 두 번째 불꽃을 만드는 건 순전히 불꽃을 본 사람의 기억이다. 그 불꽃은 내가 본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다. 모두 같은 불꽃을 보지만 모두 다른 불꽃을 창조해낸다. 몇 년 전 벼락의 장엄한 몸과 그림자를 본 적이 있다. 바로 내 앞에서 하늘과 땅에 푸른 벼락이 길을 낸 것처럼 거대한 현현(顯顯)으로 드러난 이후 나는 늘 그 벼락을 상상하면서 꿈에 그리듯 재현해내곤 한다. 예술과 불멸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이끌어내야 하리라.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말도 안 되고 존재하지도 않는, 거대하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어느 때에도 있으나 느껴지지 않는, 불멸하지만 매 순간 변화하며 그림자로 꼬리치는 미지의 숭고를 위해 이 책은 작은 밀알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밀알을 거대하게 뿌리 내린 생명으로 키워내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나의 몫이자 꿈이라는 걸 매순간 기억해야 하리라. 우리는 창조자여야 한다.
n******s 2005.04.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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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존재'를 언제 반납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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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존재'를 언제 반납한거지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어린 시절, 영원과 우주를 의식해 느껴본 적 없으나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나의 존재, 아니 존재라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내가 세상의 전부이던 때 난 외롭고 우울한 아스팔트 아이였다 그러니 한 번도 손가락을 까딱거려 우주를 맴을 돌린다든지, 손바닥을 뒤집어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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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존재'를 언제 반납한거지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어린 시절,

영원과 우주를 의식해 느껴본 적 없으나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나의 존재, 아니 존재라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내가 세상의 전부이던 때

난 외롭고 우울한 아스팔트 아이였다

그러니 한 번도 손가락을 까딱거려 우주를 맴을 돌린다든지, 손바닥을

뒤집어 새로운 세상을 불러온다든지 하는 법 없이 잡풀 무성한

나의 성채에 서성거리며 주인노릇에 시큰둥하였다

왜 그랬을까 상상력이 모자랐다기보다 완고한 훈장님처럼 내 상상력을

가두어놓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져있는 나를

발견하고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중학교 시절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모습에 깜짝 놀란 기억도 난다.


이 책 덕분으로 그런 시절 그런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게 어딘가.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값을 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아이들) 놀이를 예술의 격으로

올려놓고 바라볼 수 있는 일. 아름다움이란, 예술이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이며

합리나 연속과 구체를 뛰어넘는 낯설고 도발적인 세계이며 이를 찾아나서는 것이

미학임을 어렴풋이 알겠다.

하지만 책은 쉽지 않다. 지은이가 애써 모았을 다양한 그림자료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이지만 나아가 그 아름다움을 예술로 또 학문으로 풀어내는 일,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겠다 생각해보라, 눈으로 보고 감성으로 느낀 것을 어떠한 틀로 말로

풀어내는 일, 특히 이러한 놀이의 예술론은 철학과 맞닿을 수밖에 없겠는데 어렵다.

공부가 많이 부족한 탓이려니.

그러니 지은이 진중권이 다시 보이고 새삼 우러러 보인다. 이전에 시사문제나

사회현안을 두고 접한 그의 글에 대한 느낌은 재기발랄한 그래서 뭔가 날리는 느낌,

튀어나온 송곳이 제 허벅지를 찌르는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미학자 진중권은

더할 수 없이 성실하고 진지한, 폭넓고 일관된 그러면서도 아주 산뜻한 연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진중권은 시도 때도 없이 상상력과 말건다. 세상은 더 이상 앎 또는 대상에 대한

인식에 의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란다. 21세기는 상상력 그리하여 대상을 뛰어넘어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에 의하여 움직이는 세계가 될 것이라 한다.

참 구김없는 유쾌한 전망이다 과연 인류는 이른바 탈근대를 지향하며 경계를 뛰어넘는

유목적인 삶의 시대로 접어들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놀이 또는 미학이란 뭘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 살짝’ 혹 자기기만이나 자기도취는 아닐까

관점을 바꾸는 일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느 시인의 글처럼 세상이

마냥 ‘잘 놀다가는 소풍’일 수 없듯이 어릴 적 기억 속 천진난만한 놀이에 빠져

멈춰진 세상일 수 없지 않은가.

지은이는 글 속에서 작렬하는 대공포의 연화(煙花) 속에 축제의 꽃불처럼, 또는

벚꽃처럼 장렬하게 산화하는 일본의 가미가제를 두고 말한다. ‘도적적 판단을 접고

순수 미학적으로만 보라. 놀이와 전쟁, 어느 쪽이 더 격렬한 감동을 주는가‘라고.

또 철학자 아도르노는 불꽃놀이를 두고 ‘엄밀한 의미에서 신의 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순간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늘의 부호이며 경고이기도 하고 의미를 축적하여 읽을 수

없는 문자’라고 말한다. 신도 순간이고 하늘의 문자는 해독할 수 없으며 불꽃 속에서

산화하는 가미가제의 순간이 예술의 원형이고 (존재)미학의 정점이라면 미학은 무의미의

순간에 포착되는 원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21세기 여전히 전쟁과 기아, 폭압과 전제가 삶을 억누르는 시대.

재미있게 넘어가는 책장이 왠지 개운치 않은 것은 그렇게 찌들어버린 내 상상력과

이른바 대의를 생각하는 어줍잖은 삶의 자세 탓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내 몸 안에, 내 머리 속에 뛰어노는 천진난만하고 발랄한 삶의

본성이나 놀이와 예술, 또는 놀이의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유쾌한 정신을 저 가슴 밑바닥

어디에 가두어 놓았을 수도. 혹은 사춘기를 잘못 지냈을 수도. 그리하여 심각함과

 엄숙함과 비장미라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여기는 과(科)를 살아왔는지도.

누구도 삶을 유희로 살아가는 이는 없을 터, 그냥 유희적 방식의 삶 또는 잠깐씩

맛보는 삶의 유희, 그게 아름다움이 되고 예술이 된다면 반갑고 고마운 일 아니겠나.


아직은 거기까지다.

그런데 내 유년의 유일했던 존재를 언제 세상에 반납한 거지.

그런 생각도 든다. 모두가 굳건한 자기 성의 주인이던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맞아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슬그머니 세상과 맞닥뜨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성채를 세상에 어떻게 반납하는지 알아보는 일, 재미있는 관찰이 될 듯 싶다.

하기 좋은 말로 질풍노도의 시절인데 그 슬픈 영웅들이 들려주는 회고담이

없을 수 없지 않은가.

9****4 2007.04.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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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지 말고 읽어 볼 진중권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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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건 대학 때 였던 것 같다. 그 땐 책을 사본 다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니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이유는 회사를 다닐 때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김훈이 말했던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또 누군가 이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진짜 신성한 건 "놀이"라고.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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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건 대학 때 였던 것 같다. 그 땐 책을 사본 다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니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이유는 회사를 다닐 때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김훈이 말했던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또 누군가 이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진짜 신성한 건 "놀이"라고.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세상을 근거로 신을 부정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을 이대로 놔두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성을 오해하는지 깨닫는다. '신'이 '성'스러운 이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소(신)는 어떠한 노동에도 기여하지 않음으로써 신성을 획득한다. 양반과 귀족의 조건은 '땀 흘리지 않는' 것 이었다.


혹자는 그럼 창세기에 신이 한 행동은 뭐냐고 물을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봤으면 한다. 신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 세상을 만들었고 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 되려 손을 떼고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유가 뭘까?


창조는 '놀이'지만 관리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신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진행한 창조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다. 축제가 모두 끝나고 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 공원을 떠난 것이다. 신이 한 실수라면 놀이 공원을 나서면서 불을 끄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이 세계는 방치됐다.


아! 무료해진 신이 다시 놀이공원을 찾은 적이 꼭 두 번 있다. 한 번은 줄기차게 비를 뿌려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또 한 번은 자기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만든 '인간의 탑'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건 노동이 아니냐고? 천만에. 재미로 오줌을 싸 개미굴을 무너뜨리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도미노를 쌓기 보다 무너뜨릴 때 손뼉을 치며 황홀해하는 아이를 떠올려보자. 창조가 놀이라면, 


파괴는 더 큰 놀이다.


진실을 알고 나니 화가 나는가? 없으면 그냥 없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말 일이지만 있다면 탓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니, 다 보고 있으면서 그 따위로 행동하다니! 이 무책임한 신을 모욕하고 싶다면 부정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부정은 그저 도피일 뿐,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두 가지. 그를 죽이거나 우리 모두, 


신이 되거나.


신이 되는 법은 간단하다. 그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것. 그러니까 우리, 힘 없고 비굴하고 미천한 인간들아 놀자. 노는 것만이 우리를 '신'으로 만들지니, 놀고 놀고 또 놀아, 우리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자.

s*******r 2015.02.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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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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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책, 내게로 오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진중권이 책 내용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이미 인터넷에 들어가서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은 10년 만에 “미학오디세이 3권”을 내면서 미학오디세이를 완결하면서 그와 함께 냈던 “미학오디세이 작가노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소개를 보았던 그때 “미학오디세이 작가노트”를 읽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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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책, 내게로 오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진중권이 책 내용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이미 인터넷에 들어가서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은 10년 만에 “미학오디세이 3권”을 내면서 미학오디세이를 완결하면서 그와 함께 냈던 “미학오디세이 작가노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소개를 보았던 그때 “미학오디세이 작가노트”를 읽고 있었는데 참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춤추는 죽음”, “앙겔루스노부스” 같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진중권의 책들은 마치 연작소설 같다. 이 책을 쓰면서 그가 추구했듯이 그의 연구 성과들이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도 어딘가 상통하면서 발전해간다. 그의 글은 그저 글주변으로 순간적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에게서 나온다는 것과, 그의 책은 곧 그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책을 펼치고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빨주노초파남보’로 장이 나누어져 있던 것이었다.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이므로 색깔별로 각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비선형, 순환성, 파편성, 중의성, 동감각, 형상문자, 단자론. 그리고 이 주제들에 따라 우연과 필연, 빛과 그림자, 숨바꼭질, 수수께끼, 사라짐의 미학, 순간에서 영원으로, 다이달로스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7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주제에 맞는 놀이와 예술이 등장한다. 이미 “미학오디세이 3권” 및 “작가노트”에서 익숙해진바 있는 주사위, 미로, 체스와 같은 놀이도 다시 만날 수 있다. 앞머리에서 ‘상상력 혁명’이라는 글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영원한 소년’이라는 글로 마무리하고 있다. 창의력, 상상력이 중시되는 사회이다. 그것들이 고리타분한 상식을 깨고 허를 찌르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모습을 띠고 있다. 수록된 그림을 보다 보면 책을 돌려가면서 보아야할 때가 있다. 기차에서 책을 옆으로 돌리거나 뒤집으면서 그 부분을 읽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의아하게 쳐다보시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생각했을 것 같은 흥미진진한 상상들이 예술작품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고대에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 후에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으로 근대에는 기계적 사고방식으로 현대에는 다시 상상력으로 돌아왔다. 그 상상력은 합리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상상력은 상상력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상상력이 실현된다. 합리성의 결정체인 컴퓨터가 그것을 돕는다. 상상한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던가. 지금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 누군가가 상상했던 것이라고 했던가. 놀이에 대한 생소한 단어가 많아서 머리가 좀 아팠는데, 생각해보면 생소한 이름이 붙어있는 그 많은 놀이들도 어렸을 때는 이름은 몰랐어도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던 것들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던 것들이 미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예술작품으로 눈앞에 나타나서 설명되고 있는 것을 읽는 일은 왠지 모르게 으쓱해지는 체험이었다. 어렵게 읽으려고 들면 한없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림들만 넘겨가면서 보아도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5.08.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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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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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컴플렉스   언제부터인가.. '상상력 없는 인간'이라는 컴플렉스를 안게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원래 '없는' 것은 스스로가 먼저 느끼기 마련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 미술시간 때.. 처음 '상상력 부재'를 체감했다.   당시 미술선생님은 특정한 주제를 던지고 애들이 그림을 다 그리면.. 교실을 한바퀴 쓱- 돌면서.. '너, 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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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컴플렉스

 

언제부터인가.. '상상력 없는 인간'이라는 컴플렉스를 안게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원래 '없는' 것은 스스로가 먼저 느끼기 마련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 미술시간 때.. 처음 '상상력 부재'를 체감했다.

 

당시 미술선생님은 특정한 주제를 던지고 애들이 그림을 다 그리면..

교실을 한바퀴 쓱- 돌면서.. '너, 너.. 너...' 이렇게 몇명을 교실 앞으로 불러내었다.

애들이 그림을 들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림의 참신함 혹은 좋은 아이디어..같은 걸 칭찬했다.

난 1년동안 딱 한번 교실 앞으로 나간 적이 있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의 참신함이 선생님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분 뒤였다.

.... 그때 시작된 상상력의 아노미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는 거 같다..;

 

상상력에 대한 내 컴플렉스는 왼쪽에 있는 내 프로필에도 보여진다.

보아 노래 가사에 있는 문구인데.. 들을 때마다 자꾸 귀에 밟혀서.. 여기 달아놓았다.

아무턴.. 이 책을 고르게 된 건 이토록 오래된 아픔;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 책은 내 상상력을 찾아줄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을 안고.

 

 

소년으로 돌아가라.

 

책은 20가지 놀이를 통해, 예술과 미학을 이야기하며.. 그 놀이를 가능하게 한 상상력에 감탄한다.

여기 등장하는 놀이들은 모두 아주 오래된 것들이지만, 지금도 반복되며 등장하는 놀이들이다.

상상력은 일상을 놀이로, 노동을 유희로 전화시키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놀이는 어느덧 예술의 범주에 스며들어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 책에 나온 놀이 혹은 예술을 소개해보면 이런거다.

 

 

연애시 하나를 소개한다.

알프레드 드 뮈세가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시이다.

이 시에 숨겨진 트릭은 무엇일까?

 

Quand je met a vos pieds un eternel hommage
Voulez-ous qu'un instant je change de visage?
Vous avez capture les sentiments d'un coeur
Que pour vous adorer forma le Createur.
Je vous cheris, amour, et ma plume en delire
Couche sur le papier ce que je n'ose dire.
Avec soin, de mes vers lisez les premiers mots
Vous saurez quel remede apporter a mes mauz.
내가 당신의 발아래 영원한 존경을 바칠 때
당신은 한순간 내 얼굴빞이 달라지기를 바라시나요?
당신은 창조주께서 당신을 경모하라고 만드신
어떤 가슴의 감정을 사로잡았어요.
당신을 극진히 사랑하오, 내 사랑, 그리하여 미망에 빠진 내 펜은
종이 위에 감히 못 할 말을 적어놓습니다.

주의깊게, 내 시의 첫 낱말들을 읽어주세요.
내 병을 어떻게 고칠지 당신은 아실 겁니다.

 

이 시의 첫낱말들을 조합하면 이런 문장이 된다.

"Quand voulez-vous que je couche avec vous?"
"내가 언제 당신과 자면 좋겠어요?"

 

 

그럼, 상드의 답장은 어땠을까?

Cette insigne faveur que votre coeur reclame
Nuit a ma renommee et repugne mon ame.

당신의 가슴이 요구하는 이 엄청난 애정이
내평판을 나쁘게 하고 내 영혼을 불쾌하게 하는군요.

 

보기좋게 딱지를 놓은 것 같지만, 첫 단어들만 조합해 보라.

Cette nuit

오늘 밤

 

이렇게 앞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을 '아크로스틱'이라고 한다.

우리가 문자를 통해서도 종종 치는 장난아니었던가.

일상과 놀이, 예술의 즐거운 만남이다.

 

 

 

솔직히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 정리되지는 않았는데,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그냥 책이랑 논다는 기분으로 봐서 그런 것도 같다.

그냥 신기하고 재밌는 것들이 책 안에 가득하니.. 말 그대로 책 안에서 놀다가 나온 기분.

 

진중권의 한마디만 남기고 글을 마치련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500년 전에 이미 기술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다빈치. 그는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이었다.

 

**Book Commnet.

닥추. 

YES마니아 : 골드 i******j 2008.06.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