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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에 도시유키 - 곰의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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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퍽 우연이었다. 어디선가 문득 '모래 장수가 지나간다'는 말이 프랑스어로 졸립다는 의미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인터넷으로 그 말을 검색해보았고, 유일하게 검색 결과에 걸렸던 것이 이 책이었다. 묘하게 포근한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찾아보니 무척 얇은 단편집이었고, 안에 들어 있는 세 단편들의 제목이 '곰의 포석', '모래 장수가 지나간다',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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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된 건 퍽 우연이었다. 어디선가 문득 '모래 장수가 지나간다'는 말이 프랑스어로 졸립다는 의미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인터넷으로 그 말을 검색해보았고, 유일하게 검색 결과에 걸렸던 것이 이 책이었다. 묘하게 포근한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찾아보니 무척 얇은 단편집이었고, 안에 들어 있는 세 단편들의 제목이 '곰의 포석', '모래 장수가 지나간다', '성터에서'였다. 뒤의 두 단편은 짧기도 했고 크게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표제작인 '곰의 포석'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좋은 이야기였다. 이 책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것은 후일에 알았는데 과연, 하고 납득했다. 나는 주로 일본문학 쪽에서는 장르문학에 한정해서 책을 읽는 편이지만 이 사람의 책은 얼마 안 되는, 내 마음에 드는 순문학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불문학자라서인지 세 단편 모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데, '곰의 포석'은 유대인 친구 얀과 일본인인 '나'의 이야기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무심한 나의 한 마디가 상대를 얼마든지 상처입힐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곰의 포석'이란 라 퐁텐의 우화로 친구인 할아버지의 콧등 위에 앉은 파리를 잡기 위해 곰이 포석으로 파리를 내리치는 바람에 할아버지까지 죽고 말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하고 있는 바보짓에 다름아니다.

 

  깊고 중요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섬세한 문장에 실어보내는 스타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산문집인 <회송전차>를 찾아보니 역시나 책 두께는 얇지만 우아하고 짧은 글들이 가득하다. 아껴 놓고 찬찬히 읽어야겠다.

 

u****e 2009.12.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느릿느릿 삶의 풍경을 점잖게 설명한다...
"느릿느릿 삶의 풍경을 점잖게 설명한다..." 내용보기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며 현재 관련 학과의 교수로 재직중인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전공을 잘 살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그때 그곳’을 말하는 것처럼 이국의(자국이 아닌) 땅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곳에서든 그곳에서든 통용된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아련한 이국의 풍광과 그곳에 스르르 굴러 들어간 돌처럼 그가 전하는 메시지 또한
"느릿느릿 삶의 풍경을 점잖게 설명한다..." 내용보기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며 현재 관련 학과의 교수로 재직중인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전공을 잘 살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그때 그곳’을 말하는 것처럼 이국의(자국이 아닌) 땅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곳에서든 그곳에서든 통용된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아련한 이국의 풍광과 그곳에 스르르 굴러 들어간 돌처럼 그가 전하는 메시지 또한 부유하는 느낌이기는 하다. TV 뉴스에서 제공되는 듯한 명료하기만 한 공적 메시지가 아니라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끌어내어야만 하는 사적 메시지(어쩌면 작가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만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를 요구하는 그런 소설들을 쓰는 작가이다. 「곰의 포석」. 표제작이며 중편 정도의 분량이다. “... 내가 미루어온 일은 19세기 후반, 그 방대한 『프랑스어 사전』을 완성한 막시밀리앙 폴 에밀 리트레의 전기에 대한 소개문을 쓰고 부분 번역을 하는 일이었다...” 프랑스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는 나는 가끔 프랑스에 가서 새로운 책을 읽거나 관련 정보를 채집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오래전의 친구인 얀을 방문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과 어울릴 때 그 사람과 이 ‘왠지 모르게’라는 감각에 바탕한 상호이해가 가능하냐 아니냐를 판단하여, 호흡이 맞지 않을 때는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아니려니 하며 서서히 멀리하곤 했다...” 분명하게 논리적인 이해를 통해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지 않지만 감각적인 수긍을 통해 서로를 아는 것...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것... 나에게 얀은 그런 친구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목인 「곰의 포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설명... “... 곰의 가장 중요한 일은 노인이 낮잠을 자는 동안 성가신 파리를 쫓는 일이었다. 어느 날, 깊이 잠든 노인의 코끝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는데, 아무리 해도 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 ‘충실한 파리쫓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포석을 하나 집어들더니 그것을 힘껏 내던져’ 파리와 함께 노인의 머리를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이 우화가 변해 지금은 쓸데없는 호의나 간섭이라는 뜻으로 ‘곰의 포석’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지만... 쓸데없는 호의나 간섭에 대한 주의를 일깨우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한 전개가, 무지몽매한 친구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교훈에 대한 나의 의식을 잠시 무뎌지게 했다. 어쩌면 얀에게 나라는 존재는 라퐁텐의 곰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알게 된다는 것은, 혹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호의를 보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친구인 얀과 얀의 집 근처에 사는 카트린, 그리고 선천적으로 안구가 없는 카트린의 아들인 다비드, 혹은 몽생미셸 수도원(동네의 대형 서점을 찾았다가 우연히 소설에 묘사된 수도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건축물은 소설에 실린 말의 성찬보다 더 아름다웠다)과 프랑스어 사전을 집필한 19세기의 리트레까지... 일본의 어느 한 구석 지명조차 거론되어 있지 않은 이 기이한 일본 소설이 아쿠타가와 상의 수상작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모래장수가 지나간다」. “... 아, 졸린다는 걸 프랑스어로 분명 ‘모래장수가 지나간다’라고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깜박거리다 어느새 의식이 멀어진 모양이었다...” 지금은 죽은 나의 친구... 그리고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친구의 여동생... 이른 결혼으로 딸을 둔 친구의 여동생(그녀가 여섯 살일 때부터 함께 어울렸던)과 그녀의 딸과 함께 하는 바닷가의 여정... 별다른 사건도 없고 소설의 길이 또한 짧은 소품으로, 조용조용 생의 한 시기를 지나듯 모래사장을 거닐다 졸음에 겨워 설핏 잠이 든다는 설정이 눈에 그려진다. 「성터에서」. 십 년 전의 추억... 노르망디 근처 작은 마을에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찾게 된 뒷산의 성터... 대통령조차 출입을 못하게 막았다는 전설적인 관리인과 관리인이 키우는 도베르만... 그곳에 들렀다가 관리인에게 들켜 혼자만 남게 되었던 사연...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벽에 걸어 놓은 그림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 것처럼 짧다. 현재 자주 소개되는 일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 특유의 문체인 듯 마침표 없이 길고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도 그렇거니와 별다른 사건이나 특이한 캐릭터 혹은 감정의 증폭도 없다. 밋밋한 듯하지만 어딘가 진중하고, 지루한 듯하지만 어딘가 혈을 꾹 누르는 것만 같은... 차분하게 읽기 좋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6.09.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