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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악은 아주 평범하게 행해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악은 아주 평범하게 행해진다" 내용보기
“사유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유대인 학살과 같은 끔찍한 악행이 아주 평범하고 흔하게 행해질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현대 정치철학자이다. 1951년 파시즘과 스탈린식 사회주의 체제를 전체주의로 정의하고 이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광기와 공포로 지배하는 정치형태라 주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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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유대인 학살과 같은 끔찍한 악행이 아주 평범하고 흔하게 행해질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현대 정치철학자이다. 1951년 파시즘과 스탈린식 사회주의 체제를 전체주의로 정의하고 이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광기와 공포로 지배하는 정치형태라 주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8년에는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통해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생존과 욕망 충족, 일의 재미와 명예 추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를 바라보는 행동에 대해 기술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적인 삶이 정치의 주제가 되도록 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공공성을 새롭게 발견할 것을 역설했다. <네이버캐스트, 인물세계사 ‘한나 아렌트’ 중에서>

 

  정치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 그만큼 극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이 영화에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액션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뜨거운 사랑이야기가 있어서 주목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인생 중에서도 특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하고 그녀가 작성했던 보고서와 그것이 촉발했던 사회적 논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납치되어 재판장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학살을 자행하게 된 자신의 행동과 책임을 연결짓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서 한나 아렌트는 ‘악이 뿔 달린 악마처럼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취재를 마친 그녀는 뉴욕커에 보고서를 싣게 되는데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극히 평범한 사람이며, 그는 판단할 수 있는 생각이 없어져 버린 인간일 뿐이었다는 것과 학살 시 유대인 지도자들의 행동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유대인들에게서 반민족적이며 나치 전범을 옹호하는 것이냐는 수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들의 감정적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반대자들 혹은 감정적 비난자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용감하게 주장했다. 그녀가 공식적인 강의에서 그녀를 비난하는 동료교수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모습이 매우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주장했던 바는 나치에 협력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생각과 책임 없이 한 맹목적 행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였다. 그녀는 잔혹한 결과를 가져온 잘못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처벌 혹은 용서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이해의 결과는 그가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라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일제시대 일제에 붙어서 조선인들 착취를 도왔던 친일파들, 한국 전쟁 당시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에 따르다가 양쪽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학살했던 사람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했던 경찰들의 행동,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시절 그의 명령에 따라 가차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이들, 이명박이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철저히 관료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이들, 용산참사와 쌍용차 점거를 폭력으로 제압하던 경찰들, 밀양 송전선 시위에서 주민들을 무참히 끌어내던 경찰들, 세월호 침몰과 그 책임자들, 민주적 시위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경찰들과 법 집행자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메르스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는 일부 공무원들 등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차례대로 떠올랐다. 

 

  이들을 나치전범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한나 아렌트가 역설했던 명령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혹은 외면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 명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처벌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너무나도 평범하게 자행되는 악행들을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들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 생각한다.

 

  명령이기 때문에, 따르지 않으면 피해가 따를 것 같기 때문에, 내가 이런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나 싶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출 때 평범한 우리는 언제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된다. 물론 그 생각의 방향이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e*******7 2015.06.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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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인 인간에 대한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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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 쇼>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 역사적 법정의 장면들이 있다. 이 당시에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법정의 장면을 보던 한나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중심사건으로 두고 그녀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여성감독인 마가레타 폰 트로타의 시선으로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교수의 평생의 삶을 사랑, 남편, 학문적 업적, 독일 나치당원들에 대한 분석으로 묶어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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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히만 쇼>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 역사적 법정의 장면들이 있다. 이 당시에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법정의 장면을 보던 한나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중심사건으로 두고 그녀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여성감독인 마가레타 폰 트로타의 시선으로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교수의 평생의 삶을 사랑, 남편, 학문적 업적, 독일 나치당원들에 대한 분석으로 묶어놓았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도 막연하게 그녀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게 한다.

 

    이 영화 역시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나 아렌트 개인 혹은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의 반응이 보여주는 극적인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 숙제를 관객이 떠안기 때문이다.

 

    "당원에 친위대원인데 당연히 반유대주의자죠." 아이히만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는 다른 해석을 한다. "정말 흥미롭지 않아요? 살육적인 체제가 요구한 건 뭐든지 열심히 한 사람이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유대인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하다니!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전혀 가책을 못 느껴요. 그는 천생 관료거든요. 그자의 끔찍한 행동과 그 평범함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간극이 있어요."

 

      '단독자인 인간'에 대해 그녀가 생각하는 결론에 이르기에 필요한 개념인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개념은 중요하게 언급된다. 다른 사람과 이해의 관점이 너무도 다른 그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는 사람이 망설이지 않도록. "전체주의의 최종 단계에서 적대적인 악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거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동기도 찾아볼 수 없다면 다음과 같은 것도 사실입니다. 전체주의가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악의 근원적인 본성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사유의 불가능함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예전에 볼 수 없던 거대한 규모의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사유의 바람이 드러내는 건 지식이 아닙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사유가 사람들에게 파국을 피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바랍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그녀의 철학이 인류에게 어떤 희망이 되고 싶은지 드러날 때 이 영화의 목적이 보인다. 수많은 비판에 시달린 그녀의 시각은 '왜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인간들이 속한 사회는 어떤 모습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악은 늘 극단적일 뿐 근본적이질 않아. 깊고도 근본적인 건 언제나 선뿐이지." 한나 아렌트의 이 대사는 그녀의 철학이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선, 인간의 선함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의 한 컷, 법정을 생중계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무엇인가 적기도 하고 화면을 응시하기도 한다. 이 때 아이히만의 표정과 한나 아렌트의 고정된 눈빛이 교차할 때 보는 사람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은 효과음이 머릿속을 한 순간에 강타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나의 현상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철학자를 보고. 그래서, 이후에 그녀가 사회에서 받은 지탄의 강도와 범위는 세상 사람들이 지금은 이해할 수 있으나 수십 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당사자든, 그것을 해석한 사람이든.

YES마니아 : 골드 n********y 2017.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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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바로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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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런 소재로 영화가 다 만들어졌단 말인가?' 요즘 들어 저서를 통해서나마 그럭저럭 한국에도 자주 소개되는 이 석학, 그리고 활동가의 모습이라지만(이 위대한 인물을 두고 터무니없는 곡해, 심지어 대책 없는 악의와 비방의 소재로 삼기까지 하는, 천벌을 받을 저능한 작태가 있던데, 조만간 단단히 응징할 생각이다), 아직 그 업적과 사상의 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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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런 소재로 영화가 다 만들어졌단 말인가?' 요즘 들어 저서를 통해서나마 그럭저럭 한국에도 자주 소개되는 이 석학, 그리고 활동가의 모습이라지만(이 위대한 인물을 두고 터무니없는 곡해, 심지어 대책 없는 악의와 비방의 소재로 삼기까지 하는, 천벌을 받을 저능한 작태가 있던데, 조만간 단단히 응징할 생각이다), 아직 그 업적과 사상의 폭에 비하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에 불과하다. 만시지탄에 조족지혈의 유감까지 곁들여졌다고나 할까.


아마도 누구나 그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아렌트 여사 역을 맡은 저 여배우는 대체 누구인가?' 우리에게 이 배우가 낯이 선 건 단지 그녀가 독일 혈통, 배경이라서만은 아니다(그 문제, 즉 핧리웃 편식도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는 한다). 어쩌다 영화를 보면, 주연도 아니고 단역인데, 어쩌면 저런 연기를 껌 씹듯 저리 쉽게 해 내나 하는 감탄이 들게 하는 배우가 꼭 있다(내 경우는 주로 여성배우). 그런 사람들은 꼭 보면 무대배우로 일생의 커리어를 삼은 경우들이다. '이런 배우를 내가 여태 모를 수가 있나?' 당신 잘못이 아니라, 세속의 명리를 탐하지 않고 스스로 곱게 심고 가꾼 소명에만 충실한 그의 잘못(?)이기도 하니, 너무 자책할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쉬어 매드니스'라는 추리극이 있는데, 그게 본디 지금 이 영화를 감독한 폰 트로타의 1980년대 영화를 각색한 것이다. 차분히 시선을 두고 감상하면 대단한 극적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며, 마틴 발삼 주연의 '아이히만 체포 작전'도 함께 볼 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s****o 2014.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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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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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한나 아렌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같은 사람으로 혼동하곤 한다.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도 난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했다. 만일 내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 영화를 본다면 한나 아렌트를 생각 하겠지.   알다시피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시킨 철학자다. 영화는 바로 이것이 나온 전후 배경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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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한나 아렌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같은 사람으로 혼동하곤 한다.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도 난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했다. 만일 내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 영화를 본다면 한나 아렌트를 생각 하겠지.

 

알다시피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시킨 철학자다. 영화는 바로 이것이 나온 전후 배경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전기 영화는 잘해야 본전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봐도 나쁘지 않고, 안 봐도 그다지 섭섭할 것 없는 장르다. 우린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나 아렌트다. 발견한 이상 예의로라도 봐 줘야 한다.

 

           

영화가 역시 좀 아쉽긴 하다.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 한나 아렌트를 조명하기 위한 거라면 나쁘진 않는데, 악의 평범성을 이해시키기엔 다소 모자라 보인다. 뭐 당연한 것 같긴 하지만. 놀라운 건, 한나 아렌트가 이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당대 학계나 지성계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차가운 냉대와 비판을 견뎌야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한나가 무엇을 해 주길 바랐던 걸까? 그것은 당시론 듣보잡이거니와 만일 당시의 홀로코스트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나치 독일에 받은 박해와 수모 역시 평범한 것이어서 약화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녀가 홀로코스트를 옹호하거나 최소한 조용히 있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나가 여자기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므로 해서 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는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의 홀로코스트 이후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민중 대학살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쉬 떨쳐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긴 전범재판이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인데 거기서 악의 평범성을 논한다는 건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데 비해 한나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들은 그녀를 지지한다. 그 대조가 인상적이다. 뭐든지 그 분야가 발전을 하려면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이런 한나 아렌트의 후학들은 또 악의 평범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을까? 악의 평범성을 너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을지 모를 일이고, 악의 평범성이 있다면 선의 평범성도 있다고 본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영화는 역시 이미지다. 나름 지적인 영화긴 한데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장면이 영화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뭐 지성과 흡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담배 피우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긴 한다. 특히 한나가 어찌나 담배를 맛있게 빨아대는지 만일 나도 옆에 담배가 있었다면 끌어 잡아 당겼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지만, 어떤 남자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에 매료되어 청혼을 했다고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인 건지 담배를 안 피우는 나로선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다.

 

솔직히 그렇게 건강을 부르짖으면서 왜 피우면 피울수록 건강해지는 담배는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나도 분명 피웠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영화의 종반 한나 아렌트가 사람들의 비난과 냉대 속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면서 타이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예전엔 담배를 구름과자라고도 했는데 정말 그녀의 책상에 담배와 재떨이 대신 과자 한 봉지 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새우깡. 그리고 어느 광고 문구처럼 그분의 책상에 새우깡 한 봉지 놔드려야겠어요.”하고 싶다. 빼빼로가 나으려나?

 

갑자기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언제고 그녀의 평전 한 번 읽어봐야겠다.        


m****9 2016.07.28.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