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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 쯤에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의 담백한 글들을 좋아한다. 하긴 박완서 뿐만 아니라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종류의 글들을 자주 읽는 편이고, 그런 그들을 통하여 아련한 추억과 아쉬움에 잠기는 걸 즐기는 편이다. 산문집 <호미>는 박완서가 말년에 쓴 산문집에 딸인 호원숙씨가 평소에 그린 그림을 중간 중간에 넣어서 편집하였다. 작가가 1931년 생이니 바로 내 어머니과 동갑이시고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 평생을 호미자루를 쥐고 뙤약볕에 종종거리시던 어머님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었다.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각이 서있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단어들은 마치 강물에 깎인 동그란 조약돌같은 질감을 풍기고, 문장들에는 울퉁불퉁 근육질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읽는 동안에 호흡이 가빠질 일도 없고 책을 내려놓고 특별한 생각에 잠길 일도 없다. 다 읽고 나서도 감동이라기 보다는 따스하면서도 담백한 위안이 느껴지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올 봄에 업무상 관사에 입주한 이후로 집 앞뒤곁으로 풀(잡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들이 우거졌다. 평소에 집가꾸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집사람이 보름 넘게 아침 저녁으로 종종걸음을 치더니 결국 집 주위에 난 풀들을 다 뽑았다. 그리고 나서도 서늘한 아침 나절에는 또다시 고개를 내민 풀들과 싱갱이를 하고 있다. 풀을 뽑는 집사람의 등허리에서 어머님과 박완서 작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호미는 나에게 익숙한 물건이지만 박완서 작가의 절묘한 표현을 보고 나니 다시 눈길이 간다. "호미는 주로 여자들이 김맬 때 쓰는 도구이지만 만든 것은 대장장이니까 남자들의 작품일 터이나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p.53)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이라니! 작가는 나와 같은 물건을 보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고, 더 멋진 단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임을 다시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