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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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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인 2011년 1월 22일 세상을 뜬 작가 박완서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지 않을까 싶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름만 겨우 한두 번쯤 들어본 작가일 수도 있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열광하던 작가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정이 가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질곡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가 자신과 주변의 삶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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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인 2011년 1월 22일 세상을 뜬 작가 박완서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지 않을까 싶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름만 겨우 한두 번쯤 들어본 작가일 수도 있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열광하던 작가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정이 가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질곡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가 자신과 주변의 삶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놓았던 노고를 생각할 때, 후손 된 입장에서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가깝고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p.20)

 

박완서 작가의 여행기 <모독(冒瀆)>을 읽었던 건 소설이 아닌 작가의 산문집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10주기를 추모하는 나 나름의 경건한 의식 같은 것이기도 했다. 1997년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이 책은 '2005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에 선정(예술 부문)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절판되어 책 애호가들 중에는 희귀본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 2014년에 열림원에서 재출간한 책이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나는 1997년 판본의 낡은 책을 읽고 있으나 그 시절의 작가도, 외환위기를 겪었던 그 시절의 기억도 그저 머릿속의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았을 뿐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리움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만큼이나 무상하다.

 

"우리가 초모랑마(에베레스트)에 대해 외경심을 갖는 것은 세계의 최고봉이기 때문이지만 인도나 티베트, 네팔 등 힌두 불교 문화권에서는 카일라스 산을 창조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일생에 한 번이라도 순례하기를 열렬하게 소망한다. 순례의 길이 고통스러울수록 죄가 정화된다고 믿어 고통보다는 법열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처럼 최소한의 소유로 단순 소박하게 사는 민족도 없다 싶은데 이런 엄청난 죄의 대가를 지불하려들다니, 그들이 느끼고 있는 죄의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 같은 죄 많고 욕심 많은 인간에겐 상상이 미치지 않는 영역일 듯싶다."  (p.199)

 

'민병일 시인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나서 주었고, 소설 쓰는 이경자, 김영현도 동행이 돼주었다.'고 밝힌 이 책에서 작가는 60대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히말라야 오지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동행했던 이들의 살뜰한 보살핌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군더더기 없이 맑고 단아하다. 읽는 이로 하여금 리듬감을 느끼게도 하고, 작가의 투명한 속내가 글에 내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 여행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지나친 감상이나 과장, 여행자만의 애상 등 여행기라기보다 '여행 감상문' 혹은 '여행 애상기'에 가까운 그런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가 보았던 티베트와 네팔의 빛과 어둠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다.

 

"오늘 살 줄만 알았지 내일 죽을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구질구질한 면까지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듯이 죽어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아주 한 자락의 바람으로 무화되는 과정도 천연덕스럽게 보여준다. 윤회를 믿기 때문일까."  (p.301)

 

소박한 사람들이 욕심 없이 사는 성스러운 땅에 화석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 스티로폴 파편, 찌그러진 페트병 따위의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을 두고 온 것이 완전 순환의 땅인 그곳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노작가의 진솔한 자아성찰기가 작가가 세상을 떠난 10년 후의 어느 독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던 책. 며칠 따뜻했던 날씨가 다시 또 추워지고 있다. 삶도 자연도 끝없는 순환만 이어질 뿐 영원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 만에 나는 먼지 쌓인 서가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삶도 이처럼 허허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따금 책을 읽고 또 이따금 생각을 하는 것처럼.

 

이달의 사락 s*****l 2021.01.27. 신고 공감 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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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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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이제 그리운 이름이 되어버린 그분의 책이다. 97년에 발간되었다고는 하나,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라서 갸우뚱해졌다.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유독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재촉해서 올해 가을 재출간 되었다고 한다. 함께 하신 시인 민병일님과도 인연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시인과 소설가 특유의 뛰어난 관찰력과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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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이제 그리운 이름이 되어버린 그분의 책이다. 97년에 발간되었다고는 하나,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라서 갸우뚱해졌다.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유독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재촉해서 올해 가을 재출간 되었다고 한다. 함께 하신 시인 민병일님과도 인연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시인과 소설가 특유의 뛰어난 관찰력과 애잔한 감성, 그러나 애이불비로 써내려간 글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문학하시는 분들이나 일반인들도, 여행 에세이에서는 뭔가 한국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돌입하면서 완전한 방랑자 느낌으로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는 굉장히 담담하게 써내려간 느낌이라서, 과연 박완서 작가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기 보다는 티베트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삶을 이끌어낸 티베트의 자연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하신 느낌이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 같은 그들의 자연이 먼저 눈에 띄인다. 민병일 시인, 시인이라고 하기엔 여러가지.. 사진도 찍으시고, 에세이도 쓰시고, 편집자 대표도 하시는 다재다능한 분이신 것 같다. 그런 그 분과 인간적으로 친한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어머니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박완서님과의 여행이 참 추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이 책을 쓸 시기에 이미 60이 넘은 연세이셨고, 불모지같은 곳에 찾아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엔 체력의 한계가 여실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힘들어하시면서도 또한 그런 기회로 이 땅을 밟을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하고, 자신이 여행옴으로 말미암아 완벽한 땅에 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작가의 마음이 겸손하게 느껴진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광활한 대지와,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헐벗은 산의 모습이.. 자연이 주는 경외감을 다 느껴보지는 못할 것 같다.

 

사진으로 보는 자연의 모습이 숙연한 느낌을 주었다. 히말라야란, 인간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그를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국민들의 모습, 이슬람이라는 종교에도 예를 다하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은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거대한 자연을 두려워하며 옹기종이 살아왔던 인간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자기보다 더 가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고 해맑게 웃을 줄 아는 모습이.. 참.. 뭐랄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준다. 단순히 '국민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종교적 의식같은 삶.. 박완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인간의 한계와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책.

 

c*****1 2014.10.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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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티베트와 네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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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이어 또 다른 산문집 <모독>을 만났다. <모독>은 네팔은 두어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티베트 여행은 해본 적이 없던 작가에게 민병일 시인이 갔다와서 여행기를 쓴다는 조건으로 구체화 될 수 있었던 티베트와 네팔의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노구(老軀)의 몸으로 힘든 여행길이 될 수 있는 티베트로 떠난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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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이어 또 다른 산문집 <모독>을 만났다. <모독>은 네팔은 두어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티베트 여행은 해본 적이 없던 작가에게 민병일 시인이 갔다와서 여행기를 쓴다는 조건으로 구체화 될 수 있었던 티베트와 네팔의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노구(老軀)의 몸으로 힘든 여행길이 될 수 있는 티베트로 떠난 일행들. 라싸 공항에 도착한 그들을 반겨 준 건 푸른 하늘이었다. 백두산보다도 1천 미터가량 높은 라싸, 여행 내내 고산병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티베트의 장채에서는 인도에서 직접 전래된 최초의 불교사원인 사미에 사원, 천 개가 넘는 방이 있는 지구 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방식이 몸에 밴 민족의 모습과는 다른 포탈라 궁,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며 티베트 최대의 사찰이자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인 조캉 사원을 여행한다.

 

라싸에서 티베트에서 세 번째로 튼 도시인 장채로 가는 여행길,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전갈 모양을 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얌드록초 호수, 장채의 대사찰 방크로 초르덴, 라싸 다음가는 티베트의 제 2의 도시 시가채, 판첸라마의 본찰이며 티베트 사람들의 열렬한 신앙을 만날 수 있었던 타쉬롱포 사원, 히말라야 산맥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지방 텅그리는 일행들이 머문 고장 중 고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히말라야 최고봉인 초모랑마를 만나기도 했다. 활기가 넘치는 고장 장무를 마지막으로 티베트의 일정은 끝이 났다.

 

티베트의 여행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티베트 특유의 깊고 청명한 하늘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새파란 하늘...티베트의 하늘은 너무나도 청명했고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 하늘의 아름다움과 다른 아픔을 만날 수도 있었다. 중국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티베트는 중국의 문명말살 정책 아래 한족의 인구가 티베트족 인구를 웃돌고 있다. 작가는 티베트의 모습에서 식민지하에서 초등교육을 받아봤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와 같은 아픔으로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로 외부 침략이 많았던 장채성을 보면서 우리 근세사와의 공통점 때문에 유난히 처절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같이 생긴 사람들, 식문화에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티베트, 반면 관광객에게 끈질기게 구걸하는 티베트의 숨길 수 없는 얼굴을 만나기도 한다. 끈질긴 구걸이 당연하게 보일 때, 자신의 장신구를 선물하는 청년, 작가는 비루한 거지 근성만 같아서 넌더리가 났었는데 그게 아니라 없는 자의 있는 자에 대한 당당한 요구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티베트 여기저기 널려있는 썩지 않는 쓰레기들을 보며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관광 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버겁고 난해한 나라였던 티베트에 이어 네팔로 떠난 일행들, 네팔은 작가가 세 번째 방문한 곳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네팔이 주목적이 아닌 티베트에서 돌아가는 길에 들러야 하는 경유지로  이 책에서는 두 차례 걸친 네팔 체험을 써서 발표했던 <지구가 아름다운 까닭>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담았다. 네팔의 수도이자 히피들을 천국인 카트만두,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티베트와는 달리 천연의 요새덕택에 한 번도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된 적이 없이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목조 사원인 티르바르 광장, 카투만두 최고의 불교사원인 스와얌부나트 사원, 티베트의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보드나트 사원, 치트완 국립공원과 네팔 여행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자연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무공해 트레킹을 할 수 있는 포카라의 여행기를 만날 수 있었다. 티베트에서 보다 네팔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애정이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세 번이나 네팔을 방문했을 것이다.

 

민병일 시인이 담아낸 사진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티베트 여행과 작가의 애정 담긴 글로 더욱 네팔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20여 년 전의 글이라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 티베트와 네팔이겠지만 민족의 문화가 담긴 다양한 장소도 만날 수 있었다. 작가의 담백한 문체로 만난 티베트와 네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달아 만난 작가의 산문집을 만나는 기회가 됐던 책이다.

 

 

 

 

s****g 2014.10.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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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박완서 작가와 함께 티베트와 네팔을 걷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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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작고한지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작가의 책이 나오다니 동물은 죽어서 가죽만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과 책을 남긴다고 해야할까?이 책은 박완서 작가가 1996년 예순 중반의 나이에 티베트와 네팔 기행을 하고 쓰게 된 기행문을 새로이 낸 책으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면서 왠지 찡해진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박완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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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작고한지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작가의 책이 나오다니 

동물은 죽어서 가죽만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과 책을 남긴다고 해야할까?

이 책은 박완서 작가가 1996년 예순 중반의 나이에 티베트와 네팔 기행을 하고 쓰게 된 기행문을 

새로이 낸 책으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면서 왠지 찡해진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박완서 작가에 대한 그리움이 실려온 듯 하다. 


아따 모르겠다. 공부는 그 시간에 잘 들어두는 게 제일이지 하면서 -- 작가의말 중에서


아는만큼 보인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궂이 뭐 그럴것까지 있으랴 싶은 작가의 생각이 여실히 담긴 작가의 말을 읽으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역시 박완서 작가다운 너스레를 떠는 듯한 문체가 참 반갑다.





학창시절 고원지대라고만 알고 있던 티베트와 네팔, 늘 어떤 나라인지 모르지만 한번은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작가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밀려오게 된다.

헐벗은듯 드넓게 펼쳐져 가릴것도 없이 속살을 다 보여주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산의 원형과 마주하고 싶고

몇백년의 세월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총천연의 색으로 경이로움을 주는 그네들의 불상 앞에 오체투지로 몸을 낮추고 싶고

서서히 다가드는 고산병으로 계단을 오르며 아찔한 기분에 사로집힐지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포탈라궁에 발을 디디고도 싶다.




관광객만 보이면 동전 한푼이라도 얻어내려 벌떼처럼 달려드는 아이들과 

식당문밖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것을 구걸하는 베트의 가난하기 이를데 없는 그네들에게 

관광객은 어쩌면 사치를 부리며 그들을 모독하는것과 같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나무 한그루 보기 어려운 티베트 고원의 나라에 세워진 포탈라궁과 같은 건물이 

어떻게 철골 하나 없이 석재와 목재로 웅장하게 지어질수 있는지 그리고 300년 이상 유지되는지 참으로 불가사의다. 

지질이 궁상처럼 꾀죄죄하기가 이를데 없이 때가 덕지덕지 묻은 그네들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궁을 지을수 있는지

가진것도 별로 없는데도 기름을 바치고 자신의 모두를 바치려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에서 아이러니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p351


작가는 보약을 먹는대신 누구의 눈치하나 볼 것 없이 그네들의 문화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신기해하며 

꿈도 못꿀 낭비를 왕창하고도 경제적 부담이 없는 네팔을 기행한다고 한다.

작가가 일러준 휴양지이자 트레킹의 출발지인 포카라의 자연호수안 피시 테일 로지에서 숙박을 하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자연 풍광속에서 호수에 어리는 설산을 감상하고 싶다.


여행을 하게 되면 듣던것과는 다르거나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낯설지만 특별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이 여행 산문집의 장점은 박완서 작가의 문체가 쉽게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사진이 주는 감흥 또한 남다른데다 

보통의 책과 달리 판형도 작고 글자가 듬성 듬성 놓여져 있어 수월하게 읽힌다는 사실이다. 

그냥 책을 술술 넘겨 읽어도 티베트와 네팔을 충분히 여행하게 되는 산문집이며

작가의 물흐르듯 술술 써내려간 문체를 읽어 내려가게 되면 진짜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마저 든다.




k*******7 2014.10.2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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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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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올해 봄, <노란 집>을 읽었다. 그리고 완연한 가을의 초입에 <모독>을 읽었다. 같은 작가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두 권의 책을 정녕 같은 작가가 썼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낯설다 느껴진다. 어딘가 허름하고 오래된 서재에서 먼지를 얹혀두었던 에세이가 우리를 만난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와 가까우면서도 더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티베트와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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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올해 봄, <노란 집>을 읽었다. 그리고 완연한 가을의 초입에 <모독>을 읽었다. 같은 작가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두 권의 책을 정녕 같은 작가가 썼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낯설다 느껴진다. 어딘가 허름하고 오래된 서재에서 먼지를 얹혀두었던 에세이가 우리를 만난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와 가까우면서도 더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티베트와 네팔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오.”



표지는 박 완서 님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수그린, 그리고 그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경외로움마저 느껴지는 사진 한 장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 에세이에 <모독>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했을까? 게다가 그 당시 연로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와 네팔로 함께 여행을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두 가지 궁금함이 일었다.

 

책은 티베트에 대한 여행기, 네팔에 대한 여행기로 나뉘어 실려 있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들과 그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달라이 라마로 모든 것을 안다고만 생각했던 티베트에 대해, 티베트 인들의 가난한 삶,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에 이르기는 많은 내용을 참 알차게도 담아냈다. 또한 자본주의가 폴폴 풍겨난다는 네팔의 방문기를 통해서도 지금의 내가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난 듯한 생생함을 준다.


지리적이고 종교적인 특성 때문에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고, 지구상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자연친화적이고 자급자족인 사회(p. 159. 수정 발췌)를 이룩해왔던 티베트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풍족했던 과거의 삶을 뒤로 하고 부유하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다고 한다. 식사를 하러 들어갔던 식당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작가는 같은 인간에게 더없는 치욕스러운 행위를 한 어느 한족 여자의 ‘인간에 대한 모독’을 비꼰다.


만났던 작품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작품들 모두 전쟁에 대한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주변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공통적인 모습이 그려졌기에, 내게는 마치 한국의 안네 프랑크 같은 성숙한 소녀의 느낌마저 주던 박 완서 님이었다. 이 짧은 에세이 <모독>에서는 의도치 않게 걸인들에게 본인이 상처를 준 듯한 미안함이 극에 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같은 인간에 대해 미안함을 느낌으로써 그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박 완서님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진다.



라다크의 이야기를 다룬 <오래된 미래>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핀란드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적은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려고 하지 않는 박노해 그만의 <다른 길>, 그리고 이 책까지. 모두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이 책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준 까닭은, 이 에세이를 소개하는 민병일 님의 글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에게 故 박 완서를 추억할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을 전해주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s***b 2014.10.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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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그 곳을 마주하다,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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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박완서 선생의 작고 소식을 들으며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시작으로 <노란집>을 읽게 된 나로서는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이야기를 마주한 셈이지만 그 따스함과 아련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박완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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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박완서 선생의 작고 소식을 들으며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시작으로 노란집을 읽게 된 나로서는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이야기를 마주한 셈이지만 그 따스함과 아련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이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 갔었는데 그런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이상 접할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이 모독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환희에 차게 했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1997년도에 출간된 책이었지만 실은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던 이 책을 지금 이렇게 다시 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탐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기쁨이 교차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가깝고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 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본문

 실용성보다는 멋내기용을 위해서 당시는 착용했다는 선글라스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착용하고 마주한 티베트 땅에 선 그녀를 통해 마주한 하늘은, 내가 그 동안 보았던 그 어떠한 푸르름 보다 더욱 진하고 깊은 푸르름인 듯 하다. 민둥산과 같은 언덕을 뒤로 하며 보이는 새파란 하늘은 지금의 이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더욱더 푸르르게 그녀의 가슴 속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으나 그들에게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어떠한 위압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품어주고 있었으니, 이 여정이 벌써부터 설레온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그들을 보면서 그녀는 반가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나라에 왔다기 보다는 반세기를 거슬러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어찌 보면 이 여행이 그녀에게 더욱 따스함을 전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바다 밑의 세계에서 제일 높은 땅으로 밀어 올린 에너지란 어떤 것이었을까. 땅의 광란이었을까? 하늘의 분노였을가? 그 해답을 성적인 에너지에서 찾은 게 티베트 사람들이 아닐까. 이 땅을 생성한 그 엄청난 기운이 이 거친 땅에 몸 붙이고 살게 된 사람들의 의식에 옮아 붙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 곳 사람들의 최고 성지 카일라스 산도 남성적 에너지의 상징이니만치 반드시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마나사로와르 호수와 짝을 이루어 숭배 받는다고 한다. –본문

 

 티베트의 사원과 초원을 넘어 마주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아른거리는데 자랑스럽게 가져다 준 암모나이트를 보며 선생은 티베트의 에너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며 그 안의 의미들을 전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네팔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녀가 말하는 네팔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이질감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해해줄 뿐더러,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사치를 부린다고 해서 실제 우리의 주머니가 가벼워지지 않기에 부담 없이 네팔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더욱더 가슴을 뛰게 만든다.

 



 

 

 오늘 살 줄 알았지 내일 죽을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구질구질한 면까지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듯이 죽어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아주 한 자락의 바람으로 무화되는 과정도 천역덕스럽게 보여준다. 윤회를 믿기 때문일까. –본문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혹은 책으로 몇 번씩 마주했던 화장장의 모습을 매번 마주할 때마다 무언가 송연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것일까, 라는 생각부터 어제는 살았을 그가 오늘은 주검으로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차단되어 다른 곳으로 동떨어져 버린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녀가 다녀왔던 동일한 일정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나는 그녀와는 다른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비슷한 것이라손 치더라고 나에게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을 텐데 이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마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의 문장과 느낌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함께 이 길을 여행해보고 싶다. 내가 담아올 것들은 무엇인지, 그 안에 그녀와의 공통점은 있을는지, 먼 미래겠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르's 추천목록

 

여행수업 / Terry L. 동훈저


 

 

독서 기간 : 2014.10.24~10.25

by 아르

 

p********1 2014.11.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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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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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중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을 뒤늦게 만나보고, 다시 이 책 '모독'이라는 작품을 선뜻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고, 또 하나는 나의 동경에 마지않는 티벳이라는 나라와 약 13년전에 다녀왔던 네팔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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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중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을 뒤늦게 만나보고, 다시 이 책 '모독'이라는 작품을 선뜻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고, 또 하나는 나의 동경에 마지않는 티벳이라는 나라와 약 13년전에 다녀왔던 네팔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두가지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이미 책 제목에서 '모독'이라는 한글 옆에 한자로 표기까지 해주었으나 사실 이 모독이라는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는 않고 있다가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가 '모독'이라고 했던 대목을 읽고는 다시 표지까지 찾아와 모독이라는 문구를 한동안 바라보게 되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 뒹구는 게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 스티로폼 파편, 찌그러진 페트병 따위 등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뚱뚱한 식당 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p.220

 

우리의 관광 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아직도 랏채에서의 기억이 상처처럼 생생하고도 고약했다. p.245~246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나보다 연세가 있으신 한 어르신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여행을 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는데 아는 지인중에는 여행은 참 많이 다니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릇도 커지지 않는 사람을 보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을. 요즘은 여행은 참 많이 하는데 어쩌면 이미 선진국으로 발달한 자신의 나라와 자신의 위치 그대로 여행을 하기 때문에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법칙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잦대로 그들을 마음껏 재단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그 소중한 여행의 기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회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이미 이 책이 개정판이라 세상에 나온지 15년을 넘어서고 있다고 하는데, 작가는 그때에 어쩌면 여행자가 간직해야할 마음 자세를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지 않았는가 소중한 것을 마음에 담아 두게 된다. 어찌 하루 아침에 대한 민국 시민이 티벳인들의 생활상을 마음에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내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p.352

 

13년 전에 나도 네팔에 trekking 을 하기 위해서 갔었다. 안나푸르나의 여러 봉우리 중 1봉에 해당하는 2,984m 를 순수히 걸어서 올라갔었다. 걸으면서 인간의 한계에 드러나는 나를 보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그곳의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나는 잠시 스처지나가지만 그들은 그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고 있다. 여행이란 것은 정해진 시간에 다녀올 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것과는 별개로 걸으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

 

 

 

20141106_135425.jpg

 

 

 

 

그런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그 어느때보다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지 않을지.

g*******s 2014.1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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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0] 노작가의 마음에 비친 티벳과 히말라야
"[45/50] 노작가의 마음에 비친 티벳과 히말라야" 내용보기
옆지기 생일이라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서점을 찾습니다.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다가, 노작가가 마주한 티벳트와 히말라야의 모습을 옆지기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는 작가의 모습에서, 저 땅에 대한 '겸손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잠시 경건해지기까지 합니다. 선물이 좀 더 멋드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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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생일이라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서점을 찾습니다.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다가, 노작가가 마주한 티벳트와 히말라야의 모습을 옆지기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는 작가의 모습에서, 저 땅에 대한 '겸손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잠시 경건해지기까지 합니다. 


선물이 좀 더 멋드러지고 화려하면 좋으련만, 사람의 마음이란 늘상 전보다 나은 걸 쫓는 법이라 시간이 갈수록 부담도 따라서 커지게 마련입니다. 해서 마음을 담은 편지와 책 한 권 혹은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 축하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 말입니다. 올해는 거기에다가 국화꽃 한 다발도 같이 전달을 했습니다.


 저자가 2011년에 80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니, 1996년 겨울에 이 여행을 할 무렵은 60 중반의 나이로,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글 중간 중간에서 생생하게 목격되는 '고산증'의 흔적들이 그 어려움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육체적 어려움 속에서도 나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통찰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작가 특유의 표현으로 묻어납니다. 이를 테면,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 티베트 하늘의 푸르름은 뭐랄까, 나의 기억 이전의 하늘이었다', 공기 중에 흔들어 댈 불순물조차 없이 조금도 굴절되지 않는 바람의 척박한 소리를 누가 들어보았는가', '외부 세계의 어떤 문명도 이 거대한 원시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저 전봇대만큼이라도 겸손한 위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데서는 곧잘 차를 마시는 저들과 경치좋은 데서는 고기부터 굽고 보는 우리하고 과연 어느 쪽이 더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우월감에 찾았다가 그들의 순수성에 무장해체된다는 그 곳에서 작가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오'


 노작가의 글을 통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대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존엄함에 대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에 대해 되새겨 볼 기회를 갖습니다.

s*****2 2014.1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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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다섯의 노구를 이끌고 불교사원이 곳곳에 산재된 티베트와 네팔을 여행한 박완서 선생님은 한국의 현대문학에 비중있는 작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 책은 그분의 유작으로 평가해도 넘치지 아니하리라.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여행 중에 겪었을 노고가 이 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계속 따라붙는 걸인들의 행렬을 보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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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다섯의 노구를 이끌고 불교사원이 곳곳에 산재된 티베트와 네팔을 여행한 박완서 선생님은 한국의 현대문학에 비중있는 작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 책은 그분의 유작으로 평가해도 넘치지 아니하리라.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여행 중에 겪었을 노고가 이 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계속 따라붙는 걸인들의 행렬을 보며 선생님이 느꼈을 고뇌가 때로는 참담하기도 했겠지만 여행지가 주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티베트에 있는 사원들의 웅장함이 그들 나라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노회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지 않은 나이에 고산지대로 이루어진 나라들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는 방문할 수 없는 곳이라서 그곳을 사는 민초들에게 더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이다.


끝 없이 전개되는 사막처럼 메마르고 척박한 땅. 티베트와 네팔은 우리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이 책에 게재된 민병일 선생님의 사진과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참으로 어렵고 힘든 여행을 하셨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이제는 다시 그분의 신간을 접할 수 없어서인지 그분이 남긴 티베트와 네팔 여행기는 나의 뇌리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젊은이들조차도 쉽게 여행을 결심하기 어려운 나라인  티베트와 네팔. 노작가가 그 땅을 밟고 여행하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눈에 선하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 머물며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고장이 잦은 낡은 차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장시간 달리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선생님이 이 여행을 회상하며 “내 생에서 가장 고된 여행이었다.”라는 고백을 남긴 것처럼 고난의 여행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여행에서 마주한 단상들을 보면서 티베트 사람들이 오체투지의 고행을 하는 것처럼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기쁨이 충만하였을 것 같기도 해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k*****1 2014.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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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冒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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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행에세이라고 하면 이국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설레임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의 티베트 네발 기행 산문집이라는 소개에 특유의 따듯하고 담백한 느낌과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의 풍경이 참 잘 어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이 모독? 왜 모독이지? 무엇에 대한 모독이지? 행여 다른 뜻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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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행에세이라고 하면 이국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설레임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의 티베트 네발 기행 산문집이라는 소개에 특유의 따듯하고 담백한 느낌과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의 풍경이 참 잘 어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이 모독? 왜 모독이지? 무엇에 대한 모독이지? 행여 다른 뜻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까봐 친절하게 한자로 冒瀆이라고 표기해주기까지 한 모독, 국어사전의 정의 그대로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박완서님이 지인들과 함께 만난 티베트, 20여년 전의 모습이니까, 티베트의 원형에 그래도 가까운중국화된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런 곳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중국화되어가는 변화의 한자락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도 했다. 포탈라 궁으로 순례를 가겠다고 걸어서 길을 떠나는 사람은 멀리 금박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면 발길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땅에서 기는 오체투지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목적과 과정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와 다른 티베트인들을 느낀다. 아마 그런 이질감은 초나 향의 향기로 익숙한 우리네의 절과 달리 버터기름으로 자욱한 티베트의 절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찾아가는 포탈라 궁은 달라이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을 떠나면서 비어버린 그런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분법 사고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그들에게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공존이 가능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빈 집, 혹은 빈 방처럼 느껴지는 그 공간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며 티베트만의 독특한 문화’, ‘자연 친화적인 자급자족 사회를 이루고 살아온 티베트에 한족들이 들어오면서 도리어 티베트인들은 획일화된 서구문명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당장 티베트 유목민의 집에 들어간 그녀도 그 방안에서 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문명화된 기구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여행객의 아니꼬운 심미안이라고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곳은 지금 그대로 아니 혹은 조금 더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유지되기를 바라거나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 남편인데, 나는 그럴 뉘앙스의 말을 할때마다 자기만 편하게 살려고 한다며 퉁을 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딱히 그런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할 길을 몰랐는데, 정말 딱인 표현이었다. ‘여행객의 아니꼬운 심미안 

그리고 티베트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보며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거의 피부적인 감각이라는 술회한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을 무시하는 한족과 별 다르지 않은 관광객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순환되지 않는 쓰래기들을 보며 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모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뭐랄까? 티베트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독특한 문화를 그려내기보다는, 그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색과 통찰을 글로 풀어내면서 도리어 티베트를 더욱 가깝게 그려낸 듯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팔의 이야기는 차라리 조금 더 쉬운 느낌이었다. 네팔을 배낭여행객의 쉼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 책에서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a******e 2014.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