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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이 기억하는 살아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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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부는 예로부터 지배층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에야 겉으로 명시된 신분이랄 게 없지만,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돌아다니기 위해선 어느 정도 레벨의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 입사해야만 한다. 하물며 신분제가 견고했던 과거에는 더 했다. 극소수의 지배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예 따로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왕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누가 왕인지를 모르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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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부는 예로부터 지배층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에야 겉으로 명시된 신분이랄 게 없지만,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돌아다니기 위해선 어느 정도 레벨의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 입사해야만 한다. 하물며 신분제가 견고했던 과거에는 더 했다. 극소수의 지배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예 따로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왕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누가 왕인지를 모르는 시대야말로 태평성대라 했지만, 애초에 왕이 누군지 알 기회 자체가 있긴 했을까 의심이 간다. 서로 스쳐지나갈 기회조차도 없던 시절, 그 경계에 놓인 것이 바로 성곽이었고 궁궐이었다.

여전히 서울한복판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이 위치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요 문화재인 이들 궁궐들은 외국인들이 방문했을 때 필히 들려야 하는 명소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됐는지라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분이 복원을 필요로 한다. 안타깝게도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에 의해 원형을 잃은 곳들까지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족하나마 현존하는 궁의 모양새를 통해 지난날 지배계층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풍장소일 것이고, 가족 나들이 장소이기도 한 궁이지만 엄연히 한 나라의 정사를 돌보던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궁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경복궁을 으뜸이라 일컫는다. 조선 건국 후 가장 먼저 지어진 정궁(正宮)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복궁은 임금이 공식적으로 나랏일을 보고 생활을 하던 법궁(法宮)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위치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북악산과 남산, 낙산과 인왕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청계천과 한강이 안팎으로 각각 흐르고 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이 언제나 옳지만은 않은 듯 경복궁을 대하는 왕들의 태도는 데면데면(?)했다. 초창기 왕권이 확립되기 전 경복궁은 왕자의 난의 배경이었다. 권력을 탐하는 첨예한 대립이 있던 장소를 꺼리는 마음에 정종은 개성으로의 천도 아닌 천도를 감행하기도 했다. 세종 시절부터 드디어 제대로 활용이 되는가 싶었으나 500년의 나라 역사에 비한다면 찰나였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등장할 때까지 폐허인 상태로 놓여 있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을 외면한 왕들이 좋아했던 곳이다. 별궁이었던 창덕궁을 왕들이 가장 좋아했던 까닭으로 저자는 역시나 지형을 꼽는다. 숲과 산자락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사생활 노출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는 게 그 이유다. 경복궁과 달리 자연친화적이란 점 또한 창덕궁의 매력이다. 십 년 전 즈음 개방된 후원의 경우 자연을 훼손치 않으면서 정원을 가꾼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소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성종이 정희왕후, 소혜왕후, 인순왕후를 위해 지었다는 창경궁, 세조의 개인집이었으나 임진왜란을 피해 의주에 갔다 온 선조가 거처로 택하면서 궁궐이 되어버린 덕수궁,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경희궁까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한 바퀴 돌고 나온다면 알고 나면 각 궁궐에 깃든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역사에 부침이 많았던 만큼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복궁은 형제간 칼을 겨눈 장소다. 창덕궁 돈화문은 이인좌의 난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으며, 창경궁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이 어머니의 비극을 접하고 폭군의 면모를 갖추어간 곳이다. 덕수궁은 제국을 꿈꾸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한제국과 깊은 관련이 있고, 경희궁은 아예 없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이 훼손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학창시절 국사과목은 단순암기 과목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반짝 암기했다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기 일쑤였던지라 당연히 흥미가 덜했다. 그나마도 요즘 아이들은 필수과목이 아니다보니 아예 제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대 순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데 저자는 장소를 통해 역사를 풀어냈다. 각 궁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 속 그날들을 펼쳐놓는데, 무심하게 둘러보았던 궁들을 향한 호기심이 일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간직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은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복잡한 심경을 안겨다준다. 당대를 호령하던 이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는 사실이 주는 쓸쓸함을 건물들은 과연 이해할까. 무생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궁에서 접하는 역사는 살아서 요동치는 생물과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그토록 느끼고 팠던 살아있는 역사, 생생한 역사를 궁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달의 사락 q*****2 2015.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