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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국내에 대중적으로 소개된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세계체제론은 종속이론의 아류 정도로 인식되어 왔으나, 90년 들어 기존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19세기 패러다임’ 비판 등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면서 세계체제론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월러스틴 등의 세계체제론자들에 의하면 현대세계체제는 세계자본주의체제라는 단일한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체제를 유지하는 기제는 계서제적 국제분업이며, 세계체제의 내부는 국제분업에서 고임금과 고이윤의 최상부를 장악하고 있는 ‘중심부’와 저임금과 저이윤의 하층부를 담당하는 ‘주변부’ 그리고 그 중간의 ‘半주변부’로 구성된다. 제3세계와 관련해서 세계체제론은, 제3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선진자본주의국, 반주변부=현존사회주의국과 NICs, 주변부=NICs를 제외한 ‘제3세계’로 구분한다. 세계체제론은 사회주의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자본주의국가와 다른 사회구성체적 특징을 인정하지 않고 “교환과 시장을 위한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를 파악하는 유통주의적(circulationist) 입장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단일한 세계자본주의 체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기준 : 계서제적 국제분업에서의 위치)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월러스틴은 ‘발전’을 그 핵심개념으로 삼는 19세기 패러다임에 대해 비판하면서(『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반체제운동세력을 자처하는 자들도 19세기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반체제운동』)[i]. 또한 그는 체제유지 세력과 비판 세력을 막론하고 행해지는 18세기 이중혁명에 대한 찬양이 결국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고 신랄하게 꼬집는다(『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그는 분석의 틀에서 세계체제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나뉘어진 계서제적 분업체계로 파악하고 20세기 자본주의 체제의 지도를 맑스나 레닌에 비해 보다 발전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소련과 같은 일국적 반체제운동이 그 조직화 과정에서의 권위주의(『반체제운동』)와 혁명 ‘성공’ 후의 국제 분업체계의 메커니즘(『역사적 자본주의 / 자본주의 문명』,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에 의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맑스의 ‘세계혁명론’을 계승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요컨대 종속이론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세계체제론의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세계체제론은 19세기 패러다임 자체에 대해 부정했다는 점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종속이론이 서구의 ‘발전’을 따라가고자 한 반면 세계체제론은 19세기적 ‘게임의 법칙’ 자체에 의심의 눈길을 던졌다. 그럼으로써 근대화 초기 전개 가능했던 비자본주의적 대안들의 위상을(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대안들을 두고 투쟁하는 ‘진정한 근대정신’을) 재고하게 하였다. 둘째, 그러한 부정이 철학 분과의 그것처럼 사변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계체제론은 푸코류의 이율배반이나 하버마스류의 관념화로 나아가지 않았다. 셋째, 분석의 틀을 전세계로 확장함으로써 세계사의 변동과정의 역동성을 적절히 포착해 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세계적 전체 차원에서의 이행전략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었다. 비록 세계체제론은 ‘정통 맑시즘’의 경제결정론적 관점으로부터 그람시, 레닌 등이 애써 부활시킨 ‘정치 우위’의 전통을 다시금 역전시켜 버린 듯하지만, 그간 반체제운동의 비과학적이고 낙관론적인 전망에 묻힌 채 잊혀져 왔던 ‘거대한 구조’의 실재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그것도 세계적 수준에서의-분석을 해냈다는 의의를 지닌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ž Wallerstein, Immanuel, 1983, Historical Capitalism, 1991, Capitalist Civilization, 나종일 · 백영경 역, 『역사적 자본주의 / 자본주의 문명』,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3. ž _____________________, 1991, Unthinking Social Science, 성백용 역,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4. ž _____________________, 1996, After Liberalism, New York: New Press, 강문구 역, 『자유주의 이후』, 서울: 당대, 1996. ž Wallerstein, Immanuel et al., 1989, Antisystemic Movements, 1992, “The Continuation of 1968”, 송순철․천지현 역, 『반체제운동』,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4. [i] 맑스는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부르주아의 진보성을 인정하였고 차후-부르주아 혁명이 필연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맑스의 이러한 낙관적 견해에 대해 월러스틴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맑스는 하나의 중요한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소 지나친 스미스주의자였고(경쟁이 자본주의의 규범이고, 독점은 하나의 왜곡이다), 또 다소 지나친 슘페터주의자였다(기업가는 진보의 담지자이다).”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Ⅱ, Academic Press, 1980, p.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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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가 삶의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세계 체제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명쾌한 분석은 일찍이 없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16세기 이래 지속되어 온 자본주의 세계경제 500년간의 역사사회학적 고찰로서 ‘세계체제분석’이란 사회현상의 개별적 독창성을 강조하는 역사학과 같은 개별기술적 분석양식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법칙정립적 양식의 경계들 자체를 철폐하고‘단일학문적(unidisciplinary)’연구로서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사회분석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세계를 인식하는 학문으로서 과학과 인문학의 분기(分岐)와 다시금 인문학의 과거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역사학과 현재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으로서의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의 분화를 근대성(modernity)이 지닌 시장, 국가, 시민사회의 분화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이어 유럽 등 서구의 자기중심적 시선에 따라 자신들과 다른, 즉 근대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은 세계의 연구로서 인류학과, 나머지 '고도문명(high civilization)'이라고 불리는 중국, 아랍, 페르시아, 인도 등의 광대한 지역의 연구로서 오리엔탈리즘의 분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45년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제3세계의 지정학적 자립의 선포, 미국의 세계체제 헤게모니 패권의 장악, 세계경제와 민주화 경향의 조합이라는 세계변동은 근대와 비근대의 개념 와해를 가져왔고, 이에따라 종전의 분류형식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으로서 대두한 잘 알려진 ‘발전(development)’론이라는 지적대안의 등장과 이들의 지식구조 기저에 자리잡고 있던 인식론의 의문으로서 핵심부-주변부 개념, 종속이론, 아시아적 생산양식, 봉건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 전체사(Total history)논쟁을 아우르는 세계체제분석으로의 진행과정을 명료하게 이해시켜주고 있다.
특히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소체제(minisystem), 세계경제(world-economies)와 세계제국(world-empires)을 포함하는 세계체제를 중심으로 핵심부적 생산과정과 주변부적 생산과정이라는 불평등교환의 현상에서부터 끝없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속성, 그리고 근대세계체제의 정체성으로서의 보편주의, 민족국가등 국가의 존립기반과 구성요소로서 자본가와 노동자, 핵심과 주변, 반주변국의 현상들, 지문화(geo-culture)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출현, 반체제운동 및 사회과학의 역할을 통해 작금의 세계체제 위기를 통찰해내는 이 저술의 일관되고 명쾌한 분석은 “내적 모순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고” 혼돈(chaos)에 휩싸인 오늘의 자본주의체제를 승계할 새로운 체제건설을 향한 탁월한 미래학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서의 근대 세계체제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우선‘끝없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그 첫째로 하고 있으며, 이 메커니즘의 성공적 행동, 즉 생산을 통한 잉여가치의 더 많은 축적을 위해 언제나 독점을 선호하는 자본가들의 행태를 조명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 유지키 위해 국가장치를 통한 지원으로서 특허권제도, 보호주의정책(보조금,세금감면등), 규제(중소기업은 치명적)를 이용하여 독과점을 심화시켜주는 자기파멸적 체제를 해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및 유럽 등 소위 선진국들로 형성된 핵심부적 생산지와 그 밖의 주변부적 생산지의 잉여의 왜곡된 흐름을 설명하는데 그대로 유효하게 적용된다. 즉 준(準)독점에 의해 통제되는 핵심부적 생산과정이 경쟁이 심한 생산과정인 주변부로부터 끊임없이 잉여가치를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국이나 브라질, 인도와 같은 핵심부와 주변부의 제품생산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섞여있는‘반(半)주변국’의 위치에 대한 성찰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유용한 시사를 던져준다.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규칙들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것”이라는 ‘보편주의’의 대표로서 능력주의, 만인의 평등과 같은 공적담론이 지닌 체제유지 수단으로서의 허위를 통찰하고, 핵심부-주변부의 기축적 분업(axial division of labour) 만큼이나 보편주의와 반보편주의의 대립적 양극현상이 이 체제의 근본적인 것임을 이해케 한다. 또한 국가의 역할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정이 지닌 비중립적 행태와 외형적으로는 ‘자유방임’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준독점이나 값싼 노동자의 유입을 통한 이윤의 보전, 생산자가 부담하여야 할 하부구조(도로, 항만, 교량, 공항 등) 비용의 비생산자에로의 이전과 같은 잉여의 왜곡된 흐름을 지적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잉여가치를 둘러싼 항구적인 갈등, 즉 ‘계급투쟁’을 낳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을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킨 프랑스 혁명초기의 보수, 자유, 급진의 역사적 성향과 경과를 통해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위계적 구조를 신뢰하며,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교육의 대상 확대도 거부하며, 교육은 엘리트 간부의 육성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에 대항하여 “재주만 있으면 어떠한 경력이든 추구할 수 있다.”는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를 주장하지만 “대신 군중에 대해서는 배워먹지 못한, 비합리적 존재들이란 인식하에 주도권은 전문가 집단만이 할 수 있다.”는 중도주의를 표방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으로 19세기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한다.
그러나 비록 실패하였지만 1848년부터 유럽 국가들의 연쇄적인 급진주의의 혁명은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구호를 공공의 영역에 까지 적용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으며, 바로 위와 같은 근대세계체제의 작동 메커니즘으로서 사회과학(경제,정치,사회학)이 1968년 혁명까지는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위한 지식 토대를 공급하는 역할이 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1968년 이후의 반동은 기득권 세력이 질서를 회복하고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윤압박으로 인한 당면한 어려움을 남반부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소하고, 발전주의를 폐기하는 대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오게 한 역사적 전환점으로서의 의의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경제체제의 남반부를 통한 이윤압박의 해소를 위한 시도는 분명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축적에 필요한 수요의 한계에 봉착했으며, 궁극적으로 경쟁판매자의 존재여부와 유효수요의 수준으로 인한 가격인상의 딜레마, 갈수록 증가하는 생산비용의 해소를 위한 시골인구의 상실, 폐기물 매립지와 자연자원의 고갈이라는 한계를 극복키 어려운 극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근대자본주의체제는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치고 있고, 체제위기라 부를 만한 상황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체제들은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생산에서의 이윤압박을 피해 금융영역으로 이동을 추구하였지만 이는 혼돈을 증가시키는 역할만 하였을 뿐, 세계경제는 더욱 불안하고 환율과 고용의 오르내림에 종속되어버렸다. 본질적 분분이라는 모든 구조와 과정들이 격렬하게 요동하는 이 혼돈의 시기는 새로운 체제의 이동 내내 지속될 것이다.
21세기 지금에 이르는 인류사회는“상대적으로 긴 시기에 걸쳐 높은 수준의 폭력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러한 분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참가자들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체제건설에 참여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체제는 어떠한 형태일 것인가? 다만 저자인 ‘월러스틴’은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의 문제로서 현존하는 우리의 세계체제를 계승할 다음 체제로서 “다수의 자유와 소수의 자유를 모두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과 다수의 자유나 소수의 자유 둘 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위장한 채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데 그치고 있다.
아마도 그가 그리는 새로운 체제는 결국 다수가 스스로의 자유를 깨닫고 소수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다수가 취해야하는 필수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비록 200여 쪽에 불과한 저술이지만,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정도로 지금의 세계체제를 형성하는 탁월한 논리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우리와 우리사회를 인식하는 데 명쾌한 구조적 지식토대를 제공한다.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문화(geo-culture)를 지배해 온 근대자본주의체제는 붕괴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식 신자유에 기초한 시장자본주의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지배층들은 보다 거시적인 안목의 세계질서를 이해하고 나아가 도래할 신질서를 창조하는데 중추적 역할자로 참여할 수 있는 사상적 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하겠다. 오늘을 형성하는 근대세계체제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명쾌하고 지적인 저술은 다시는 출현키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이 필독하여야 할 20세기 최고의 저술이라 함에 주저치 않겠다. |
| 세계가 구조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그 구조를 구성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관계에 대한 설명을 한 구조주의라고 이야기 할 정도의 내용을 확립한 한 세계 경제 분석의 한 툴이라고 이야기 한다. 월러스틴도 자신의 세계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을 구지 신 자유주의나 신 보수주의 경제학파적인 내용으로 바라보는 것 이외의 대안적인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될만하다. 세계 구조주의는 쉽게 말해서 중심부-주변부. 이런 관계에서 중심부에 있기 위해서 헤게모니 형성과정과 헤게모니의 장악과 쇠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해 주었다. 구조적인 세계를 분석하다보면, 상당한 부분의 정치적인 영향을 이야기 한다. 특히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력과 군사력인데, 대개 경제력의 우위로 부터 헤게모니를 형성하여, 군사력을 강화시키는데,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다른 부분에 있는 국가들이 경제적인 성장을 노력하여,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앞서기 시작하여, 최대 강국의 헤게모니의 안정성이 위험을 받으면서, 군사력으로 제압을 유도한다. 이러한 이론이 바로 현대 미국에게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을 듯 싶다. 또한 9.11 사건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약화되고 있는 경제력을 타개 하기 위한 군사력 위주의 세계 조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군사력만의 강화가 헤게모니를 유지시켜줄 근본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또한 이야기 해 주었다. 각 구조 단계별, 주변부와 중심부 사이의 착취와 복종 면에서 바라 보았을때, 주변부로 고착된 나라의 경우, 중심부로는 다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해 지는 체계주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기도 한다. 따라서, 이 구조주의 이론은 현 상황에 따른 경제 이론과 관계 없이, 각 국가간의 역학관계에 대한 내용을 바라보았고, 분석하였다. 아직 구조적인 세계 체계의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고착되어지기 전에,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은 노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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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세계체제에 대한 논의는 월러스틴을 중심으로 이뤄지(기만 하)고 있고, 그 외의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월러스틴이 가장 저명한 그리고 깊이 있는 논의를 들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특정인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서 그의 저작들 대부분이 번역될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많은 저작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기는 했지만 (그런 점으로 인해서) 세계체제에 대한 논의에는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무언가에만 편중되어서는 좋지 않은 법이다. 그의 시각의 핵심이 담겨져 있는 ‘근대세계체제 1~3’은 다양한 자료들과 기나긴 시공간을 배경으로 근대(자본주의)세계체제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들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소상히 다루고 있는데, 폭넓은 자료와 그동안 한국에서는 소개되지 못했던 지역의 경제와 역사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읽음으로 인해서 기존의 역사관과 세계관으로는 깨달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고 있고, 보다 폭넓은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도록, 노력하도록 만드는 저작이었다.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는 ‘근대세계체제 1~3’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체제에 대한 논의를 접근할 수 있도록 월러스틴 본인이 직접 써낸 개론서와 같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은 접근하기가 편하면서도 그의 논의의 핵심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체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강의록을 토대로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명쾌하고 간결하면서도 자신이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분야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어서 꽤 매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월러스틴의 논의의 핵심은 거칠게 말해서 ‘페르낭 브로델의 새로운 역사관과 맑스(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근대세계체제에 대한 분석’과 이전 체제와 지금의 체제 그리고 앞으로의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세밀하게 각각의 분석을 이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체제의 변화의 흐름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이 체제가 어떻게 변화될지를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고 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근거 자료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논의에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런 자신의 기본적인 시각과 논의의 핵심에 대해서 그는 초반 부분에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고, 지금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어떻게 진행을 했고, 지금 현재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설명을 하고 있다. 이후의 논의들은 세계체제에 대한 분석보다는 (최근 그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국가와 이데올로기 문제’ 그리고 요즘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학문 간의 통합’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고, 말미에서 현재의 체제적 불안이 단순한 불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헤게모니의 한계’로 볼 수 있고, 이 헤게모니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체제 또는 헤게모니로의 이행’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며 그 이행에서 두 개의 시각(쉽게 말해서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의 시각에 무게감이 주어지느냐에 따라서 이행의 방식과 이행의 결과가 정해질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논의들은 이미 이전에 들려주었던 논의들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의 새로운 시각이나 논의를 접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느낌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문에서 밝혔듯이 세계체제에 대한 논의에 관심을 갖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전반적인 자신의 시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꾸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도에는 충실한 구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러스틴 자신이 써낸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세계체제에 대한 개론서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고, 그동안의 자신의 논의와 생각들을 되도록 쉽고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월러스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읽어보아야 할 것 같고, 그가 현재 어떤 입장을 갖고 자본주의와 근대세계체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근대세계체제 1~3’을 접해야지만 보다 더 그의 논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시간관계 상 이것으로 대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읽어야 할 것은 수도 없으니까. 참고 : 과연 그의 ‘근대세계체제 4권’을 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어쩐지 쓰려다가 그만 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