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읽었던 고전들을 지금 읽으라고 하면 읽을 수 있을까? 세월은 내용에서만 차이나는 것이 아니다. 문체에서, 내용을 노래하는 어조에서 극과 극일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매혹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왜 변신이야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서양문필가는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모태, 자궁, 혹은 오리진, 그렇다. 서양의 모든 문학이 비롯하는 원전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없는 이야깃거리로 가득 차 있다. 하나하나 뜯어 읽으면 그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다. 샘(아레투사)에도 풀에도 꽃(아네모네, 수선화)에도 그리고 돌덩이(니오베)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차고 넘쳐 단 한 두줄만 떼어내도 길고 긴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그들, 서양 문학은 그 한 두줄을 놓치지 않고 발전시킨 이야기들로 혹은 비틀고 변형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생각 근저에는 언제나 오비디우스가 있다. 그러니 어찌 샘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저 외전 정도로만 알았던, 알지 못했던 신들의 이야기 또한 들어 있기에 변신 이야기는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장면 묘사는 어떨까. 아름다운 장면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름답게 묘사된 것은 당연하다. 요정들과 사랑과 그리고 신들. 그러나 잔인하고 거북한 장면마저 그런 식이라면? 지독히도 잔인한 전투와 살육장면, 어쩌면 그리도 끔찍한지 내용을 떠올리고 내가 읽은 게 맞아 하고 다시 들여다 볼 정도였다. 그처럼 읽기 괴로운 싸움을 엮어가는 와중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묘사는 잊지 않았다. 비록 죽어가는 이라 하더라도, 그가 술에 취해 있다가 그저 죽음을 맞더라도 혹은 사악한 행위를 해서 영웅인 주인공이 죽여야 하는 적임에도 불구하고 적에 대한 묘사는 사뭇 아름답다. 시인은 그 모든 인물들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 싸워야 하는 삶이 허망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삶이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에 그랬던 것일까. 아마도 이런 오비디우스의 시각이 다른 시인들이 일리아스나 다른 고전들을 써나가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오비디우스의 시각은 지극히 공평하다. 그러나 묘사는 현란하고 장황하다. 익숙지 않은 운문체라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현대에 사는 우리가 접하는 문체와는 사뭇 다르고 묘사가 길기에 단숨에 읽어내리기 벅차다. 그 모든 서양 고전이 그러하듯이. 오뒷세우스가 그러하듯이 일리아스가 그러하듯이 사뭇 벅차다. 아마도 우리가 산문체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빠른 속도감과 군더더기 없는 성마른 묘사, 어쩌면 현대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문체에 익숙한 탓일 것이다. 우리는 짧은 문장에 익숙하고 하나를 말하는 문장에 익숙하며 그런 문장이 잘되고 좋은 문장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오비디우스는 길다. 한참 정말로 하안참 길다. 문장만 긴 게 아니다. 책 또한 한참 넘어가야 한다. 798쪽 책이 두꺼워서 긴 게 아니다. 그 안에 포함된 이야기가 너무도 많아서 길다. 마치 하나의 문화처럼 한 종족의 역사처럼 그렇게 길다. 라틴어 원문을 옮겼기에 신들의 이름은 낯설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름이 아니라 다른 별명을 많이 사용했고 그런 별명 때문에 이 신이 그 신인가 하고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시 돌아가 설명을 읽었다. 윱피테르, 포이부스, 박쿠스, 쿠피도, 베누스... 지극히 익숙한 신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껏 알아왔던 신들의 이름은? 헷갈리는 순간이다. 한가지 더! 여성은 여기에 없다. 여성은 어디까지나 사랑을 나눌 대상이고 희롱 대상일 뿐이다. 신도 인간도 아름다운 여성을 납치해 욕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상대가 원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끝까지 여성을 좇아가 기어이 욕심을 채우거나 아니면 그 여인을 나무로 혹은 물로 만들어버린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택하도록 만든다. 여신이 같은 여성을 보는 눈도 그러하다. 아라크네를 보라. 이오를 보라. 변신 이야기는 며칠에 걸쳐 읽어내릴 책이 아니다. 두고 두고 하나씩 떼어 읽어야 할 책이다. 어쩌면 누구나 가져야 할 책이되 영원히 끝까지 읽지 못할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참고 읽어야 하리. 줄쳐가면서 아니 정리해가면서 읽어야 하리. 이런 책은 진즉에 나왔어야 했다. 우리가 미흡한 지식에 빠져 허우적대기 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시대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
|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독자 편의를 내세워 운문체를 산문체로 바꾸거나 첨삭이 가해졌던 민음사의 <변신이야기>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는 무엇보다도 행수 표시가 되어 있어 영어판과도 대조할 수 있어 좋다. 그만큼 번역에 자신이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급의 고전 번역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거의 직역 수준인데 놀라울 만큼 술술술 읽힌다. 이것은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오비디우스의 문체가 이 번역본에서 최대한 살아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그리스 신화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데서 나아가 오비디우스가 서양문학에 그토록 오랫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라는 것을 유감없이 증명해준다. 이런 작품이 2000년 전에 쓰여졌다고 생각하면 고대인의 사유가 놀랄 만큼 자유로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0년 후 인류는 지금의 인류로부터 어떤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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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이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내비치기에, 강력 추천한다기에, 고가에도 별 망설임 없이 (잠깐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생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구입했고, 읽었다.
그런데 결과는? 빌려볼 걸 그랬다. 역자의 라틴어 실력은 내 뭐라 할 바 못되나 역자의 우리말 실력은 음... 언급을 회피하고 싶다.
원전의 운문체를 살렸다하나, 행갈이만 했다고 운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문과 차이 없는 번역투 문장에 행수 표시한 노고를 더했다고 칭찬받을 일은 더욱이 아니다.
그리고 직역을 한다고 해서 우리말의 가독성을 버려서는 안될 일이고, 어휘선택에 좀더 자의식적인 개성을 가져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말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대명사의 무분별한 남용과 문맥에 적절하지 않을 것만 같은 어휘 선정 덕택(?)에 읽다가 되돌아가 다시 읽은 구절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한 마디로 읽는 재미가 없었다. 줄거리 요약해내고자 문학 저서를 읽는 것은 아닐 테니까.
원전을 번역한 것이라 광고를 때릴려면 그에 값하는 뭔가를 보여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많이들 비교하시기에 언급하지만) 민음사의 이윤기 번역은 중역이라 하나 원전을 번역했다는 이 책과 비교해 함부로 폄훼될 만한 책이 아니다. 이윤기가 선택한 어휘의 탁월함과 품격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윤기의 역서 또한 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외려 가독성을 살리려 산문체를 선택했다는 이윤기의 번역에서는 운율과 음악성이 느껴진다. 그건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 일이다.
원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조탁하는 세심한 노력 또한 역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싶을 뿐.
암튼 겉포장의 무게만은 엄청 무거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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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군에게 지난 봄이었을까, 마침 할인하는 중이라서 아까운 기회다 싶다며 발송지를 내 사무실로 해서 보내준 책이 한 권 있었네. 가끔씩 만날 때마다 그리스 신화나 비극 등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얘기를 자네는 자주 들려주곤 했지. 왜 막장 드라마 타령을 하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복수를 다룬 영화가 무던히도 많이 나오는데 과연 그 작가들이 혹은 연출이나 감독을 맡은 이들이 신화나 비극을 제대로 소화했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면서. 그나마 소프트한 책이라면서 자네가 보내준 책이 바로 변신이야기였네.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그리고 자네가 덧붙이기를, 속담이나 고사에서 나온 얘기가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로 굳어진 경우가 있는데, 변신 이야기를 읽으면 어디서 봤거나 들었던 익숙한 얘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고, 그리고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그리스 신화나 비극을 읽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꼭 인터넷에 익숙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네만, 하루하루 살아가노라면 책읽기가 쉽지가 않았네. 아마도 이것은 난독증이라고 하나, 비단 나만이 아니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상당수의 어른들까지 겪고 있는 집단적인 난독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 어쨌거나 일부 펼쳐보기는 했으나 사무실 책꽂이에 변신이야기는 몇달째 꽂힌 상태였고, 나의 업무와 상관없어 보이는 그 책이 왜 거기 있는지, 동료나 부서장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던 적도 있네만,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네. 그리고 며칠 전, 자네는 내게 전화를 했지. 최근에 3권이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 1,2권은 작년에 나왔고 3권이 올해 나왔는데, 그야말로 단숨에 사흘에 걸쳐서 읽었다고, 그리고 지난번에 드린 책은 읽어보았느냐 물었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네,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앗지만 차리리 난독증 증세가 보인다고 했어야 할려나. 그렇다면, 변신 이야기의 10권(부)에 해당하는 부분만 읽고서 조금 한가한 시간에 전화통화를 하자고 했네. <1Q84>를 읽고 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아버지와 10살 정도인 딸 사이에서 민망한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소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런 내용-성폭행에 가까운-을 그럴 듯하게 꾸며놓았다. 잘 빚어내면 외설적인 내용도 예술이 되는 것이고..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사랑'이랄까 그것이 변신이야기에도 나오는데 한 차례 읽고서 얘기하자고. 늦은밤 퇴근을 미루고 밤 열시무렵까지 변신이야기의 10권을 읽었네, 주석까지 촘촘하게 읽고 퓌그말리온의 가계도까지 노트에 그려가면서 말일세. 내용은 충격적이었네. 신화 속 인물이 베누스(아프로디테)의 장난 같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사랑하게된 뮈르라('뮈르라의 광기')의 얘기는 안타깝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고, 정확히 표현하면 소화하기가 좀 불편한 내용이었다네. 아버지를 죽여야 했고 어머니와 동침하여 형제이기도 한 아들과 딸들을 낳아야 했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비극을 읽지 않더라고 아는 내용일 것인데, 그래도 오이디푸스는 모르고서 저지른 일이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 키뉘라스를 연모하게 사랑하게 된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까지도 하게 뮈르라의 운명은 모질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더군. 해서 자네에게 전화를 걸었네. 불과 몇 마디도 안 했는데, 자네는 마치 그럴줄 알았다,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자네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더구만.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는데, 이러저런 사랑 이야기로 가득한 훌륭한 책에서, 그 사랑해서는 안 될 한계를 애써 보여줌으로써 어쩌면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일세. 그리고 자네와 나는 그 늦은밤에 만나야 했네. 아니, 그토록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자네의 태도, 그리고 내가 받았던 충격의 깊이, 그 차이를 뭔가로 메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네. 지금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편의, 아니 여러 종류의 사랑이야기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다양한 러브스토리들을 읽으면서, 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자네가 꼭 짚어서 읽으라고 한 10권은 확실히 쎈 이야기구나 싶어, 자주 웃곤 한다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지만, 자네가 쓰고자 했던 글을 늦지 않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네. 신화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이 만든 이야기로, 신적인 권능을 부여한 것 아니겠나. 인간이라는 필멸의 존재로서의 나약한 운명에 비하면 불멸의 존재로서 다양한 권능을 지닌 신적인 힘에 의탁하게 싶은 마음들이 간절했을 것이야, 그런데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당대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베스트셀러작가라는 생각이 든다네.
바다도 대지도 만물을 덮고 있는 하늘도 생겨나기 전 자연은 세상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카오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원래 그대로의 정돈되지 않은 무더기로..
장중한 서사극의 프롤로그를 보는 듯한, 변신이야기(첫 구절)의 세계에 빠져들었네. 늦지 않게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서 왜 변신이야기를 펼쳐보라고 했는지, 그에 대한 설명쯤에 해당하는 자네의 글을 보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무리할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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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책의 맨 끝장에 나오는 이책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책이름이 변신이야기 입니다. 저는 아주 우리말로 바꿔서 탈바꿈이야기 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실제로 제가 한 열번 정도 나눠서 동네 사람들 한 열분에게 이 책의 내용을 강의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진화론은...바로 생물의 종이 바뀐다는 것이고.. 즉 자손들의 모습이 먼 과거 조상의 모습과 다르게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현재의 생물의 모습과 똑같이 처음에 모든 생물을 만든 것이 아니고 처음에 수 개 이내의 생물을 만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다른 생물이 갈라져 나와서.. 수 많은 다른 생물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의 모든 생물은 처음에 몇 안되는 생물로 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 진화론 입니다.
변신이야기는 인류최초의 진화론입니다. 물론 그당시엔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어서.. 신의 힘으로 변했다는 것이지만. 그 당시 오비디우스 같은 사람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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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작품을 많이 봤구나 싶다. 만화로 본 헤라클레스(여기서는 헤르쿨레스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 <트로이>(여기서는 트로이야). 내 인생에(아직 인생이라 표현할 정도로 긴 삶을 산 건 아니지만…)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있다. 예전에 만화나 영화로, 혹은 어린 시절 단편단편 책으로 보아왔던 작품들이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원전이었고, 그리고 이 책이 그것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이 책이 서양 문학을 이해하는 양대 산맥 중 하나구나, 하고 싶었다.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읽는 타입이 아니라서 다 읽는 데 며칠 걸렸지만, 읽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이 별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독서부 선생님께 다 보고 감상을 이야기하니, 다음 책은 <아이네이스>보다 <일리아스>를 먼저 읽으라고 했다. 고전 일기에도 순서 같은 것이 있다 하셨다. 게다가 <트로이>를 재미있게 봤다면 <일리아스>를 읽지 않으면 섭섭하다나?
책의 두께를 보니, 어이쿠. 변신이야기와 거의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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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다룬 이야기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대 출전은 단연 <변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고전이 완역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완역본 출간이 이렇게 늦었다는 것에 개탄해야 할지, 뒤늦게라도 출간되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로서의 입장이야 단연 후자이다.
책을 펼쳐보고 맨 처음 놀랐던 것은 운문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라틴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다르건만 2행 이상 차이나는 부분도 없다고 한다. 어감을 살리면서 번역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은 일이건만, 이런 부분에까지 신경을 쓰다니! 한국어 문장으로는 도치구문이 되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는 했지만, 난 시 형식을 살린 완역본이라면 이 쪽이 맞다고 본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풍부한 주석이다. 주석을 본문 뒤에 따로 모아 편집하지 않고, 본문 아래에 작은 글자로 일일이 달아놓았다. 덕분에 본문과 주석 파트를 오가느라 수백 페이지씩을 헤집을 일이 없어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읽는 흐름이 종종 끊어지는 느낌을 받는데다가, 독서에 괜히 부담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지!
'축약본이 많이 출간된 상황에서의 완역본'이기에 가능한 번역도 눈에 띈다. 21세기의 한국인에게는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얼마든지 쉽게 표현할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여러 신을 별칭으로 부를 때 이 점을 가장 절절하게 느꼈다. 트리토니아(아테나), 브로미오스(디오니소스) 등 듣도 보도 못한 신의 별칭들이 주르륵 나오는 대목에서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특히 뒷부분에 이런 별칭이 다시 나올 때, 앞에 나온 주석의 번호를 명시하면서 '몇번 주석을 참조할 것'이라는 주석이 나올 때는 그야말로 울고 싶었더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결국 책을 놓고 좀 쉬었다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었다. 덧붙이자면, 이런 경우에는 앞에 나온 주석을 찾는 것보다 색인을 찾는 것이 훨씬 낫다. 색인에는 별칭 같은 건 원래 이름을 병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번역본이 한 권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원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책 말이다. 문득 이윤기 씨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면서 덧붙인 역자의 말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누구나 읽기 쉽게 번역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면서, 현미경 같은 번역을 원한다면 시중의 다른 번역본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었다. '현미경 같은 번역'이라. 정말 이 책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번역본을 원하는 독자도 다소 적지만 분명히 있다. 저작권이 있어 독점계약으로 출간되었다면 너무 현학적인 번역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번역본이 있는데 학문적인 요소를 강조한 번역본이 더해진다면 그런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다.
아무리 완전무결하다는 평이 아깝지 않은 번역이라지만, 너무 번역 이야기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터이니 책 자체로 넘어가겠다. 번역이 워낙 철저하다 못해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까지 풍기지만, <변신 이야기> 자체는 그야말로 재기발랄하다. <변신 이야기>의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나 구조가 그렇다.
읽다 보면 그야말로 물 흐르듯 술술 읽힌다. 떼어놓고 보면 거의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한 줄로 엮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이어나가는 재주도 단연 뛰어나다. 따지고 보면 옴니버스 물이라는 표현도 어색할 정도로 통일성이 없는 이야기들을 모은 에피소드 모음집이지만, 읽다 보면 흐름이 끊긴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내가 읽으면서 가장 웃었던 부분은 '카이사르의 신격화' 챕터였다. 카이사르의 수많은 업적 중 으뜸가는 것이 아우구스투스의 '아버지'라는 구절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 아버지라는 표현이 단순히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의미인지, 양부자 관계였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권력층을 의식한 구절'의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것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고스란히 흡수하여 재창조했다. 그리고 <변신 이야기>는 그런 로마 신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이다. 그런 <변신 이야기>를 완전무결한 번역으로 읽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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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하였습니다. 제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꽤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신들의 그리스식 이름, 로마식 이름, 별명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읽었는데, 이제는 숙숙 읽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이번에는 내용 위주로 읽고 말았는데, 이야기가 짧고 지루할 수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신들의 이름에 익숙해지면, 두꺼운 분량이라도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에는 묘사에 매우 감동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존 밀턴이 <실낙원>을 쓸 때, 이 작품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데, 밀턴의 것이 더 길기는 하지만, 오비디우스의 서시와 비슷하여서 '아하~! 진짜 그러네' 했습니다. 이 작품은 다른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서사시 형식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내용은, 신화의 내용을 평가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의 행동이 무척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이집트 신화도 중국 신화도 잔인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것에서 따로 상징을 찾아내어 읽는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묘사 중심, 이야기 중심으로 그리고 내용을 기억하려는 방향으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신화들에 비해서 매우 남성적이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 부분입니다. 가장 첫 부분인데, 카오스에서 코스모스가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고 그 틀도 빅뱅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자연을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환유적인 부분들은 이야기 전체에서도 계속되고 또 그것 때문에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기도 하지만 계속 같은 명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 멋스럽습니다.
많이 읽어볼 생각인데, 튼실해서 좋습니다. 구성도 깔끔하고 글씨 크기도 작지 않고 서사시 형식이기 때문에 읽기 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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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번역서인 만큼 오비디우스라는 작가의 문체가 섬세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오비디우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변신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리스 신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책의 두께만큼 방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다지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이 아마 정확한 번역의 힘이 아닐까!
나에게 그리스신화를 원전으로 읽는다는 것의 느낌은 흥미로웠다. 어렸을 때 어린이들이 보는 쉬운 그리스신화 책에 실려 있던 월계수나무가 된 다프네의 슬픈 이야기가 아직도 내 기억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제 20대가 되어 <변신이야기> 속의 생생한 다프네를 만나니 어렸을 때 그리스신화를 읽으며 신들의 세계를 부러워하던 어린 나를 추억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큐피드의 화살이 필요한 순간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내게 이 책은 재미도 있으면서 신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채워주었다. 새로운 느낌의 그리스 신화. 그러나 이것이 진정 그리스신화의 본령이리라. 원전에서 빼거나 보태거나 추린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부록으로 실린 그리스 지도, 에게해의 세계와 이탈리아의 지도가 있어서 책을 읽으며 내용에 맞는 위치를 상상하며 읽을 수도 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 신화 속 에피소드들을 그리거나 조각한 유명 작품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그것 또한 예술가의 상상력의 원천을 알려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쪽엔 문외한 나에게 미술작품을 하나라도 더 알아가게 이끄는 고마운 도판들이었다.
‘호박’이라는 보석이 생긴 이유가 오라비 파에톤의 죽음을 슬퍼한 헬리아데스들이 미루나무가 되고 그들이 흘린 눈물이 호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흘린 눈물은 무엇이 되었을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지금 무엇이 되어 그들 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무엇이 될까? “사람은 열 번 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변신 중이라는 뜻일 거다. 그리스신화에는 인간사의 다양한 은유와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 있고,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는 금광과 같은 작품인 셈이다. ‘윱피테르’가 아내 ‘유노’ 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유노’가 올 것을 알고 그의 상대인 ‘이오’를 암송아지로 바꾸어버렸다. 최고신 윱피테르(제우스)는 왜 그렇게 많은 바람을 피우고, 많은 자식을 만들어야 했을까? 그것이 단지 인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신들의 사랑과 질투를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일까? 그 이상의 신들의 섭리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 신화를 재미있게 읽고 난 뒤 각자가 생각해볼 가치 있는 연구 과제이므로 나의 생각은 밝히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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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약 300년 동안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서히 패권을 서쪽의 로마인들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우리도 잘 아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나라.)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고 이집트가 로마에 합병됨으로써 그리스인들의 눈부신 문화를 구가했던 헬레니즘 시대는 끝나고, 지중해의 패권은 완전히 로마인들이 장악한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유피테르나 넵튠 같은 신들을 제우스나 포세이돈 같은 그리스 신들과 동일시했고, 덕분에 그리스 신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침략자인 로마인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파괴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되어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책, 변신 이야기는 그러한 로마인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리스 신화를 담고 있다. 원래 그리스 신화의 원전인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아보다 후대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신화의 세부적인 내용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원래 신화라는 것이 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전부 제각각으로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라, 크게 염두에 둘 건 없는 듯하다. 그리스 신화 내에서도 전승이 여러가지고, 한 예로 하늘을 떠받치는 티탄신 아틀라스가 어떻게 아틀라스 산맥이 되었는가? 에 대해서도 페르세우스가 내민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변했다는 내용도 있고, 반면 아틀라스가 산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계속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식으로 전혀 상반된 내용도 전해져 오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서로 제각각 다른 내용의 그리스 신화들을 음미함으로써 다양한 시각이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노래나 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책이라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지 모르나, 다행히 나는 별 어려움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본문에 더불어 번역한 천병희 교수가 달아놓은 상세한 해석들도 방대한 원문을 읽으면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