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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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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과제를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 “발터 벤야민을...어렵다.다 아는 글자임에도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공부 잘 하는 딸에게 하소연해 본다.“일단 읽어. 그럼, 어느 순간 딱 하고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거야“그래, 우선 읽고 주목해야 될 문장들을 적어보았다.딱 하고 아는 것까진 아니여도, 약간은 알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행이다   관상학(자세히 보는 것)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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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과제를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 “발터 벤야민을...

어렵다.

다 아는 글자임에도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공부 잘 하는 딸에게 하소연해 본다.

일단 읽어. 그럼, 어느 순간 딱 하고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거야

그래, 우선 읽고 주목해야 될 문장들을 적어보았다.

딱 하고 아는 것까진 아니여도, 약간은 알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행이다

 

관상학(자세히 보는 것)

도시는 모나드(monad 넓이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이 상태)이다. 발터 벤야민은 도시풍경을 통해 도시의 관상을 제시하려 한다. 도시의 관상은 대도시 환경에 대한 독해이자, 암호해독이며, 이 관상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 구조속에 위치한 사회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다. 도시 환경은 인간의 사회적 활동 양식에 대한 반응이자 구조이다. 건축과 인간의 행위는 틀이자 무대이다. 인간 주체는 도시의 건물들, 건물 내부환경과 같은 틀 속에 인간 실존 양식의 실마리이자 지나온 경과의 표시인 흔적을 남긴다. 살아가는 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도시 거주민들도 흔적을 남기며, 도시 관상학자는 흔적의 의미를 해독한다. 관상적 독해는 대도시의 외적, 표면적 현시(顯示)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물의 표피 밑을 관통하는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는 벤야민의 비판적 기획이다.

 

도시는 독해하는 공간이다. 관상학적 독해는 사물의 표면 밑으로 파고들어, 사물의 핵심을 관통한다. 벤야민은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공포와 추한 것 속에 파 묻혀 있는 아름다움처럼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려 한다. 비판적으로 가면을 벗겨내야 한다. 관상학적 시선은 대상의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독해하고 최후의 순간에 느끼는 사랑이다.

 

현상학(경험)

도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경향이 포괄하는 경험의 성격이 다양하게 변형되는 장소이다. 변형의 과정에서 강화, 무의미화, 단편화, 축소, 물신화와 격리가 생겨난다. 대도시적 삶을 규정하는 특성은 상품에 대한 욕망이며, 그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욕망의 상품화이다. 에로틱한 충동은 관음적이고 비유기체에서만 만족을 발견한다. 부르주아 남성에게 상품은 육체가 되며(물신화), 육체는 상품이 된다(매매춘) 물신화된 상품은 섹슈얼리티의 실내 유체와 결부되어 있다. 섹슈얼리티는 사적인 주거지의 죽은 영역에 숨어 있지만, 현대 대도시에서 에로틱한 대상은 백화점의 진열장에 지속적으로 전시된다. 사적 영역의 어두운 구석은 부르주아 시민의 판타지를 위한 은신처이다. 비유기체와 물신화된 삶의 실내화는 경험의 제거와 경험의 축소로 귀결된다.

 

신화(판타스마고리아 환영, 환상)

벤야민은 신화를 비유와 은유의 의미로 사용한다. )오디세우스의 사이렌 만남

배를 안전하게 젓기 위해 뱃사공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돛대에 묶게 하였다. 오디세우스만이 사이렌의 유혹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노래에 반응 할 수 없다. 욕망과 소망은 일깨워졌지만 방출될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뱃사공들은 계속 노를 젓지만 오디세우스는 피학적 고통을 견뎌야 한다. 대도시는 인간에 의한 자연정복과 굴복을 기념한다. 현대의 대도시는 과거와 현재의 현혹적인 환상을 보여준다. 지속적인 진보에 대한 약속과 끝없는 개선은 자본주의의 속임수이다. 도시는 비판적 사유가 아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유발하는 허위의식과 현대 신화의 고향이다.

 

역사

변증법적 모델 : 벤야민은 변증법적 이미지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순간적인 상호 인식과 깨달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를 지금 여기에 잔존해 있는 폐허로부터 거꾸로 읽어야 한다. 역사는 파괴적 기획이자 동시에 회복하는 기획이다.

 

역사주의는 역사를 연속성과 진보로 보는, 과거에 대한 역사주의적 화법이다. 역사는 현재에서 정점에 달하는 직선적 진보의 사건들의 연속물로 파악된다. “현재는 파국이라고 정의하면서 파국은 진보이며, 진보는 파국라고 덧붙인다. 신화의 지속을 부정하는 역사주의는 현대성의 판타스마고리아에 동참한다.

 

정치학

벤야민은 부르주아 세계를 냉소적으로 보았지만, 냉소는 쉽지 않았다. 벤야민은 일관되지 않고 간헐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참여하면서 비판한다.

 

텍스트(기민한 언어/ 인영과 몽타주의 원칙)

이미지를 통한 접근, 원근법에 대한 관심, 도시 풍경은 그림이 단어가 되는, 본 것을 쓰인 것으로 번역하려는 시도, 시각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다공성(多孔性)

다공성은 현상 사이의 명확한 경계 없음, 하나의 사물 안으로 다른 사물이 침투하는 것,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혼융을 지칭한다. 도시는 공간적으로 질서없으며, 사회적으로 혼합되어 있고 무엇보다 덧없다. 다공성은 도시환경의 혼란과 혼미라는 인식을 돋보이게 한다.

 

자서전, 소외, 확장

벤야민의 글들은 유년시절의 잃어버린 시간뿐 아니라 대도시의 감춰진 균열들까지 찾으려 한다.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은 조정되고 통제되는 정신활동의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그 기억들은 현재의 감각이 잊고 있던 과거의 경험을 갑작스러운 연상 작용과 인상을 통해 상기시켜준다.

 

벤야민의 도시연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소외와 외국인이 되는 경험을 전달하려는 시도로 구성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잘 알고 있는 공간에서 다시 한번 이방인, 외국인이 되기 위해 유년시절의 도시에 대한 인상과 이미지를 그려낸다. ‘처음으로’..친숙하지 않은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베를린을 다시 방문한다

 

대도시는 신화와 상품 숭배의 장소라는 초현실주의적 인식이 파사주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벤야민에게 파리는 판타스마고리아의 고향이었다. 이른바 꿈꾸는 집합체와 건축물들이 판타스마고리아를 우글거리게 하고, ‘진보개념, 상품물신성과 유행을 만들어낸다.

 

벤야민 분석의 핵심은 가장 새로운 것은 이미 있었던 것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행은 낡은 형식으로 반복적으로 되돌아 간다. 유행의 과정은 순환이다. 유행이 잊혀질 때 그 인기가 되살아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시대의 환상은 시대가 낳은 건물들 속에 축적되어 있고, 이들은 현대에 남아 있는 폐허를 파헤치는 현재의 고고학자들에게 꿈의 흔적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벤야민의 마음을 빼앗은 파리 파사주의 세가지 주요 측면은 파사주의 형태, 기능과 이후 삶이다.

1. 건물의 외부인 거리는 실내화 되어 건물 자체의 부분이 된다. 또한 철골과 유리 건축의 초창기 사례로 도시의 기술적 혁신과 진보의 기념물이었다. 2.파사주는 상품의 고향이었으며사치품과 희귀한 상품의 중요 장소였다. 부즈루아는 물건을 사기위해 파사주로 오고, 부르주아가 아닌 사람들은 살 수 없는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왔다. 파사주는 산업적 힘과 제국 확장의 기념물이었다.3.파사주는 19세 후반기의 인기와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유행의 본거지는 유행에 뒤 떨어진 것이 되었다. 4. 비록 본래 그들에게 자극을 주었던 삶이 쇠진되었지만, 그럼에도 파사주는 현대적 신화의 비밀스러운 저장소로 간주 될수 있다. 어제가 이해했던 장소를 내일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파사주는 삶과 죽음 사이의 쉼을 다루는 방법인 변증법적 이미지를 위한 완벽한 대상이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대상의 이후 삶의 마지막 유동적 순간을 포착한다. 몰락의 순간에 환영이 사라지고 자신이 꿈꾸는 장소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현대성의 폐허화된 판타스마고리아의 마지막 광경의 구원이다.

 

산책자는 시장에 호기심이 많은 구경꾼으로 가장하고 사지만 실제는 시장에는 그가 팔려는 상품이 있다. 지식은 산책자로 시장에 간다. 그들은 시장을 관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구매자를 찾고 있다. 산책자는 영웅적인 수다쟁이이며, 또한 관상학의 저자이다.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기에 산책자는 관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관상학자임을 자칭한다.

 

 

l***1 2020.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