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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표지의 간결함이 한적함이자 여유로움인데 수묵화의 여운은 공허함과 묘한 슬픔도 느껴진다.
<이책은> 운좋게 구제(?)된 서평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책 읽고 느낀 바> 이틀 동안 쇼팽의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님에도 귀에 쏙쏙, 착착 감기는 곡이 있었다. 비록 내 감정일망정 느낌 오는 곡과 피아노곡이네 싶은 곡도 있었다. 열심히 쇼팽 음악들을 들은 이유는 딱 하나, 저자의 쇼팽 사랑 내지는 쇼팽 그리움 나아가 제목인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어떡하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울나라 사람도 아닌 한 음악가를 이렇게나 갈망하고 무조건적 이해를 보내나. 그가 이 세상에 두고 간 음악들을 분석하면서 그의 감정을 유추할까 싶어서였다.
한 가지 깨달음은 있었다. 커피라는 걸 맛을 알고서 마셨던가. 믹스 커피는 맛있을 수도 있으나 커피 본연의 맛을 알기까지 여러 번의 과정이 있어야 내 입맛화되지 않던가. 계속 듣다보니 나만의 느낌이 같아지는 걸 느꼈다.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많은 반복과 되풀이 과정 속에서 중독되면 음악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지고 가까이 갔으리라. 시인이다보니 남다른 감성이 한몫했겠다. 음악을 듣는 감성만큼 듣고서 쓰는 감성도. 오죽하면 시인은 음악과 시를 동일시 한다. 생성 과정과 결과물이 같다고 본다.
박시하 = 남자로 책을 대했는데 어째 여성스럽더라니. 일상에서도 중성 이름은 혼동을 준다. 시집이라 생각했는데 시로 쓴 산문이었다. 절절한 에세이이자 일기 같은 형식은 시라고 하기는 뭣해. 글귀들은 유려하고 감정선이 세밀내밀한 시어들이다. 이런 시는 공감이 되면 한없이 빠지는데 쇼팽을 아주 잘 알거나, 음악을 섭렵하여 아무 곡이나 들어도 아하, 그런 느낌이 없다면 시로 쓴 산문은 공감에서 불리하다. 읽히는대로만 읽게 된다.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만치 시로 쓴 산문은 공감되지는 않았다. 이해는 했다.
책의 구성은 오롯이 쇼팽만을 위한 쇼팽이 자리한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라는 테마를 설정해놓고 소제목아래 전개된다. 순전히 시인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음악들의 느낌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말해준다. 흠뻑 빠진 자의 느낌은 쇼팽을 이보다 더 잘 이해할 사람은 없지 싶다. 쏟아내고, 속삭이고, 안타까워한다. 폐결핵으로 고통 받은, 조국을 평생 그리워한, 나약한 심성을 가진, 여자들을 사랑했으나 머물지 못한, 그의 예민함이 음악으로 화하여 살 수 있었던 걸 알게 된다.
그 모든 만남 속에서, 쇼팽과 만났다. 너무도 행복한 만남이다. 음악과의 만남, 내가 음악 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음악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 그것은 영혼이 꾸는 꿈이고, 육체를 전율케 하는 힘이다. 17페이지
쇼팽은 매우 예민했다. 수줍고 말이 없었다. 그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었고, 평생 외로움과 질병에 시달렸다. 한 번 떠난 조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고, 어떤 사람에게서도 진정한 위안을 찾지 못했다. 그가 음악 외에 달리 진정한 기쁨을 느낀 대상이 있었을까. 그는 아마도 음악 속에서 모든 것을 찾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내밀한 격정과 사랑, 기쁨과 슬픔, 고통과 절망과 외로움은 이제 그의 선율 속에 담겨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23페이지
저자가 이렇게 느낀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시 이외의 것에서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건아닐까. 시를 쓸 때만이 창작의 고통을, 쥐어짜내야 하는 정신 소진을,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라야 기쁨이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탄생한 음악으로 치유가 되고 그 마음을 이해했다고 본다. 시 작업 과정이 막히거나 답답할 때 쇼팽의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 본다. 비록 이틀 동안이지만 상당시간을 투자한 경험에 근거해서다.
책 안에는 이런 스타일의 그림이 여러 장 있다. 테마가 되는 제목일 땐 양쪽 페이지를, 그 외는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계곡을 연상할테지만 시어를 만나면 쇼팽의 음악이자 내면을 표현한 그림이 된다. 마음 상태을 그렸다고 봤다. 격정적인 상태, 일렁이는 거센 물결은 부딪치며 쪼개지고 다시 모아지면서 돌을 부드럽게 만들고 머물지 않고 흘러만 간다.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그 음률 속에서 감정을 느껴본다. 쇼팽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음악은 시처럼 흘러나온다.
쇼팽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그러니까 나보다도 젊은 천재 쇼팽은 폐결핵으로 고통 받다 죽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 조르주 상드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지 않았고, 그의 죽음을 지킨 이는 상드의 딸인 솔랑주였다. 그의 죽음은 고통스럽고 외로웠다. 25페이지
쇼팽은 연인 조르주 상드를 기다렸다. 마요르카 섬,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비 오는 어느 날. 그의 기다림은 프렐류드 15번을 탄생시켰다. 비가 오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을 그의 예민한 마음을 얼마나 불안하고 아프게 했을가.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힘든가.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올 것인지, 기다리는 동안에는 결코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열정이 되어, 쇼팽으로 하여금 우리가 지금 '빗방울 전주곡'이라고 부르는 이 아름다운 곡을 만들게 했다. 37페이지
도입 부분에 나오는 프렐류드 15번 '빗방울 전주곡'을 계속해서 들었다. 첫 시작 부분에서는 '여름향기' 드라마에서 듣던 음악인가 싶었다. 저런 사연이 있어선지 이 음악을 듣노라면 울먹울먹이는 가슴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지 않아서 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상태가 유지되다가, 화도 났을테다, 그러다 사고가 났나 미안한 마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들이 범벅이 된 상태가 빗방울 전주곡에서 표현된다. 음악은 시요, 시를 품었고 음악과 시를 동일시하는 시인의 마음이 잡힌다. 저조한 마음일 때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그 순간일뿐 더 다운된다고 한다. 오히려 우울하고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울 수도 있지만 마음이 정화된다고 한다.
사랑과 음악에 차이점이 있다면, 사랑은 변하지만 음악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음악에는 죽음이 없다. 불변하는 것은 세상에 없고, 사랑 역시 소멸하지만, 음악은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불별의 아름다움을 창조한 사람, 쇼팽, 그의 사랑. 짐작할 수 있을 뿐인 그의 고통과 슬픔을 듣는다. 그가 남긴 음악을 통해서, 저녁의 어둠을 통과해 내게 전해지는 이 분명한 음률을 통해서. 짐작일 뿐인 그의 사랑, 그의 기쁨과 고통을 그러나 어떤 분명함과 확신을 갖고 짐작하며. 66페이지
거친 질감의 약간 두꺼운 종이를 사용한 책은 테두리를 둥글게 깎았다. 비교적 얇은 책임에도 적당한 두께가 된다. 이 책으로 쇼팽를 알게 된 것 말고도 그의 음악을 접한 시간이 유익하고 행복했다. 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이야기가 있는 곡들을 접한 남모르는 기쁨이 있다. 종종 들을 것임을 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영롱한 음악에 세포가 숨쉬는 느낌을 받았다. 피아노곡을 들으며 마음이 떨림은 쇼팽의 생애가 거기 있는 까닭이다. 그는 갔으되 그가 여전히 살아있음이다. 시인의 감성이 빚어낸 해설이 알찼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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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때로는 그 의미에 대해서 많은 느낌과 감정을 이끌어낸다. 함축적인 표현으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피아노 시인이라 불리우는 쇼팽의 곡들은 어쩌면 한 편의 시(詩)를 음악으로 재현해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제외한다면 에튀드, 발라드, 프렐류드 등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꽤 짧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짧다고 해서 시(詩)와 비슷하다는 것은 너무나 섣부른 느낌이 들지만, 그러한 짧음 속에 그의 감정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에 그의 작품은 한편의 시(詩)이자 그를 피아노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그의 에튀드 10-5는 흑건이라 불리우는 작품으로서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파트에서는 백건이 단 한번만 나타날 정도로 대부분 흑건으로 연주되는 곡이다. 이 곡을 거꾸로 백건으로 바꾸어 연주하였을 때, 그 느낌을 원곡과 비교해본다면 쇼팽의 작품이 왜 시(詩)로 표현하는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주걸륜이 피아노의 배틀을 벌이는 장면에서 흑건과 백건의 연주가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쇼팽을 박시하 시인이 쓴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에세이로 들여다보는 것은 그가 왜 피아노 시인이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공감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남', '사랑', '이별'이라는 관점에서 쇼팽의 음악과 함께 그의 삶을 떠올려보는 글들이 그의 음악과 함께 전달된다. 음악이 사람의 피부를 통하여 정신 세계에 들어오는 것처럼 박시하 시인의 글 역시 음악과 같이 쇼팽에 대한 그리움을 피부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으로 느끼게 해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쇼팽의 녹턴과 에튀드와 같은 곳들을 들어보면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는 '만남' , '사랑', '이별'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실제 쇼팽의 삶 이러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 그러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39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그에게는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 건강하지 못한 육신, 사랑하는 여성과의 이별이라는 결핍으로 인하여 외로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폴란드를 떠난 이후 죽을 때까지 폴란드를 밟지 못하였으며, 몸이 약하여 청혼을 거절당하기도 하고, 그가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 상드와의 이별로 표현되는 그의 안타까운 삶은 음악이 있었기에 그래도 그를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실에서는 왠지 나약하게 보였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용기있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지속되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을 읽으면서 그의 곡들을 들어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책의 표지와 삽화를 보면서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회색으로 그려진 우울하지만, 그 안에서 쇼팽이 느꼈을 법한 분위기가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듯 하다.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의 실제 이야기를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화하였는데, 스필만을 연기한 애드리안 브로디에게서 나는 쇼팽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독일군 장교 앞에서 달빛 아래 연주한 쇼팽의 발라드 2번은 쇼팽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치 독일군 장교에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가 연주학 위하여 선택한 쇼팽의 발라드 2번은 왠지 삶에 대한 모든 것, 아니 어쩌면 삶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가 음악으로 표현되는 듯한 기분이다. 몸이 시간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강물처럼 쓸려가는 것입니다. 당신 위를 흘렀을 잔인한 그 시간은 그러나 한 겹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당신의 시간을 느낍니다. 당신이 가로질렀던 들판을, 당신이 어루만졌던 나뭇가지를 느낍니다. 당신이 사랑한 것들과 당신이 고통 받았던 시간을 통해 그 몸의 시간을 통해 당신의 음악, 당신의 영혼이 이 세계에 남은 것입니다. - p. 173 ~ 174 -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을 통하여 나 역시 그를 기다리게 된다. 그저 그의 음악을 가끔 듣는 것으로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이 책을 통하여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 시인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를 담아낸 시인의 글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동안 그의 곡들을 통하여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삶에 있어서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게 된다. 저자와 같이 쇼팽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을 글로 써내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만이라도 그의 곁에 다가보려고 노력해본다. <이 리뷰는 알마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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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건반 검은시'라는 부제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지였다. 흑백의 조화 덕에 피아노를 계속적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그림들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을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수 많은 만남의 반복 속에서 쇼팽과의 만남은 그녀를 행복하게 했고, 그의 음악을 만나면서 그가 꾸었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그녀였다. 그녀에게 쇼팽의 음악은 그의 사랑과 이별, 그를 계속적으로 따라 다녔던 질병으로 인한 고통, 조국에 대한 그리움등 그의 삶을 들여다 보게 했다. 그녀 또한 시를 쓰는 창작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쇼팽에게서 예술가로서의 공감대를 많이 느낄 수 있었을테다. 그런 관심과 사랑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기에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음악을 통해 풀어내는 그녀의 글들은 아름다웠다. 음악,그림,시는 모두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음악에서 시를 느낄 수도 있고, 아름다운 시를 음악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테고, 멋진 그림을 음악이나 시로도 표현할 수 있을테니까.
내리는 눈을 보면서 쇼팽의 에튀드를 듣는 날, 눈의 흰색,사랑의 순결함을 떠올리고 쇼팽의 사랑을 생각한다. 몇몇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은 10여년 정도 유지되었지만 결국 파국을 맞았다. 쇼팽의 뱃노래,바르카롤을 듣는 그녀는 조르주 상드와 결별 직전의 음악이라 슬픔에 차 있지만 이 곡에서 쇼팽의 용기를 느낀다. 사랑과 헤어짐 속에서 음악은 창조되었고,사랑은 변했지만 쇼팽의 음악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영웅'이란 이름이 붙은 폴로네즈 6번은 그의 조국 폴란드에서는 '제 2의 국가'로 불릴만큼 남성적이고 웅장한 곡으로 열정적인 애국심을 드러낸다고 한다. 죽어서도 폴란드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일화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고국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시를 읽듯이 그의 음악을 듣는다. 시로써만 세계와 만나는 사람이 되면서 행복이라기 보다는 고통에 가깝다는 맘을 토로하는 그녀이지만, 또한 절망 안에서 극한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쇼팽의 음악을 더 사랑하고, 그를 이해하며, 그의 음악 속에서 시를 읽어내는 것일듯하다.
예전엔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이젠 크게 손해 볼 일 아니라면, 나의 무지를 조금이라도 깰 수 있다면 따라해보자라는 열린 (?)맘으로 살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녀를 따라 쇼팽을 만났다.프렐류드 4번, 15번, 플로네즈 6번,왈츠 9번,자장가, 첼로 소나타 '라르고' 등등. 그림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듣다보면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들려주는 쇼팽의 삶과 그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쇼팽에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쇼팽을 사랑하는 그녀 덕분이다. 하지만,그것 보다 더 좋았던 것은 '박시하'라는 시인의 감성이 듬뿍 느껴지는 시와 사랑,삶,죽음등에 대해 풀어내는 자신의 사유를 담뿍 담은 아름다운 글들이다. 쇼팽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음악들로 그의 생을 증명했다면 '박시하'시인은 그녀의 시로,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글들로 그녀를 증명하리라 생각한다.
밝은 색채 하나 없지만 까만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오로라를 보는 듯하다. (p14)
셋잇단음표를 연상 시키는 하얀 빛. 달은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반사되어 수면의 일렁거림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p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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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저자 : 박시하 출판사 : 알마 출판년월 : 2016. 12. 이 책은 "만남, 사랑, 이별, 대화"라는 네 개의 챕터를 구성으로 쇼팽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시적 에세이 형식을 취한 작품답게 몰입도와 가독성이 무척 좋다. 또 이 작품집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무려, 스무 편의 참고문헌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수많은 참고문헌과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세상에 빛을 본 작품집이 바로 [쇼팽을기다리는 사람]이다. 제목에서부터 진한 감성의 선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내용은 어떨까?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인 사물마다 어려 있는 이 '세계' 라는 유한성을 쇼팽의 음악은 뛰어넘는다. 쇼팽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것이다. 음악이 어떻게 사물들을 팽창시키고, 변형시키며 그래서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고통을 기쁨으로 만들 수 있는지(p.33)" 너무도 잘 알았기에 사물마다 깃든 신을 불러내듯이, 요정의 이름을 부르듯이 그는 자신의 선율로 이 세계에 마법을 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음악과 아름다운 선율과 더 섬세한 노래를 언제나 기다렸던 것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쇼팽이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쇼팽이 표현해낸 인간 이상의 것들은 그의 기호들 안에 담겨 있다. 음악이라는 기호로, 선율과 박자와 악상으로서, 우리와 닮았으나 완벽히 똑같지는 않은, 우리 이상의 것들이 쇼팽의 음악 속에, 단순하고 명료한 사분의 삼박자 안에 깃들어 있(p.49)"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쇼팽은 외롭고 고독하게 사랑의 기쁨과 절망을 견뎌내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쇼팽의 헌신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쇼팽은 자신의 재능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 곁에서 그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음악으로 실현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쇼팽의 정신은 하나의 시였다. 그는 음악으로 진실의 핵심에 다가갔고, 그의 삶은 그러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시간으로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쇼팽은 빛을 만들었고, 그 자신이 별빛같이 빛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인간은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위대해지는 순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진실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뛰어난 상상력과 섬세한 음악가요, 시인으로 평가 받는 쇼팽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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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시인 박시하다. ‘피아노의 음유시인’과 진짜 시인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데,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활자에 잠긴 시’는 알마 출판사가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는 장르의 경계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시리즈다. 그래서『쇼팽을 기다리는 사람』도 장르의 경계 너머 박시하가 짓고 김현정이 그렸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쇼팽의 음악과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음악의 이미지. 쇼팽의 이미지들은 흰색에 가깝다. 그의 음악이 하늘의 별처럼 검은 바탕 위에 하얀 빛으로 흩뿌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빛나는 음, 하얀 발로 검은 모래 위를 걸어가는 것. 선율이 그리는 그림. 아마도 쇼팽이 시인이라는 느낌은 그의 음악이 그려내는 이미지들과 관계된 것이 아닐까. 펼쳐지고 사라지는 이 환영들이 그의 음악에 있어 시의 영역인 것이 아닐까. 또는, 이것이 시의 영역에 들어온 쇼팽의 선율이 아닐까. -p. 19
박시하 시인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게 책의 그림도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부제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의 부제는 ‘흰 건반 검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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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지만 사진 같기도 하다. 서양화인 것 같으면서도 흑과 백만 써서 그런지 수묵화 같기도 하다. 이 묘한 엇갈림은 글에서도 쇼팽의 음악에서도 느낄 수 있다. 박시하 시인은 쇼팽의 왈츠 9번에서 어떤 ‘불일치’의 감각을 느낀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들어야 이 묘한 엇갈림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이 책을 읽으면서 쇼팽 음악을 듣기를 바란다. 박시하 시인은 구체적으로 연주한 사람까지 언급하는데, 이를테면 에밀 길레스(혹은 조성진)가 연주한 폴로네즈 6번 같은 식이다. 책에서 나온 음악을 똑같이 들으면서 읽다 보면 저자와 독자의 경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쇼팽의 음악이 있기에 나의 저녁은 보통의 저녁과는 다른 것이 된다. 이 저녁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음악이라는 부드러운 슬픔에 잠겨 영원을 향해 흘러간다. 쇼팽, 그의 외로움이, 그의 기쁨이, 그의 죽음과 꽃잎과 빗방울이 이 고즈넉한 저물녘에 함께 흐른다. -p. 27
쇼팽의 음악 덕분인지 오늘의 저녁은 어제의 저녁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바르카롤, 프렐류드 4번, 프렐류드 15번, 녹턴, 발라드 1번 사단조 등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돈다. 쇼팽의 외로움, 기쁨, 죽음이 지금 이 저녁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박시하 시인은 이 책을 쓰면서 쇼팽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그러나 표현이 감상적이고 시인의 개인적인 소회에 머무는 느낌도 드는데,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모두가 한마음일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쇼팽의 음악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처럼 쇼팽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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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가 발간한 책들에 늘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도서 밖에 몰랐던 제게 인문도서의 매력을 알려 준 출판사이기 때문입니다.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이나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폐사지 기행 시리즈 등 알마에서 나온 책들이 제게는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독서의 폭을 넓혀주었기에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알마 팬이 된 계기는 2012년에 출간 된 "목소리를 보았네"를 읽고 난 후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글을 잘 쓴 덕분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올리버 색스의 책을 조금씩 더 읽게 되었고, 점점 더 문학 외적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에 알마, 라는 이름이 소개되면 반가움이 앞섭니다.
그런 출판사에서 이번에 새롭게 보인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는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시인이 좋아하는 대상을 찾아 오마주 형식으로 글을 쓰고, 거기에 그림을 입힌 산문시 형태의 시리즈를 펴낸 것입니다. 알마 하면 기대하고 있던 내용이 있었기에 이런 시도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워낙 변화를 싫어하는 제 성향이 반영된 반응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흑백의 그림이 삽화로 들어온 이 책을 읽었습니다.
시인이 쇼팽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책 속에 온통 쇼팽의 음악이 흐르는 듯 합니다. 쇼팽은 음악으로 시를 쓰고, 시인은 활자로 음표를 그립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쇼팽의 음악을 찾아 듣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도 퍽 오랜 만에 쇼팽의 녹턴과 왈츠를 듣다가 아예 쇼팽의 피아노곡을 모아놓은 유튜브를 찾아 듣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정적만 흐르는 거실입니다. 넓어서 더 휑한 공간에 피아노 음률이 흐르는 이 시간이 실은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그래도 퍽 운치있고 마음이 부드러워진 느낌을 받습니다. 음악이 몸으로 스미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미친다는 박시하 시인의 말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시인은 만남, 사랑, 이별, 대화의 네 꼭지를 통해 쇼팽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쇼팽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쇼팽의 절망과 고통, 눈물이 만든 음악이 그의 생전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것을 통해 시인의 현실을 위로 받습니다. 그 시인의 위로를 읽으면서 저는 또 공감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감춰진 것들을 찾아다녔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애썼다. 시를 썼고, 시를 쓰면서 고통과 어둠을 희망보다 더 가깝게 느꼈다.
그 고통과 어둠 속에서 쇼팽을 들을 때, 그의 순수한 절망을 느낄 수 있다. 아픔에 대한, 고독과 우울에 대한 시. 그러나 그렇기에 그 순수한 절망이 불러 내는 순전한 기쁨 역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에 대한 끊임없는 노래이기도 하다. -32쪽
시인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회의하기도 합니다. 과연 시를 쓰면서 사는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생활을 외면한 대가로 시 한 줄을 썼을 때 그 기쁨이 온전히 기쁨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가. 이렇게 주눅이 들었을 때 쇼팽이 보여준 열정을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같은 길을 걸었던 선인을 통해 메꿀 수 있다면 훨씬 더 격려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쇼팽의 고통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명곡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을 먹고나서야 피는 꽃이 예술이라고 했을 때 예술가들의 고단한 삶은 숙명입니다. 그런 인식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의미가 가볍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다른 이에게 소개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무거운 일입니다 . 내가 가진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힘이 과연 내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점점 더 커지고 그와는 반비례적으로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시인은 말미에 이런 걱정을 얼마간 비추지만 제가 읽은 느낌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입니다.
시인이 마침내 과거의 인물을 불러 내 대화라는 형식을 빌어 편지를 보낸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앞으로 얼마 간의 시간동안은 햇볕이 비치는 거실에서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쇼팽의 피아노 곡을 함께 듣고 있을 테니까요.
참, 그리고 책 속에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제게 수많은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조금씩 풀어봐야할 숙제이기에 이곳에 다 적을 수는 없습니다만 시인의 글 만큼이나 좋았다고, 앞으로 한참동안 더 들여다 볼 예정이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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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음악과 삶을 시인 박시하의 작품으로 조명해 보는 알마 출판사의 산문집이다.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검반을 상징하는 것처럼 책 속의 삽화도 흑과 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음악가를 다룬 책을 읽고 쓰는 리뷰인 만큼 유투브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쇼팽의 여러 곡들을 들으면서 쓰고 있다. 에튀드, 마주르카, ‘영웅’이라는 이름이 붙은 폴로네즈 6번, 녹턴, 협주곡 1번 발라드 등. 얼마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인지. 아련하게 떠오르는 귀에 익은 반가움. 클래식 음악은 평소에 자신이 의식하지 않으면 잘 듣게 되지는 않는다. 어떤 계기가 되었을 때 듣게 되는 특별함 같은 의미가 부여되기에.
잘 알다시피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고 섬세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도 했다. 건강면에서도 평생 기침, 각혈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여동생 에밀리아를 폐결핵으로 잃은 것을 시작으로 인생에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다. 연인이었던 콘스탄치아, 마리아 보진스카, 조르주 상드와도 사랑의 좌절을 겪는다. 그 중 조르주 상드는 쇼팽을 아들처럼 생각할 정도의 모성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보는 생활이 10여 년 이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짧은 인생 39세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조국 폴란드도 러시아에 함락되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젖어 살았다. 음악을 들으면 그 명성에 걸맞게 시적이다. 감미롭고 우아하다. 때로는 밝으면서도 그 속에서 섬세한 슬픔이 느껴진다. 병약한 인생, 사랑의 끈으로 이어지지 못한 인생에 대한 애잔함인가. 그의 심장은 고국의 바르샤바 성십자가 교회에 묻혔으며, 그의 몸은 파리의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쇼팽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가 딱 잘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p19 앙드레 지드의 <쇼팽 노트>) 위의 문장은 쇼팽과 그의 음악의 이미지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불우한 삶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던 음악. 그 위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의 숨결과 고뇌를 느낀다. 음악에서만은 불우하지 않았다. 수많은 명곡 속에 그의 사랑, 기다림, 이별에 대한 고통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의 음악에 매료된 것은 아니라는 저자는 조금씩 알게 될수록, 쇼팽을 들을수록 그의 음악이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읽는 동안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픔, 어둠, 슬픔, 고통, 우울, 밤 등.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다. 시인인 저자가 감상에 너무 도취된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쇼팽을 다룬 책을 읽은 덕분에 그의 음악은 전보다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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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적으로 말해 어느 시인의 쇼팽 사랑기다. 시인이기에 언어가 운율저인 언어로 채색되어 있다. 쇼팽과 관련된 내용을, 그 진한 사랑을 내밀한 함축적인 언어로 우리들에게 속삭이듯 말해 준다. 그의 언어에 이끌리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음악 속에, 시 속에 잠겨든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쇼팽의 음악은 시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도 문장이거니와 세계의 고통에 대한 치열하고 끊임없는 탐색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의 곡진한 부분들을 성찰과 궁구로 피아노의 선율 속에 담아내는 쇼팽의 음악은 , 외로운 선율 그것이 저자에겐 그리 그윽함으로 다가가는 모양이다. 쇼팽의 음악에 대해 최대의 찬사를 다한다. 그 빛깔은 은은한 하얀 색으로 그려내고, 그 향내는 부드럽고 은은함으로 나타낸다. 쇼팽의 음악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글을 통해서 우리는 황홀감 속에 빠진다. 그의 음악은 어떤 저녁, 빛이 스러지는 그 순간, 하늘의 빛이 어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의 음악은 몰아치는 파도이며, 비바람이며, 빗방울의 죽음이다. (p16) 쇼팽의 음악적 특성을 표현한 부분이다. 아마 저자의 마음속에는 쇼팽의 곡이 그 빛깔을 거두어 가는 어둠이 시나브로 내리는 광경으로 다가든 모양이다. 그리고 더러는 격정으로 들끓기도 하는 모양으로 그려낸다. 아늑함과 쓰러짐, 그리고 신비로운 율동은 쇼팽 곡의 한 특성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 모든 만남 속에서, 쇼팽과 만났다. 너무도 행복한 만남이다. 음악과의 만남, 내가 쇼팽의 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음악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 그것은 영혼이 꾸는 꿈이고, 육체를 전율케 하는 힘이다.(p17) 화자가 쇼팽의 음악과 만나면서 황홀감에 겨워하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쇼팽의 음악 속에 곧 저자의 한 부분이 들어 있는지 저자의 모습 속에 쇼팽이 들어와 있는 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모습으로 저자는 기쁨을 에둘러 나타내고 있다. 다음은 쇼팽이 연인으로 어머니 같이 사랑했던 6살 연상의 여인과 만남과 헤어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쇼팽의 인생과 음악에 큰 역할을 감당했고, 쇼팽의 생애에 참으로 의미 있는 부분을 만들어 나간다. 사랑과 음악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었던 쇼팽에게는 더문 아름다운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조르주의 딸 때문에 마음이 나뉘었고, 그것이 쇼팽이 마지막 편지를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헤어짐과 함께 쇼팽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이 음악이 되었을 때 어떤 내용이 되었을까? 음악은 혼을 담는다. 그 혼의 절절한 울림이 아래 글들이 연유가 되어 이루어진 요소가 많다. 쇼팽은 1836년 가을에 처음으로 조르주 상드를 만났고, 1847년 6월에 그녀로부터 마지막 편지를 받는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연인이자 가족이면서 친구로 함께 지냈고, 그들 사이의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시기에 상드는 쇼팽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극진히 보살폈다. 그들 사랑의 그런 봄날은 그러나 결국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끝을 맞이했다(p103) 쇼팽은 피아노곡만 창작한 사람이다. 그의 삶이 피아노의 선율처럼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되리라. 그 선율을 저자는 유려한 시어로 옮기고 있다. 쇼팽이 어떻게 다가가는가에 따라 똑 같은 내용을 두고 많이 달리 생각하겠지만 시인의 맑은 눈에 비친 쇼팽은 그야말로 진한 아득함을 띠고 다가온다. 인간을 초월하고 영혼의 온전함을 찾아가는 사랑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올곧게 찾아가 보고 있다. 책은 쇼팽에 대해 전기처럼 그려나간다. 그 전기가 운율로 되어 있고 압축인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저자의 쇼팽과의 만남이 그려져 있고 쇼팽의 사랑 이별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쇼팽이 나눈 편지가 제시되어 있다. 쇼팽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해주고, 자자에게 쇼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쇼팽은 저자에겐 영혼의 반려자로 인식되고, 삶의 부분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영육 간에 혼연일체가 되어 쇼팽의 삶을 만나는, 음악을 만나는 저자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제목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의 음악에 녹아든 사람, 자신의 시 모델이 되는 사람, 영혼이 나누어진 사람 등으로 치환해도 될 성 싶은 글이다. 저자는 쇼팽에 반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리듬 있는 언어로 표현해 내고 있다. 쇼팽의 음악은 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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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은 스무 편의 자료가 참고된 산문이다. 시인 박시하가 쓰고 평면 조형 전공자 김현정이 그림을 그린 예쁜 책이다. 부제는 '흰 검반 검은 시'이다. 저자는 쇼팽을 음악을 노래가 되게 했고 시로 만든 사람으로 정의한다. 저자에 의하면 음악은 언어를 물리친 시이자 단어와 문장이 필요없는 시이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수려한 첼로 소나타도 썼다.
각자 좋아하는 쇼팽의 피아노 곡이 있다. 여러 곡을 들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빗방울 전주곡(op 28 - 15)을 좋아한다. 정말이지 여유롭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 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한 곡이다. 박시하의 글을 통해 그가 즐기는 곡이 얼마나 자신과 다른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박시하는 자신이 쇼팽의 음악 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음악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영혼이 꾸는 꿈이자 육체를 전율케 하는 힘으로 정의한다.
박시하의 인용은 첫 순서부터 인상적이다. 지드가 한 다음의 말이다. "쇼팽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가 딱 잘라 말하는 일은 없다." 쇼팽의 노래는 달처럼 희고 매끄러우면서도 어둠 속의 뒷면을 가진 음악이란 것이 박시하의 한 전언이다. 박시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음악이라 말한다. 쇼팽은 병약하고 고독했다. 그는 그런 삶을 살았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곡을 쓴 것이리라.
박시하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진리, 그 핵심에 다다르려 애쓰다가 막상 어딘가에 도달하고 나면 그것이 지닌 흉측하고 두려운 형상 앞에서 절망하게 되는 세상을 이야기(31 페이지)하며 그러나 쇼팽의 음악을 통해 악몽에서 벗어나 비로소 맞닥뜨리는 진실의 빛나는 얼굴을 본다고 설명한다.(33 페이지) 흉측하고 두려운 형상을 유령(정신분석가 백상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박시하는 멀리 있는 무언가에 대한 채워질 수 없는 소망, 그것 자체를 예술이라 말해도 좋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38 페이지) 삶을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박시하는 자신이 아직 만나지 못한 자신의 문장들과 시를 기다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시하는 자신이 시인이자 한 사람의 생활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려고 애쓰지만 언젠가 무언가는 빗나가기에, 한 편의 시에 담긴 것들이 때로는 너무도 마음을 가득 채우지만 때로는 몹시 무용해서 고통스럽다고 말한다.(46 페이지)
헛된 것에 매혹당하고 갈망하고 기다리고 실망하고 울고 웃으며 남겨진 삶의 그 무엇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리려는 충동에 시달린다(54 페이지)는 박시하는 쇼팽의 음악들은 사랑의 기쁨에서 촉발된 영감과 사랑의 절망에서 비롯된 내면의 고통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말한다.(57 페이지)
박시하는 하나의 면만 갖고 있기에 사람은 좀더 복잡하고 내밀한 존재라는 말로 쇼팽에 대한 세평(우유부단하고 말수가 적고 수줍고 병약했다)에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한다.(70 페이지) 쇼팽의 음악이 있는 한 이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이 박시하의 고백이다. 박시하는 쇼팽의 음악을 떠오르는 해의 음악이 아니라 그 빛을 반사해내는 달빛의 은은함을 지닌 음악이라 말한다 .(76 페이지)
박시하는 쇼팽의 뱃노래(바르카롤)에서 검은 안개와 흰 운무를 느낀다. 박시하는 음악을 순간의 환희를 영원에 붙잡아두려는 시도라 말한다.(86 페이지) 쇼팽의 첫 사랑은 동급생이던 미녀 소프라노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이다. 쇼팽은 끝내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그 시기에 만들어진 곡이다. 특히 2번 2악장은 남몰래 흠모하던 그녀를 그리워하며 만든 곡이다.
"쇼팽은 음악으로 말했다. 자신의 상실과 슬픔에 대해서. 언어가 아닌 음표로, 리듬과 악상으로."(106 페이지) 박시하는 쇼팽의 음악은 모든 상실에 대한 애도로 읽힌다고 말한다.(110 페이지) 박시하는 쇼팽이 사랑했던 콘스탄치아 글라드보드스카, 마리아 보진스카, 조르주 상드 등을 차례로 호명한다.
"잃어버린다는 뜻을 가진 템포 루바토는 쇼팽 음악의 고유하고 특징적인 기법이었다. 마치 기억과 망각 사이의 순간처럼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흔들리는 템포."(114 페이지) 당연하지만 쇼팽은 삶과 이별하는 동시에 음악과도 이별했다. 쇼팽은 죽음 직전까지 음악을 듣기 원했다. 쇼팽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124 페이지)
임좀을 지켜보던 의사가 아직도 아프냐고 묻자 쇼팽은 이제는 안 아프다는 말을 했다. 쇼팽의 장례식에는 그의 장송행진곡과 전주곡 4번, 6번,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박시하는 쇼팽의 음악을 듣는 것은 그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 말한다.(126 페이지) 쇼팽은 음악 이외의 삶에서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이었다.
박시하는 쇼팽에게 "당신은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로질러 갔습니다."란 편지를 쓴다. 박시하는 말한다. 음악은 몸이 영혼에 줄 수 있는 기쁨이고 쾌락이며 몸의 쾌락은 순간적이고 파괴적이지만 영혼의 쾌락인 음악은 별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별보다 더 영혼에 가깝다고.
박시하는 시를 만지기 위해 자신 역시 극한까지 가고 싶어 했다고 말하며 그렇게 나타나는 시의 형상은 결코 조화롭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세상이 조화롭지 않기 때문이다.(177 페이지) 박시하는 쇼팽의 음악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슬픔이라 표현한다.
박시하는 쇼팽에게 "우리의 한계는 이토록 분명한데도 어째서 갈망이 끝이 나지 않는지 당신에게 질문을 하겠"다고 말한다. 로베르트 슈만은 쇼팽을 가리켜 남들이 정한 법칙에 순응하기보다 쓰러질 때까지 혼자 고군분투하는 정열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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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오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밤이라는 공간과 시간은 잠자기 위해 준비하는 감성을 깨우기도 한다. 유독 까만 이미지로 떠오르는 겨울 밤은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밤에 듣는 음악은 오감을 자극하고 나아가 알 수 없는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곡가, 좋아하는 연주가가 없는 내게 박시하의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은 쇼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선물한다. 박시하의 문장으로 쇼팽을 듣는다. 박시하의 시로 쇼팽을 만난다. 쇼팽을 향한 박시하의 사랑을 읽는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연주로 쇼팽의 녹턴과 쇼팽의 전주곡을 듣는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실은 부재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그러므로 아름답게 부재한다. 부재함으로써 영원한 현전을 얻는다. 쇼팽은 망각의 세계로 갔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의 밤 속에서 여전히 기쁨의 기억을 준다. 그것이 비롯 덧없이 스러지는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모든 부재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영원히 그 현전을 만끽한다. (118쪽)
쇼팽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산문이자, 아름다운 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불운의 삶을 살아온 천재 예술가 쇼팽의 슬픔과 사랑과 고독을 마주하는 순간, 세상은 곧 어둡고 차가운 밤으로 변한다. 어쩌면 낮이 아닌 밤에 읽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밤에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쇼팽을 들으면서 읽어야만 한다.
박시하는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나눠 쇼팽에 대해 이야기한다. 쇼팽에 대한 애정보다는 시인 박시하에 대한 애정이 컸던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시집이자 슬픔의 변주곡이었다. 상드와의 사랑과 이별은 너무나 처참하다. 둘의 사랑의 완벽한 결말을 맺었더라면 어땠을까. 쇼팽은 더 많은 곡을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픔으로 간직된 사랑이라 해도 사랑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잘 안다. 사랑을 하는 중에도 이별이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도 사랑에 더욱 빠져드니까. 그러니까 쇼팽의 사랑에 대해 우리는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저 그가 남긴 아름다운 음악을, 그 음악에 머문 그의 영혼을 만날 뿐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누구도 나 대신 사랑을 해주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철저하게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가장 솔직하고 꾸밈없는 내가 되어, 빛나는 순간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랑 그 자체를 갖기 위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쓰기 위해, 내 안의 심연과 만난다. 사랑하고, 쓰기 위해서 가장 추한 모습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68쪽)
이 글을 쓰는 지금,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이 내린 아침은 선명함 그 자체다. 다시 쇼팽을 듣는다. 가만히 눈을 보다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만약, 쇼팽이 지금 이 풍경을 마주한다면 어떤 영감을 받을까. 투명한 듯 맑은 눈을 그는 어떤 소리로 들려줄까. 우리 곁에 음악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쇼팽의 음악을 듣는 시간,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쇼팽과 교감을 기다리는 시인. 작곡을 하고 시를 쓰는 예술가가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생각한다.
겨울의 숲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겨울에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조금 느리게 읽으면서 눈처럼 청아한 애상에 잠겨도 좋을 것이다.
당신의 우주는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슬픔의 별이 빛나고, 고통의 행성이 폭발하는 당신의 우주.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갖지 않는 곳. 단지 파스토만이 존재하는 그 우주, 슬픔의 입자들로만 만들어지는 우주. 검고 흰 건반들이 춤추는 우주. 그곳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봅니다. (17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