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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박물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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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태조 주원장은 탐관오리를 호되게 징치한 군주로 유명합니다. <태조 왕건>을 보면 궁예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라며 신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장면이 있는데, 주원장의 조정 역시 신하들이 "아침에 두려워하며 목숨이나 보전할지 의심하고 가솔과 이별하다 저녁에 퇴근한 후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럼 관두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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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태조 주원장은 탐관오리를 호되게 징치한 군주로 유명합니다. <태조 왕건>을 보면 궁예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라며 신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장면이 있는데, 주원장의 조정 역시 신하들이 "아침에 두려워하며 목숨이나 보전할지 의심하고 가솔과 이별하다 저녁에 퇴근한 후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럼 관두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군주가 사직의 자유나 허용할지 의문이며 오히려 좋은 구실을 주어 본보기 삼아 처형당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건 다 주원장의 출신이 미천하여, 혹 누가 이를 조롱거리로 삼지나 않을지 두려워한 끝에 아예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공포 통치의 수법입니다. 스탈린도 이런 식으로 공산주의의 모순을 숨겼다고 하죠.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모르나 태조 주원장은 일반 민중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군주였다고 합니다. 여튼 탐관오리가 백성을 뜯어먹는 일은 많이 줄었으니 좋지 않냐는 거죠. 이 역시 본인이 미천한 출신이다 보니 밑바닥의 아픔을 잘 알아서라는 분석이 있고, 그 유명한 "다리를 든 불상" 역시 사미승 시절 호되게 고생한 개인적 애환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뭐 과연 사실인지는 미지수입니다. 


그의 아들 주체는 전형적인 정복 군주였는데,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의 환관 정화가 무슨 아프리카에서 조공을 받았으니 어쨌느니 하는 건, 이후 쇄국, 폐쇄주의로 일관한 명나라의 태도로 보아 무척 호기심이 생기는 이례적인 캠페인이긴 하지만 일회성 과시에 그쳤을 뿐입니다. 고려 때 윤관이 동북 9성을 일궜다고는 하나 결국 이를 내 주고 오히려 여진의 발호 계기를 만들었는데 한때 손에 쥐었더라도 지속적으로 지키질 못하면 말짱 황인 법입니다. 이뿐 아니라 한참 이전 한 무제 당시에도 흉노를 멀리 쫓아버리는 등 호기를 부렸지만 그 판도가 과연 얼마나 오래갔습니까. 이후 한나라는 재정 부족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 매관매직 등으로 나라의 멸망을 앞당겼다는 평을 받으며, 명 성조 이후에도 마찬가지라서 오히려 에센 등 유목의 실력자 출현을 재촉한 감마저 있습니다. 


명나라에는 유독 암군이 자주 나왔다고는 하나 이는 선입견일 뿐이고, 암군의 어리석음은 이후 청나라가 편찬한 사서에서 다소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군주는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서도 끝임 없이 등장했으며, 이런 건 세습 군주제, 장자 상속제의 폐단일 뿐 딱히 주원장의 DNA가 열등해서가 아니죠(ㅎㅎ). 여튼 멍청한 황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며, 이런 사람들이 언제나 그 대가를 치른 것도 따지고 보면 아닌데, 군주의 어리석음을 잘 커버한 건 명대에 들어 세련된 관료제가 잘 작동한 덕분도 큽니다. 문제는 "당쟁"이었죠. 당쟁이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결국은.

v*****7 2019.1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