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확 띄는 섹시남녀가 도심의 인파 속을 헤집고 있다. 서로 마주 보며 걷던 남녀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때 갑자기 여인이 쓰러진다. 남자는 서둘러 달려와 여인을 부축한다. 잠시 기절했던 여인은 자신을 부축한 남자를 향해 빙긋 웃으며 인사한다. "Hi, stranger!" 영화 <클로저>(마이크 니콜스 감독/줄리아 로버츠,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주연)는 이렇듯 낯선(strange)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갓 건너온 스트립댄서와 신문사 신참기자(대개 ‘부고란’은 신참기자가 맡는다)의 만남은 그다지 극적이지도, 그렇다고 평범하다고도, 할 수 없는 우연을 통해 이루어진다. 졸지에 사고를 당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분)의 보호자가 된 댄(주드 로 분)은 병원까지 대동한 뒤 잠시 그녀의 길동무가 되어준다. 짧은 시간 함께 런던 거리를 거닐던 둘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껴 곧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신문기자이며 소설가인 댄은 소설 출간을 앞두고 책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의 작업실을 찾는다. 순전히(?) 사진촬영을 위해 나눈 대화(안나가 자연스런 포즈를 유도하기 위해 말을 건다)를 통해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 둘은 충동적으로 짧은 키스를 나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댄의 애인이자 소설의 주인공이 된 앨리스가 있다. 안나와 댄의 관계를 눈치 챈 앨리스는 안나의 작업실 창가에 서서 눈물을 흘린다. 댄의 느닷없는 고백과 앨리스의 갑작스런 출현과 눈물, 무엇보다 갑자기 열정에 사로잡힌 자신에게 놀란 안나는 앨리스의 눈물을 순간 포착한 뒤 애써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려 든다. 안나 : 소설의 내용이 사실인가요? 앨리스 : 데체로... 안나 : 빠진 게 있나요? 앨리스 : 진실. 과연 꽃미남 ‘댄’의 진실은 무엇인가. 앨리스와 함께 하는 건 연민과 비겁함 때문이고, 안나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밀회를 즐긴다? 얼핏 보아 세 사람, 아니 내 사람(이미 안나의 남편이 된 의사를 포함해서)의 관계에서 중심 위치에 있는 듯한 키맨 ‘댄’은 그 자신만이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이유가 뭘까? 이 부분에서 감독은 단호하게 말한다.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댄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갈지자’(之) 애정행각에는 ‘사랑’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에게는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순결을 강요하는 그의 야누스적 애정관은 더도 덜도 아닌 지독한 마초이즘의 전형일 뿐이다. 자신을 가차 없이 버려놓고도 다시 찾아와 능청맞게 사랑을 고백하는 댄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던 앨리스, 그녀조차 댄이 자신을 다시 찾은 이유가 ‘사랑’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자기연민과 집착일 뿐이며,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감정의 찌꺼기를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다. 순간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기분, 즉 4년을 같이 살고도 여전히 씻어지지 않는 그에 대한 ‘낯섦’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그녀가 댄에게 던진 클로징 멘트의 분명한 의미인 셈이다. 안녕, 낯선친구. 꺼져버려 Hi stranger. Go away!!!클로저> |
| 산업혁명적인 미디어가 갖는 스토리텔링의 고지식한 매력은 나 몰라라, 하고 문학이 갖는 사적인 내러티브를 던져주는 영화랄까.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나 테크니컬한 연출 없이도 문학적 판타지를 구체화해주는 영화라면 언제라도 대 환영이다. 흠, 아마도 이런 기사가 씌여졌으리라. ''엇갈린 네 남녀가 로맨틱한 도시 런던에서 그리는 엇갈린 사랑이야기'' 정도? 댄, 앨리스, 안나, 래리. 뻔한, 그리고 모두가 유쾌하게 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라면 이렇게 호들갑떨지 말고 이야기해야 하는 법. Same old, Same shit은 사양합니다. 사춘기 청소년의 방황만큼이나 클래식한 소재.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었을 법한 수 세기에 걸친 무모한 연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나 운명적 사랑에 대한 충동적인 착각의 일반화는 지금 온 우주에서 계속되고 있으리라. 연속성에 대한 치명적 유혹과 영원함에 대한 교태적 두려움은 사랑, 그 두 글자를 작고 초라한 부고란에 올려주는 모양이다. 부고 기사를 쓰던 댄은 자신의 비겁하고 불완전한 사랑의 부고를 써야만 했듯이. 그녀의 사랑도, 찢겨진 마음도, 이름도 모르는 멍청이. 누군가 죽임으로써 사랑에 대한 상투적이고 무감각한 희망만을 갖게 하는 대한민국 흥행보증수표 신파 러브스토리는 꼴도 보기 싫다면, 사랑이라는 탈을 쓴 감정적 소요의 시뮬라크르를 인정하는 수 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행위,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 불완전한 명제로 인해 실천적 자아가 맞이하는 결과는 어째서 결국 오욕, 상처, 아픔, 원망, 이 따위 것들 뿐인지-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그래프를 그림으로 비롯되는 사랑의 높낮이 작은 차이는 그 간극의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은 집착을 하고,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으며, 다른 한 쪽은 지쳐버린다. 비겁한 변명의 옷을 입은 외도나 비참한 애원의 탈을 쓴 원망의 차이는 권력의 시소일 뿐이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것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사건일 뿐이라면, 주체할 수 없었던 사랑의 열병도 사건이었을 뿐이다. 그라데이션은 어디에도 없는 모양인데- 앨리스의 말처럼 정말이지 사랑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격양된 목소리로 들리기만 한다. 그렇게 흩어져버리는 소리에 언제까지 이렇게 예민해져 있어야 하는지, 원. 의심할 여지도 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있던가? 혹은 절대적으로 순종적인 사람은? 단발적인 -때로는 그렇지 않지만- 영화나 책이 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나 사랑은 3D 아이맥스영화같은 것일 뿐이다. 사랑의 100% pure original virgin fever를 이야기함으로써 ''다음 기회에''에 대한 자비로운 희망을 선사하기도 하고, 비참한 불완전함으로 무장해 ''너만 그런 건 아니야, 스위리'' 하며 커다란 쵸콜렛 쉬폰케익을 안겨주며 우리의 실패한 사랑을 일반화하기도 한다. 어디에 북마크를 해두었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어느 쪽, 당신의 사랑은? Well, Both. 사랑은 감정일까, 사건일까, 존재일까, 소유일까? 언제쯤 우리는 뻘짓을 그만둘 수 있을까? 언제쯤 헛발질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거냐고? 천국보다는 림보의 아슬아슬함이나 꿈꾸는 연애는 언제쯤 우리를 지치게 할까? 언제쯤이면 ''아, 이런 거짓부렁 다 그만둘란다-''할 수 있게 되는걸까? 사랑을 향한 필사적인 생존전략이 어쩌면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위선적인 신뢰와 연금보험같은 계약적 성실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원불변의 사랑이란 어디에도 없으니까, (아, 하나님 빼고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인정할 수 없는 ''볼드몰트''보다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이겠지만. 감각적인 사랑을 원했던, 그래서 사랑의 일상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앨리스의 냉소가 어쩐지 가슴아픈 이유, 나의 그것과 닮아있어서. 일상에 묻어진 옛 사랑처럼 묻어버리고 싶다, 이런 고약한 사실 따위는. 그리고 옛 사랑 따위는 다 잊었다는 듯이, 곪아터진 상처 따위는 전부 아물었다는 듯이 다시 인사나 하는거지, 앨리스처럼. Hi, Stra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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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무엇보다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중독되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빛이났다. 눈을 뗄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남녀관계를 다룬 로맨틱 영화중에 단연 최고였다. OST중 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좋다.. I can't take my eyes off you til' I find somebody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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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남녀관계만큼 복잡한것이 있을까. 연애한번 해보지 못했지만 많은 영화와 드라마는 우리에게 언제나 대리연애를 시키며 그 사실을 환기시킨다. Closer도 마찬가지다. 뉴욕에서 온 나탈리 포트만과 신문사 부고전문기자인 주드 로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만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어느날 주드 로는 소설 출판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위해 만난 사진 작가 줄리아 로버츠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그런 주드 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드 로는 그런 줄리아 로버츠에게 장난을 친다. 그 장난으로 줄리아 로버츠는 피부과 의사 클라이브 오왠을 우연치 않게 만나고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들 네명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사랑하고 헤어지는 달콤함과 아픔을 번갈아 가며 겪는다. 여느 평범한 멜로영화로 볼수 있는 스토리지만 Closer는 여러가지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듯 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고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건지.. 사랑에 있어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함께 감각적인 영상 그리고 지적인 대사 등 어느하나 빠지는것 없는 이 영화는 정말 좋은 영화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감독의 역량과 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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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저를 보면서 문득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무
리 혹은 최종회, 끝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클로저라는 영화의 제목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이라는 감
정에만 충실한 네 명의 남녀가 보여주는 그 조금은 치졸해 보이는 모습들을 보
면서 어느새 클로저라는 제목이 영화의 메시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클로저는 어쩌면 사랑이 끝나는 것 혹은 마무리되
고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
도 상당히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 그런 제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들은 치졸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오롯이 뛰어드
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사랑은 언제나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클로저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그 모든 행동들은 솔직히 너무나 유치하고 심지어는 파괴적이며 다른 이를 괴롭
히려는 행동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약간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을 보
는 관객의 입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의 사랑을 다시 되돌아보
면 우리의 사랑도 이 영화 클로저의 그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사랑은 사람을 유치하고 치졸하
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사랑에 대한 모
든 행동들 심지어는 사랑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그 모든 모습들은 결국 사랑이
라는 말로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기에 그들의 사랑은 그대로 사랑에 대한 최종적
인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클로저였던 것일지도 모
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살짝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
으로 자신이 했던 많은 유치하고 치졸한 일들이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
히나 주드 로와 클라이브 오웬이 보여준 남자들의 사랑에서 더욱 더 그렇게 느끼
게 된다. 물론 그들의 마지막은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
는 모습처럼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
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클로저는 그런 꽤나 부
끄러운 사람들의 사랑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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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회한정판인 아웃케이스저변을 갖고싶지만..ㅠ_ㅠ;; 그래도 저렴하게 샀으니 넘 좋아요~ㅎㅎ 하지만 케이스안쪽에 프린팅이 없어서 좀 싸보이는게 아쉽네요... 아무리 할인판이라도 보통 안쪽면에도 프린팅이 되어있지않나요? 아무튼 영화가 좋으니 만족합니다 ^ ^
초회한정판인 아웃케이스저변을 갖고싶지만..ㅠ_ㅠ;; 그래도 저렴하게 샀으니 넘 좋아요~ㅎㅎ 하지만 케이스안쪽에 프린팅이 없어서 좀 싸보이는게 아쉽네요... 아무리 할인판이라도 보통 안쪽면에도 프린팅이 되어있지않나요? 아무튼 영화가 좋으니 만족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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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까지 골인한 케이스는 포함 안된다 결혼=사랑도 아닌 것 같고.. 물론 모정 부정등의 남녀간의 사랑이외의 것들도 그래서 모애 부애가 아니라 모정 부정이겠지..
한 작품에 이토록 사랑의 과정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작품도 없는 것 같다 숨이 막힐만큼 연출도 지나치게 세련되었다 하지만 주제는 상당히 철학적이며 근본적인 것 같다
자신보다 누군가를 더 믿을수 없고 더 사랑할 수 없는... 그래서 다들 클로저다 모두 외롭지만..그래서 사랑을 하지만..다치고(닫히고)..다시 다치고(닫히고).. 결국 완전히 닫혀버리는
마지막에 나탈리 포트만이 보여주는 새출발같은 장면은 일종의 착각인 것 같다 새로운 사랑(사람)을 찾아 떠난다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디 가겠냐 하겠다
서글프고 또 서글프다 |
| 할 말이 아주 많고 또 할 말이 아주 없다.말을 막 쏟아내려고 하는데 목쯤 와서 턱 막혀버린다.나탈리 포트먼은 여전히 내 시선을 놓아주지 않고나의 숨을 가쁘게 만든다.과정없이 결과로만 1년씩 툭툭 끊어치는 연극적인 수법이 신선하고도 좋았다.만난 날에 대한 세밀한 묘사(실시간 느낌의)가 이어지다가 1년후로 넘어가 그 날의 또 상세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고또 1년후로...그렇게 총 4막의 연극을 본 느낌.그 일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을 지는 전혀 그려내지 않고 생각할 여지도 안 주고그냥 (결과적으로는) 나흘에 관객을 집중시킨다.그래도 개연성이나 모든 것들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 대단해.사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홍상수나 이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 소름끼치는 냉소와 바닥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은 난형난제지만캐릭터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온다.클로저는 그래도 드라마라는, 이야기라는 틀을 박찰 정도는 아닌 것이다.그냥 일상을 토막내어 들이대는 그런 무시무시함은 없다.적어도 보고 나면 뭐냐 저 인간들. 그래도 재밌는 얘기네. 이런 심상들이 남지,(뜨끔) 아니 이거 내 얘기 아냐, 내지는살다가 문득문득 떠올라버리는 공포는 없다(없을 것 같다).그것은 배우들의 아름다움이 주는 거리감도 있을 것이다.누가 나탈리 포트먼이나 쥬드 로나 줄리아 로버츠와 자신을제정신으로 일직선에 놓겠는가?그들의 아름다움 때문에그래도 썩 이야기 같아 보이는 거다.내게 있어 이 영화의 특별함은내가 가야할 지향점을 드디어 찾았다는데 있다.내가 하게 될 영화(든 뭐든)는결국은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했다.오랫동안 특별하게 기억될 영화다. - 또 봤다! 공지영의 오래된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보면 방송반이었던 여자주인공들 셋에게 동시에 작업을 거는 남자 선배 이야기가 나온다. 그 선배는 그들 셋과 똑같이 디어헌터를 본다. 공지영은 같은 영화를 세번 보는 그 남자에게 존경과 동시에 아연함을 품는다. 야 지겹지도 않을까, 영화를 세번이나.최근 나는 그 의문을 풀었다. 같은 장소, 같은 영화에 다른 인물이라는 설정이라서 흥미로운 것이다. 같은 부대찌개집을 가도 같은 맛이 아니다. 어라, 이 집 라면 사리가 이렇게 많았던가 - 그 동안은 놈이 독점해온 것이었다. 으헛 이 영화가 이런 느낌이었던가. 이렇게 사람들이 영화를 혼자 보지 않는 이유가 밝혀지고. 같은 비디오방, 같은 식당, 심지어 같은 옷가게에서 같은 옷을 입혀보며, 나는 다른 인물을 곁에 두고 생각한다. 디어헌터의 그 남자는 어쩌면 그런 상황을 즐겼을 지도 모른다. 바람피움의 소소한 재미는 어쩌면 이런 데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남자와 다시 본 영화 <클로저>. 희곡에 기반한 섬세한 스토리, 검술처럼 벼리어진 대사, 매끈한 미장센에 대한 언급은 집어치우자. 연애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까발리는 내용만으로도 해야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는 인트로. 남자와 여자가 맞은 편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걸어온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hello, stranger. 이들이 낯선 이에서 친근한 이 closer 가 되고 그 가까움으로 인해 서로 베고 할퀴고 상처주고 간섭하고 연관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그 과정에서 진실이 반드시 선은 아니고 인간이 반드시 행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다. 수많은 아이러니와 배신 속에서 우리는 연애라는 것에 조금은 냉소하고 회의하게 된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은 더 똑바로 그것을 직시하게 된다. 영화는 한번도 그들이 좋았던 순간을 비추지 않고 만남과 동시에 곧장 파국으로 미끄러져 버린다. 그 생략을 통해 우리는 달콤함에 현혹되지 않고 보다 연애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래, 거기 친근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만나고 가까워진다.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들은 서로를 해친다. 유미리의 말처럼 사랑은 피흘리며 서로에게 간섭하는 행위. 듣기 좋은 낙관은 낭패를 부를 뿐이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 행위.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한다는 행위falling in love의 정의다. 위 사진 속의 장면에서 알리스는 말한다. 남의 슬픔을 너무도 아름답게 찍어놨다고. 그래서 이 사진은 사기다, 라고. 영화는 세상에 이런 종류의 사기가 범람하는 것을 비웃으며, 알리스처럼 직접적으로 분노하기도 하며 연애의 치부에 렌즈를 들이대보려고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을 거둔 듯하다. |
| <졸업>의 마이클 니콜스 감독과 쟁쟁한 배우들. 당신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습니까. 아하, 그래서 반어적인 closer였던 것인가. 아직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나탈리 포트만, 스트리퍼 연기를 해도 색스러움은 별로 없는. 아이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묘한 느낌. 위노나 라이더나 줄리엣 루이스와는 살짝 다른 아우라를 풍긴다. 작년 골든글로브에서 이 영화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는데, 그 상 정말 아깝지 않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주드 로의 조합은 조금 어색하지만 이상하진 않고, 줄리아 로버츠는 나이들수록 더 예뻐지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의 지적인 포토그래퍼 역할이 잘 어울렸다. 왜 사람들은 자기 사랑'만은' 운명이라고 믿는 걸까. 사람들은 대체 사랑이란 게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늘 사랑에 목말라 하는 불쌍한 영혼인 척 하는 걸까. 여자 캐릭터들이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해 준. 남자들은 당췌 이해가 안되어서... ( - -); 특히 나탈리 포트만은 포스터를 보며 생겼던 우려를 단방에 날려보내준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WIN. 주드 로의 새끈함 추종자인 동생은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내가 정말 주드 로 땜에 봤지, 이 영환 정말 취향에 안 맞아" 라고 평하심-_- 그리고 어려운 질문을 던져왔는데, "언냐, 그래서 이 영화가 대체 뭘 말하는거냐" 잠시 생각하고 이렇게 답해줬다. "응, 사랑이란 건 어차피 허구 그 자체라는 거야-_-" 애인 없는 동생에게 제대로 말해준 건지 잘 모르겠다.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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