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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갈구한 민족의 지도자!
"통일을 갈구한 민족의 지도자!" 내용보기
우사 김규식선생은 한국근현대의 역사에 있어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비중에 비해 덜 조명을 받으신 민족지도자 중의 한 분이셨다. 물론 그 이유는 선생이 민족계열의 지도자라기 보다는, 중도 우익적 지도자였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중도'라는 뉘앙스에서 느껴지듯이 분명 김규식선생은 사회주의적 개혁관에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갖고 계셨다는 견해
"통일을 갈구한 민족의 지도자!" 내용보기
우사 김규식선생은 한국근현대의 역사에 있어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비중에 비해 덜 조명을 받으신 민족지도자 중의 한 분이셨다. 물론 그 이유는 선생이 민족계열의 지도자라기 보다는, 중도 우익적 지도자였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중도'라는 뉘앙스에서 느껴지듯이 분명 김규식선생은 사회주의적 개혁관에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갖고 계셨다는 견해가 중론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좌'와 '우'의 구분이 명백했던 해방공간에서 중도적 지도자들의 입지는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분단이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의해서 그런한 이념의 분열상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로인해 남한의 역사는 민족주의계열의 반공주의적 사가들이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좌파적 이념공간은 완전히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좌파적 지도자 중도적 지도자들 역시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분단에 의한 이념적 장벽에 의해 그들의 모든 업적이 역사속에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김규식선생 역시 그러한 인물중의 한 분이셨다. 해방이후 좌우의 심각한 대립속에서도 균형을 잃지않고 남북의 통일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셨지만, 결국은 그 모든 노력이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해방공간에서 민족지도자로서 선생의 비중은 김구나 이승만 못지않을 정도였는데, 미군정이 한때 남한 지도자로서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미군정으로서는 남북의 통일보다도 우익세력독점하의 남한을 원했기 때문에, 김규식선생 역시 영구적인 대안은 될 수 없었다. 비록 분열주의자였을 망정 미군정의 구미에는 이승만이 더 맞아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연석회의는 선생에게 있어 정치생활의 마지막 기회이자 모험이기도 했다. 김구선생과 함께 한 남북연석회의 실패로 귀결되자, 선생은 남북 양정부의 분열화 기도에 정치적 회의를 느끼고 정치무대에서 은퇴하다시피 했다. 어쩌면 너무도 이른 정치적 은퇴였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통일을 위한 숭고한 명분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의 화해무드가 일고 있는 지금, 선생은 과거의 무관심을 뒤로하고 역사의 전면에서 그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k*****l 2002.07.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