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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든 순간 무게감이 금방 느껴졌다. 330여쪽이 되는데, 비슷한 쪽 수의 책보다 훨씬 묵직했는데, 그럴만도 한 것이 지질이 다르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껍고 한결 고급스러웠다. 아무래도 책의 반이상을 그림이 차지하다 보니 출판사 쪽에서 종이에 신경을 쓴 모양인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져지는 감촉이 빳빳하면서도 맨질맨질한 것이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표지도 눈에 익었다. 며칠 전에 읽은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의 표지하고 같은 그림, 김홍도의 '송하 맹호도' 였다. '한국의 美 특강'에서는 용맹스럽고 당당해 보이는 호랑이 얼굴 부분만을 확대해서 실었다면, '회화'에선 그림 전체를 실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회화'에서는 앞부분에서 조선시대의 그림에 대한 흐름이나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조선 회화의 감상 편에 무게 중심이 잡혀 있어서, 화랑에 들러 전시회를 관람하는 마음으로 젖어들 수 있었다. 김정희의 '세한도' 같이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에서부터,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품까지.. 실려있는 90여점의 명작들을 한 점 한 점 느긋하게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즐거움은, 이제 갓 우리 그림에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 나에게 기대감을 갖고 책을 펼쳐보게 했다.
90여점에 이르는 그림 중 직접 봤던 작품에 한번이라도 눈길이 더 가고 애정도 더 가게 되는 것이.. 첫번째로 소개된 작품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부터 그랬다.
그러니까 재작년 추석 연후 중앙국립 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그 전시회에서 이 '몽유도원도'를 정말 힘들게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던 관람객들 그 틈에서 무려 네시간 반을 기다렸다, 작품을 볼 수 있게 허용된 시간은 겨우 30초나 됐을까했던 바로 그 명작 '몽유도원도'. 워낙 짧은 시간이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서 급한 마음으로 훑어만 보고 나와야 했다. 그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전시회장을 나왔던 그때 그 기억은 우리 나라 작품임에도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그 현실 또한 다시 한번 일깨워 주기도 했다.
그리고 '회화'를 통해 지난 달말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회에서 만났던 작품 몇 점도 반갑게 재회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김홍도의 '마상청앵',신윤복의 '미인도', '춘색만원', 신한평의 '자모육아', 장승업의 '삼인문년'..
안견-몽유도원도
 김홍도 '마상청앵' 신윤복 '미인도'
  신한평: 자모육아 김득신:야묘도추
신윤복:춘색 만원..
지난 10월말에 갔던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회에서도 어찌나 줄이 길게 늘어섰는지, 두시간 만에 입장했다. 그리고 신윤복 그림을 빙 둘러싼 관람객 틈에 끼어서 어렵게 신윤복 작품을 만났었다. 책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도 그림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실제 작품을 눈 앞에서 보는 맛은 실로 짜릿했다. 이것이 바로 그 자리, 그 순간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진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라는 것이고, 그 아우라는 실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신윤복 작품은 소설' 바람의 화원'을 통해서 상상력의 날개까지 달리게 됐으니, 그 작품들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격은 벅찼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림이라 더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 덕에,, 신윤복이 부친인 신한평의 '자모육아'도 다시 한번 눈여겨 보게 됐고..
아직은 내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심미안이나 완상수준을 갖추지 못했다. 책 한권보고 나면 그 필자의 견해에 혹하고 흔들리는 수준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또 유명한 화가의 작품 앞에 더 오래 발길을 멈추게 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그림을 보러 다니고, 관심을 쏟는다면, 한 점 한 점 본 이력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림 보는 안목이 발전하고, 깊어지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 작품 외에도, 우리가 들어보고 알 법한 화가와 그들의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중 내마음이 쏠렸던 것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화가 이정의 그림이었다, '수향귀주'라는 작품. 허균과 돈독한 교분을 나누었다는 이정의 그림은 잔잔한 강위에 도롱이를 쓴 사공이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내눈에는 사공이 마냥 고단해보였고 쓸쓸해 보였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은 그의 등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이미지를 찾지 못해 그림을 못올린 것이 마냥 아쉽다)
한 점 한 점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화가의 신분도 다양했지만 사연도 있었다. 세종의 현손 (5세손)인 이암이나 성종의 8번째 왕자의 증손인 이경윤같은 화가는 왕가의 인물이었다. 또 중종 때 사약을 받고 죽은 김안로의 막내아들인 김시는 그림으로 벼슬길이 막힌 자신을 달래며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눈에 가까이 있으면 마음에서 가까와 진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 그림을 대하는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서양화가들의 생애나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 화가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그들의 생애나 작품 세계에 대해 덜 관심을 가졌던 것에 대해 뒤돌아보게 됐다. 서양미술이 취향이라 그 렇다고 하는 것은 변명이었고, 우리 미술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고, 관심을 덜 가졌던 것이다. 우리 그림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또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니고 있으니, 이런 편식과 편향도 점점 나아지게 되겠지. 간송미술관에 쏠렸던 대중들의 관심이나, 지난 주에 다녀왔던 국립 박물관의 '초상화의 비밀'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적지 않았던 것, 모두 다 희망어린 징조라고 생각된다.
한가지 더 밝혀두자면, 우리 그림이 점점 내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꼭 우리 것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좋은 그림이고 그 아름다움이 이제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때론 정겹고 친근하 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회화'를 통해 느릿한 걸음으로 전시장 두어 바퀴를 돌아본 것 같다. 유명작품도 많았지만, 몰랐던 작품들도 접하게 됐으니, 다른 책에서나 인터넷에서 또 만나고, 만나면서 정들도 기억하고, 또 그러다 직접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내 눈으로 직접 감상하게 되는 순간 아, 하고 더 반갑게 빠져들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한 작품 한 작품 눈으로 익히는 것 에서 시작이다. 이제 막 우리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로서는 첫 술에 배부를 리 없고, 천 리길도 한걸음부터니.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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