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友がみな我よりえらく見える日は :: 上原 隆 힘든 일을 겪을 때 '너보다 못한 사람들을 봐라' 라는 말은 사실 당장의 도움은 안된다. 그 '못한' 사람들의 처지보다 지금 현재의 내 처지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우월감을 갖고 살기에는 초라하고,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겸허함을 갖기에도 어딘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들어서다. 세상에 나보다 잘 살고 운 좋은 사람들이 저리 많은데 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찌끄러기 같은 위안으로 살아 가야 한단 말인가. 그 못한 사람들을 보고 겸허함을 가지려면 적어도 저 잘난 사람들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은가. 먹을 게 없어 삼시 세끼를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은 수족을 잘린 사람보단 신체는 건강하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어쩐지 세상의 떨거지들끼리 '너보다 내가 낫다' 고 비참함을 으스대는 것 같아서 더 절망스러워진다. 저기 저 위의 운좋고 복받은 사람들도 힘든 날이 오면 내 쪽을 가리키며 '저런 사람도 있는데' 하고 삶의 희망과 의욕을 되찾을까. 그러나 그런 비참함을 헤쳐서라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가 함부로 생을 내던지지 않고 '살아 있어서' 다. 지금 내가 겪는 마음의 고통이 그들이 겪는 것에 비하면 호사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그 누구도 남의 고통을 보다 낫거나 보다 못하다고 단정 내릴 수는 없다. 나는 내가 견디고 버틸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제는 끝이다' 하고 생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저런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나도 어떻게든 살아야지' 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버티는 만큼 어쩌면 나도 좀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그들의 비참함보다 내 비참함이 덜한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강함과 희망을 어쩌면 내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거기에서 그들을 바라봐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자 그들의 삶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을 되새기고 존중하는 발견과 성찰의 단계다. 무엇을 해도 운좋은 사람들과 무엇을 해도 운나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서의 진실은 전적으로 운나쁜 사람들 쪽이 그 해답의 열쇠를 갖고 있다. 남들이 겪지 못하는 것을 겪는 것으로 그들은 순교자가 되고 선구자가 된다. 근시안의 인간이 컴컴하고 협소한 길을 나아갈 때 그들은 빛이 되고 새 길을 터는 것이다. 같은 인간의 길을 가고 있는 대다수의 이들이 그들보다 운이 좋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온몸을 바치고 피눈물을 흘리며 닦아 놓은 길 앞에서 아는 체 하며 여기가 길 끝이네, 방향이 없네를 말할 수가 없다. 앞이 깜깜하고 길을 헤매는 것은 단지 그들의 길을 바로 보지 않아서일 뿐이다. 불이 뜨거운지 안뜨거운지를 직접 데여 본 사람이 그 진실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어찌 그것에 대해 고마움을 갖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순교자의 길을 자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처한 처지에서 '왜 하필 내가' 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그들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대신 희생하는 것' 이라 감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여길 때, 운없이 태어나 고통만 겪고 간다고 하소연 할 때 그 손을 꼭 붙잡고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 덕분에 산다고, 당신 덕분에 더듬더듬 갈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당신 덕분에 조금씩 배워 나간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어쩌면 그 말이 그들의 처지를 더 부각시켜 한층 외롭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아픔이 이 세상에 존재해 있어 '삶의 가치' 가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머리 조아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찾아다닌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하나같이 비참하고 남루한 삶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불안함과 고통의 먼지를 가라 앉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처지가 그들보다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그들을 뒤쫓아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야말로 삶의 가치를 단순하고도 명징하게 보여주는 존재들이니까. 그게 자신의 일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외모와 재능을 타고 태어나지 못해 꿈에 근접조차 할 수 없는 일도, 실직하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방황하는 일도, 사람을 잘못 만나 온갖 고생을 하는 일도, 인간 관계에서의 트러블로 마음을 다치는 일도, 불의의 사고나 병을 얻는 일도, 모두 원치 않는 좌절로 무릎을 꺾게 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는 '나' 는 자신도 모르는 새 반드시 누군가의 공감을 사고, 위안을 주고, 의지가 된다. 설령 그 누구가 나에게 와서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해주지 않는다 해도 '나' 의 인생은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미래의 나' 에게만큼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 '나' 의 가치가 한없이 초라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날엔, '미래의 나' 에게, 그리고 언젠가 만날지도 모를 '나만의 인연' 에게 말을 걸어보자. 나는 너를 위해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그래서 내 인생은 더 가치있게 되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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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 언제 그렇더라..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오히려 언제 그랬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날이 언제인지. 가사로, 육아로 바빠서 나만의 시간이 별로 없는 요즘, 난 언제 친구들이 나보다 잘나 보이는지 말이다. 아직 결혼을 안 해서 혼자 자유롭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때?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서 얽매인 것 없이 홀가분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때? 결혼하고 아이도 있지만 직업을 가지고 분주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때?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친구들을 볼 때 좋겠다 싶기는 하지만, 나보다 잘나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난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끝까지 일을 놓지 않은 친구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면? 그때는 그 친구들이 나보다 잘나 보일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을 보다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순간, 난 이 책을 집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아야지 싶어서 말이다.
첫 장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이 한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음 장을 넘길 때 당연히 그 다음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열네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열네 명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들 모두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난 이들이 갖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들과 그리고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그런 이들이었다. 특별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이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나하고 놀라기보단, 그래..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싶은.. 그런 이들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걱정 없이, 문제없이 살 수 있겠는가.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문제와 부딪힐 수밖에 없지. 당연한 거다. 내 눈에는 항상 내 문제가 더 커 보이고 왜 나에게만 이런 문제들이 생길까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다를 뿐이지. 담담하게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작가를 통해,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는 이들 열네 명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거리들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듯 했다. 그저 각기 다른 삶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해서 죽지는 않으니까. 아무리 큰 문제도 죽을 만큼은 아니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단지 힘들 뿐이지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였을까? 작가는 첫 장에서 죽을 뻔 했지만 죽지 않았고, 죽을 수도 있지만 죽지 않는 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어떤 경우라도 죽는 건 옳지 않다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죽는 것은 무서운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 속에 담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난 한 가지 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제목만 보면서 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친구가 잘나 보여 내가 못나 보인다면, 친구가 불행하다면 내가 잘나 보일까?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답은 아니다였다. 친구의 불행으로 내가 잘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불행을 보며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작게 여기며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결혼을 안 한 친구는 결혼한 친구가 가사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며 결혼 재촉 스트레스의 위안으로 삼을 뿐이고, 결혼한 친구는 결혼 안 한 친구가 주변의 결혼 재촉으로 스트레스 받는 것을 보며 힘든 가사의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힘겨움을 보며 서로서로 위안을 삼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다른 이들의 힘겨움이 내 힘겨움보다 더 커 보일 때, 그것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겨움을 더 작게 여길 수 있게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드는 것은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큰 힘겨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한편으로 이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을 친구보다 잘나 여기게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책에 담긴 열네 명의 삶을 보며 난 나의 힘겨움을 더 작게 여기게 되었고, 나의 힘겨움이 별것 아니라 위안을 삼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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