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답기 위한 공부
"인간답기 위한 공부" 내용보기
“국영수를 중심으로…”대학 입시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듣곤 했던 말이다. 어떻게 하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마치 모두가 수험생의 부모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은 그 말에 귀 기울이곤 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명문대의 진학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원하는 학교 입학에 실패하면 곧 인생이 실패할 것처럼 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묻고싶어진다. “대학 입학
"인간답기 위한 공부" 내용보기
“국영수를 중심으로…”
대학 입시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듣곤 했던 말이다. 어떻게 하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마치 모두가 수험생의 부모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은 그 말에 귀 기울이곤 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명문대의 진학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원하는 학교 입학에 실패하면 곧 인생이 실패할 것처럼 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묻고싶어진다. “대학 입학이 진정 모든 걸 보장해줄까?” 나 역시도 그 시절 달리 행동하지 않았으면서.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망각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학창 시절 배웠던 대부분의 것들을 잊었다. 시험을 앞두고 급하게 암기했던 것들이 오랜 기간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다. 무엇보다 살면서 이들 지식을 몰라도 별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망각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게끔 만들었다. 경쟁이라 하는 건 학교 밖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된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은 그다지 높지가 않아 제법 괜찮은 직장에 취업한 이들도 원치 않는 시점에 직장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현실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공부한다.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의 공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공부는 실용적인 성격이 다분히 클 것이다. 허나 그것만이 공부는 아니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서 저자가 거론하려 들었던 공부의 성격은 다소 달랐다. ‘공부’라는 단어가 특정 시험을 고려해 머리를 싸매는 형태를 연상케 한다면, 저자가 언급한 건 그보다 ‘학습’에 가까웠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로 익혀야 하는 것으로부터 다소 빗긴 형태의, 얼핏 보아서는 전혀 티가 안 나는 형태의 무엇=. 저자 식으로 이를 풀자면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을 익히는. 어떠한 생산성도 발휘 못해 오늘날 필요 없다는 평을 듣기 일쑤인 인문학이 왠지 이에 해당하지 싶었다. 일반적인 세평에 반하는 사례가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긴 한다. 이를 테면 인문학 강의를 노숙인들이 이제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식의. 이제까지는 그런 보도를 접할 때면 인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처럼 기뻤으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배움, 몰두, 그 자체가 충분히 고결하다, 누가 뭐라한들 그 사실이 변치느나 않는다. 딱히 가시적인 성취가 없는 듯함에도 누구도 응시 않는 분야를 파고 든 인물들의 삶을 어느 누가 가치 있다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들이 터를 닦아 주었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된 많은 이들이 세기의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위대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려 안간힘을 쓴다면 외려 인류는 그 무엇도 이룩하지 못했을 거다.
한번은 동상으로 두 팔뚝을 못 쓰게 된 산악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팔뚝이 있던 자리에 아이스픽을 보철로 박아 넣은 뒤 사고 전보다 더 왕성하게 산에 올랐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수천 명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했던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는 머리를 빗고 전투에 나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웠다. 그들의 존엄을 망상이나 현실 부정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은 뼈와 육신으로 만들어져 언젠가는 먼지와 재가 될 운명이면서 그렇지 않은 척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일까?
위에서 든 사례와 대조적으로 긴 투병 끝에 죽음을 마주한 어떤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명료한 시선으로 삶에 감사하며 괴로움을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환상에 빠지거나 미래에 이런저런 일을 할 거라며 자신을 위안하지 않고,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시늉을 하지 않고, 인위적 연출로 삶을 끝맺을 시기나 방식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존엄이 있다. 이것이 파스칼이 말한 ‘생각’의 존엄이다. -p160,161
꼭 좋은 학교에 적을 두어야 존엄에 눈뜰 수 있는 건 아니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학자 대신 열악한 처지의 조교수가 학생 교육을 도맡고 있는 게 대학의 현실이라 꼬집었다. 무엇이 우리 삶에서 중한지, 가치의 경중을 판단하는 추는 우리 안에 존재한다. 뚝심 있게 이를 유지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용기의 획득을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기 위해.
이달의 사락 q*****2 2025.09.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