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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은 타임머신, 투명 인간, 우주전쟁, 모로 박사의 섬 등이 있다. 모두 영화화되어 어떤 영화들은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유명 소설들은 그렇다지만 이 책 [눈먼 자들의 나라]와 같은 단편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리뷰어 본인도 타임머신과 투명 인간, 우주전쟁을 제외하고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본서를 읽으며 짧으면서도 선명한 은유가 담긴 이 책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눈먼 자들이 유럽 어느 계곡에서 터를 잡으며 세월이 흘러 눈먼 자들의 작은 사회가 이루어졌고 그곳에 눈이 보이는 누네즈라는 남자가 사고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는 ‘눈먼 자들 가운데서는 외눈이 왕이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이 그들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 확신했으나 눈먼 이들이 이룩하고 지속해온 사회에서는 보인다는 개념도 시력에 의해 정의된 모든 개념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눈먼 자들 가운데에서 그는 모자르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그런 속에서 누네즈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결핍이 보편인 세상에서는 그 결핍된 한계 이상을 보는 자가 결핍된 이가 될 뿐이다. 누네즈는 이곳에서 노예나 하인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런 삶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해 나가고 있을 때, 메디나 사로테라는 눈먼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누네즈의 역설적인 열등한 특징들에 그녀의 가족들은 반대하고 누네즈의 열등성을 없앨 수 있다며 눈먼 자들의 의사는 그의 눈을 파내는 수술을 하자는 제안을 한다. 누네즈는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메디나 사로테는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하자며 누네즈를 설득하고 누네즈는 그녀의 설득에 수술을 받으러 가려 길을 나선다. 그러다가 눈먼 자들의 마을의 산 위로 올라가 그 마을과 세상의 경계인 산 위에 누워 맑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
이 짧은 단편에 담긴 은유는 무척이나 선명하고 명백한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소설이 담긴 장을 넘어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깊어지자]에 장들을 보며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문제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편집자의 말]에서부터 다소 충격이었는데 편집자는 작가가 ‘결핍된 사람들의 사회를 이상사회로 그렸다’고 ‘정상’이라는 기준이 상대적이란 것을 그려냈다고 피력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전혀 이런 감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감상이 있을 수 있는 책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루묵의 갖은 양념]이란 장에서는 이 소설을 진정한 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보는 은유로써 해석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관점을 돌아보거나 [정상성에 대한 고찰]을 하는 장도 있다. 모두 짧은 이 소설에 대한 다층적인 감상과 해석을 가져 보도록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본서가 한계가 다른 이들 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문제가 클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예수가 등장하자 그를 죽이기까지 한 유대인들(십자가형 지시는 본디오 빌라도가 했지만 예수가 사형당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대인들이니까)과 세상은, 이런 한계의 경계가 예수와 그들 사이에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나 대중이 보는 것 이상을 보는 자는 억압당하고 배척당해왔다. 인류사에 남아있는 현자라는 자들은 대중이 보는 것 이상을 본 것이 아니라 대중이 보는 것을 달리 표현해 전달할 줄 아는 자들이 다였지 않나? 대중의 관점 그 이상은 외칠 것이 아니라 숨길 것이다. 남겨야 한다면 은밀히 다음 세대만 볼 수 있을 정도의 방식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소설에서 수술로 은유된 것과 같은 제재를 받게 된다. 기독교 체제에서 기독교인들이 저들은 한계 이상일 것만 같다고 여긴 이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역사에도 남아있다. 마녀사냥에서 숱한 이들이 그랬고 잔 다르크가 그랬고 조르다노 부르노가 그랬다. 세상이 허용한 경계까지만 빛나야 한다. 그 이상 빛나는 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아니면 세상의 경계 밖에서 빛나야 한다. 세상으로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본서는 생각해 볼 만한 은유로 다층적인 감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내가 가진 감상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앞서 언급한 본서의 후반부를 보면 다채로운 감상이 남을 책이란 것을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웰스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은유가 깊지만 이 단편 역시 약하지 않다는 감상을 남긴다. 만나보실 만한 책이다.
#리뷰어클럽리뷰 #눈먼자들의나라 #허버트조지웰스 #내로라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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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는 연예인 Y 씨가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에 대한 수준 낮은 대응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란 정국에서 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며 윤석열의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S 목사가 주최한 한 행사에 Y 씨가 참석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는데, 이에 대해 그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팬들의 비난이 있었고, 이를 참지 못한 Y 씨가 자신의 SNS에 팬들을 조롱하는 듯한 사진을 올렸던 것이다. 자신의 이마에 초성 'ㅂ ㅅ'으로 된 부적절한 단어를 쓰고, 양 볼에는 손가락 욕설을 의미하는 그림을 그려 사진을 찍은 후 SNS에 올린 것인데, 그는 사진과 함께 "널 믿은 내가 XX이지. 맘껏 실망하고 맘껏 욕해. 너희에겐 그럴 자유가 있어. 내가 자살하긴 좀 그렇지 않아?"라는 글도 써서 화를 자초했던 것이다.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비난이나 칭찬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터, 대개의 성숙한 연예인은 그와 같은 비난에 초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논란이 될 만한 행사에 자신이 참석했다는 건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비난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지향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누군가의 비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가수 이승환이나 이은미, 배우 겸 가수 아이유나 배우 조진웅 등의 행보는 오히려 담담하고 대범하다. 반면에 문제가 되었던 연예인 Y 씨의 미성숙한 대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가치관에도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는 어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까닭은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하나의 표식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는 아이는 어른에게 담담히 따지고 들 뿐 적어도 못된 행동으로 대들거나 어깃장을 놓지는 않는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눈먼 자들의 나라>를 읽으면서 나는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 Y 씨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눈먼 자들 속에서 눈뜬 이들을 비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눈먼 세대가 이어진 지 벌써 14세대가 되었다. 그동안 이들은 볼 수 있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됐다. 시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희미해졌고, 관련된 단어조차 다른 단어로 바뀌었다. 골짜기 밖 세상에 관한 이야기 역시 희미해지거나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골짜기를 둘러싼 벽과 바위 비탈 너머의 세상에 관한 모든 관심을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p.45) 영국의 소설가이지 문명 비평가로 알려진 허버트 조지 웰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SF의 아버지'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가 쓴 소설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세계사 산책>이라는 역사서 덕분에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그처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1904년에 발표된 단편 <눈먼 자들의 나라>는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함께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지만 사실 분량면에서 부족함이 있다. 하여 소설과 함께 '편집자의 말', '독후 활동', '신윤옥의 문학과 음식', '저자 소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월주의', '정상성에 관한 고찰', '필터버블' 등 소설의 내용을 다층적으로 음미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이 함께 실려 있다. "1904년에 발표한 「눈먼 자들의 나라」는 시각이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정상성과 우월성, 문명과 폭력의 문제를 통찰한 작품이다.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공동체의 규범에 도전하지만, 공동체는 그의 '다름'을 병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 한다. 웰스는 이 작품을 통해 계몽주의적 자만과 근대문명의 폭력성을 통렬히 풍자한다." (p.135 '저자 소개' 중에서) 소설의 구성이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에콰도르 안데스산맥의 오지에 세상과 단절된 채 눈먼 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 예전에는 문명과 통하는 출구가 있었으나 민도밤바 대폭발로 그마저도 막혀버렸다. 땅도 비옥하고 초지도 있어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이상한 질병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었고 그렇게 14세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안데스 산맥을 오르던 스위스 등반객의 가이드로 참여했던 젊은 청년 누네즈가 절벽에서 떨어져 우연히 그 나라에 방문하게 되었고, 시력을 잃은 채 후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기관을 발전시켜 온 시민들은 누네즈가 볼 수 있는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한 채 시민 중 한 사람인 야콥의 종이 되어 살게 된 누네즈는 그의 막내딸인 메디나를 사랑하게 된다. 남들과 다른 누네즈의 행동에 대한 의사의 처방은 결국 눈을 수술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메디나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데... "누네즈가 편히 잠든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눈먼 자들의 골짜기는 2킬로미터 아래의 거대한 구덩이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햇살이 내려앉아 사방에는 온통 빛이 만연했지만, 골짜기 안쪽으로는 안개와 그림자가 어둠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누네즈가 몸을 누인 언덕은 온통 밝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P.97) 정보가 범람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는 종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른바 '필터 버블'의 환경에 갇혀 눈먼 자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대다수는 나이가 많거나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이지만, 젊은 사람들 중에도 더러 그런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우리는 꽤나 당혹스러워진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볼 수 있는 누네즈가 세상 자체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는 풍경을 설명하는 것처럼 무용하고, 그로 인하여 때로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연예인 Y 씨에게 우리가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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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나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허버트 조지 웰스, 우리가 알기론 H. G. 웰스. H.G. 웰스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허버트 조지 웰스가 누구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소설가, 『타임머신』의 큰 성공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을 쓴 작가다. 이 책 『눈먼 자들의 나라』는 H.G. 웰스의 작품이다.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책
눈먼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 거기에 눈을 뜬 사람이 들어가게 된다. 눈을 뜨고 있으니 당연히 잘 보인다. 그런 사람이 눈먼 자들이 있는 나라가 간다면 당연히 이런 말이 떠오른다. ‘눈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
맞다. 당연하다, 눈먼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는 눈뜬 사람이 당연히 왕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거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인데, 과연 그럴까
여기 그런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다. 이 소설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다. 그는 ‘눈 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 소설이다. 소설적 이야기를 통해 그는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킨다.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눈뜬 사람이 눈먼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한다. 그런 장치를 작가는 만들어놓았다. 눈먼 사람들만 사는 나라, 즉 눈먼 자들의 나라다. 그런 나라가 있단다. 그게 어디 있는가 하면, 침보라소 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산악의 골짜기다.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는 눈먼 자들이 산다. 아주 먼 옛날에는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있었다는데, 민도밤바 대폭발이 일어나 이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되려고 그랬는지
누군가 우연히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눈뜬 자가.
바로 그 즈음, 외부인 한 사람이 골짜기로 흘러들었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그 남자의 이야기다. (17쪽)
그 남자의 이름은? 누네즈 (Nunez).
그 사람의 눈에 비친 그곳은 어떻게 달랐을까
중앙 도로의 양쪽으로는 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29쪽)
집들의 생김새가 어딘가 달랐다. 집마다 현관문은 있었지만 창문은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9쪽)
거기에다가 색이 이상했다. 색 조합이 불규칙했던 것이다. 회색, 황색, 갈색의 반죽이 여기저기 섞여 덕지덕지 덧발라진 상태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눈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 추리는 정확했다. 눈 먼 사람들만 사는 데 집에 창문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또한 집에 찾아가기 쉽게 하도록, 집과 집 사이가 일정할 수밖에.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집에 색칠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작가는 그런 눈먼 자들이 사는 도시의 특징을 잘 추려놓았다.
아, 이제 궁금한 것, 그것 말해보자.
‘눈 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
이 소설의 말로 바꿔보자. 오래된 속담이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이 왕이다.” (35쪽)
눈먼 자들과 누네즈가 만나 나누는 대화, 누네즈가 그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하는 대목이다.
저는 저 산 너머에서 왔어요. 산 너머 보이는 사람들의 도시, 보코타에서요. 수십 만명이 모여 살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도시죠. (35쪽)
그러자 그들은 의아해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보이는 이 말을 영어로 읽어보자. 참, 이 책은 영어와 한글 번역본이 같이 묶여있다.
where the city passes out of sight. sight.
누네즈의 눈먼 나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생활에서 그는 다시 그 속담을 떠올린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이 왕이다.” (35쪽)
누네즈는 생각한다. 눈먼 사람들만 있으니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라고.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여기에서 작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살아움직인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이부분이다.
눈뜬 자가 눈먼 자들과 싸워서 지는 장면.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가진 것을 다 가지고서도 지다니? 눈뜬 사람이 눈먼 사람에게 지다니 그게 웬일인가, 참 별일이다. 그 별일이 일어난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 내막을 밝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포일러니까, 밝히지 않으련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이 책은 <단숨에 읽고>와 <깊어지자>의 두 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숨에 읽고>에서는 소설의 본문이 <깊어지자>에서는 여러 읽을 거리를 마련해 놓았다.
독후 활동 / 도루묵의 갖은 양념 / 저자 소개 /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월주의 / 정상성에 관한 고찰/ 필터버블
해서 독자들은 여럿이 또는 혼자서라도 위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대화하며 생각할 수 있다. 과연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내가 눈뜬 자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항상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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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눈 먼자들의 나라>를 보았을 때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를 먼저 떠올렸다. 제목도 비슷했고 사람들 모두가 점점 시력을 상실하고 거기에 적응한다는 배경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주제 사라마구의 다음 소설이나 에필로그 같은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눈 먼자들의 나라>는 SF의 아버지이자 <투명인간>, <우주전쟁>, <닥터 모로의 섬>, <타임머신> 등을 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었으며 1904년에 발표되었다. 앞서 <타임머신>, <투명인간>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허버트 조지 웰스 특유의 느낌과 상상력이 <눈 먼 자들의 나라>에서도 쭈욱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당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소재를 다루었다. 또한 엄청난 흡입력으로 순식간에 독자를 '눈 먼 자들의 나라' 속으로 빨아들인다.
이야기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 대하여 '전해지는 바'로 시작된다. 침보라소 화산에서 오백 킬로미터,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의 가장 험하고 황량한 땅, 그 비밀스러운 산악 골짜기에 있는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땅이 바로 '눈먼 자들의 나라'이다. 스페인 통치자의 탐욕과 폭정을 피해 페루계 혼혈 가족들이 이 땅으로 달아나 살았다. 아주 옛날에는 이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기도 했으나 갑자기 민도밤바 대폭발이 닥쳐서 '눈먼 자들의 나라'로 향하던 유일한 길이 무너지고 말한다. 정착자들 가운데 한 명은 협곡 너무 골짜기 바깥 쪽에 우연히 머물고 있었는데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가족과 친구, 재산 등을 모두 잃고 힘든 노동 끝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 골짜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이 퍼져나가 그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과 골짜기에 들어온 몇몇 아이들까지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다. 전염병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 노인은 시력이 약해지고 젊은이들은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골짜기의 기후는 완벽했으며 평화로웠다. 이 사람들은 시력을 잃었으나 여전히 강하고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냈다. 똑똑한 이들이 태어나 물려받은 삶의 지혜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는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후 외부인 한 명이 이 '눈먼 자들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었다. 안데스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파라스코토페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따라 가이드로 왔던 남자는 낭떠러지에서 떠러져 가파른 비탈길로 데굴데굴 굴러서 이 나라에 도착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갑자기 뚝 떨어진 이 남자, 그리고 이미 열다섯 세대 동안 보이지 않는 이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에서 폐쇄적으로 살던 사람들. 보이지 않는 이들 속에 갑자기 나타난 보이는 자는 여기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눈 먼 자들의 나라>는 오른쪽에 한글 번역본이 있으며 왼쪽에 영어 원문을 그대로 실어놓았다. 영어로 고전 읽기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망설이는 사람들, 또는 영어 고전 읽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구성이다. 또한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소설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글을 실어 놓았다. 편집자의 말, 독후 활동으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 이 소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우리나라의 일화 '도루묵', 저자 소개와 소설의 근간에 깔려 있는 사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것 등등이다. 고전 읽기를 제대로 하고 싶은 애독자들,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반추하며 읽고 싶은 이들에게 <눈 먼 자들의 나라>는 반가운 소설이다. |
『눈먼 자들의 나라』 – 정상성의 폭력을 묻는 고전, 지금 우리의 이야기▲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 ▲ 옮긴이 : 차영지 ▼ 출판사 : 내로라 ★ H.G. 웰스의 이름은 이미 익숙합니다. 《타임머신》, 《우주 전쟁》 같은 공상과학 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는 언제나 “미래를 예언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지요. 『눈먼 자들의 나라』는 그가 남긴 짧은 단이지만, 짧음 속에 담긴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 눈먼 나라의 첫 장면 – 설원의 고립안데스 산맥 깊은 곳, 인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마을. ☆ 보는 자의 충돌 – 규범의 낯섦시력을 가진 이방인은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보는 능력’으로 우월함을 증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눈먼 공동체는 오히려 그를 미성숙한 존재, 치유가 필요한 환자로 간주합니다. ☆ 사랑과 체념 – 정상성을 향한 강요주인공은 공동체의 규율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기 위해 눈을 없애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사랑과 자유, 체념 사이의 갈림길에서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 열린 결말 – 자유를 향한 퇴장마지막 장면, 주인공은 결국 공동체를 떠나 험준한 산맥을 홀로 오릅니다. 그는 끝내 살아남았는지, 아니면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간 그 결연한 뒷모습입니다. ☆ 오늘 우리의 이야기 – 알고리즘 사회와 필터 버블『눈먼 자들의 나라』는 1904년에 쓰였지만, 오늘날에도 무섭도록 유효합니다. 다수가 공유하는 감각이 곧 ‘진실’이 되는 세상, 그리고 다른 의견을 지닌 자는 배제되는 사회. 웰스가 묘사한 눈먼 공동체는 오늘날 알고리즘이 만든 필터 버블과 닮아 있습니다. ◉‘보는 자는 눈먼 자들 사이에서 왕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사실 ‘다른 눈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눈먼자들의나라 #내로라 #허버트_조지_웰스 #차영지 #정상성 #필터버블 #고전읽기 #과학소설 #사회비판 #독서에세이 #도서 #책 #book #독서 #북 #신간도서 #신간추천 #추천도서 #책리뷰 #b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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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투명 인간', '타임머신'으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 작가가 쓴 [눈먼 자들의 나라]이다. 1904년에 발표된 이 단편은 2025년 오늘날 읽어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고전이다. 내로라 출판사에서 출간된 [눈먼 자들의 나라]는 2가지 측면에서 깊은 여운을 주었다. 첫 번째는 작품 그 자체의 가치이며, 두 번째는 '내로라한전집' 포맷이다. [눈먼 자들의 나라]는 기발하고 섬뜩한 발상으로 현실 세계 너머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다. [눈먼 자들의 나라]의 정착민이었으나 산사태가 나 세상과 단절된 그때 외부 세상에 나와 있던 한 남자와 외부 세상에서 눈먼 자들의 나라로 가게 된 한 남자 '누네즈'. 이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눈먼 자들의 나라]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두 남자가 타지에서 힘겹게 살아내는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정상이었던 누네즈가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는 병자나 비정상으로 간주된 점에서 '정상'의 개념이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 관념이나 기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유연하지 못한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먼 자들'만 있는 나라에 도착한 '시력이 온전한 사람'이 그 나라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과 '눈먼 자들'이 이방인을 미성숙한 자로 규정하고 시력을 제거하려 하는 폭력을 목도할 수 있다. 다들 자신을 더 우월한 상태로 규정한 채 이해와 존중 없이 뜻을 이루고자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 적나라한 폭력성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내로라한전집>의 구성이 알차다.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킨 짧지만 깊은 고전 문학을 소개하는 시리즈답게 표지 그림부터 주제의식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정지은 작가의 <사고의 이면, 2024> 그림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눈먼 자들의 나라, 1904> 소설과 그 결을 나란히 하고 있다. 작품을 단숨에 읽고, 깊어지자. 편집자의 말, 독후 활동, 도루묵의 갖은 양념, 저자 소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월주의, 정상성에 관한 고찰, 필터버블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독자의 사고를 가지 쳐 나가게 돕는 깊이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또 영어와 한글이 번갈아 출력된 영한 번역본 형태이다.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재미지고 특징이 뚜렷한 [눈먼 자들의 나라]이다. 작품의 가치는 결코 글자 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눈먼자들의나라, #허버트조지웰스, #내로라, #내로라한전집, #예스24리뷰어클럽, #우월주의, #정상과비정상,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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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G 웰스의 소설 [눈먼 자들의 나라]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떠오른 것은 주제 사라마구의 고전 [눈먼 자들의 도시]였습니다. 같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상황을 그릅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는 한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홀로 눈이 멀지 않은 주인공의 시각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습니다. 웰스의 소설 역시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나라'를 주제로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좀 더 나아가 눈이 먼 세대가 무려 14대를 거듭하고 결국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본다'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장님의 나라에 눈이 보이는 외부인 누네즈가 우연히 들어오게 됩니다. 웰스가 그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지상낙원 같은 곳입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우거지고, 눈도 비도 내리지 않지만 수로가 흐르고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장님의 나라에서는 외눈이 왕이다.'라는 말을 신봉한 누네즈은 이 아름다운 나라의 왕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민족들은 고도로 발달한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말투가 거칠고 어두운 곳에서 수시로 넘어지는 누네즈를 열등한 존재 취급하며 '본다'라는 감각을 설명하려는 누네즈를 정신병자 취급합니다. 소설은 한편의 설화 같기도 하고, 관념이 다른 인간이 얼마나 서로를 설득하기 어려우며, 서로를 열등하게 취급하는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분량이 많지 않고 책 구성이 한 쪽은 한글, 다른 한 쪽은 영어 원문이 실려있어 영어 공부하기에도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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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 등산길에서 추락한 누네즈. 순식간에 노예로 전략한 누네즈는 ‘눈 먼 자들과 눈 뜬 자들의 차이는 이 도서는 이런 진중한 질문도 주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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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H.G. 웰스 – 「눈먼 자들의 세상」을 읽고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 『눈먼 자들의 세상』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고립된 마을에 한 남자, ‘누네스’가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우월하다고 믿고, 그 능력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할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 ‘시각’은 쓸모 없는 개념일 뿐이며, 누네스의 말은 이해받지 못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누네스처럼 편협한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시야를 넓게 본다고 해서 정말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걸까? 혹은 그 시야 때문에 오히려 더 좁고 단단한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름에서 비롯되는 불편함, 모두 같아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특별함’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계. 모든 말과 정의는 모순을 품는다. 다양한 사회 집단 속에서 나는 한결같은 나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소속을 위해 거짓된 나를 연기하는가? 그리고 그 거짓이 되고 싶은 나이기에, 어쩌면 그것도 진짜 나일 수 있지 않을까. 짧은 분량임에도, 이 소설은 ‘다름’과 ‘시각’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를 오래도록 사유하게 했다. 혹시 당신의 ‘시야’도, 어쩌면 당신을 가두는 울타리일지 모른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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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이 책을 신청한 이유는 단순히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실린 단편소설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 글귀와 함께 영어 공부도 하고, 짧지만 강렬한 고전 단편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 눈먼 자들의 나라-라는 제목을 보자 예전에 봤던 영화 버드박스—눈을 뜨면 죽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보다 더 심오하고 여운이 깊었었고, ‘고전’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읽는 내내 큰 즐거움을 주었다. 작가 소개 허버트 조지 웰스(H. G. Wells)는 근현대 SF 문학의 선구자다. 시간여행과 우주탐험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며,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과적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동시에 지닌,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참고로, 동물농장(1945)의 저자인 조지 오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오웰은 오웰대로, 웰스는 웰스대로 각자의 세계를 남겼다. 줄거리 한 남미 등산가 청년 누네스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조난을 당한다. 절벽 아래 마을은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눈먼 자들의 나라’였다 (pg9). 마을 집들은 현관문은 있지만 창문은 없었고, 색 조합은 제멋대로였다(pg29).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 기이한 질병으로 모두 시력을 잃었고, 대신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누네스는 “맹인의 나라에서는 외눈만 있어도 왕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들을 가르치고 지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본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마을 구조와 세상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그는 탈출에 실패하고 마을에 머물게 되면서, 한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어리숙함이 ‘얼굴에 움푹 파인 눈’ 때문이라 판단하고, 눈을 제거하는 수술을 권한다. 누네스는 사랑을 위해 동의하지만, 수술 당일 아침 해를 바라보며 시각이 주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골짜기를 떠난다. 왜 고전일까? 이 책은 짧지만, 그 속에 함축된 상징과 질문은 오래 남겼다. 나는 눈먼자들의 나라를 읽으며, 짧은 내용에 비해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담은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기억에 났다. 눈먼자들의 나라는 선명한 주제의식과 함께, 단순한 설정이 아닌 우리 삶을 파고드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고전이 아닐까 싶다. 느낀점 1. 우월주의에 대한 경고 초반의 누네스는 ‘볼 수 있다’는 능력에 볼수 없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건방지게 행동한다. 그러나 볼수 없는 마을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강하고 능숙했다(pg17). 이는 자신이 가진 기준만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어리석은 태도와, 현대의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 얼마나 자주 상대적 우월감에 빠져있는지 묻는다. 우생학 이론이 팽배했던 당시의 유럽을 봤을 때 웰스의 이런 물음은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도록 만든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2. '정상적'이라는 기준 또한 웰스는 우리가 믿는 ‘정상’은 과연 누구의 기준일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믿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회에 들어갔을 때, 오히려 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력이 있다는 이유로 현지인보다 더 서툴고 무능하게 보이는 누네스의 모습은, 우리의 잣대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3. 자유의지와 기쁨 사랑과 안정을 위해 눈을 포기할 수 있었던 누네스는, 결국 ‘보는 것’이 주는 자유와 진실을 선택한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알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만약 눈을 제거하고 보이지않는 마을에 수긍하고 살았으면 어두운 소설이 되지않았을까 싶다. 누네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의 상상력은 그 아름다움 보다도 더 커져서 그가 영원히 포기해야할 것들 넘어로까지 치솟았다!'(pg93), 이를 통해 저자는 자유의지에 대한 기쁨을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론 이 책은 시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준과 상대적 우월감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특히 주변 지리적 환경을 묘사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영어 원문과 번역이 함께 실려 있어 학습에도 유익했다. 원문의 문장력을 느낄 수 있었고, 105쪽 이후 편집자의 해설과 설화가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우월감과 ‘정상’이라는 기준, 그리고 안일함 속에서 누네스처럼 갇혀 있지 않은지 묻는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오히려 ‘보이는 것들’일 수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면서, ‘본다’는 행위에 대한 우월감을 쌓아온 건 아닐까. 107쪽에서 던지는 질문—“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고립되어 있는가.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은 그 답을 각자가 찾아야 함을 일깨운다. #리뷰어클럽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