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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느린 인간>이 되어간다
"나도 이제 <느린 인간>이 되어간다" 내용보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어느 전시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전에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었음에도 강렬하게 발길을 잡아채는 작품이 있었고 그 작품의 강렬함만이 오래도록 남았다. 가슴이 뻥 뚫려 있는 것도 같고, 연리지처럼 두 가지가 힘껏 껴안은 것도 같은, 아주 오래된, 천년이 된 올리브 나무 사진이었다. 전생 어느 자락에 올리브 나무를 키우는 농부였거
"나도 이제 <느린 인간>이 되어간다" 내용보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어느 전시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전에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었음에도 강렬하게 발길을 잡아채는 작품이 있었고 그 작품의 강렬함만이 오래도록 남았다. 
가슴이 뻥 뚫려 있는 것도 같고, 연리지처럼 두 가지가 힘껏 껴안은 것도 같은, 아주 오래된, 천년이 된 올리브 나무 사진이었다. 전생 어느 자락에 올리브 나무를 키우는 농부였거나 낙타를 타고 지나던 대상이었던 것처 좀처럼 그 나무사진에게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그 강렬함에서 겨우 놓여났을 때에야 비로서 작가의 이름과 제목을 보게 되었다.
<이열작가, 천년이 올리브 나무_가슴 뚫린 올리브 나무> 
이렇게 나무 사진가이신 이열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나! 나무작가라니! 이름만 들어도 근사하지 않은가? 세상엔 의외로 다양한 나무작가님들이 계시지만, 모두 다 잠든 것 같은 밤에, 별도 달도 잠든 것 같은 밤에 오롯이 그 나무를 다시 조망하고 조명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색이라곤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밤에, 도리어 그 나무만의 색상을 드러낸다고 해야 하나, 나무의 숨결과 영혼을 드러낸다고 해야 하나, 그런 독특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니!
작가님의 작품들과 그 속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린 인간"이란 책은 그 밤의 주인공인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구별의 가장 오래된 생명체들이자 지구의 허파인 나무들을 찾아 떠난 작가 자신의 발자욱의 이야기다. 어떻게 인상적인 나무를 만났고 또 그 나무 안의 숨결과 색채를 끌어냈는지에 대한 신비한 마술의 이야기 책이었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의 이야기는 너무 아름답고 신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바오밥나무와의 이야기도 근사했다. 거기다 네팔의 국화라는 히말라야의 랄리구라스의 꽃이 떨어진 아름다운 길이라니. 작가 덕분에 나도 그 꽃길을 걷고 싶어졌다. 
이렇게만 이야기 하면 해외의, 우리가 가보기 어려운 나무 이야기만 있는 것 같지만 국내에서 길 떠나면 쉽게 그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그래서 사진이 더 귀해진 양재천의 아까시나 짝을 잃은 플라타너스 사진은 더 애잔하게 바라보게 된다. 
남도의 후박나무나 각종 드라마들로 유명한 가림성 느티나무, 팽나무들은 나도 보러 가고 싶다. 특히 밤의 가림성 느티나무는 꼭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중생대 부터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것도 작가님 덕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면 그런 존재는 또 있지! 은행나무. 이 나무들도 작가님의 사진에선 또 다르게 살아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브라질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작가를 너무 좋아하고 존경해서 그의 전시회에서 사온 작품이 한 점 집에 있다. 그 사진엔 나무는 없지만 말이다. ^^ 작가님이 살가두 작가에 대해 표하길 "저마다에 내재되어 있을 평화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사진가"라고 하셨는데 나는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모든 생명의 생명력을 그처럼 강렬하게 표현해주는 작가도 드물다. 그의 사진을 보면 이 지구별의 꿈틀거림과 생명마저 보이니까. 아, 이야기가 곁다리로 빠졌는데, 이열작가님은 살가두작가가 황무지를 아마존의 숲으로 만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의 숲"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셨다. 예술가들이 숲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밤의 나무에서도 그 생명을 끄집어낼 수 있는 특별한 작가는 역시 꿈도 남달리 꾸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언젠가 마음의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열망하시면서 책을 닫으시는데 덕분에 책장을 덮는 내 마음에도 그 열망이 전염되었다. 아, 좋다. 그러면 좋겠다. 나도 함께 하면 좋겠다, 라고. 
이 책은 사진도 훌륭하고 이야기도 훌륭하다. 술술 넘어가는 쉬운 이야기지만 어떤 이야기는 자꾸 생각이 나서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 페이지를 펴고 음미하게 된다. 사진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사진과 그 뒷이야기, 작가를 모두 알게 되는 아주 고마운 책이다. 곁에 두고 나무가 그리울 때는 느리게 페이지를 또 열고 싶어진다. 그렇게 나도 <느린 인간>이 되어간다.
y*****9 2025.10.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