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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갈 때마다 책을 들고 가는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그러니까 쟤도 보고 그대로 따라 하잖아! 학교 갈 준비로 1분도 아까울 정도로 몹시 바쁜 아침 시간에 책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보고 아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소리치곤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책벌레 부녀의 화장실 독서는 계속되어서, 이제는 아내도 아무 말 않고 우리의 나쁜 습관을 묵인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어서 화장실에 갈 때 혹시라도 아내의 눈길과 마주치게 되면, 손에 들고 있는 책에 마음이 쓰여서 나도 모르게 겸연쩍게 웃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의 경우엔 달랐다. 제목부터 벌써 『똥오줌의 역사』이니 화장실에서 읽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아내가 지적하고 있는 점은 화장실에서 독서하는 행위가 미칠 수 있는 건강과 위생상의 문제이지 화장실에서 읽는 책의 내용이나 수준을 따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화장실로 향하면서 자못 의기양양하게 이 책을 아내의 눈앞에 흔들어댄 것은 이 책에서 만난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었다. 『화장실에서의 독서』라는 책을 쓴 아서 밀러의 표현대로, ‘변소에서의 교양 연마’는 보편적인 습관이다. 많은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그 안락한 장소를 ‘문화 섭취의 공간’—미테랑 시절 문화장관이었던 자크 랑의 표현이다—으로 변모시킨다. 신문, 소설, 만화, 우편 세일 목록에 이르기까지 배설자의 지식에 대한 갈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서 밀러는 “좋은 책을 화장실로 데려가는 것은 결코 결례가 아니다. 다만 보잘것없는 책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달콤한 문화물들과 화장실은 너무도 각별한 관계를 지니기에 많은 독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옥좌’ 위에 앉아 있곤 한다. 어떤 잡지는 니콜레타가 화장실에서 성서를 읽었다고 전한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레몽 푸엥카레는 기자들에게 아돌프 티에르의 『통령정부와 나폴레옹 제국사』 열 권을 화장실에서 독파했다고 밝혔다. 많은 작가들이 자서전에서 화장실 안에 책장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또한 그 장소가 그들로 하여금 얼마나 심도 깊은 독서에 빠져들게 하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그들의 글에 많은 영감을 주는가를 고백한다. 내밀한 공간 속에서 작가는 무릎이나 글판 위에 메모 수첩을 올려놓고 초고를 구상한다. 또 어떤 문인들은 그 은밀한 장소에 컴퓨터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 (45쪽) 말하자면 화장실에서의 독서란, 본능에 호소할 뿐인 단순한 배설 행위를 교양과 문화를 섭취하는 정신적인 행위로 높이 승격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영감의 획득과 창조 행위로까지 승화시킬 수도 있는 매우 값지고 유익한 행위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도 그 기원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자면, 도발적이고 기이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저자가 어느 날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읽은 한 권의 책, 또는 한 줄의 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똥오줌을 처리하는 일, 즉 배설이란 드러내놓고 행해서는 안 되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도 금기시되는 무시되고 은폐된 주제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개인 차원의 내밀한 문제, 문명화된 사회와는 어울릴 수 없는 본능 차원의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배설과 동일한 쾌락 원칙에 입각해 있고 또한 서로 겹치는 몸의 기관을 활용하는 성적 행위(sex)가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서 사회적인 수준에서도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거리낌없이 공공연히 말해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오늘날 외설이 예전에는 좀처럼 누리지 못했던 분방한 자유를 획득했다면 배설이라고 해서 그런 자유를 추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 그 행위의 성격과 빈도와 형식과 본질에 있어서 배설은 외설보다 훨씬 더 일관성 있고 중요한 생명 활동이니 오히려 외설보다 더 큰 자유를 누려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서 세상에 나온 이 책 『똥오줌의 역사』은 따라서 가히 배설의 자유선언서이며 똥오줌의 독립선언서라고 칭할 만하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기이하고 도발적인 그 주제에만 있지 않다. 전문적인 학자가 무색해질 정도로 방대한 사료를 뒤져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 있던 유구하고 장대한 똥오줌의 역사를 엄밀하면서도 흥미롭게 재구성해낸 저자의 뜨거운 열정을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웬만한 독자의 호기심을 채우고도 남을 풍부한 삽화와 도판을 동원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열정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꼼꼼한 수집가적 부지런함도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이 책 『똥오줌의 역사』에서 우리는 불쾌한 구린내나 찝찔한 지린내가 아니라 영민한 학자나 집요한 수집가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지성의 향기와 기분 좋은 땀냄새를 맡게 된다. 단순히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라,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쉬우면서도 핵심을 잡아내는 경쾌한 문장과 기상천외하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성찰적 지식으로써 그 냄새를 생생하게 구체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철저히 무시되고 은폐되어 온 배설 행위의 숨겨진 역사, 그 역사가 담고 있는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적 의미를 따지고 있는 글들은 몹시도 흥미롭거니와, 배설 행위와 관련해서 진화를 거듭해 온 갖가지 사물들(요강, 의자변기, 하수도, 화장지, 공중화장실, 관장기 등)에 얽힌 포복절도할 역사적 사건들과 일화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따발총처럼 이어지는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뒤를 닦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꼭 필요한 경우 손가락이나 조약돌을 사용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 개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똥구멍을 닦는 데는 울퉁불퉁한 돌 세 개면 충분하다. 반면에 반들반들한 돌이라면 네 개가 필요하다.” 또한 부자들은 보통 배(梨)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가장 흔한 방법은 입고 있는 옷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우시카가 아버지에게 전차와 말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오빠와 남동생들의 옷을 세탁하러 가기 위해서이다. 형제들이 ‘똥 묻은 옷을 입고서는 군중 집회에서 빛날 수 없기 때문’이다. (83쪽) 이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까지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대 그리스 예술과 문학의 정교함과 우아함 그리고 그들이 똥을 누고 뒤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후진성과 원시성(현대인의 관점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사이에 존재하는 그 메울 길 없는 간극과 불균형에 깜짝 놀라게 된다. 배설 행위와 그에 따르는 사물들이 문명의 진화 속도에 보조를 맞추어서 발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사례는 이 책에서 이것 말고도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아주 옛날부터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배설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감추고 억압하고 무시했던 결과가 이러한 간극과 불균형을 초래한 한 원인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다양한 예를 들어서 강조하고 하고 있듯이, 배설 행위는 우리가 감춘다고 해서 감춰질 수 있고 무시한다고 해서 무시될 수 있는 개인적인 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배설은 본능이라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서 인간 문명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영역에 편재해 있기 때문이다. 똥과 오줌은 그들에게 주어진 온갖 모욕과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의학, 약학, 도시공학, 과학, 기술, 종교, 농업, 철학, 심리학, 예술,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긴밀한 연대를 이루어 왔다. 그 오랜 연대의 과정을 통해서 그나마 효용이 입증되었기에 똥과 오줌은 그나마 인류 역사에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을 터이다. 놀라운 것은 이제 똥과 오줌이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다양한 예술 작품의 주제나 소재 또는 재료가 됨으로써 이제 불멸성까지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소개된 그 많은 사례들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의 분뇨예술가 자크 리젠의 기상천외한 작업 방식과 작품들이었다. 자신이 눈 똥만을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는 그는 다양한 색상의 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하여 그는 자신이 먹는 음식물까지도 치밀하게 조절한다고 한다. 예컨대 노란색 물감(똥)을 얻기 위해서는 사프란을 먹고 붉은색을 얻기 위해서는 붉은 무를 다량으로 섭취하며, 밤색을 내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고 초록색을 원하는 경우에는 시금치를 먹는 식으로 말이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자신의 몸이 바로 팔레트이며 자신의 소화기가 물감통이며 자신의 똥이 바로 물감인 셈이다! 자크 리젠에게 모든 것은 분명하다. “똥은 생명의 풍요로움이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생명이 영속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생명을 수긍하는 것이다. 순환을 중단하는 것, 물질을 수거해서 벽돌 한 장 한 장으로 벽을 채색하는 것은, 생명을 거절함으로써 예술을 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을 만든다. 나의 창조는 ‘마음가짐의 예술’에 속한다. ‘마음가짐의 예술’을 하는 새로운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마음 자세를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로 드러내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아마도 20세기 예술의 근본적인 특성으로 인식될 그 무엇이 들어 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이다. 왜냐하면 그 화폭들은 창조된 지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냄새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과시하기 때문이다. (417~418쪽) 그렇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똥오줌은 더럽고 차마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수치스러운 오물로 치부될 수도 있고 또는 생명의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불멸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쓰일 수 있는 더 없이 소중한 질료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똥오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란 아마도 후자 쪽보다는 전자 쪽에 더 가까울 터. 이 책은 우리의 그런 마음가짐이 진부하고 고루한 편견임을 깨닫게 해준다.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프랑스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앙토냉 아르토가 말한 것처럼 “구린내가 느껴지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존재가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의 똥오줌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여, 이젠 화장실에서 책 읽는 나와 딸아이의 습관을 나쁘게만 여기지 말아 달라. 화장실에 갈 때 늘 책 들고 가는 책벌레 부녀가 마땅치 않아 쏘아대는 그 눈총을 이제 그만 거두어 달라. 좌변기 위에 앉아서 똥오줌 냄새를 맡으며 존재의 충만함 속에서 책을 읽는 그 몇 분간이란 하루의 시간대 중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니 말이다. 그 몇 분 동안 읽은 책의 글귀에서 어쩌면 삶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뛰어난 영감과 놀라운 계시를 얻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
| <똥오줌의 역사="">는 배설과 관련된 요강,의자변기,화장지의 역사 뿐만 아니라 도시 구조, 공중화장실, 사회 집단, 의학․약학, 신앙․미신, 농업, 예술-문학까지 다양한 관계에서의 배설을 다뤘다. 지금까지 이와 궤를 함께한 인류 역사를 배뇨-배변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은 터부시 되어왔다. 현재도 TV나 여타 매체에서의 화장지 광고가 노골적인 묘사에 대해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회는 이 주제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은밀한 곳에서 은유적으로 논의한다. 세계에서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러므로 배설에관한 특별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곧 문명의 진화과정을 들여다 보는 일이 된다. 우리는 왜 그동안 똥을 똥이라 하고, 오줌을 오줌이라 하길 그리도 꺼려 왔던 것일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직계 후손이라도 된단 말인가? 배설은 수많은 종교와 신앙, 신학들의 원시적 요소들이며 또한 의학이나 약제, 농업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기도 한데다가 성의학, 정신분석학, 장식, 도시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간과 배설의 관계와 다양한 분화 과정을 상상하고 이에 따른 역사를 파고 들기 위해 인간 행동의 모든 영역을 조명한 저자의 자세가 놀랍다. 똥과 오줌에 대한 개론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진지하지만 유머스럽다. 똥의 진행과정, 변형, 형태․결․밀도, 무게와 농도, 냄새, 농담과 색깔, 리듬과 박자, 똥을 보는 시선들, 내용물, 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담 및 관용어구들까지 그야말로 똥에 관해서만 한 장(章)이 이뤄질 정도이니, 책 한권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얼마나 다양한 접근들이 담겨있는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배설을 둘러싼 관련 기구의 변천과 그것을 이용했던 권력자들의 행태, 똥과 오줌을 대하는 인류의 역사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이 책이 결국 똥오줌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똥오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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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의 모든 것이 있는 책이다. 저자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배설물에 대한 미신부터 과학적 사실까지 모두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배설물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정색한 채, 똥과 오줌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풀었다. 사진과 그림도 직설적이다. 특히 사진은 흑백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몇 차례 토를 했을지 모를 정도다. 심지어 책 표지가 이른바 '똥색'이며, 제목도 황금색이다. 황금색 똥이 건강을 의미하기 때문일 듯하다. 저자도 이 책 첫머리에 "위선적인 세련 따위는 집어치우고"라고 적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똥오줌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지 몰랐다. 개인이 하루에 누는 오줌은 1.5리터이고 똥은 220그램이란다. 세계 인구 50억명이 매일 75억리터의 오줌을 누고 11억킬로그램의 똥을 싸는 셈이다. 인간이 유목생활을 하던 과거에는 온 숲이 집이며 화장실이었다. 냄새가 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정착생활을 하면서 배설물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해결하는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똥 푸는 펌프를 개발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발명했다. 즉 똥과 관련한 산업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같이 성장해온 것이다. 저자는 똥오줌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인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이 책에서 역설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 '대변학.소변학 개론'이 있다. 논문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내용이 내용인지라 지겹거나 어렵지 않다. 요강, 변기, 화장지의 역사는 흥미진진했다. 특히 돌로 뒤처리하던 인간이 비데까지 발명하는 과정을 훑어보면서 뒤처리는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또 우주선에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복잡한 과학과 많은 돈이 필요한지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배뇨 자세와 발사하는 힘에 대한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재미있는 설문조사결과도 이 책에 있다. 예컨대, 집 밖에서 화장지가 없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자의 절반 정도는 '나뭇잎을 사용한다'라고 대답했다. 그 외에 손, 수표, 흙, 양말, 셔츠, 돌 등을 사용한다고 답했는데, 닦지 않고 다시 옷을 입는다는 대답도 17~20%나 있었다. 배뇨 후에 몸을 떠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대답은 이 책 35쪽에 있다. 아쉽게도 <똥오줌의 역사>는 절판된 책이다. 서점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어렵사리 구했다. 400쪽이 넘는데다 판형도 A4 정도로 크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책상에 올려두고 짬이 날 때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속에서) "오줌은 '지린내'라고 불리는 특유의 향기를 발산하는데, 그것은 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17세기와 18세기에 로마의 여인들은 오줌에 장미 향기를 내기 위해 특별한 물약을 마셨다고 한다." (34쪽) "가장 개화된 국가들이 도시를 축조했을 때, 드디어 인간은 혼잡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집중화된 주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오물에 의해 끔찍한 환경에 처했다. 그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배설물 가운데 묻혀서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질병과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싸놓은 똥오줌 때문에 죽다니, 가공할 역설이 아닐 수 없다." (101쪽) "비행기 화장실의 또 다른 특별한 변화는 배설물을 '투하' 시키는 방식이다." (28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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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 한 것을 본적이 있는 것 같다. 똥 오줌의 역사라니, 이런 것을 연구하고 이렇게 장문의 책으로 쓴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똥 오줌은 사실, 우리가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데,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떤 SF 소설에서 타임머신을 다룬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서 세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로 간다. 그가 도착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어둡고, 축축하고, 그리고 역겨움이었다. 그 시대는 하수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도로에 똥 오줌, 시체, 동물시체, 썩은 생선 등 여러가지 오물이 뒤석여 악취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실제로 타임머신이 있어서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확률도 크다. 깨끗한 세상에서 살다가 그 시대로 가면 여러가지 병원체들에 노출되고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으니... 이 책에도 과거에서 현재까지 내려오는 똥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똥의 종류, 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그 생각의 변화, 화장실의 변화, 똥에 대한 처리 방식, 국가별 차이점. 그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프랑스 왕들은 똥누는 행위를 굉장히 신성시 하여 손님을 변기의자에서 맞았다는 사실. 프랑스 두루마리 휴지의 80%는 핑크색이라는 점! 여러 분뇨 예술가들의 작품도 나오는데 왜 하필... 분뇨로.. 자신이 원하는 분뇨의 색을 얻기 위해 붉은 무를 먹거나. 시금치를 먹거나.... 하여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고 한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참고로.. 똥과 화장실에 대해 나에게 가장 강한 기억을 준 나라는 바로 인도였다. 이 책속에서 과거의 화장실에 대한 설명을 해줄 때 인도를 생각하면 정말 이해가 빨랐다면, 다행일까? 인도의 휴게실에서 들렀던 화장실은 단순한 칸막이 하나에 문하나. 그 어떤 구멍도 없는 가로 세로 500mm정도의 방! 냄새도 정말 지독하고(상상불가!) 구석에는 똥과 휴지.그리고 날아다니는 파리. 트레인 스포팅의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지저분한 화장실은 정말 깨끗한 화장실에 속한다. 또한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 한가운데서 똥을 누고 있는 할아버지. - 정말 당황스럽지만 지나가야만 했다. 일반 도로에서 벽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인도 남자들. 인도의 철도 주변은 쓰레기 장이다. 또한 철길은 똥길이나 다름이 없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바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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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똥과 오줌에 관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 묘하게 진지한 이 책의 저자는 이 인류 공통의 주제를 매우 노골적으로 다루는데, 그 영역 또한 대단해서 시간적이고 (주로 서양의 사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공간적인 변화에 따른 추이를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2. 감상평 。。。。。。。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평소에는 이상하게 여기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워낙에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신도 모르게 ‘아 이거 이렇게 하는 게 원래 괜찮은 건가?’하며 저항의 수위를 낮추곤 한다.(영화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여기에 ‘예술’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기가 팍 죽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간다. 어떤 것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뭔가 혈통이 다른 고귀한 ‘예술가님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저 복종하면 될 뿐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이 딱 그랬다. 물론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그 ‘목소리’가 워낙에 세세하면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들리니 이 그로테스크한 책이 내추럴한 건가 싶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배변활동이란 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의 매일 수행하는 일들이니 딱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서 늘 노골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때 많은 사람들이 ‘성해방’이니 뭐니 하면서 성을 문화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것이 성숙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 이후 이와 관련해 나타난 변화는 포르노 산업의 확산과 엄청나게 늘어난 성폭행과 성폭행 연령의 저하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똥과 오줌을 무조건 감춰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자기 똥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화가에까지 이르게 되면, 이건 뭐 거의 자기파괴적인 자유추구의 종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요컨대 자아가 팽창되자 못해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노출증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전에 한 요리사가 쓴 중세 음식사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그 역사를 연구하고 책으로까지 엮어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참 멋져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일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양한 문헌과 자료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엮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의 결과이니까. 각각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분야에 관한 미시사(微示史)를 차곡차곡 쌓아놓을 때 결국 역사학 자체도 두터워지고 풍성해지는 법이기도 하다. 도시위생이나 설계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읽어볼만할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연구 자료로서는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냥 사람들이 모였을 때 사용하는 B급 유머의 주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하지만 뭔가 독특한 것을 즐기는 것 같은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식으로 책의 내용이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딱히 기분나빠하기 보다는 호탕하게 웃고 넘길 것 같으니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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