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부드러움은 영화를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사랑, 행복,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생채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외로움, 쓸쓸함, 상처만 주는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닫고 살아가고 싶은 여린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일까 싶었던 정혜의 상처는 좀 더 아픈 기억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뭐 이 영화가 주인공 삼은 게 그런 캐릭터였다니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처의 원인을 영화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슬쩍 비쳐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상처의 원인을 파헤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처절한 복수를 하고, 극복하고 새 삶을 찾고, 뭐 그런 류의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또 뭐라 할 수는 없다. 크게 소리쳐 말할 줄 모르고, 싫은 걸 싫다고 짜증낼 줄 모르고, 늘 시선을 내리깔고 외면하는 정혜. 칼에 베인 손바닥을 씻어내리면서 마침내 오열하고 돌아서 오는 그녀를 보며 든 생각은, "당신, 그걸로 진짜 된 거야?" 왜 이 영화의 영화 제목이 This Charming Girl일까, 괜히 불순한 생각이 들고... "감독, 당신이 charming에 걸쳐둔 저의는 무엇이냐" '이젠 행복해질 거라고', '이젠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따위 포스터 문구는 왠지 반어법으로 들린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렇다는 거다. 정말 정혜가 작가남자와 사랑하며, 과거 따위는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진짜? 진짜? 감정을 폭발시키고, 발산해 내는 것보다 이런 식의 절제 내지는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고단수라는 느낌이 들지만. 내가 여자라서일까. 무언가 아쉽고 찜찜하다. 어찌됐든 영화는 상당히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알고 보면 지극히 단순한 줄거리인데, 보면서 내내 집중해서 퍼즐 조각 맞추듯 사연을 '짐작'해야 한다. 무릇 영화라면 이 정도 말건넴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 말건넴으로 보는 이의 마음 속에 대화가 이어지게만 할 수 있다면. 정혜는 물병 속 기름 한 방울처럼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섞여 있지 않다. 누군가 김지수가 대종상 신인상을 받지 못하는 걸 보고 TV 리모콘을 부수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 한 표. 그녀의 차분하고 예쁜 연기를 보며, 이런 배우가 많이 활약할 수 있는 영화가 자꾸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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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는 소통에 있어서의 관계(relationship)에 관한 영화이다. 정혜(김지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가량의 여자. 우체국에서 일하는데 직장 생활 4,5년차의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보면 특이한 점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다. '오늘은 뭐 좀 새로운 걸 먹어 보자'는 동료에게 정혜는 '맨날 가던 데가 편하고 좋잖아'라고 응수한다. 이렇게 '변화'를 싫어하는 듯 보이는 그녀이지만 우체국에 오는 남자 고객에게 먼저 호감을 표시하는 면도 있다. 영화는 마치 보는 이가 바로 옆에서 주인공을 지켜보는 듯 진행된다. 정혜의 삶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그녀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주인공은 바로 전 남편이다. 플래쉬 백은 그녀의 신혼 첫날 밤을 보여주는데 정혜는 특별한 이유없이(관객은 차차 그 이유를 알수 있게 된다) 남자곁을 떠나와서 결혼은 파기된다. 이 결혼을 중매한 고모는 정혜 모(母)에게(정혜 어머니는 죽었다는 것으로 초반부터 나온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녀가 원래부터(어렸을때부터) 좀 이상한 면이 있었다고 푸념한다. 영화는 조금은 난해한 구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결국 정혜의 문제는 '근친상간'이었다는 것이 중간중간 교차되는 컷들로 알수 있다. 정혜가 10대 중후반이었을 때 그녀의 고모부가 그녀를 겁탈했던 것이다. 그녀는 알려지는게 두려웠던지 이 사실을 숨기고 살다가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이 사건은 영영 비밀로 남게 된다. 그녀가 어머니에게조차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어쩌면 고모부가 어머니에게 대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알수가 없기에 영화는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정혜는 타인과 특별한 소통이 없이 살아간다. 물건은 홈쇼핑으로 구입하고 쉬는 날은 집에서 화초들을 돌보며 보내고, 어느날 주워온 고양이를 친구삼아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삶이지 않을까? 자신의 특별한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지 않은채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적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카메라의 시선-는 정혜의 삶이 곧 뭔가 터질것처럼 위태위태하다고 말한다. 홀로 호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정혜. 근처에서 한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의 사연을 알게 된 그녀는 그를 데리고 여관에 간다. 얼핏 엿본 사람은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질거라 상상하겠지만 여태까지 영화에서 축적되어온 정혜의 생활을 안다면 이건 그다지 문란하다거나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그 남자를 정혜는 위로한다. 아무 말 없이. 정혜는 속으로만 침잠한다. 영화에서 그녀와 관련된 남자들은 첫째는 고모부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남성이 있다. 신발 가게에서 필요이상으로 추근덕대는 남자직원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고모부와 관련된 감정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겪지않은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 장면에선 정혜가 느낀 거북함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해졌다. 또 하나는 한없이 애처로운 남자이다. 앞에서도 거론했던 여관방 장면의 남자에게 연민과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남성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두가지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정혜가 대쉬했던 남자를 통해서이다. 처음에는 그 남자 손님이 어머니와 같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에 단순히 매료되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결론을 향한다. 정혜는 언제까지 자신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으며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 것인가. 문제의 트라우마가 있었으므로 그 경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우선임은 분명하다. 매미소리가 요란한 한여름날 정혜는 고모부를 찾아가고 죽일 결심을, 아니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돌아오는 길, 넘어져 다친 그녀는 화장실에서 오열하는데 그게 통증때문인지 설움때문인지 알 수 없다. 정신이 들자 고양이 생각이 나서 바쁘게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 소설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황정민)의 호연덕에 기분좋은 엔딩이긴 하지만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이 싹튼 남자를 통해 과연 정혜의 전(全)삶이 회복될 수 있을까?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 <여자,정혜>. 배우 김지수를 새롭게 재발견하게 한 작품이었다. 감독의 최근 어느날 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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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김지수가 나온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정보도 모른채 봤다. 김지수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글쎄, 김지수라는 배우는 늘 깐깐하고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침착하고 핏기없고 너무 깡말라 불안불안하고.. 늘 이런 이미지들을 달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변할까 그게 조금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김지수도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김지수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의 김지수의 가느다란 팔이나 다리, 보기싫을 정도로 말라 핏줄이 튀어나오는 손등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나도 모르게 자꾸 미간이 찌푸려지고 내가 막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얼마쯤은 기대를 하고 본 영화였는데, 뭐랄까, 상당히 지루한 영화라는 생각이 좀 들긴 했다. 특별한 사건없이 별 의미없는 일상을, 한 여자의 뒷꽁무니를 계속 쫒아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쯤이 영화 시작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한 시간 내내 기억 몇 조각만 맛을 보여준 뒤,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는 얘기다). 보는 내내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 고요하고 길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너무 너무 영화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신경질 날 정도로 세심하긴 한데, 그 세심함이 영화에서 그리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별 의미없이 느껴진다. 가령, 정혜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몇 차례 걸쳐서 손으로 집는 장면이라든가, 눈썹이 얼굴에 떨어지는 모습(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둥 하는 얘긴, 영화에서 정혜의 성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함)을 세심하게 두번이나 그리는 것, 구두를 사러갔다가 남자의 스킨쉽에 불쾌할 수는 있는데... 사람답게 대해달라는 그 말의 어색함, 쌩뚱맞게 갑자기 황정민에게 말을 붙여 고양이를 보여주겠다는 장면, 잘 모르는 남자를 모텔까지 데려가서 보듬고 재우는 모습들.. 뭐랄까, 영화가 그려내려는 정혜의 모습과는 왠지 멀어보인다. 너무 세심하게 일상사를 그려내려다 보니 영화가 말 그대로 의미없는 일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의미없는 일상의 단편들을 묶어놓고 하나의 영화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특히 황정민의 등장은 솔직히 없어도 될 부분인 듯 싶다. 물론 상처를 치유하는 그런 과정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흐름상 정혜가 황정민을 구지 만나야 하는 그런 개연성이 없다는 거다. 아니면 황정민의 비중을 조금 더 늘여서 좀더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그런 작업이 좀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쨋든 이 영화는 상처를 치유하는 쪽에 좀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황정민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어릴 적 성폭력의 상처와 엄마의 죽음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한 여자가 어떻게 그리 당돌하게 처음 본 사람과의 모텔행이라든가, 황정민에게 뜬금없이 씨신대는 장면은 나로써는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 장면은 돌출행위고 한 마디로 좀 미숙하단 생각밖에 안든다. 이 영화를 보고 또 한 번 그런 의문을 가져본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물론 상 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업 영화와는 구분된 예술영화, 예술영화 그러는데... 도대체 예술영화의 정의는 어때야 하는건지 그런 의문이 다시금 솟구쳤다. 이 영화, 너무 과대평가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든다. 그리고 이 영화가 과연 여자의 내면을 얼마나 잘 드러냈나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이 <정혜>였다면 모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여자, 정혜>라는 것에 조금 화가 났다. 물론 영화 자체가 엉망이다, 뭐 그런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영화가 제목을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인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냥 <정혜>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여자라서 그랬다든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든가, 여자의 삶이 그렇다든가, 많은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다든가... 이런 수식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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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 / 이윤기 감독 / 김지수, 황정민 주연 / 드라마 / 한국 / 200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홀로 아파트에 살면서 우체국 일을 하고 있는 여자 정혜. 그녀의 일상은 너무 단조롭기만 하다. 집에서 가까운 직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을 보거나 베란다 화분을 정리하는 등의 일이 전부다. 그런 그녀에게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된 작은 고양이 한 마리는 마치 누군가와 관계 트기를 시도한 첫 대상처럼 보인다. 외로움과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그녀이기에.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또 다른 사랑이 찾아 온다. 그래서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를 그녀의 삶 속으로 초대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영화는 우혜령 작가의 '정혜'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따왔다고 한다. 또한 처음에는 주연을 강성연이, 상대남을 서태화라는 배우가 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출연진이 교체되었고 스토리도 약간 다듬어져 소설의 내용과는 다르다고 한다. 덕분에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브라운관에서만 보던 배우 김지수를 볼 수 있게 됐는데,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우리나라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인정을 먼저 받아,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랍도록 차분한 일상 속에 담겨진 사람의 심리에 집중했다. 비록 그것이 강렬하게 마음 속으로 헤집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묵지근한 아픔과 다행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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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우편취급소 직원 정혜(김지수) 외로이 홀로 지내다 고양이를 새식구로 맞이하며 변화를 시도하지만 그녀에겐 아픈 과거가 있었으니...
김지수의 매력을 새로이 발견한 영화 '종합병원'에서의 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나 그 이후론 이렇다 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녀가 뒤늦게 스크린에 데뷔한 이 영화에서 그녀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슬픔과 아픔이 얼굴 표정 깊숙이 묻어 있는 얼굴 그녀의 표정 연기만으로 그 슬픔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건조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일상에서 마치 나를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드는 건 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