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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예전부터의 고발자에 대해선 자기는 허황된 자연학을 연구한 적도 없으며, 다른 궤변론자들과 같이 많은 보수를 받고 교육한 적도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미움받은 이유로서 델피의 신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무지의 자각을 확실히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임을 믿게 된 경위를 말한다 그리고 새 고발자 멜레토스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그의 무지와 모순을 지적한 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할 것이다 즉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지식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30표라는 근소한 차로 유죄로 결정된다 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된다 소크라테스는 애걸하기는커녕 자기는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하지만 표결에 부친 결과 사형이 언도된다 소크라테스는 유죄 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나의 죽음을 결정했지만, 내가 죽은 후 곧 당신들에게 징벌이 내릴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러고서 무죄 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해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반성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관해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나 악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확신을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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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었으나, 그는 이에 대하여 당당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이 변론은 최초의 변론, 유죄 선고 후의 변론, 사형 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로서,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판결·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 문학은 때로 작자의 창작이 섞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저작의 주요 부분은 역사적으로도 충실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문체로서는 플라톤의 작품 중 백미에 속하고, 예로부터 그리스 문학사상 산문 문학의 주옥편으로 중히 여겨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