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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가장 좋은 '논어' 번역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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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도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를 가장 먼저 접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논어(論語)>를 가장 먼저 읽어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을 접할 때는 막연함을 느끼게 된다. 당장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논어(論語)>를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특히 옮긴이마다 해석이 다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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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도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를 가장 먼저 접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논어(論語)>를 가장 먼저 읽어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을 접할 때는 막연함을 느끼게 된다. 당장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논어(論語)>를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특히 옮긴이마다 해석이 다른 바 어떤 해석이 옳은 것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주석을 잘못달면 이른바 사문난적(斯文亂敵)이라 하여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성리학 주자의 해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경전의 경직된 해석을 통한 부작용이 있었던 반면에 현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너무 많은 해석이 범람하여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기증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어떤 책을 선택해야 좋을지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 결과 나는 수 많은 논어 번역본 중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논어 번역본으로 추려서 서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즉 홍익출판사에 나고 김형찬 교수가 옮긴 논어와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오고 김학주 교수가 옮긴 논어, 성균관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오고 이기동 교수가 옮긴 논어 강설, 성균관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오고 유교문화연구소에서 옮긴 논어 이렇게 총 4권을 서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아무래도 가장 정통적인 논어 번역본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심혈을 기울여 유교경전인 사서삼경을 모두 번역하고 있는 중 처음으로 번역된 논어라고 생각되었다. 다만 책이 너무 두껍고 비싸서 고민하던 중 한글 세대를 위해 쉽게 번역한 홍익출판사에서 출판하고 김형찬 교수가 옮긴 논어를 먼저 읽게 되었다.

 

 분명 이 책은 쉽게 논어를 옮긴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좀 더 주석으로 자세한 설명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원문을 먼저 보여주고 한글로 번역한 다음 주석을 다는 것이 좋은 구성으로 보이는데 원문을 맨 마지막에 한꺼번에 모아 놓아 원문과의 괴리를 초래하였다. 아마도 한문에 익숙치 않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맨 마지막으로 모아 놓은 듯 한데 득보다는 실이 많은 구성이라고 보인다.

 

 결국 종합해 보았을 때 논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배병삼 교수가 쓴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나온 논어 및 논어 강설을 함께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병삼 교수의 책은 정말 쉽고도 흥미있게 논어 및 공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바 처음 동양 고전, 특히 논어를 읽을 때 필연적으로 드는 막연함을 없애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a******n 2010.06.09. 신고 공감 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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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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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갔을때, 그래도 그 동네에서 지식인임네 하는 사람들에게 논어에서 잘 이해 안되는 구절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읽어본적이 없덴다. 논어는 중국의 정치와 철학에 중요한 책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만 읽히는 책이 된걸까? 공자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관심이 가게 마련...논어는 소로우가 사랑하는 책이었고 나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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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갔을때, 그래도 그 동네에서 지식인임네 하는 사람들에게 논어에서 잘 이해 안되는 구절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읽어본적이 없덴다. 논어는 중국의 정치와 철학에 중요한 책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만 읽히는 책이 된걸까? 공자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관심이 가게 마련...논어는 소로우가 사랑하는 책이었고 나도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논어는 공자의 사상이 노자와 다름에 많은 강조점을 둔다. 이것은 역사에 참여하는 자의 얼룩 묻음과 세상을 등진 삶 사이의 오랜 갈등을 보여준다. 세상을 등지고 자기안의 창조본성과 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삶. 나빠지기 마련이고 사람을 망치기 마련인 더러운 놀음에 가까이 않는 것. 분명 옳은 삶의 하나이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삶에 눈감고 있을 것인가?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고 그깟 얼룩묻음이야 다시 씻으면 되는 것을...공자는 자신을 위한 삶이 자신을 위하지 않고, 타인을 위한 삶이 자신을 위한 삶임을 보여준다. 더러운 정치의 암투와 전쟁, 속임수와 배신. 그래도 그는 그 자리에 옳은 사람이 들어서야한다고 믿는다. 논어는 하늘뜻에 그 근본을 둔다. 주위의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도, 존대하고 예로 대하는 것도 사실 하늘이 있고 그 뜻이 선함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준이면 그것은 기준이 없음이다. 허접한 옆사람을 어찌 사랑하랴? 하늘이 그 사람을 사랑함을 알지 못한다면...극악무도하고 아래로만 향하는듯한 세상의 풍속과 비참함 또한 하늘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한가닥 희망이나 가져볼 수 있을까? 하늘이 있음으로 그리고 선한 뜻이 있음으로 옳은 삶을 살 이유가 있다. 공자는 뒷사람後生을 두려워했다. 웃사람이 아닌 아랫사람,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늘의 시선, 두려워한 것이 도치되어있다. 하늘이 없으면 어떻게 후생을 두려워할까? 이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살아보며 느낀다. 논어에는 이 모든 일의 중심에 自己가 서 있다. 수양과 반성, 끊임없는 배움과 사고의 훈련들. 이것은 자기가 바로 될때 하늘뜻 실천과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일이 가능해짐을 뜻한다. 자기가 되어있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까? 수많은 꾀임과 교묘한 말과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을 어찌 이길 수 있을까? [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 군자는 일의 원인과 해결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자기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임을 공자는 또한 알고 있었다. 이것이 두고두고 문제임은 모든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알고 느끼며 절망하는 이유이다.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를 이겨내 예로 돌아감이 仁이다. 단하루만이라도 자기를 이길수 있다면 천하는 仁으로 돌아갈 것이다] 천하는 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기를 이길만한 사람이 없는 때문이다. 결국 하늘이 기준이나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 자기가 해결되지 않는 것과 절망적 현실 앞의 무한한 힘의 원천이 되어야할 하늘뜻이 명시적이 아닌 때문이다. 하늘뜻을 찾고자하나 하늘의 뜻은 모호하다 역을 하거나 점을 쳐도 선한 뜻이려니 한다. 이것이 근본인데 주어지지 않으니 답답하다. 천지의 조화와 생물의 기이함을 보면 그 뜻을 알듯도 한데 하늘은 말이 없다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논어는 우리나라 사람이 원문으로 접근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소로우의 [원문으로 읽는 것이 진정한 이해를 준다]는 말이 문득 기억난다. 그에게는 라틴어였지만 우리에게는 한자가 있는 셈이다. 이 책의 앞 부분 번역도 아래에 자세한 주가 있어 도움이 되나, 뒷부분에 수록된 원문 읽기를 권하고 싶다. 원문에 필요한 해석들이 같이 있어서 원문으로 읽으며 해석자의 생각을 뛰어 넘어보는 재미가 있다. 도는 우리 마음 속에 있고 각 사람이 자란만큼 들리는 것이니까...추가로 콘텍스트 안에서 텍스트를 보기 위해선 공자의 삶과 제자들의 됨됨이도 공부를 병행하면 살아있는 공자를 만나는데 더 도움이 될듯하다.
s***y 2005.08.06. 신고 공감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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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語 (孔 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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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논어, 논어   참 많이 듣긴 했는데, 나이 31살에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레저레 세상살면서 많이 들어 봤던 얘기들이 나왔는데,   인간의 도리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말은 느리고 능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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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논어, 논어

 

참 많이 듣긴 했는데, 나이 31살에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레저레 세상살면서 많이 들어 봤던 얘기들이 나왔는데,

 

인간의 도리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말은 느리고 능숙하지 못해도 실행은 민첩해야 한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거나 혹은 행동을 함께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선한 점을 골라서 그것에 따르고 선하지 않은 점을 골라서 내 자신을 바로 잡는다."

 

좋은 말들 몇가지 있어서 옮겨 적어 본다.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겠다.

 

아래부분은 논어 명어집이라고 긁어 왔다.

 

시간날때 마다 한번씩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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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잡는 데 어째 소를 잡는 큰 칼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일의 대소, 나라의 대소에 따라서 처리하는 인재도 적당하고 부적당한 자가 있다. -논어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한다. 그러나 입으로 훌륭한 말을 하는 자가 반드시 덕이 있는 자는 아니다. -논어

덕(德)이 있으면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는 법이다. 반드시 공명하는 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만일 외롭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논어

도(道)가 없는 나라에서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사람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논어

도(道)가 행해지고 있는 사회라면 나와서 활동하겠지만 도가 없는 사회라면 오히려 숨어서 사는 것만 못하다. -논어

도리에 맞는 말을 한다면 혹은 군자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리에 벗어난 것으로 군자를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논어

도리에 어긋나는 약속은 해서 안 된다. 그것은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자(有子)가 한 말. -논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입에서 낼 때에는 참으로 납득한 것만으로 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난을 적게 받게 되는 것이다. -논어

가난하게 되면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 쉽다. 가난한 경우에 있더라도 원망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부자가 되어서 교만을 억제하기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논어

가난한 자는 비굴하게 되기 쉽고 부자는 교만하기 쉽다. 가난해도 그 생을 즐기고 부자라도 예(禮), 즉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논어

가령 반반한 판자를 굽은 판자 위에다 두게 되면 아래에 있는 굽은 판자도 반반하게 된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바른 자를 위에다 앉히면 백성이건 부하이건 스스로 바르게 되어 심복하게 될 것이다. -논어

가령 아침에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도리(道理)를 듣고 이것을 체득했다면 저녁에 죽는다 하여도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의 삶의 태도, 살아가는 길을 아는 것이란 이처럼 중대한 것이다. -논어

거친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살아도 즐거움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의롭지 않은 돈 많고 높은 벼슬 같은 것은 뜬 구름 같이 내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논어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라야 비로소 소나무와 전나무가 얼마나 푸르른가를 알 수가 있다. 사람도 큰 일을 당한 때에라야 그 진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논어

계씨(季氏, 노나라의 大夫)는 지금 전유(전臾, 노나라의 속국)를 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말하지만, 실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나라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계씨 몸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화근은 내 몸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는 말. -논어

고(고, 제례에 쓰는 모서리가 난 그릇)에 모서리가 없으면 고라고 하겠는가. 어찌 고라고 하겠는가. 모서리가 나지 않은 그릇을 고라고 한다면 실물과 이름이 부합되지 않는다. 이처럼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잃고서도 임금이라 한다든지 신하가 신하된 직분을 다하지 않고 신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논어

곡식에는 싹이 트고서도 이삭을 내지 못하고 꽃을 피워 내지 못하는 것도 있고, 모처럼 이삭을 내고 꽃이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열 살에 신동이라 불리우던 사람도 삼십 세에 범인으로 끝나는 자도 있다. -논어

공자가 조정에서 퇴궐하여 돌아오니 집의 마구간이 불에 타 있었다. 공자는 사람이 상하지 않았는가 만을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공자의 제가가 한 말. -논어

공자가 하지 않은 일이 네 가지 있었다. 무슨 일이든 확실하지 않는데도 지레짐작으로 단정을 내리는 의(意), 자기 언행에 있어 반드시 틀림없다고 단정내리는 필(必), 자기의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는 고(固), 매사를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아(我)이다. -논어

공자는 낚시로는 물고기를 잡으셨으나 그물은 쓰지 않았고, 주살로서 새집에서 자는 새는 쏘아 잡지 않으셨다. 공자의 제자가 한 말. -논어

공자는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 순(舜)임금을 찬양한 음악 소(韶)를 배우기를 석 달.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음식의 맛을 잊을 정도로 도취해 있었다. 공자의 제자들이 한 말. -논어

공자는 조정에 있을 적에는 주장할 것은 명쾌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조심하는 태도는 늘 잊지 않으셨다. 공자(孔子)의 제자가 한 말. -논어

공자는 하대부(下大夫)와 말씀하실 때에는 웃는 모양으로 화락하시었고 상대부(上大夫)와 말씀하실 때에는 도리를 세워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논했다. 공자의 제자가 한 말. -논어

과거의 일을 충분히 소화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미래에 대한 새로운 사고 방법을 도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논어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를 평한 공자의 말. -논어

교언(巧言)이나 영색(令色), 이 모두가 반드시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입으로 아름다운 말을 하고 용모나 태도를 부드럽게 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주가 된다면 인간의 근본이 되는 인(仁)의 마음이 적게 되는 것이다. -논어

국민의 수가 적거나 물질이 적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모두가 불평등하다 부당하다고 하는 불만을 지니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는 공평해야 하는 것이다. -논어

권력, 부귀, 학문, 예술 등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참된 사람은 인(仁)을 행하는 이외의 것으로 명성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어

귀신은 공경스럽게 다루되 그것들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귀신이라 함은 죽은 조상을 말하는 것으로, 조상의 신은 공경하여 받들되 죽은 조상을 중심으로 하지 말고 산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논어

국민의 앞장을 서서 국민을 위해 힘껏 노력한다. 이것이 위정자의 마음가짐이다. -논어

군자가 가까운 이들에게 후하게 대해 주면 그 덕에 강되어 백성들 사이에 인자한 기풍이 일어난다. -논어

군자는 남과 화합은 하지만 뇌동(雷同)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진실되게 화합은 할지언정 비리에 뇌동부화(雷同附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논어

군자는 늠름하고 우연하며 교만하지 않는 법이다. -논어

군자는 도(道)를 어떻게 행할까에 마음을 쓰고 도모할지언정 생활비를 어떻게 얻을까 하는 일에는 마음쓰지 않는 것이다. 도(道)의 수양에 마음을 쓰고 걱정은 할지언정 가난한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논어

군자는 말은 느리고 능숙하지 못해도 실행은 민첩해야 한다. -논어

군자는 모든 일을 자기에게서 구하고 자기의 책임으로 돌린다. 소인은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논어

군자는 세 가지의 두려운 것이 있다. 첫째는 천명(天命)이고 그 다음은 대인(大人)이고 셋째는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천명은 하늘에서 점지해 준 도덕적인 사명을 말하고 대인은 현덕을 갖추고 경험을 쌓고 나이가 든 사람이고 성인의 말씀은 도덕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 세 가지를 두려워하여 어긋남이 없이 존중하고 습복해야 한다. -논어

군자는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마음이 너그럽고 평탄하고 소인은 항상 근심에 차 있다. -논어

군자는 의(義)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바른 의리를 근본으로 하여 그 의(義)를 행함에 있어서 존비친소(尊卑親疎)를 생각해서 예(禮)로써 대하고 겸손한 태도로써 말하고 항상 거짓 없는 신으로써 완수하는 것이 참된 군자의 도리다. -논어

군자는 자기가 말한 것이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행하지 않는 말을 삼가고 말 이상으로 실천하도록 힘쓴다. -논어

군자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논어

군자는 자기의 처지에 충실함과 동시에 남의 영역을 침범해서 쓸데없이 간섭하거나 말참견을 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증자가 한 말. -논어

군자는 현자(賢者)에 대해서는 존경으로 대하고 일반 사람에게는 그가 하는 말이 착하다. -논어

군자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과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과실은 일식이나 월식 같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보게 된다. 동시에 군자는 곧 그 잘못을 고친다. 그때에는 일식과 월식이 끝났을 때처럼 그 빛남을 우러러보듯 군자의 덕을 우러러보게 되는 것이다. 자공(子公)이 한 말. -논어

군자에게는 큰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작은 일은 이것저것 맡겨도 어느 것이나 모두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 일을 맡겨서 시킨다면 그 소임을 다할 것이다. -논어

굳고 여문 물건은 아무리 갈고 닦아도 얇게 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이 굳고 여물다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어도 꺾이거나 쓸모 없이 되는 법은 없다. -논어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 그것이란 공자의 인도(仁道)를 말하는 것. -논어

그 나라가 도덕이 행해지고 있는 나라라면 그 곳에서 녹(祿)을 받고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도덕이 행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녹을 받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논어

그는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자기를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해서 그만한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안자(顔子)를 평한 증자(曾子)의 말. -논어

그림에 있어서는 먼저 밑그림을 잘해야 되고 색채를 입히는 것은 그 뒤에 하는 일이다.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작업이다. 그러나 단단한 밑그림(素) 없이는 훌륭한 좋은 그림은 그릴 수가 없다. 몸을 장식하는 것보다는 먼저 수양에 힘써서 마음의 진실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논어

그 사람의 과거에 어떤 잘못이 있어도 그것을 언제까지나 허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을 가지고 책망을 하는 것은 너그러움이 아니다. -논어

찻잔도 그릇이고 주전자도 그릇이다. 그렇다고 해도 찻잔은 찻잔만의 역할을 하며 주전자는 주전자의 기능만을 지닐 뿐이다. 군자는 이런 그릇이어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한쪽으로 편협되지 않고 전인적인 완성을 목표로 부단히 공부하고 수양에 힘써야 한다. -논어

처음 생각하는 것만으로서는 잘못될 수가 있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이 지나쳐도 판단력, 실행력이 둔하게 된다. 두 번쯤 생각하는 정도면 아마 충분할 것이다. -논어
천리마는 물론 힘도 우수하지만 천리마가 천리마로 불리우는 것은 잘 성장한 덕 때문이다. 사람도 재능이나 수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될 것은 덕이라 할 수 있다. -논어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친절한 것도 너무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대에게서 귀찮음을 당하게 된다. 자유(子游)가 한 말. -논어
친구와 사귀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과연 나는 그 신의에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 -논어

친구와 사귀는 일은 서로 익숙하게 되면 예의를 잃게 되기 쉽다. 오래 되어도 서로 상대방을 존경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논어

칠십이 되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언동을 해도 결코 그 정해진 규범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종심(從心)은 70세. -논어

하늘은 아무 말이 없어도 춘하추동 쉬지 않고 운행하고 모든 생물은 하늘이 화육(化育)하는 은혜를 입고 있다. -논어

하늘의 죄를 받으면 빌 곳조차 없게 된다. -논어

하루 종일 내 옆에 있으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반론 하나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내가 말하는 바를 전부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 안회(顔回)를 평해서 한 말. -논어

학문을 하는 데는 넓게 어떤 것이라도 배우도록 힘쓰고 배워서 얻은 도(道)는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하여 이것을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자하(子夏)가 한 말. -논어

학문의 목적은 실행에 있다. 학문을 하는 자는 종종 공리공론을 주장하고 실무를 등한시하기 쉽게 된다. 실무를 떠난 학문은 참된 학문이 아니다. 인간이 해야 될 일을 성실하게 다하고,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그 여력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할 것이다. -논어

학문이나 기술 등에서 정도(正道)를 벗어난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 이단(異端)을 파고 드는 것은 얻는 것보다는 해가 많은 것이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좇는 것보다는 정도를 밟아 건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참길이다. -논어

학문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이 실력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이 겸허하고, 아무 이유 없이 남이 자기에게 잘못해도 따지지 않는다. 증자(曾子)가 안자(顔子)를 평한 말. 교는 싸움. 어울려서 따지는 것. -논어

한가하게 즐거워 보인다. 마음을 턱 놓은 모습이 아름다운 복숭아꽃처럼 요요한 모습이다. 공자가 집에 한거할 때의 모습을 제자들이 한 말. -논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들은 이와 같은 것이라, 밤낮없이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시간이 흘러 묵은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오곤 하는 것이 쉴 사이 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냇물이 흐르는 것에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논어

한번 잘못한 실언(失言)은 사두마차(四頭馬車)로도 따라갈 수가 없다. 말을 할 때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공(子公)이 한 말. -논어

한 삼태기 흙만 쌓아올리면 산이 이루어질 텐데 중지하여 완성을 보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자기 스스로의 노력 부족에 있는 것이다. -논어

함께 말할 만한 사람인데도 그와 함께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 된다. 함께 말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와 함께 말하는 것은 말을 잃는 것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논어

호랑이나 들소 같은 맹수가 우리에서 나오거나 구옥 같은 보물이 궤짝 속에서 깨뜨려진다면 그 책임은 관리하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잘못 저지른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은 보좌하는 사람의 책임이다. 공자가 계씨(季氏)를 보좌하고 있던 염유(有), 계로(季路)를 책망한 말. -논어

나는 그 사람의 과거는 묻지 않는다.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바른 길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허락하고, 물러가서 바르지 않는 길로 행하고자 한다면 결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이야기하기 어려운 호향(互鄕)에 사는 아이가 공자를 만나러 오자 제자들이 당황해서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말. -논어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고 옛 것을 좋아하여 재빨리 그것을 알아내기에 힘쓰는 사람이다. 공자가 자기의 실제 행동을 말한 것. -논어

나는 농사일은 늙은 농부만 못하다. 농사일은 나보다는 늙은 농부에게 듣는 것이 좋다. 사람에게는 제각기 본분이 있는 법이다. -논어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 주고 의논도 받아 준다. 그럴 때 나는 진정으로 성심성의껏 해 주고 있는가. 성의에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 -논어

나(공자)는 설흔 살에 정신적이나 경제적으로도 예(禮)에 근거해서 독립할 수가 있었다. 30세를 이입(而立)의 나이라고도 한다. -논어

나는 아직 군사에 관한 것은 공부한 적이 없다. 영공(靈公)이 덕교(德敎)에는 마음이 없고 느닷없이 군사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곧 위(衛) 나라를 떠났다. -논어

나(공자)는 열다섯 살 때 성인의 학문을 배울 뜻을 세웠다. 15세를 지학(志學)의 해라고 하는 연유. -논어

나는 평생을 일관(一貫)한 변함없는 길을 걸어왔다.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한 말. 일관한 길이란 충서(忠恕), 즉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남을 위한 헤아림을 말하는 인도(仁道). -논어

나는 평소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곧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비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나는 기도를 드려 온 지 오래되었다. 병이나 재액을 만났다고 해서 새삼 빌거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 공자의 병이 중하게 되었을 때 제자 자로(子路)가 신에 기도드리기를 청했다. 공자는 이를 물리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논어

나는 행복하다. 만일 내게 과오가 있다 하여도 남이 반드시 지적해 준다.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논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먼저 가까이 있는 자가 만족해하도록 힘써야 한다. 가까이 있는 자가 기뻐하면 먼 곳에 있는 자는 스스로 모여들어 복종할 것이다. 섭공이 정치를 물은 데에 답한 공자가 한 말. -논어

나면서 도덕을 아는 자는 상(上), 그 다음은 배워서 아는 자이고, 자기가 고생스럽게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 된다. 삼자가 제각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노력에 의해서 상(上)과 동등하게 도달할 수 있다. -논어

나이 많은 사람에게서는 저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에게서는 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린이나 젊은 사람에게서는 저 사람이라면 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논어

남을 대할 때 자기를 남이 속일 것이라고 미리 방비하지 말고 신용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억측하지 마라. -논어

내가 젊었을 때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가가 많아서 잔재주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논어

내 발을 보라. 내 손을 보라. 한 곳에도 상처난 흉터가 없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병상의 증자(曾子)가 제자에게 준 최후의 교훈. 효도의 가장 큰 것은 어버이에게 받은 몸을 상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첫째 요건이라는 말. -논어

너는 대국을 볼 줄 아는 군자 선비가 되어야 한다. 공자가 제자 자하(子夏)에게 한 말. 군자는 의(義)를 숭상하고 소인(小人)은 이(利)를 숭상하므로, 군자 선비는 학문하는데 대의(大義)를 앞세우고 소인 선비는 사리(私利)를 앞세우는 것이니 대의를 앞세우는 선비가 되라는 뜻. -논어

너는 해보지도 않고 선을 긋고 단념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 염구(염求)가 분발하여 노력하면 향상할 수 있음을 격려한 말. -논어

노(魯) 나라 대부(大夫) 양화(陽貨)가 공자를 끌어들여서 자기와 대면하려고 생각하고 그 계략으로써 공자의 부재시를 노려 선물을 했다. 공자는 그 계략을 알고 양화의 부재시를 노려서 답례의 인사를 했다. 부재시에 대부에게서 선물을 받은 경우에는 후일 본인이 직접 가서 답레를 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논어

누가 보아도 악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부정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건 북을 울려 성토해도 좋다. 노(魯) 나라 계씨(季氏)가 권력을 이용해서 거부를 쌓았다. 계씨를 섬기고 있던 공자의 제자 염구(염求)는 다시 백성들의 세금을 배로 올려서 긁어모아 그의 재산을 한층 더하게 해 주었다. 그때 공자는 다른 제자들에게 "염구는 내 제자가 아니다."라 말하고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논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잘못을 고치느냐 않느냐에 있다. 자기의 잘못을 변명하고 합리화하려는 사람보다는 곧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며 자기의 귀중한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 탄개(憚改)는 고칠 것을 두려워하여 꺼림. -논어

누구인들 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도(道)라는 것은 모든 사물의 이치이므로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통해 나가야 하듯이 사람이 세상을 나가려면 도(道)를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도(道)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도(仁道). -논어

느슨하고 불충분한 명령을 내리면서 그 성과의 시기를 엄하게 하고 그 수행을 독촉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을 손상시키는 짓으로 적(賊)이라 말할 수 있다. -논어

마음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서 신의의 사람, 성실한 사람에게 가까이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거짓인 사람은 멀리 떠나게 되고 진실한 사람이 내게 가까이 오게 된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만일 나를 등용해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처럼 성군이 있던 서주(西周)에 비길 만한 훌륭한 정치를 동주(東周)에도 실현시켜 보겠다. -논어
만일 천하 만민이 곤궁에 빠지게 된다면 모처럼 하늘이 주신 왕위(王位)도 영구히 잃고 말 것이다.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해준 말. -논어

말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 실행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라. -논어

말을 입 밖에 내는 데에는 비루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야비하고 비도(非道)한 자는 스스로 멀리 갈 것이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말이라는 것은 그것이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논어

말이라는 것은 의사가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쓸데없이 수식하거나 중언부언하고 길게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논어

말이 성실하고 믿을 수가 있고 행동이 진실하고 조심스러우면 야만 미개인의 나라에서라 할지라도 행해질 것이다. -논어

매일 자기를 반성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 알지 못한 점을 발견하여 배우도록 힘쓴다. 이것이 호학(好學)하는 사람이다. -논어

맨손으로 범에게 달려들고 황하를 맨발로 건너며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어려운 일을 당해서 두려워하고 미리 계획해서 성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행동을 함께 할 것이다. 자로(子路)가 선생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느냐고 물은 데 대한 공자가 답한 말. -논어

먼 앞길, 넓게, 깊은 헤아림이 없으면 반드시 몸 가까운 일에 근심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논어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다음 그 사람의 행동의 동기를 관찰하고 다시 그 사람이 그 행위에 안정하고 있는가를 살핀다. 이 세 가지를 보면 반드시 그 사람의 정체를 밝힐 수가 있는 것이다. -논어

먼저 널리 배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박식(博識)으로 만족해 있어서는 안 된다. 예(禮), 즉 실행으로써 그 지식을 요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禮)는 이(履)이다. 사람이 밟고 가야 하는 행동. -논어

멀리 있는 공겅는 친구가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논어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가난하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논어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있어도 반드시 자기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있어도 반드시 자기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 세상의 평판만으로 인물을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논어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난폭하거나 교만한 티를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난폭한 자나 교만한 자도 나에게 가까이 올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군자가 도를 실천하는 데 있어 세 가지를 들어 말한 것. -논어

몸을 지니는 데 공손한 것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예절이 없으면 심신이 피로해진다. 용기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예(禮)가 없으면 난폭한 자가 된다. -논어

문(文)은 닦아서 몸에다 수식한 후천적인 것이고 질(質)은 천성적으로 실질적인 것이다. 문과 질이 섞여서 조화를 이룬 연후에라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수식적인 면과 실질적인 면이 반반으로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고 그 어느 쪽에 치우쳐도 군자라고 불리울 수는 없다. -논어

물욕에 동하지 않고 과단성있게 행동하고 꾸밈없이 소박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자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인자(仁者)에 가까운 사람이다. -논어

발분하면 열중해서 식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러한 것을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어 늙음이 닥쳐오리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섭공(葉公)이 공자가 어떤 분인가를 물은 데 대해 자로(子路)가 대답한 말. -논어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 즉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터득의 즐거움이야말로 배우는 것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논어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서 일을 시키면 된다. 그렇게 하면 힘껏 노력하면서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논어

백성은 충분히 늘어 있고 또 부(富)해서 생활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 위에 무엇을 할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은 백성을 교육하는 일이다. 염유(염有)의 물음에 공자가 답한 말. -논어

백성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 걱정거리다. 그러나 위정자는 그런 걱정보다는 백성들이 안심하고 걱정없이 살고 있는가 어떤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논어

백성이란 잘 이끌어서 당연한 이치에 따라서 행하도록 할 수는 있으나 그 이치를 다 이해시킬 수는 없다. -논어

백이(百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서산에 들어가서 굶어 죽었다. 그러나 모두 인(仁)의 도(道)를 구해서 인(仁)을 얻은 것인데 인간으로서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원망하리오. -논어

법률 제일주의 하에서는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백성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어떤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법망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어떤 악한 짓을 범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논어

봉황이여, 어떻게 해서 이처럼 덕이 쇠퇴했는가. 봉황은 세상에 도(道)가 행해지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숨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도(道)를 잃어버린 이 때에 나타났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봉황의 덕도 쇠한 것이구나. 세상을 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봉황에 비유해서 그 태도를 풍자한 초(楚) 나라 은자(隱者) 접여(接與)가 한 말. -논어

부모를 섬길 때에는 기색(氣色)을 삼가지 않으면 효도를 할 수 없게 된다. 색(色)은 단지 얼굴색만이 아니고 태도, 언행 등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논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 그것이 효도이다. 세상에서 부친이나 모친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 자식의 질병이다. 자기의 부주의로 병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기질(其疾)을 부모의 질환으로 해석하고 부모의 병환에는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효도라는 설도 있다. -논어

부친이 죽자 곧 부친이 하던 주의나 일상 생활을 변경해 버리는 것은 인정의 경박함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삼 년간 부친이 하던 그대로를 지킨다면 그것이야말로 효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분수에 지나친다. 이런 것은 모두 예의가 아닌 것이다. 관혼상제 모두 사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검소하게 하는 것이 예에 맞는 일이다. -논어

비록 가난하다고 해서 걱정할 것도 비관할 것도 없다. 목적을 가지고 살고, 믿음을 가지고 살고, 수양에 힘쓰고 하면 저절로 적극적인 인생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논어

비록 이단(異端)의 설이나 쓸데없는 속설이라도 반드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결국은 진흙탕에 빠져서 꼼짝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어

사각진 것의 한 귀퉁이를 가르쳤다면 나머지 세 귀퉁이는 자기가 생각하면 알 일이다. 이런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두 번 다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논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한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예(禮)의 활용에 있어 화의 필요성을 설한 유자가 한 말. 유자(有子)는 예라는 것은 잘못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시키기 쉽게 된다.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해 화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논어

사람에게는 제각기 지닌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릇에 알맞게 써야 하는 것이다. -논어

사람은 대개 어떤 일이라도 그 말초적인 것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그 근본을 파악하도록 힘써야 한다. 근본인 것을 행하게 되면 뒤는 자연적으로 방법이 서는 것이다. 이 말에서 유학(儒學)은 무본의 학(務本學)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도(道)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유자(有子)가 한 말. -논어

사람은 변하지 않는 지조가 필요한 것이다. 지조가 없는 자는 무당이나 의사라도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자가 인용한 남방인(南方人)의 말. -논어

사람은 여러 가지를 배운다. 하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해당시키고, 또 시세(時勢)에 해당시켜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배운 것이 희미하고 불안정하여 확실한 것을 파악할 수가 없다. 참으로 몸에 밴 학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

사람은 자기만 못한 사람으로 자기에게 영합하는 자를 친구를 사귀기 쉽다. 그러나 이런 친구는 자기의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자기보다 학문이나 경험이 우수한 자를 친구로 사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논어

사람을 사귈 때에는 널리 두루 공평한 마음씨로 사귀어야 한다. 편협된 사귐으로 붕당(朋黨)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논어

사람의 일생은 죽은 뒤에 비로소 정해지는 것이다. 군자는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 이름이 남지 않을 경우를 마음 아파해야 한다. -논어

사람이란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할 경우에는 실망하고 늘 끙끙거린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진실된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신에게 마음 써야 할 것이다. 환(患)은 마음을 쓴다는 뜻. -논어

사람이란 사치하면 순종하지 않게 되고 검약하면 고루하게 된다. 순종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논어

사람이란 아는 척하기가 쉽다.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가르치지나 않았는지 반성한다. -논어

사람이란 제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다. 사람을 쓰는 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논어

사람이 조우하는 길흉화복(吉凶禍福),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공자)는 쉰 살에 깨달았다. 따라서 나는 이 세상을 구제할 사명을 하늘에서 받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논어

사람인 이상 잘못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참으로 잘못이라는 것은 잘못인 줄 알면서 반성하지 않고 또 고치지 않는 것이다. -논어

사마환퇴(司馬桓퇴)라는 무뢰한이 내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덕을 부여하였는데 환퇴가 나를 어쩌겠느냐. 공자가 송(宋) 나라에 갔을 때 제자들과 큰 나무 밑에서 예(禮)를 실습하고 있었는데 사마환퇴라는 자가 공자를 죽이려고 나무를 뽑아 버렸다. 제자들이 빨리 떠나기를 권하자 공자가 한 말이다. -논어

사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군자의 머리에는 자기의 행동이 의(義)에 어긋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고 소인(小人)은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논어

사십 세는 활동할 때로서 오히려 미혹하기 쉬운 때이나 나(공자)는 사십에 세상일에 미혹한 것이 없어졌다. 40세를 불혹년(不惑年)이라는 어원. -논어

싸움에서 후퇴하면서 혼자 뒤에 처져 오고서는 성문에 들어갈 무렵에 자기말에 채찍질 하며 "곳 뒤에 처져 오자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느렸다"라고 말했다. 맹지반(孟之反)은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공자가 평해서 한 말. -논어

사회나 조직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다. 자기가 소속해 있는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간섭을 해서 질서를 문란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논어

삼 년 동안 학문에 종사하고도 녹(祿)을 타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벼슬을 경시하는 태도라 하겠다. 사람들은 대개 학문보다는 수입에 더 마음을 쓰는 것이다. -논어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됨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논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서 그치고 더 배우는 것이 없으면 위험한 일이 된다. -논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중대한 비상 사태에 임해서도 동요하는 일이 없고 그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의연한 데가 있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군자다운 사람이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썩은 인간은 교육도 불가능한 것이다. 공자가 재여(宰予)를 평해서 한 말. -논어

선비란 자기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아는 자이다. 그리고 사명을 띠고 어느 곳으로 가든 군주의 명예를 욕되게 하지 않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자공(子公)이 선비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은 데 대해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논어

선생님(공자)은 어느 나라에 가시어도 지도자로서 추앙받으신다. 그러나 관직은 얻고자 힘쓰신 적은 없으시다. 온(溫 : 따뜻하심), 양(良 : 착하심), 공(恭 :남을 공경하심), 검(儉 :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심), 양(讓 : 남에게 양보하심)이라는 이 다섯 가지의 덕으로 인해 추앙을 받으신 것이다. 자금(子禽)의 물음에 대한 자공(子貢)의 말. -논어

선생님의 일관한 도(道)란 충서(忠恕), 즉 헤아림의 길, 인도(仁道)이다. 증자(曾子)가 한말. 공자가 말한 일관지도(一貫之道)는 무엇인가 하고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을 때 증자가 답한 말이다. 부자는 공자를 가르킴. 공부자(孔夫子)라고도 함. -논어

선정(善政)을 하려면 먼저 좋은 인재를 등용하라. 다음에는 무능한 사람들도 가르쳐서 성적을 올리도록 이끌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신뢰하고 기꺼이 스스로 자기들의 직무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논어

선하지 못한 것을 당했을 경우 마치 뜨거운 물에 손을 넣었을 때 빨리 손을 빼내듯이 선하지 못한 것에서 멀리해야 한다. -논어

성심성의로써 부모를 섬기고 효도하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자하(子夏)가 한 말. 자하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효도하는 것이 모든 도리에 통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논어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거나 혹은 행동을 함께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선한 점을 골라서 그것에 따르고 선하지 않은 점을 골라서 내 자신을 바로 잡는다. -논어

세상에서는 예의 예의하고 말하고 있지만 그 예의란 형식적으로 옥이나 비단 같은 것을 보내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논어

세상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악당을 전부 죽일까 하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계강자(季康子)에게 공자가 한 말. -논어

 

소인은 궁핍하게 되면 반드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된다. -논어

소인은 지위를 얻지 못했을 때에는 지위를 얻을 것만 생각하고 지위를 얻은 후에는 그 지위를 잃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쓴다. -논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학문을 닦아도 실용(實用)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아무 쓸모가 없다. -논어

신하를 쓸 때에는 주군은 예의로써 해야 하고 신하가 주군을 섬길 때에는 충성으로 해야 한다. 사회는 지휘하는 자와 지휘를 받는 자, 명령을 하는 자와 명령을 받는 자의 관계가 있다. 위에 있는 자는 아래에 있는 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고 아래에 있는 자는 위에 있는 자를 성심으로 섬겨야 한다. -논어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르는 것도 아는 듯이 언동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논어

아무리 성이 나더라도 가슴속에 혼자 간직하고 그 노여움을 다른 사람, 다른 일에 옮기지 않고 잘못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젊어서 세상을 뜬 제자인 안회(顔回)를 칭찬한 공자의 말. -논어

아무리 좋고 착한 일을 해도 그것을 뽐내지 말고 힘드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말라. 안연(顔淵)이 한 말. -논어

아비가 다른 사람의 양(羊)을 훔친 것을 그 자식이 관청에 나와서 그 아비의 범행을 증언했다. 섭공(葉公)이 한 말. 공자는 나의 향당(鄕堂)의 정직한 자는 이런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고 반론하고 있다. 아비의 죄를 폭로하는 행위는 정직한 일이기는 하나 칭찬할 일은 못 되는 일이다. 아비는 자식의 죄를 숨겨 주고 자식은 아비의 죄를 숨긴다. 이것이 인간의 정이다. 인간의 정이야말로 자기의 진정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논어

아직 어린 고아를 그 장래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야 한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알고 있는 것을 곧 입으로 내는 것 같은 경박한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에 간직하고 인식을 깊게 할 일이다. 묵이식지默而識之. -논어

알고 있는 일이라도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매사를 선배에게 물어 가면서 해야 한다. 당시 예(禮)에는 가장 밝다고 한 공자도 나라의 대묘(大廟)에 제사 지낼 때에 사소한 일이라도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논어

어느 사람이 공자에게 정(鄭) 나라 사람 자서(子西)의 사람됨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지니지 않는 기분으로 "그 자 말인가. 그 자 말인가"라고 답했다. -논어

어떤 곳이라도 군자가 살고 있으면 누추한 곳은 없는 것이다. 공자는 동쪽의 여러 종족이 사는 곳에 살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이 "동쪽은 누추할 텐데 어떻게 하시렵니까?"하고 물은 데 답한 말이다. -논어

어떤 일이든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소중하게 전심전력을 다하게 되면 남이 믿어 주게 되는 것이다. 신용을 얻거나 얻지 못하는 근본은 모두가 자기의 일상적인 행동에 매인 것이다. -논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진실로 구하고 있는 자가 아니면 난들 그 사람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논어

어째서 입이 능숙한 사람이 필요한가. 인물의 첫째 요건은 재주 있는 사람보다는 성실한 자이다. -논어

어진 사람을 접할 경우 시샘하는 생각을 버리고 그 사람과 같이 되도록 마음써야 된다. -논어

언론이 독실하면 그 편을 들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군자다운 사람인지 또는 외모만 꾸미는 자인지 알 수가 없다. -논어

얼룩소는 원래 제사 때 희생에는 쓰지 않는 법이나 그 얼룩소의 새끼지만 털빛이 붉고(주 나라 때에는 적색을 존중했다) 훌륭한 뿔이 나 있다면, 가령 제사에 쓰고 싶지 않아도 산천의 신은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자식이라면 어버이에 관계없이 출세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비행에 고민하고 있는 제자 중궁(仲弓)을 격려하여 공자가 한 말. -논어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기어오르게 되고 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 -논어

옛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어도 그래도 정직했다. 지금의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고 또 그 위에 남과 자기를 속이는 악을 지니고 있다. -논어

옛 성현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지 않고 믿으며 옛 것을 좋아하여 여기에서 자기의 반성의 재료로 삼는다. 이것이 배우는 자의 마음가짐이다. -논어

온순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안정하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를 평해서 한 말. -논어

욕심이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신정(申정)이라는 자를 강한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어째서 참으로 강자(剛者)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논어

용기가 있으면서도 정의의 길을 알지 못하면 그런 자는 반란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 -논어

위에 있는 자는 제례에 쓰는 과실을 담는 그릇 같은 것에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소소한 일은 그것을 담당하는 소임을 맡은 자가 있다. 별도로 해야 할 큰 일이 있을 것이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위정자가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어찌 사람을 바르게 할 수가 있겠는가. -논어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부리기 쉽다. -논어

육십 살이 되어서 경험을 쌓은 나(공자)의 귀는 어떤 말을 들어도 이상하다거나 또는 저항감도 놀라움도 없어졌다. 세상 일을 알게 된 것이다. 이순(耳順)은 60살. -논어

음악이라, 음악이라 하지만 종이나 북을 치는 것만이 음악이 아니다. 음악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데 있다. -논어

의(義)로운 것을 보고도 자기의 이익을 의해 혹은 보신(保身)을 위해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논어

이것이 나(공자)다. 너희들은 내가 감추고 나타내지 않고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나 나는 감추고 나타내지 않는 일은 없다. 나는 무슨 일이건 너희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것이라고는 없으니 너희들이 알고 있는 평소의 나, 그것이 나(丘)라는 존재의 전부이다. -논어

이런 훌륭한 사람이 이런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은 천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애제자 백우(伯牛)의 병을 상심하여 공자가 한 말. -논어

이른바 훌륭한 대신이라는 것은 정도(正道)로서 임금을 섬기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그만 두어야 한다. -논어

인간 관계. 인간의 사회는 신의로서 성립되는 것이다. 신의 없이는 인간 관계도 사회도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는 자는 좋다고 할 수가 없다. -논어

인간의 현부선악(賢否善惡) 등 모든 것은 교육 여하에 따라서 지배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속하는 경우나 지위, 빈부귀천이나 환경은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논어
인(仁)에서 산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적어도 인(仁)에서 살려고 한다면 그 마음속에 악이 생길 리는 없는 것이다. -논어

인(仁)으로 행동의 근본으로 삼고, 인(仁)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정신을 인(仁)에다 둔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논어

인(仁)을 행하고 인(仁)의 도리에 살고 그리고 그것에 안심을 얻고 있는 것이 인자(仁者)이다. 지자(知者)는 인(仁)을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이것을 열심히 욕구한다. -논어

인(仁)의 도리를 지키는 마음가짐이 없는 자는 정신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을 견딜 수가 없어 결국은 타락하게 된다. -논어

인자(仁者)는 의(義)를 보면 행하는 용기가 있다. 용자(勇者)라고 모두가 인(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논어

인자(仁者)는 좋은 것은 좋다고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하는 공평함을 지닌다. 그래서 인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친하는 일면 사람을 미워도 한다. 미워할 때는 그 사람의 악을 미워하는 것이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논어

인(仁)하고 싶다고 바라는 그 순간부터 인(仁)은 그 사람 것으로 되는 것이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논어

일이 내 뜻과 달라 세상에 용납되지 않아도 나는 할 일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는다. -논어

임금으로서 천직을 다하기도 어렵고 또한 신하로서 그 책무를 다하기도 쉽지 않다. 공자가 인용(引用)한 말. -논어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에 명분을 이루는 정치는 근본이다. 제(齊) 나라 경공이 정치를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답. -논어

임금을 섬기는 데는 진심으로 하라. 거짓으로 속이지 말고 눈치를 보지 말고 바른 말로써 충언하여라. -논어

자기가 나서고 싶으면 먼저 남을 내세워 주고 자기가 발전하고 싶으면 남을 먼저 발전시켜준다. 이것이 인자(仁者)의 태도이다. -논어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혹은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인생살이에 있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 노여움이나 한스럽게 생각 말고 마음 편하게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이라도 또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가르침을 받는 것을 부끄러이 생각하지 말라. 불치하문(不恥下問). -논어

자기보다 못한 자, 어리석은 자와 접할 경우 그것을 자기의 반성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보다 못한 자라도 스승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것이다. -논어

자기보다 신분, 나이, 학식이 낮은 자에게서도 듣고 배워서 어떤 비근한 일이라도 소홀하게 하지 않고 하루하루 발전해 간다. 나는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 -논어

자기의 새로운 설을 만들어 내지 않으며 옛 선현(先賢)의 학설을 존중하여 그 바른 사상을 널리 펴서 전한다. -논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소탈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소탈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궁(仲弓)이 한 말. -논어

잘못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도 인정이 지나쳐서 저지르는 경우가 있고 몰인정한 경우도 있다. 그 잘못의 방법에 따라서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논어

장유(長幼) 붕우(朋友)는 서로 양보해야 한다. 스승에게 대해서도 물론이다. 그러나 인을 행하는 마당에서는 그 스승에 대해서도 결코 양보할 필요는 없다. -논어

장인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쓰는 도구를 날카롭게 잘 닦아야 한다. 훌륭한 인간을 뜻하고 수양하기 위해서는 현자(賢者)를 가까이 해서 배우고 인자(仁者)를 벗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어

재부(財富)를 구해서 얻어질 수가 있는 것이라면 가령 말채찍을 잡는 천한 노력인들 나는 할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제각기 천명이 있어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할 것이다. -논어

저 자가 공자인가. 공자라면 나루가 있는 곳쯤은 알고 있을 만한데. 천하 주유(周遊)하는 그가 아닌가. 평천하(平天下)를 위해 주유(周遊)하던 공자가 문인 자로(子路)에게 나루가 있는 곳을 묻게 한 데 대해 장저(長沮)가 공자가 아직도 정치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비꼬아서 한 말이다. -논어

적어도 도(道), 즉 인의도덕(仁義道德)의 수양을 뜻하는 자는 일상생활의 악의 악식을 부끄러워하는 자와는 친구로서 함께 도(道)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논어

절약해서 쓰고 백성을 사랑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국민의 세금에 의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비의 절약에 힘쓰고 국민이 낸 세금을 절약해서 적절하게 써야 한다. 거기에서 생긴 재정의 여유는 국민의 복리 증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논어

젊었을 때에는 혈기가 왕성하여 이성으로서는 감정의 억제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남녀간의 색욕에 대해서는 특별히 자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장년이 되면 혈기가 강성해서 자기 주장이 세어진다.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자숙해야 한다. 늙어지면 혈기가 쇠약해지면서 재물이나 명예욕이 강하게 된다. 과대한 욕망을 자숙해야 할 것이다. -논어

젊은 사람은 무섭다. 공부 여하에 따라서 장차 어떤 큰 일을 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십, 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무서울 게 없는 것이다. -논어

정(鄭) 나라는 국가가 혼란하여 그 음악이 음탕하다. 음탕한 시(詩)나 음악은 썩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논어

정도(正道)가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고 정도가 없어지는 것도 천명인데 한 개인이 천하의 일을 어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논어

정치라는 것은 바른 것을 행하는 데 있다. 정(政)과 정(正)은 동음 동의(同義). -논어

정치라는 것은 법이나 규칙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 비유한다면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北極星)에 여러 별들이 따라오듯이 백성은 그 덕을 연모하여 위정자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논어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는 조급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물을 급하게 처리하면 반드시 미흡한 사태가 생겨서 결국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눈앞의 것에 구애되면 대국(大局)을 그르친다. 작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큰 일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논어

제사를 지낼 때 마치 거기에 신이 계신다는 마음가짐으로써 모셔야 한다. 형식적으로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라는 뜻. -논어

조정에서는 새해에 달력을 제후(諸侯)에게 나누어주고, 제후는 매달 초하룻날에 선조의 사당에 희생의 양을 바치고 그 달력을 백성에게 보여서 농사의 지침을 삼게 했다. 이것을 고삭의 희양(告朔之희羊)이라 한다. 그러나 공자 당시에는 이 일이 쇠퇴하게 되자 제자인 자공(子貢)이 형식적인 관습은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데 대해 공자는 "아니다. 내용은 필요에 따라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그 형식은 없어지더라도 그것을 부활시킬 예(禮)가 없어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논어

중등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은 지식을 일러주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배우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조절해야 한다는 말. -논어

중요한 것은 절도 있는 몸가짐이다. 공손한 것도 좋은 일이나 너무 도가 지나치면 치욕을 받게 된다. 너무 굽실거리는 것은 공손한 것이 아니다. 유자(有子)가 한 말. -논어

지극한 덕(德)을 지닌 사람은 자기의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덕을 들어 칭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공자가 태백(泰伯)을 칭찬한 말. -논어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 임시의 편리를 탐내어 공명한 것을 버리고 임시방편으로 눈가림만 해 나가게 되면 얼마 안 가서 막히게 된다. -논어

지식이 좁은 사람은 자기의 좁은 생각에 얽매여 아집에 사로잡히기 쉽게 된다. 학문에 의해 지식과 견문을 넓혀 유연한 정신 상태를 지니게 해야 할 것이다. -논어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에 마음쓰는 것보다는 그 지위에 앉을 만한 실력을 쌓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논어

지위만 생각하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자는 선비라 할 수가 없다. -논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산을 본받아 이해나 영욕을 위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논어

진실로 참된 길을 구하는 자는 경우와 처지가 어떻게 변하든 간에 구도하는 즐거움을 변경하는 일은 없다. -논어

h****9 2007.02.20. 신고 공감 1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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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논어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논어를 읽어주었고, 때론 공책에 적어 놓았었다. 피곤한 날에는 쉬기도 했고, 시험을 보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을 때엔 읽는 것을 쉬기는 했지만 꾸준히 논어를 읽었다. 그렇게 다 읽었는데 큰 아이가 ‘서울시 초등학교 독서토론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서울 8개(동부, 서부, 북부, 중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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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논어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논어를 읽어주었고, 때론 공책에 적어 놓았었다. 피곤한 날에는 쉬기도 했고, 시험을 보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을 때엔 읽는 것을 쉬기는 했지만 꾸준히 논어를 읽었다. 그렇게 다 읽었는데 큰 아이가 ‘서울시 초등학교 독서토론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서울 8개(동부, 서부, 북부, 중부, 강동, 강서, 동작, 성동) 교육청에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참가하는데 그 독서 토론 대회 추천 도서 중 하나가 논어다. 논제는 당일 발표하기에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입론하고, 발표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논어를 읽어두긴 잘 한 것 같다.

 

논어는 동양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혀 왔고,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을지 모를 그런 책이다. 모두 20편으로 되어 있는 논어를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공자’, ‘공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은 글들도 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과 활기찬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좋은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지금은 구태의연한 사상이 될 수 있는 것들. 그런 것을 찾는 것도 은근 재미있는 시간들이다. 아이들에게 논어는 분명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음미하고 다른 책과의 연관성을 찾는 것. 그렇게 같이 연결시키면 분명 재미있는 논술 수업도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학이(學而)편과 술이(述而)편을 가장 좋아한다. 학이편은 배움의 중요성과 공자의 주요 사상이 담겨 있고, 술이 편은 공자의 용모, 태도, 행동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한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르겠지만 물질이, 돈이 최고의 권력으로 자리한 지금 논어를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논어를 시작할 때 아이들은 왜 이런 재미없는 것을 같이 읽어야 하냐고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신문이나 책에, 논어에서 인용한 글을 만나게 되면 굉장히 반가워(?)한다. 큰 아이의 경우 풀이 된 논어가 아니라, 한자로 된 원문논어를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한자 공부를 좀 더 하면 논어 원문도 읽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갖게 되었다.

 

이젠 논어가 끝났으니 장자나 다른 책들도 도전해 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그나마 쉬울 수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 아이들과 시작한 고전 읽기. 가능하다면 다음 책을 골라 또 시작하고 싶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나의 경우 학문의 즐거움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 읽는 즐거움은 무엇인지 안다. 동양 고전의 즐거움까지 알려면 아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묘한 행복을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술이 편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격을 수양하지 못하는 것,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 옳은 일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이다.”

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가 만약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드는 천한 일이라도 나는 하겠다. 그러나 추구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리어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 잡는 것이다.”

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곧 인이 다가온다.”

 

큰 아이는 논어를 가지고 독서토론 입론을 어떻게 작성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추천 도서도 있으니 그 책들과 함께 적절하게 인용하고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어렵지만 뿌듯했던 논어 입문기... 나쁘지 않다. ^^

 



YES마니아 : 로얄 k*****3 2013.10.28.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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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왈 자기계발서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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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권의 번역본으로 공자의 사상에 대해 가늠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삶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논어의 한 구절구절이 탄생하게 된 앞뒤 배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공자의 사상을 정의할 수도 비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권의 논어 번역본으로 본 공자의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독자로서 위로를 받은 부분이 있다는 점과 내 언행을 수양해줄 포인트를 발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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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권의 번역본으로 공자의 사상에 대해 가늠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삶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논어의 한 구절구절이 탄생하게 된 앞뒤 배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공자의 사상을 정의할 수도 비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권의 논어 번역본으로 본 공자의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독자로서 위로를 받은 부분이 있다는 점과 내 언행을 수양해줄 포인트를 발견했다는 점 등이 이 독서에서 얻은 가장 큰 미덕이다.

논어는 인과 예를 강조하고 일상에서 위와 아랫사람으로서 각자의 예를 지키듯 국가에 있어서도 덕치와 국민의 섬기는 예를 강조한다. 이 부분이 정치권력에게는 분명 통치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새겨들으면 백성된 한 사람으로 반가울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자들에게는 통치자로서의 일종의 처세, 시민에 대한 처세에 불과해지지 않을까 불안해지기도 한다. 참으로 강하면서 부드럽고 예를 갖춘 仁者가 되기란 어렵다. 정치권력자들에게도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도 이는 참 어려운 일이다. 자본의 축적을 좇자면 예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지금의 정치는 신분과 물질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만능주의를 키워내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논어를 읽는다고 해서 단숨에 성인이 되기도 어렵겠지만 성인으로서 지금의 정치 혹은 경제적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공자의 말 중 부를 쌓아 부유해질 듯 하면 그리 했을 것이라는 말이 이런 생각과 함께 와 닿는다.

그렇다면 시민으로서의 정치참여에 대해서 논어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얼핏 보면 공자의 가르침은 바르지 않은 정치에서는 멀리 가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하는 공자이지만 나는 그가 정치외권에서 시민으로서의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정치권력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정치 밖에서도, 간혹은 정치 안에서 강력하게 올바른 언변과 행동으로 실천해줄 정치가가 필요하다고는 생각도 잠깐 든다.

당시의 정권강화를 위한 신분제를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녀와 동일시하여 강화해왔기 때문에 당시의 공자의 가르침은 매우 효율적이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공자의 가르침과 생활이 가히 현대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신분과 성별의 차별의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 또한 떨칠 수는 없다. 특히 소인을 여자와 동일시하며 군자로서의 여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문구들을 보면서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당시의 뿌리깊은 신분제와 정권을 결성하고 있는 남성중심적 사회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공자 이후 공자의 유교적 형식을 강조하기 위해 재편된 논어의 모습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

몸가짐과 형식을 강조하고 있기도, 또 그보다는 섬김과 아랫사람 혹은 빈곤한 자들에 대한 군자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기도 한 논어이지만 그 안의 공자의 모습은 제자를 매우 사랑하고 평생 배우는 자세를 중요시하고, 스스로 빈곤과 불편을 자초하는 선비의 일관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가르침이 이후에 그리고 전파되면서 우리의 역사 안에서도 형식과 신분의 차이를 강화시킨 역사로 남기도 했지만 이는 분명 여러 전파과정에서 정권의 필요성에 의한 것을 취하고 재편하다보니 생긴 역사들로 이해된다.

지금 논어를 읽는 것은 그러한 유교적 가르침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은 교정할 기회가 된다.현대사회에서 삶의 모토는 차이에 대한 이해가 지배적이다. 그 차이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에 대한 시도와 노력만이 자신을 정화시킨다. 그런 면에서 논어는 지친 삶을 조금은 위로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투쟁을 모토로 야망을 가졌다면 논어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자가 권력자들에게 전쟁의 실무기로서의 백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통치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볼때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우에는 그러했지만 다른 독자의 경우 리더쉽에 대한 이해로 받아들여 그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면 공자의 백성을 다스리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어를 즐겨 공감하거나 가르침을 얻는 부분이 많다면 불경 혹은 탈무드 또한 권한다. 최근 성경을 읽으며 느낀 점이 있다면 정말 한국기독교의 목적에 맞게 재편된 성경의 느낌을 버릴 수 없다는 점과 동시에 왜 나는 이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만 해석하려했는가 하는 반성이었다. 성경의 가르침은 논어와 불경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했는데 에피소드 혹은 공자의 말, 부처의 말, 예수의 말들은 나에게 나름의 해석을 유도하면서 개개인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불경이 나와 나의 마음을 다듬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성경은 내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고 주변을 살피게 했다. 어떤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정치처럼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보다는 그 가르침들에 대해 나를 다스리는 기회로 삼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많은 종교인들에 대한 실망을 아직도 감싸고 있는 것은 몇몇의 진실된 실천종교인들이다. 이들은 사제이기도 하고 일반신도이기도 하다. 그들이 실천하는 불경, 혹은 성경의 언어들은 모두가 똑같이 읽는 글자들이 아니다. 자신이 해석한 긍정적의미로의 불경, 혹은 성경의 언어이다. 종교의 가르침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논어를 읽으며 종교와 각 경전에 대한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논어를 통해 본 공자는 이타적 인간이다. 그러나 논어를 읽다보니 왜 공자의 가르침이 ‘유교’라 할만큼 거의 종교적으로 번성해왔는지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섬김과 인자의 태도를 보이는 형식을 적당히 배분하고 그 형식에 의미를 둠으로써 종교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자신을 수양하게끔 하고 인과 예라는 덕목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비판은 스스로를 정비하고 서로를 보는 시선의 잣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의 변화는 무리를 만들고 종교적인 힘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교가 했던 역할처럼 말이다.

개개인의 이러한 수양이 축적되고 확대되고 올바르게 전파되었다면 아마도 공자가 생각하던 유토피아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사상이 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느릿느릿한 실천은 분명 의미가 있다. 나 또한 이러한 가르침이 진정 유토피아적인 모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공자의 가르침은 옳은 것에 대한 고민으로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며 그 존재를 가치있게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물론 논어가 경전이라기 보다는 공자의 일상에 가까운 기록인지라 잘못 해석되거나 앞뒤 정황을 알 수 없는 경우 그의 가르침에서 모순적인 면도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화되지 않는 논어 안의 ‘공자’를 만나는 것은 그가 진정 이타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유토피아를 만나는 것과 같고 그 부분이 독서 이후에 감동으로 느껴진다.

논어는 내게 자기계발서와 같이 보였는데 근래 넘쳐나는 자기계발서와는 같으면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논어는 무엇이든 이기고 오르기 위한 처세술이라기 보다는 지혜롭게 좋지 않은 것을 피하고 자신을 가다듬으며 말을 (잘하기보다는) 아끼는 처세술이니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는 각 독자의 몫이라 하겠다.

f*****5 2010.12.2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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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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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중학교때 한문 시간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 때 책에는 논어에서 따온 말이라고 쓰여 있었겠지만 인식하지는 못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다.'학이'부터 '요왈'까지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별로 분류된 건 아니고 한문의 첫글자를 가져와서 지은 소제목이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는 특히 논어를 종류별로 읽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논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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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중학교때 한문 시간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 때 책에는 논어에서 따온 말이라고 쓰여 있었겠지만 인식하지는 못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다.

'학이'부터 '요왈'까지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별로 분류된 건 아니고 한문의 첫글자를 가져와서 지은 소제목이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는 특히 논어를 종류별로 읽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논어를 읽으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공자의 말씀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이 진리이면서 실천하기 힘들기 때문일거라고 생각된다.

<논어집주>라는 강좌가 있었다. 그 책만 사면 강의는 무료라고 해서 구입한 일이 있다. 코엑스 건물 2층에서 일주일에 한번 아침 7시에 하는 강좌였다. 50대 여자 강사와 200명이 넘어 보이는 60,70대의 어르신들과 30대초반의 나로 구성된 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3번 출석도장을 찍었다. 큰맘 먹고 수업에 참여한 나는 한자를 찾아 헤메다 어느 순간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부끄러움이 너무나 컸었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애써 대가며 논어 공부를 그만둔 일이 있다. 한자 실력이 지금만 같았어도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을 텐데. 그때 그분들이 생각난다. 머리 하얀 분들이 아침 일찍 수업을 들으시던 모습.

논어는 한번씩 생각날 때 펼쳐들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별개일지라도.

y******y 2011.10.30.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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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생,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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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치고 <공자>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 부류부터 그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부류까지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그를 평하고 논한 사람도 드물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쪽? 다행히도 이 책은 그를 위대하다고 목을 메지도, 죽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도 않았다. 그럼 이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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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람치고 <공자>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 부류부터 그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부류까지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그를 평하고 논한 사람도 드물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쪽? 다행히도 이 책은 그를 위대하다고 목을 메지도, 죽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도 않았다. 그럼 이도저도 아닌 두루뭉술할 것 같은데 그 또한 그렇지 않고 나름 색깔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 공자>, 즉 <사람 공선생>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공선생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말년에는 제자들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거렁뱅이처럼 <한 자리>를 구걸도 해본 인물이다. 그래서 공선생은 자기 스스로 뛰어난 위치에서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이 그를 기리며 받들었기 때문에 유명한 인물일 따름이다.

 

  그럼 이런 인물이 세 살에 천자문을 뗀 천재였는가? 그도 아니다. 그가 <위정편>에서 말하길, 자신은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뒀으며 서른이 되어서야 겨우 자기 학문을 세운>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뒤의 행보를 보면 남다르다. 마흔이 되면 학문에 치질 법도 한대 지치지 않고 스스로 <그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더니 쉰에는 자칭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고 당당히, 예순에는 무슨 일이든 듣는 족족 이해를 했으며, 일흔에는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고 하니 참으로 괄목할 성장이다. 과연 무엇이 평범한 이를 이토록 큰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어느 정도는 시대가 영웅을 만든 경우가 아닐까 한다. 공선생이 전국을 떠돌던 시기는 중국의 <춘추시대>. 아직은 주나라 천자를 중심으로 한 예의와 법도가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은 시대. 그렇기에 공선생은 <착하게 살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당시 군주들도 완전 무시당하지 않고 '그래, 공선생이 말한대로 옛날에는 참 살만한 세상이었어'라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착함(仁)>이 통했기에 공선생은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건 그렇고 2천 년 전 가르침을 오늘날에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있을까? 당근 공선생이 말씀하던 것을 곧이곧대로 따르기엔 200% 모자르다. 우리는 고작 600년 전에도 공선생 말씀대로 살아보았고, 3~40년 전 만해도 공선생의 말씀을 따르려다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오늘날에도 오롯이 살아남아 <전통>으로 떠받들어진 덕목이 있는가 하면, 이에 맞서 <폐단>으로 지적받아 퇴출당한 폐습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공선생이 말씀하시길>이라는 '떠받드는 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생기는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다르게 읽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이제는 <사람 공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라는 '따지는 식'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힐테다. 사실 춘추시대 당시의 공선생의 말씀도 따지고 들 것이 많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남은 한이 없다>고 말해놓고 막상 '저녁'이 되자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니라>라며 제자가 물음을 던질 때마다 앞뒤가 맞지 않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이렇게 변죽이 들끓던 인물에게 과연 '무슨' 매력이 있었을까?

 

  적어도 난 고상한 체 하지 않고 사람냄새 물씬나던 그의 <변덕>과 궤변에 가까운 <엉뚱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귀엽지 않은가? 진짜 삶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던(이데아) 플라톤같은 사랑(플라토닉)은 밥맛이다. 아니 사랑하면 어디 마음 속으로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육신의 한 곳이 잔뜩 꼴리고 부푸는 것이 솔직담백한 사랑인 것을 애써 감추며 고상한 척하는 사랑이 어디 사랑인가 말이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다던 이들이 과연 순수하기만 할지 의심이 드는 나다.

 

  그래서 난 배고플 땐 메리를 드시고, 짐짓 메리가 내 뱃속 구경을 하고 싶어서 소원을 들어주어 메리의 도리를 다하게 하였다며 너스레를 떠는 공선생이 귀엽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0.12.30. 신고 공감 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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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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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논어를 KBS 중계석 희망특강 "박재희의 난세에서 헤엄치기"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논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고 고전으로서도 꼭 읽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다가서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겨울방학도 맞이하고 해서 한 번 쯤은 읽고 어쩌면 넘어야할 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엔 읽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나니깐 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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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논어를 KBS 중계석 희망특강 "박재희의 난세에서 헤엄치기"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논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고 고전으로서도 꼭 읽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다가서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겨울방학도 맞이하고 해서 한 번 쯤은 읽고 어쩌면 넘어야할 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엔 읽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나니깐 왜 이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는지.. 조금더 일찍 보지못했는지 아쉬움이 많이 납습니다.

또한 고전이 왜 고전으로 남아 대대 손손 읽혀지는 지를 알 수 있기도 하였구요.

 

저 개인적으로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 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내가 남을 알아 보지 못함을 걱정해야한다는 구절이 맘에 와 닿았습니다."

 

살다보면 남이 왜 자신을 못 알아봐주는지에 대해 속상한 적이 남을 알아보지 못해 속상한 적 보다 더 많았습니다.

아니 남을 알아볼 생각보다는 내가 남보다 튀어야한다고 교육받아왔습니다.

어쩌면 나는 겸손해져야하고 주위에서 다른 이를 빛나게 하는 것은 자기 pr의 세계라고 칭해지는 요즘 현실엔 안 맞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렇기에 주위에 눈을 돌려야지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신이 발전할 수 있으며, 어쩌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 먼저 튀는 사람보다 더 그 조직에서 융화되고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고전들 처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마음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논어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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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논어 시작 전에 간단히 공자에 대한 설명이 써 있는 부분은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각주가 주황색으로 처리 되어있는데.. 오래 읽으면 눈이 좀 피곤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한자로 원문이 적혀있는데, 이왕이면 음도 같이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한자뜻까진 힘들더라도.. 음이 적혀있으면 한 번 옥편도 찾아보면서 공부하기 쉬울 것 같아 아쉽군요..

 

양장본이라서 생각외로 가격이 쎄서 할인가격이 아니면 선뜻 손이 쉽게 가지 못합도 아쉽습니다.

j*******2 2009.02.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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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기 힘든 책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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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讀論語 未讀時 是此等人 讀了後  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  - 程子 논어를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똑같다면 그 사람은 논어를 읽지 않은 것이다.  - 정자    인문고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을 몇 가지 꼽을 때 그 중 빠지지 않을 책이 바로 이 책 《논어》다. 책을 펼쳐보지 않은 사람들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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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如讀論語 未讀時 是此等人 讀了後

 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

 - 程子

논어를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똑같다면 그 사람은 논어를 읽지 않은 것이다.

 - 정자

 

 인문고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을 몇 가지 꼽을 때 그 중 빠지지 않을 책이 바로 이 책 《논어》다. 책을 펼쳐보지 않은 사람들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로 시작하는 학이 편의 첫 구절은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만큼 잘 알려져 있지만 논어는 그 명성에 비해 다 읽어낸 사람은 드물다. 일단 주위를 보면 그렇다. 결코 길지 않은 책이라 마음먹고 읽어내기만 하려면 어려울 게 없지만 제대로 읽으려고 원문 해설까지 하나하나 따져 읽다보면 어지간한 끈기로는 끝까지 독파해내기 힘들다. 요즘은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나온 해설서들이 많지만 그걸 읽고 논어를 읽었다고 할 순 없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논어를 읽어내는 방법은 끝까지 일독 하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틈틈히 펼쳐 한 구절 한 구절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늘 가까이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책을 구입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자주 접했던 몇 구절만을 일상에서 되새기거나 다른 책에서 만난 글귀들을 논어에서 다시 찾아 확인하고 밑줄을 그어두는게 고작이다. 그런데도 누가보면 몇 번은 읽은 책처럼 책은 허름해져 있다.

 

 사실 논어가 아무리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하더라도 정자가 얘기한 것처럼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내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다.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면 굳이 유명세를 따라 읽으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인문고전 독서법을 담은 책들을 보면 어려운 고전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하다보면 깨달음을 얻게 되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해서 꾸준히 읽으라고들 한다. 하지만《논어》 같은 책 전체를 반복해 읽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속독으로 읽을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은 논어의 내용 중에 자신의 일상과 연결해서 되씹을 만한 유익할 만한 글들만 골라 익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한 구절을 읽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킬 단초가 된다면 그것으로 책을 읽는 목적은 이룬 셈이다. 이렇게 논어의 글들에 익숙해지다보면 굳이 전체를 일독하지 않더라도 논어를 읽은 성과를 보게 되리라 믿는다. 그것들만 반복해 읽어도 억지로 일독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YES마니아 : 골드 l*****j 2013.10.21.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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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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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교양으로 수강한 적이 있었다. 물론 한자까지 외워가며 비교적 원문에 충실한 풀이와 해석으로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 바 있었다. 그래서 불혹을 넘긴 나이에 다시한번 논어를 접하고자 선택한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짤막한 원문풀이에 그치지 않는 책 내용은 한마디로 '헐;'이었다. 틈틈이 읽고는 있지만, 다시 다른 논어를 구입해야 겠다는 아쉬움이 계속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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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교양으로 수강한 적이 있었다. 물론 한자까지 외워가며 비교적 원문에 충실한 풀이와 해석으로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 바 있었다. 그래서 불혹을 넘긴 나이에 다시한번 논어를 접하고자 선택한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짤막한 원문풀이에 그치지 않는 책 내용은 한마디로 '헐;'이었다. 틈틈이 읽고는 있지만, 다시 다른 논어를 구입해야 겠다는 아쉬움이 계속 드는 책이다. 오히려 한자가 함께 수록되었다면 이해가 훨 빨랐을 법도 하다. 아무튼 논어를 꼼꼼이 읽고자 한다면 비추임에 틀림없다...

 

YES마니아 : 로얄 e****d 2012.03.13.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