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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편한 것이 가장 진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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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다.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속으로만 울기도 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소설은, 보통은 동경하는 세상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던져준다. 그러면서도 희망적 메세지 하나 없다. 그래서 잔인하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마음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가장 진실하다. 세상에 대한 거짓말은 전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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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다.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속으로만 울기도 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소설은, 보통은 동경하는 세상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던져준다. 그러면서도 희망적 메세지 하나 없다. 그래서 잔인하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마음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가장 진실하다. 세상에 대한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길이 나고 공장이 들어서고 댐이 건설되고 방조제가 만들어지고 쓰레기처리장이 들어오고 재개발 사업으로 번듯한 아파트가 서면,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또 어디론가 밀려난다. 농촌에서, 도시에서, 그들의 삶은 비참하다. 특히 이중으로 억압을 받는 여성의 삶은 극도로 고단하다. 그런데도 돈이 뭔지, 그들끼리 서로 갈등한다. 상암동 월곡동 철거지구에서, 노점상 철거 규탄 집회에서, 새만금과 부안에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에서, 내린천댐 동강댐 반대 집회에서, 폐광촌에서 뛰고 보고 느꼈던 애절함으로부터 나는 너무 멀리 도망쳐 있다. 겨울 눈 펑펑 오던 새벽, 바리케이트를 쌓고 쇠파이프를 들고 혹시라도 용역 깡패들이 오지 않을까 긴장하던 내 과거의 기억은 그냥 단편적인 이미지가 되어 머리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나도 어릴 땐, 유랑가족의 일원이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 부모님께 비참한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주인집 아줌마로부터 구박을 받던 우리 엄마의 모습과, 단칸방에 네 가족이 꼭 껴안고 자다가 연탄가스에 죽을 뻔했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아득하다. 난 이제 전기장판에 불 켜놓고 잘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나 홀로 몸을 뉘이고 편히 머물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인상깊은구절]
가난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고 난폭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난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가정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무기는 사랑뿐이었다. 그 사랑이 경수 부부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 74page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웃 달동네가 개발되어 아파트들이 들어설 때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떠났는지 한 번쯤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궁금해했던 그 사람들 중의 몇몇이 바로 이곳 부대동으로 흘러들었고, 이제 이곳에서도 그들은 떠나야 한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 - 107 page 영주 할머니와 어린 영주는 고추밭에 맹독성 농약을 뿌린다. 사흘이 멀다 하고 뿌린다. 뿌리면서 그 농약 다 들이마신다. 농약 뿌린 고추로 밥반찬 한다. 농약 뿌려서 가꾼 고추를 팔아 쌀도 사고 공책도 사고 전기요금도 낸다. 영주 할머니는 바로 그 농약 때문에 죽다 살아났다. 그래도 또 농약을 뿌려야만 한다. 죽었다가 살아났어도 살았으니까 또 농약을 뿌려야 한다...... 마침 저 홀로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짐승의 오물을 함부로 무단 방류한 농민을 고발하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현장 출동한 기자 앞에서 말한다. '잘못인 건 알쥬, 허지만서두 정화시설을 설치하자면 비용이 만만치 않어유... 선처를 부탁드립니다아.' - 131page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가난한 작기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 - 267page
k******o 2005.07.2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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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량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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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 세계에 담아 내는 작가, 그래서 참으로 좋아한다. 작가 자신이 그러한 삶의 모습을 익히 알기에 더욱더 핍진한 그들의 삶을 더 잘 그려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의 가난은 과거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기 이전의 가난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많은 이들이 가난으로 허덕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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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 세계에 담아 내는 작가, 그래서 참으로 좋아한다.

작가 자신이 그러한 삶의 모습을 익히 알기에 더욱더 핍진한 그들의 삶을 더 잘 그려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의 가난은 과거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기 이전의 가난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많은 이들이 가난으로 허덕이던 그때는 그래도 가난이 불편했던 것 이외엔 창피하거나 슬퍼서 죽음까지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가난은 남에게 보이기 두렵고 그래서 더욱더 안으로만 감추려들게 되고 결국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늪으로 자꾸 빠져들게 만든 것이 가난이라는 모습이다.

가난은 개인의 무능력과 그들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열심히만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허황에 불과한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유랑가족]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가슴아프다.

[유랑가족]은 연작소설로 이야기 하나하나 다 다른 듯해도, 결국은 프리랜서도 일하는 사진 작가 '한'을 기준으로 모든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나도 판이한 모습들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형태는 단 하나,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세상의 중심에서 계속계속 밀려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따로 또 같이 그려지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해지는 재개발 사업으로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 있는 반면에 자본을 가진 무리들에 의해 가난의 굴레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더 깊이 빠지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러한 이들의 이야기 [유량가족].

이 사회 어디에서도 그들이 발 뻗고 편히 쉴 공간조차 없어서 늘 떠돌아야만 하고,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은 그들의 삶의 형태가 그래서 더욱 팍팍할 수밖에 없다.

폭력, 폭언, 사기, 자살, 가출 등등의 악순환의 고리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선진국이지만, 선진국일 수 없는 우리들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되물림 되는 그들의 가난이 사회의 범죄를 야기하게 되고, 내일을 생각하는 희망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삶.

'한'은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잡지에 기고하지만, 늘 잡지에는 그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이 아닌 농촌을 풍경으로 한 아름다운 일상만 담겨 있다. 마치 사진을 통해 그들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공기와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간다고 포장을 하는 듯이, 늘 사람들에게 참담하고 고단한 그들의 진실된 모습은 감춰야만 한다.

 

서울, 전라도, 경상도를 배경으로 하는 [유량가족]은 사진작가가 직업인 '한'이 떠돌면서 그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한이 만나게 되는 많은 이들의 아픈 모습을 자연스럽게 한을 통해 흘러나오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잔잔하게 그려보이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어느 한 쪽으로 감정이 치우치지 않은 작가의 사실적인 시선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결국은 가난한 삶은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온전히 그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가난으로 서로 엉켜버린 그들의 만남이 또다시 가난으로 각자의 길로 가야만 하는 가난한 자들의 삶이 오늘도 계속 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금 알아버리게 되었다.

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않고 관심있게 그려내는 작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m******9 2012.09.30.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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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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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기 위하여 -공선옥[유랑가족]<실천문학사> 리뷰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성공’이라는 희망어린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의 유입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회의 또 다른 축소판인 문단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름난 작가들 대부분이 서울 또는 인근 수도권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 들어 앉아 서울이라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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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기 위하여


-공선옥[유랑가족]<실천문학사> 리뷰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성공’이라는 희망어린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의 유입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회의 또 다른 축소판인 문단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름난 작가들 대부분이 서울 또는 인근 수도권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 들어 앉아 서울이라는 지역을 삶의 배경으로 삼아 어찌 저찌 이름 석 자 한 번 날려보려 이전투구를 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많은 예비 소설가, 시인들 역시 서울로만 몰리고 있고, 그나마 문단의 주요 인력공급처였던 지방대학의 국문과나 문예 창작과들은 새로운 시인, 소설가의 배출도 점점 뜸해지더니 이젠 등단을 통한 문단의 인적자원공급과 재생산 역시 서울, 수도권의 일부 대학 국문과나 문예 창작과에만 치중되어 문단 내의 지역불균형과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듯하여 그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다섯 개의 단편소설이 모여 만들어진 [유랑가족]의 작가 ‘공선옥’씨는 대중적 평가보다는 문학적 평가가 항상 뒤따르는 소설가이다. 잘 알려진 고단한 서울살이를 접고<그녀의 고단한 삶은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독자들에게 진정성으로 와 닿는다. 전남 곡성에서 상경해 대학중퇴와 노동운동현장에 투신, 그리고 갑작스런 결혼과 이혼, 아이들을 보호시설에 맡기고 서울 달동네를 전전하며 공장에 나가 재봉틀 옆에 원고지를 놓고 일 틈틈이 소설을 써 등단한 소설가, 항상 가난의 공포와 싸우는 여린 여성으로서, 또 두 딸아이의 엄마로서 세상과 싸워나가야 하는 억척스러움 등등>가난한 산골로 내려왔다. 폐교된 산골 분교에서 닭과 염소를 키우고 채소밭을 가꾸며 글을 쓰는 그녀가 틈틈이 쓴 글을 모아 펴낸 이 책 [유랑가족]은 아름다운 풍경과 휘황한 도시의 불빛, 그 뒤에 숨어있는 가난한 자들의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소설로 계간 [실천문학]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것을 2년의 시간동안 다시 고쳐 새롭게 펴낸 작품집이다.


조각들, 모자이크 혹은 조각보


공선옥씨의 [유랑가족]은 <겨울의 정취>,<가리봉 연가>,<그들의 웃음소리>,<남쪽바다, 푸른나라>,<먼 바다>의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별개의 존재로 보이는 작은 타일이나 종이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내는 모자이크처럼 다섯 편의 소설은 ‘가난의 풍경 혹은 기록’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 내는 조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인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골 사람들이나. 도시 재개발지역 철거민, 수몰지구의 이주민, 공장노동자들, 조선족 처녀와 필리핀 신부, 늙고 병들어 힘없는 노인,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모두 그 스스로 존재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작은 부스러기일 뿐이다. 그들은 번듯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에서와 달리 그런 주인공이 되기에는 그럴 만한 지식이나 돈, 능력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고 곧 이 땅에 살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유랑가족]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 속에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위적이고 과장된 희망의 메시지는 없고 대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그래서 간이 탈나버린 거예요. 어머니요? 아버지 땜에 농약 마셔버렸어요. 제초제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희망이 없었던 거예요. 삶에 대한 희망이요. 저요? 안 죽으려면 서울로 가야죠. 아저씨, 그거 알아요? 여긴요. 죽음의 땅이에요. 왜냐면,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잖아요. 킬링필드라고 아시죠. 바로 그거라구요. 죽지 못해 사니까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여긴 맨날 그런 사람들만 산다구요”

                                                                P67 <가리봉 연가> 中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유랑가족]이 택한 모자이크식 구성은 7,80년대 날카로운 필치로 한국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폐해를 고발했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의해 우리들에게 익숙한 보여주기의 한 방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모순은 소설을 소재로서 매력적이지만 어떤 작가도 선뜻 이 주제를 다루지 못한다.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문학평론가 방민호씨의 발문(가난에 대한 천착과 그 의미)에서도 언급하듯 가난이 확대. 재생산되는 <즉 대중성을 가지지 못하는 가난이라는 주제를 택해 소설을 씀으로써 그 책이 팔리지 않아 작가 자신도 역시 항상 가난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과정에 작가 스스로 천착하여 핍진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가난한 이웃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글쓰기가 결국 공선옥 소설의 큰 흐름이 되어버렸다. 공선옥이라는 작가가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오늘날 가난은 무능력하고 낡은 것,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리하여 일종의 페스트 같고 에이즈 같은 것이다. 암과는 달리 그것들을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질병이다. 오늘날 가난은 바로 그처럼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몹쓸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나아가 오늘날의 소설 독자들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진 젊은이들은 가난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것이 자기와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잘 모르며,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다”


“노무현정부의 출범을 전후로 해서 가난이라는 문제는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가난히 문제이고, 만성적인 실업과 반실업을 겪으면서, 각종 부채에 시달리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집을 읽고 떠도는 사람들이 대량화된 시대이건만 사람들은 주로 안티 ‘진보’와 안티 ‘보수’, 안티 조선과 안티 노무현, 안티 북한과 안티 미국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세계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일층 더 긴박되어 초국적화한 대기업에 대한 심리적 의존 없이는 한순간도 숨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타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발전의 흐름과 성격을 바꾸어보려는 마음보다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그날로 나는 해방이고 우리 식구들에게도 누가 러브하우스 지어 주었으면 하는, 환상적이자 동시에 속물적인 사고법이 무한증식을 해나가고 있다. 가난이 죄가 되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 저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되, 오늘날 부가 대량화한 만큼이나 대량화된 가난이 심각한 문제로 의식되지 못하고 타인이 아니라 자기의 가난이 문제가 될 뿐인 심리적 자폐증이 전염병으로 되어 있다.”

                                    

                                     P254-257 발문<가난에 대한 천착과 그 의미> 방민호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곧 폐기될 운명에 놓인 헝겊 조각들을 잇대어 완성한 한 장의 아름다운 조각보를 볼 때 나오게 되는 감탄과 같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으로 완성되는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이다. 삶이 조각나 버린 이들, 그들이 떠도는 세상의 강, 물의 흐름이 멈춰버린 곳에 낙엽이 쌓이듯 그들의 삶이 쌓여있는 공선옥씨의 소설집 [유랑가족]은 한 장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조각보이며 경건함 마저 느끼게 하는 종교화의 모자이크일 것이다.


"[유랑가족]을 읽는 독자들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표면을 장식하는 제반 담론의 그늘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가난의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균형적인 지역 개발의 명목 아래 진행되는 전국적 재개발 현상으로 말미암아 이제 가난은 서울과 지방의 소득 격차 문제 차원을 넘어 모든 지역의 문제가 되었다. 개발이 곧 부의 균형적 축적과 배분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입증된다. 21세기 한국의 지역 간 격차 해소 전략은 역설적으로 지방과 농촌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어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부유한 계급만큼이나 새로운 빈자들을 대량으로 산출시키면서 숱한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P264 발문<가난에 대한 천착과 그 의미> 방민호


그래도, 이 땅에 다시 살기 위하여


어찌 보면 쉽게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무거운 주제를 가진 이 [유랑가족]을 한 번쯤 읽어 보시라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들이미는 이유 같은 걸 묻는다면 사실 조금 난감하긴 하다. 내가 가진 깜냥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라는 순간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허풍스런 약장수 같은 말을 해 줄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먼저 공선옥씨의 글에서 이러한 감정이 정화를 맛보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부각되지 않는 이 다섯 편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는 절망과 고통을 함께 공유해야지만 가능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이건 내 삶의 문제와 별반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이 책을 읽는다면 그건 볼 필요도 없이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지는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일본 작가들의 말랑말랑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고사하고 그때그때의 유행적인 이데올로기 담론에 따라 민첩한 창작활동 능력을 보유한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 낸 신선함으로 포장된 가벼운 읽을거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독자들 역시 쉽게 손이 가는 주제와 책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잔혹한 시장경쟁의 논리에 따라 눈에 띄는 판매대에서 금세 치워지는 책들과 또 반대로 수북이 쌓여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는 책들의 구분은 그 내용의 질과 상관이 없기 마련이다. 결국 창작활동에 주어지는 다양성과 관용의 폭은 넓지 못하고 또한 이런 다양성이 담보되는 독서인구 및 독서량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공선옥씨와 같은 유행적인 담론이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매스컴이나 비평계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 소설을 가까이 두고 곱씹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선 이 땅에서의 삶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책을 사서 손에 들게 된다면 첫 장을 넘기기 전에 한 번쯤 주위를 둘러보자. 이 책 속에 숨쉬고 있는 주인공들, 그 작은 조각들이 바로 내 옆, 내 시선이 가 닿는 곳에 있는 바로 ‘그’ 혹은 ‘그녀’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g****6 2008.11.06.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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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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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이란 작가가 풍기는 서민적이면서도 질퍽한 느낌 때문에 나는 조금 외면했다. 그가 말하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이 조금 불편한 것이 아마 이유일 것이다.가난속에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 너무 있는 그대로 솔직하면서도 담담히 말하는 그의 소설을읽으면 왠지 낙담되고 절망 적인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작품은 연작 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5개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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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이란 작가가 풍기는 서민적이면서도 질퍽한 느낌 때문에 나는 조금 외면했다.

그가 말하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이 조금 불편한 것이 아마 이유일 것이다.가난속에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 너무 있는 그대로 솔직하면서도 담담히 말하는 그의 소설을읽으면 왠지 낙담되고 절망 적인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작품은 연작 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5개의 소설들이 어느부분에서 연결되고또 어느 부분에서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돈이 없고 못배우며 불안한 가정환경때문에 힘들어 하지만,서로의 이웃들에게 힘든세상에서 서로 기댈 수 있는 어깨정도는 서로 나누고 사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참으로 그놈의 돈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가정을 지키고 떠돌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버팀목 같은 모습을 본다.

 

이들의 삶을 너무 비극적이지도 그렇다고 희극적이지도 않게 그저 담담하게 글을 써나가는 저자의 글솜씨가 참으로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조정래 장편소설이었던 <한강>이 생각났다.

산업화를 이루면서 사회적 정치적 이념과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의 군상들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이 유랑가족을 읽으면 2000년대 초반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과 사회에 또다른 약자로 들어오게된 이방여인들의 삶의 모습-연변처자와 필리핀에서온 농촌여성-들도 단편적으로 이야기들이 나온다.사실 한강이란 긴 소설에 비해 이 책의 내용은 간략한 편이지만 훗날 이 소설이 우리시대의 서민들의 모습의 진정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m*******r 2011.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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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 곳 재겨디딜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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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굳이 불편한 이유를 말해보라고하면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불편하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도피심리가 천형처럼 뿌리내려있는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른 세계로 도망쳤던 독자들은 더욱더 핍진한 세계를 만나게 되어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가공되어 극악스럽다거나 다소 과장된
"어디 한 곳 재겨디딜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 " 내용보기
  솔직히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굳이 불편한 이유를 말해보라고하면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불편하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도피심리가 천형처럼 뿌리내려있는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른 세계로 도망쳤던 독자들은 더욱더 핍진한 세계를 만나게 되어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가공되어 극악스럽다거나 다소 과장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담히 서술해내는 공선옥의 시선이다.

 

    <유랑가족>에 나타난 공선생의 문장은 담담하다. 이러한 담담함은 그저 담담하고 무던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다듬고 다듬어서 뭉툭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문장이라고 할까? 이러한 문장들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기보다는 저 밑 어딘가에 있는 심장을 관통한다. 정맥을 관통당해 과도한 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공선옥의 문장들은 독자의 심장을 뚫은 후에는 멈출 수 없어 보인다.  

 

  <유랑가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 아내들이 도망가고 아낼르 찾으러 다니는 일용직 노동자들 , 시골에서 도망와서 노래방 도무미로 전전하는 아줌마 ,  동네를 버리고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하는 사람들 , 동네가 수몰되어 동네를 떠나야 하는 사람 보호자가 없어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  들리는 풍문에 공선생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했다고 한다. 가난이라 산업화 이후에는 작가들에게도 금기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공선생의 시선은 과장되지도 않고 ,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작가의 치기어린 , 혹은 섣부른 희망의 메세지를 심어두는 것을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싸구려 센티멘털리즘을 , 로멘티즘을 경계한다. 현실은 로망이 아니므로 현실은 그저 현실일 따름이므로 .......팍팍한 세상을 팍팍하게 기록하기는 어쩌면 공선생이 쓰는 소설의 의무 혹은 임무처럼 보인다.

 

  <유랑가족>은 연작 소설이다. <겨울의 정취> <가리봉 연가> <그들의 웃음소리> <남쪽 바다 푸른 나라> <먼 바다> 총 5편의 단편들이 방민호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모자이크처럼 병치되었다고 하는데 , 내가 생각하기에는 병치라기 보다는 퍼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조각 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면 독립된 하나의 이야기지만 서로 연관되어 나타난다.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겨울의 정취>와 <가리봉 연가> 정도가 확연히 연관성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도 사진작가 한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연관성을 가진다. 여럿의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퍼즐을 완성하면 번듯한 모양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y*******n 2008.04.0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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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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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만수가 엮게 될 ''유랑하는 자의 삶의 철학''에는 현지인들의 싸움에 되도록이면 끼어들지 말되, 이따금 끼어들 필요가 있을 때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정의감이 불타오를 때, 그때 끼어들어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는 구절도 필히 들어갈 것이었다. 두 방도 필요없었다. 딱 한 방으로 상황 끝을 만들어버리고 나서 그 자리를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바람같이, 구름같이.(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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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만수가 엮게 될 ''유랑하는 자의 삶의 철학''에는 현지인들의 싸움에 되도록이면 끼어들지 말되, 이따금 끼어들 필요가 있을 때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정의감이 불타오를 때, 그때 끼어들어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는 구절도 필히 들어갈 것이었다. 두 방도 필요없었다. 딱 한 방으로 상황 끝을 만들어버리고 나서 그 자리를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바람같이, 구름같이.(245) 공선옥의 소설을 읽게 되면, 마음이 서걱거리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것이 ''소설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만들어 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바로 그들의 모습을 찾아 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마음이 서걱거리게 될 것을 몰랐단 말이냐. 유랑가족, 이라는 제목에서 그래도 뭔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선뜻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하는것이, 등 따숩고 배부른 자의 섯부른 망발 같은 느낌때문에 뭐라 하기가 어렵다. 마음뿐 아니라 말까지 까슬까슬 목에 걸린다. 그래서인가, 나는 계속 저 말이 맴돈다. 유랑하는 자의 삶의 철학에는.. 싸움에 끼어들지 말되, 때로 끼어들게 될 때는 사사로움이 아닌 ''정의감''에 불타오를 때, 여야 한다는. 그것도 단 한방에 끝내버리는. 그리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떠나는....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는 나는 그들의 싸움에 함께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생존, 그 자체이겠지만 나는.. 나는 말이다...나는...... 그래도 나는... 연민의 눈으로 바라만 보게 된다해도 절망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그뿐이라해도.
r***2 2006.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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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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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착한공무원   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 사회가 IMF를 극복한지 10년째 되는 해라고 하며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보는 기사가 나왔다. 1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IMF라는 것은 그저 좋지 않은 것,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정도일 뿐, 그것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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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착한공무원


  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 사회가 IMF를 극복한지 10년째 되는 해라고 하며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보는 기사가 나왔다. 1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IMF라는 것은 그저 좋지 않은 것,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정도일 뿐, 그것이 가지고 올 혹독한 시련과 아픔은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그로 인해 우리 주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김대중 정권은 IMF를 5년 만에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수용하였고, 덕분에 지난 10년 간 산업구조의 개선되어 나라 전체가 재성장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다. 올 대선에서도 역시 침체된 경제를 살려 내겠다는 공약이 보수든 진보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그것의 방증이 아닌가. 여전히 침체된 경제, 얇은 지갑, 텅 빈 통장잔고 아니 마이너스 통장, ‘풍성한’ 가계대출 등 달갑지 않은 단어들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으니까.

 

  나랏일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야 세계 경제가 어떻고 국제 증시가 어떻다고 한다지만, 평범함 사람들에겐 따뜻한 가정과 그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만 받쳐준다면 충분할 것이다.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 없다면,(인정하기 싫더라도) 결국 돈이 만사의 중심에 있다. 아무리 행복한 가정이라 한들 돈이 없어 철저하게 무너지기 십상이다.

 

  ‘건실한 농어민 후계자’인 달곤이 흙밭을 떠나 차가운 아스팔트밭, 도심 속 막노동판을 배회하는 것이 역설적이다. 한편으로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일상적이다. 이것이 지난 10년간 IMF를 극복했다던 가난한 군상이니까. 그의 가정을 돈 때문에 깨졌다. 사랑 없이 돈으로 맺어진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는 로맨틱 소설은 그저 배부른 이상 아닌가. 씁쓸하긴 하지만 가난 앞에 한 가정은 너무 쉽게 허물어 졌다. 달곤이나 용자에게 물질만 쫓는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 때문에’ 딸아이를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자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명화는 돈과 사랑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전부 추구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가난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며, 난폭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지만, 결국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마지막 무기’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회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의 해결책을 마련하야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대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사는 것처럼.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가정 中)

 


  5편의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소설들은 모두 ‘편집팀장’의 표현대로 ‘어둡고 부정적이고 상투적’이다. 모두들 가난해서 행복도 잃었다. 남도의 축복을 받을 것 같던 영주와 그 고모네 역시 ‘거친 파도’에 휩쓸려 행방이 모연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불행하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그 불행을 해결할 묘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투적’ 아픔이 되고 점차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10년의 IMF를 지내면서 정말 고통스러운 아픔이 ‘상투적’으로 무뎌졌기에 본질적인 문제들을 방치하는 게다.
 
  읽는 동안 등장인물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미안해하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나 자신이고 모두 지금을 사는 내 이웃이니까 이제 ‘여인숙비라고 아껴보려고’ 매일 밤 지하철역 대합실에 노숙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는 것이다.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골 아이들의 대답에서, 도시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학업에 부담 없이 맘껏 뛰노는 이미지가 얼마나 이기적인 짓이었는지 반성해 보는 것이다.


2007. 12. 8.

i***j 2008.01.10.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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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정처없이 흘러가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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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정든 쉽터를 떠나 유랑하기도 한다. 이것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좀 더 나은 삶에의 힘찬 행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떠나는 처절한 행보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수중에 가진 것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러한 기구한 인생들을 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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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정든 쉽터를 떠나 유랑하기도 한다. 이것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좀 더 나은 삶에의 힘찬 행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떠나는 처절한 행보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수중에 가진 것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러한 기구한 인생들을 자석의 이끌림마냥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그로 인해 또다른 사건과 기구한 이야기를 낳는다. 공선옥씨의 연작소설 '유랑가족'은 이런 인생들의 이야기를 '한'이라는 한명의 인물을 매개로 '모자이크식 구성법'을 이용해 풀어나간다. 서로 얽히는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공감하고, 또 질투하고, 시기한다. 그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 가혹한, 리얼리즘을 내포한 판타지. 읽고나면 당신이 무심코 지나치던 누군가의 모습이 갑자기 각인될지도 모른다. 쉴 곳 없이 떠도는, 유랑민의 모습으로.
YES마니아 : 플래티넘 Z****a 2007.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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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플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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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멍하니 앉아서는 원망스레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 사회는 그들을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지난 IMF 가 오히려 더 황금기라고 했던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가난, 하지만 이 단어를 자신의 두 어깨에 모조리 짊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텔레비전에선 드라마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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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멍하니 앉아서는 원망스레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 사회는 그들을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지난 IMF 가 오히려 더 황금기라고 했던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가난, 하지만 이 단어를 자신의 두 어깨에 모조리 짊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텔레비전에선 드라마에서 조차 연일 상류층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꿈꾸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조차 느껴지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고, 그것은 '성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고 있다. 누구의 성장이란 말인가. 이전에 학교 숙제를 위해 찾았던 난곡은 우리네 삶과는 동떨어진 공간처럼 여겨졌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보았던 세상은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곳이었다. 내 삶은 그들의 삶, 그 언저리에 발을 한 번 디뎌보았을 뿐이기에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하루하루를 사는지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 혹은 원치 않는 철거를 당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하지만 그 곳은 그들에게 허락된 삶의 터전이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나아진 것이라곤 하나 없어보이는 현실을 놓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글에 담았다. 저마다 아픈 상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써 내려간, 집은 집이되 머무를 수 없는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 그들의 삶은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했다. 그리움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지만 어떠한 원망도 하지 못한 체 아내 앞에서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 단 하나 뿐이었던 절대자를 잃고는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여야 하는 아이, 사랑도 믿음도 깨어진 그네들의 마음은 너무도 아파서 아프다는 그 말 한마디를 표현치 못한 체 그들은 욕을 하고 술을 마신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 그들도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제각각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나면 오히려 더 훈훈해지고 각별해지는 사이, 그것은 그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였던 것이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이 아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역시 그 정도는 덜할지 모르지만 가난하다. 그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에도 그의 귓가에는 지금 당장의 생활을 걱정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목소리로 자유롭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 유랑해야만 하는,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아이러니이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60-70년대 우리네 부모님께서 겪었던 가난이 빗소리만이 이따금 내 귀를 때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나는 나의 삶을 탓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고 가져야만 할 것 같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그렇게 원망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유랑 아닌 유랑을 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맞닿아 이루어낸 유랑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그런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모두가 동참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물결... 그 물결은 너무도 거칠어 빈틈을 찾아보기 힘든 듯하다. 갑작스레 아버지께서 직장을 잃으신 그 어느날 이후 단 한 번도 네 식구 온전히 모여 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의 삶이 그러하고, 등록금을 마련치 못해 무기한 휴학에 돌입해야만 했던 친구 녀석의 삶이 그러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혼을 정화하는 행위. 하지만 아파서 울어야만 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하루는 어딜 향해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 두려워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 모두 유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q*****2 2005.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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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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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방민호가 발문에서 “공선옥씨는 지금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작가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핍진하게,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밝히듯 공선옥의 신작 소설은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만 잘나면 세상 모든 것을 손아귀에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에 가난은 명백한 죄악이며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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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방민호가 발문에서 “공선옥씨는 지금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작가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핍진하게,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밝히듯 공선옥의 신작 소설<유랑가족>은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만 잘나면 세상 모든 것을 손아귀에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에 가난은 명백한 죄악이며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쩌면 죄악이다.(좀 옆으로 나간 얘기지만 가난만 죄가 아니라, 성격 못된 것은 용서가 돼도 얼굴 못생긴 건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하는, 못생긴 것도 뚱뚱한 것도 죄가 되는 사회다) 일전에 누군가 내게 요즘 같은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마당 깊은="" 집="">이 필독권장 도서로 선정되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 요즘 같은 때란 ‘물질적 풍요’를 전제로 한 사회일 것이고 그런 책은 ‘가난’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가난’을 과거형으로만 보는 것이다. 가난이 과거형인가? 그리고 설령 과거형이라고 한들 가난히 단지 떨쳐버리고 타파해야만 하는 것인가? 소설 속 ‘한’은 취재차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져버리지 못한 채 아내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가난에게 부모를 잃고 함께 살던 할머니마저 잃은 영주를 끌어안으려 한다. 하지만 끌어안을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한다. 영주는 ‘한’에게 부담이 될까봐 같이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지만 기껏 초등학생인 영주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많지 않다. 물어물어 찾아간 친척집도 영주를 맡길 형편이 아니다. 결국 ‘한’은 수소문 끝에 형편이 넉넉지 않은 고모에게 맡긴다. “아저씨, 안녕히 가셔요, 나는 남쪽 바다 푸른 나라에서 행복하게 잘살 거래요. 아저씨, 담에 꼭 놀러 와야 되니더.” 소리쳤던 영주는 태풍에 고모부가 죽자 유랑가족이 되어 또 어디론가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나는 이 책을 객관적으로 읽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공선옥의 작품을 읽을 때 만나는 부채 의식과 내 삶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는 자책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누구의 가난도 책임지지 못한 채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며 취재를 다녀야 하는 ‘한’은 누구도 그에게 안겨준 없는, 스스로 떠안은 채무감에 시달린다. 그런 한’의 예전 직장 동료로 지역신문사 기자를 지내다 지금은 대학 강사인 정이 있다. 그가 우국지사적인 면을 보일 때는 술을 마셨을 뿐이다. 찾아온 ‘한’ 앞에 부당한 현실에 대한 온갖 분노를 다 드러내며 비분강개하지만 그의 뒤에는 고급 가죽소파와 골프채가 놓여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분노하며 독립지사연하는 그는 아이들을 미국에 조기 유학 보냈다. 술을 마시면 ‘말’을 안주 삼은 버릇만 여전할 뿐이다. 그에게 있어 현실 비판은 술발 잘 받게 하는 안주일 뿐이고 애정의 대상없는 자위행위 같은 것이다. 그런 그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라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겨울의 정취=""> 자식이 크면 기를 써서 대처로 나가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그 높은 교육열에 비춰보면 르포 작가가 취재차 올 정도의 깡촌에 살고 있는 미정이, 경애 ,향숙이는 이미 내팽겨진 존재들이다. 부모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새엄마에게도 덤으로 부려진 짐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런 미정이 엄마 서용자는 갈비집에서 서빙을 하다 조선조 여자 강명화의 꾐에 빠져 가출했고 아빠 김달곤은 뒤늦게 가출한 마누라를 찾아 전전한다. 삶의 거센 풍랑을 영악하게 헤엄쳐 나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들은 모두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물 군상이다. <가리봉 연가=""> 조선족 여인들은 주로 언론을 통해 순박한 농촌 총각과 결혼한 후 국적을 취득하면 도망을 치는 파렴치한 가해자로 비칠 뿐이다. 남편이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으로 떠난 이웃집 여자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난 후 그녀는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독한 맘을 먹고 아이를 남겨둔 채 돈 많은 한국남자 만나 부모도 자신도 호강하려던 꿈이 어긋나기 시작하자 남편을 버리고 이웃 서용자를 꾀어 가출한다. 하지만 그녀들을 서울로 꼬여낸 배사장이 돈을 갖고 자취를 감추자 다시 가리봉 일대를 전전하는 노래방 도우미가 되고 결국 강도를 만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또 다른 소설의 몇몇 인물들. 수몰 지구에서 땅을 잃고 보상금마저 잃고 아내마저 빼앗긴 종만. 모두 더 볼 것 없는 종(鐘)친 인생들이다. 그들의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가난과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노라면 출구도 없는 미로만큼이나 삶은 얽혀 있다. 소녀 가장 영주에게나 수몰지구에서 한몫 챙겨보려던 ‘대석’과 ‘만수’에게나 어쩌면 바다는 절망한 자들의 종착지일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삶을 방기(放棄)해 버리는 사람들. 운명에서 벗어나려다 결국은 더 큰 운명에 덧에 치여 비극적 최후를 맞는 조선족 여인 강명화 같은 이들. 돌아가기엔 늦은 미정이 엄마 서용자. 가난으로 인해 조각난 인생들. 낱낱이 파편화 된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독자는 퍼즐을 맞추듯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 하나를 만난다. 그리고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많은가 나는 가난한 작가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
l******r 2005.05.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