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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상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상" 내용보기
겁도 없이 흔한 꿈 목록으로 매년 한 권의 책을 쓰겠다는 버거운 자기 약속을 해버렸다. 그 이후 줄곧 매년 책을 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번 책은 스물한 번째이다.  - 김홍석,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p.288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여전히 본업에 충실한 사람이 해마다 한 권씩의 책을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니. 나는 안다.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약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상" 내용보기

겁도 없이 흔한 꿈 목록으로 매년 한 권의 책을 쓰겠다는 버거운 자기 약속을 해버렸다. 그 이후 줄곧 매년 책을 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번 책은 스물한 번째이다.  - 김홍석,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p.288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여전히 본업에 충실한 사람이 해마다 한 권씩의 책을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니. 나는 안다.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약속이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것을. 그러나 김홍석 작가님은 올해로 무려 스물한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을까? 


처음 만났던 김홍석 작가님의 책은 '퉁소 소리'였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1970년대를 배경으로 열심히 살아가던 주인공이 결국은 그 성실함에 보답받는 해피앤딩이었던 것 같다. 얼마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늘 마지막 장을 덮은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도 '퉁소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퉁소 소리를 읽고 이 소설을 읽으니, 이것이 김홍석 작가님 특유의 문체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내용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2020년대인 듯, 아닌 듯 어딘가 레트로한 느낌이랄까. 주인공의 이름도 '영수'와 '순희'. 영수와 삼총사였던 친구들의 이름도 '칠성'과 '철우'다. 칠성이 아우디를 타고 다니고, 영수가 휴대폰으로 순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보면, 이들은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일 텐데, 이름도, 서사도 전작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퉁소 소리의 주인공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는 인물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박완서, 이금이, 성해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소설을 읽고 그들에게 흠뻑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전에는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을 읽으며 소설이 시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파도가 일궈낸 침식 작용이 곳곳에 비경과 곶을 만들어냈다. 광활한 갯벌이 해안선을 따라 죽 펼쳐져 있고, 바닷속은 미역, 김, 다시마, 매생이가 똬리를 틀면서 듬성듬성 숲을 조성해 놓았으며 바닥에는 맥반석과 초석이 댕돌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김홍석,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p. 8

이 이야기에서도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소천면. 작은 어촌이다. 바다를 둘러싼 비경 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어촌이 묘사를 통해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낸다. 어찌 바다와 바다 음식에 대한 묘사뿐일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가 해주던 80년대의 소박한 밥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청양 할머니네의 정겨운 시골집이 생각나기도 한다. '촉촉한 순희의 입술은 말랑말랑한 젤리였다. 이 달콤한 젤리를 지금 막 깨물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영수의 입술은 좀 투박하지만 든든한 육질의 소고기 한 점이며 밋밋하고 부드러운 두부살이었다. (p.162)'와 같이 영수와 순희가 연애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제 나는 남편과 연애했던 기억마저 사라져 버렸다. 원래부터 함께 살았던 것 같다.) 


소설의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는 묘사들은 세련되기보다는 투박함에 가깝다. 하지만 그 투박 덕분에 인물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김홍석 작가님 특유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감있는 묘사는 MZ들에게는 어떤 울림을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 이야기 속 묘사는 그들과의 경험적 접점이 없으니. 



2. 설명적 서사 


내가 이금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진부한 대답이 전부다. 그 재미와 감동을 이금이 작가는 독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주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전하려는 말은 이것이오'라고 드러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표현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가슴 깊이 먹먹함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것도 김홍석 작가의 개성이라고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읽은 작가님의 소설은 고작 두 권 뿐이니.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 역시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가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아직 헤어디자이너 자격증도 못 딴 데다가 남자 친구를 사귈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밤늦게 미용학원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벅찬 인생이다. 젊어서 고생은 평생의 재산이라지 않던가. 자신은 지금 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는 중이다. 

p.123

젊은이의 연애, 가족간의 사랑, 연대의 힘, 친구와의 우정..... 작가는 전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정말 너무나도, 지나치게 친절하다. 후반부에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강수 가문에 내려오는 비단 반 필에 적힌 한자를 구결로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국어학을 공부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미천한 독자가 무엇을 알겠는가. 다만, 이야기의 기둥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명적 서사가 주가 되다 보니 독자 스스로 느끼고 정리해야 할 감정의 파고가 약해지는 듯하다. 독자의 상상과 해석이 머물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 다소 아쉽다. 



3. 대문자 T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선 


나의 MBTI는 ISFJ.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가 F라는 것을. "너 T지?"라는 비아냥 섞인 질문도 많이 받는다. F라기 보다는 T에 가까운 나. 그것도 대문자 T. 그래서 나는 때로 괴롭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어릴 때처럼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 비판하고, 평가한다. 드라마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허구적인 이야기인데, 나는 그 드라마를보며 '말도 안돼'라고 조롱한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다.)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신파 소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주인공인 순희부터가 그렇다. 남편바라기인 순이. 앳되고 순진무구한 아가씨였던 순이. 그럼에도 생활력과 삶의 의지가 강인한 여자, 순이. 순이는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는 평면적 인물이다. 홧김에 친구를 칼로 찌르고 교도소에 들어간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작정하고 괴롭히는 시어머니를 우발적으로 해치려고 하고는, 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탓한다. 남편과 함께 가족교도소에서 생활하면서, 부족한 영치금으로 남편이 초코파이를 사서 내밀었을 때도 바가지를 긁지 않는다. 끝까지 남편을 위하고 사랑하는 여자, 순이. 


순이를 그토록 사랑하는 영수는 왜 순이가 분가하면 다른 남자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왜 시부모님은 순이가 새 삶을 찾아 가기를 바랐을까? 칠성이는 복지센터에서 며칠 일하는 것조차 버거워 했으면서 어떻게 타지에서 막노동 생활을 두 달씩이나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 모든 의문들보다 가장 이해 안 되는 인물이 순이다. 전일이 고등학생이니 17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했을 터이고, 그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텐데, 앳되고 착하고 고운 순이의 모습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살면서 겪는 무거운 현실은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사랑의 형태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성실하고, 사랑한다. 서로를 감싸 안는다. 


물론,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일 터다. 힘겨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 가족간의 사랑. 이것은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인물들의 선함이, 그 사랑이, 그 인내와 성실함이 결국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글을 읽으며 영수와 순희, 그리고 전일의 삶을 응원했건만, 개연성은 거세되고 허구만 남은 것 같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결혼생활을 15년째 이어가는 인간이기에, 공감의 결이 맞지 않는 것인가. 


아아, 대문자 T는 괴롭다. 



4. 쓸데없는 첨언 - 제목, 그리고 표지

 

이건, 사족이다. 

책을 들고 자연스럽게 표지를 요목조목 뜯어보았다. 표지의 단란한 가족. 영수와 순이, 그리고 전일일 게다. 노을지는 해변가에서 석양을 바라본는 그들의 뒷모습. 


저 멀리 바다 끝 위로 선박이 남기고 간 빛살은 살랑살랑 일렁이고, 주황빛으로 스러지는 노을빛은 하얗게 알갱이로 부딪쳤다. 내일을 약속하며 잔잔한 수평선에 성호를 그었고, 그 위에 솟은 밤별들은 영수 가족의 온기를 시기할 것처럼 시퍼런 빛의 날을 세웠다. 파도 소리는 자장가처럼 잔잔하게 울렸고 그들 주위에 떠도는 괭이갈매기는 '끼룩끼룩' 쪼아대고 있었다. 

- p.287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이 왜 '마지막 노을빛의 약속'일까? 다시 책을 펼친다. 마지막 장면을 되짚어 보니 영수네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주황빛으로 스러지는 노을빛은 내일을 약속하며 수평선에 성호를 그었고, 그 위에는 밤별이 떴다. 아, 그래서 '노을빛의 약속'인가? 그런데 왜 '마지막'이라는 단서가 붙었을까? (다시 한번 T는 괴로워진다. ) 분명 노을빛도, 밤별도, 파도도, 괭이갈매기도, 그 모두가 영수네 가족을 응원하고 있는데, 대체 '마지막'이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가 무엇인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 표지를 살펴본다. 


표지의 전일이가 너무 어리다. 소설 속 전일이는 분명 쌀가마를 짊어질 정도의 커다란 아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까지 했는데, 표지의 전일이는 그냥 '어린이'다. 갑자기 표지가 마음에 안 들어진다. 이런 생각도 소설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니, 표지 디자이너가 속상해 하지 않기를. 


원래 축구를 관전하며 훈수를 두는 것보다 축구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뛰는 것이 수백 배 힘든 법이다. 책을 읽었으니 감상을 남기기는 한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한다면 -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 나는 자신 없다. 돈을 줄테니 글을 쓰라고 한다고 해도 머리만 부여잡고 괴로워하며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은 어디로든 도망칠 궁리를 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을 존경한다. 윗글은 그저 내 생각일 뿐, 반박 시 당신 말이 다 옳음을 인정한다. 











k***2 2025.11.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