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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학의 경전을 배우면서 대학과 중용을 논어, 맹자와 더불어 4서(四書)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 맹자와는 달리 선뜻 손을 대기가 힘들다. 논어, 맹자가 인간의 삶에 대한 일상적인 실천에 관한 것이라면, 대학과 중용은 아마 유학의 이론을 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리학이 새로운 유학으로 자리잡아 갈수 있도록 한 사람은 주희이다. 주희의 사상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원나라 때에 이르러 그가 쓴 사상서와 경전들에 대한 해석서가 관학으로 채택되면서 유학의 지배사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5백년을 둘러보아도 주희의 성리학이 얼마나 큰 힘을 떨쳤는지 우리는 익히 알 수가 있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한무제때 편찬된 [예기]에 수록되어 있었으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당시대 불교와 도교가 흥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유학이 도교나 불교를 비판하는 준거로써 이들 책의 내용이 제시되기 시작하면서 사상서로써 부각되었다. 편찬시기는 진나라 말에서 한나라 초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며, 편찬자에 대해서는 대학은 증자가 저술한 것이고,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것 이라고 주희는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의 성인에서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도통을 강조하는 도통론의 입장에서 주장한 것이라고 한다. 주희는 이를 해석하여 [대학장구]와 [중용장구]를 지었고, 이때에 이르러 대학과 중용이 4대 경전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대학과 중용은 주희가 해석을 한 [대학장구]와 [중용장구]라고 한다. 주희는 대학을 대인지학이라고 하였다. 15세가 넘는(大人) 왕의 아들이나,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 배우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 대학에 들어가기 이전에도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8세가 되면 배울 수 있는 소학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주희는 대학을 그가 해석한 [대학장구]에서 삼강령(三綱領)과 그 실천조목인 팔조목(八條目)으로 분류하여 경1장, 전10장으로 새롭게 구성하였다. 경1장은 공자의 말을 증자가 서술한 것으로 전10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전10장은 경1장에서 공자가 말한 내용을 증자가 그의 제자들에게 풀어서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학의 기본내용은 삼강령과 팔조목에 모두 나타나 있다고 한다. 삼강령이란 밝은 덕을 밝힌다는 명명덕(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신민(新民), 그리고 지극한 선에 머문다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말한다. 팔조목은 삼강령을 이루기 위해서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앎을 확장하고(致知), 의지를 성실히 하며(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그리고 몸을 닦고(修身),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平天下)는 실천방법을 말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출처가 대학임을 알고, 그것이 사대부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도(道)에 이르는 방법임을 알게 된다. 중용은 동양의 윤리문화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할 수가 있다. 중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치우치거나 기댐이 없고,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본분에 의거하여 괴이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중용은 성인이 전해준 유학의 도(道)의 내용을 다룬 저술로 볼 수 있다. 또한 중용의 구성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으나, 주희는 전체를 33장으로 나누었고, 이는 대체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중용의 전체적인 내용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道)에 대한 것이다. 도에는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가 있고,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도는 다섯가지가 있으며(五倫), 이를 행하는 방법으로 지혜, 인자함, 용맹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혜로움에 가깝고(好學近平知), 힘써 행하는 것은 인자함에 가까우며(力行近平仁),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맹함에 가깝다(知恥近平勇)고 하여, 이것을 삼달덕(三達德)이라 하고, 도에 들어가는 문으로 보았다. 특히 중용에서 강조하는 것은 성실(誠)이다.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이지만, 성실히 하는(誠之)것은 사람의 도라고 말한다. 삼달덕은 오직 성실히 하는 것으로써 이룰 수가 있으며, 이 세가지를 제대로 알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유학의 경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조선중기 성리학이 조선후기로 가면서 일상생활과는 유리되고, 너무 이론에만 치우쳐 일반 백성들의 생활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도통을 강조한 나머지, 양명학이나 실학과 같은 현실적인 학문과도 유리된 점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는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지, 유학의 경전 내용이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것은 그 고전을 통하여 오래된 미래를 만나려 하는 것이다. 유학 경전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만나고, 또 나를 수양하는 법을 만난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
|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글이었다. 이 글들이 독립된 책일뿐 아니라 유학의 중심된 역할을 하는 사서로 자리를 잡은 것은 자신의 시대를 위한 하나의 체계를 마련코자 했던 주희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근거했으나 도교와 불교 그리고 당시의 다른 유교의 해석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확립된 모습인 것이다. 대학의 주축은 나라를 세우는 뿌리를 위해 군주의 마음이 어떻게 향해져 있어야 함을 보여주며 중용은 이런 심적 체계의 근본을 밝혀 유학을 종교적 근거(天命=性)를 갖는데까지 이끌고 간다. 이제 논어의 담백한 삶의 지혜는 하나의 국가체계와 깊은 심적 수양과 종교적 측면을 지니게 된다. 물론 예기에 이런 부분이 들어있었음에야 원래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이제 옛글의 한부분이 중국의 남송 시대가 필요로 하는 체계를 위해 강조되어지고 체계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시대를 위한 원리들을 끄집어내고 다듬어내는 주희의 [대학장구],[중용장구]을 통해 비로소 공자의 정신은 현재의 부딪침 속에서 해석되고 당시의 삶살이를 윤택하게 하는 이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이 책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정약용이 [대학공의]를 통해 조선후기의 입장에서 다시 대학을 돌아보아 나라를 공론과 싸움에서 건지길 원했던 것처럼 어떻게 밝은 덕을 밝히고, 나라를 선 안에 머무르게 할 수 있으며, 마음은 치우치지 않아 자연스레 옳음의 길로 가게 하는 세상이 되게 할 것인가? 지난 오백년의 우리의 실험은 이미 충분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조선은 성리학의 실패였을 뿐일까? 주희의 관점을 헤치고 들어가 우리 시대를 위한 공자를 읽어내기에는 여전히 내 마음은 지극함이 부족하고, 머리만 분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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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주희
논어와 맹자를 읽었으니 이제는 《대학·중용》을 읽는 게 순서!
《논어》와 《맹자》가 주로 구체적인 대화나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대학》과 《중용》은 유학의 도덕과 형이상학에 대한 이론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과 《중용》이 《논어》나 《맹자》에 비해서 이론적인 측면을 많이 다룬 것이라고는 하지만 유학에서는 이론과 실천이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실천과 분리된 이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 22p <유교윤리의 입문서, 《대학》·《중용》
앞에 읽은 논어와 맹자 덕분에 《대학·중용》을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슬기바다 시리즈를 차곡차곡 읽어나갈 생각이다 ^ㅡ^ 좋은 동양 고전이 참 많다!
머무를 곳을 알고 난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있고, 일정한 방향이 있고 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질 수 있고, 평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
- 60p <경1장>
무엇이든 시작은 방향을 잡는 것이고,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어디를 갈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결국 도착하게 되지 않을까?
즉 사람들은 자신이 친근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대상에 빠져들고, 멸시하고 싫어하는 대상에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며, 두려워하고 공격하는 대상에 지나치게 치우치고,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대상에 지나치게 마음을 쏟으며, 오만하고 나태한 것에 대하여 치우친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에서 그것의 나쁜 점을 알고, 싫어하는 것에서 그것의 좋은 점을 파악하는 사람은 천하에 매우 드물다.
- 89p <전 8장>
마음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것의 나쁜 점을 알고, 싫어하는 것의 좋은 점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내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음식과 독서에도 편식이 있는 것 처럼 마음에도 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쳐 마음까지 미련하게 편식하지 않을 생각이다. 좋고 싫은 것들의 기준은 정확히 하되, 고집부리거나 마음을 맹신하진 않을 생각이다.
기쁨, 화남, 슬픔, 즐거움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고 한다. 이러한 감정들이 일어나 모두 절도에 맞는 상태에 이른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이란 천하 모든 것의 가장 큰 근본이며 화란 천하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도이다.
- 118p <제1장 공자가 전해 준 요체를 자사가 서술하였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한다. 가장 평화롭지만 가장 건조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기쁨, 화남, 슬픔, 즐거움이란 감정들을 글로 적어 넣으니 성인의 말씀이 지겨운 잔소리가 아닌 아름다운 문장으로 느껴졌다.
모든 감정이 절도에 맞는 상태에 이른 것을 화라고 한다. 내 마음은 늘 변덕스럽고 불만이 많아서 절도에 맞는 상태에는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 같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혜로움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자함에 가까우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맹함에 가깝다."
- 176p <제20장 성실함에 관하여>
이 구절을 페이스북에 올려 놨더니 '좋아요'가 엄청 달려서 뿌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용맹함에 가깝다는 부분, '용맹'이란 단어에 특히 마음이 간다. 늘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행하며,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공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리석으면서도 자신이 등용되는 것을 좋아하고, 지위가 낮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며, 현재를 살아가면서 예전의 도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재앙이 자신의 몸에 미칠 것이다."
- 207p <제28장 사람의 도에 관하여 4>
실력도 없이 감투에 집착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바보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다. '사람의 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반성하게 하고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배움을 실천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깨우치고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는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다. 특히 고전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반성하게 된다. 나는 논어와 대학·중용 보다는 맹자가 더 좋다 ^ㅡ^
대학·중용도 좋은 말씀이 많았지만, 맹자보다는 '내 상황'과 덜 맞아 떨어졌다고 할까. 소학을 깨우친 선비들이 어떤 마음으로 대학을 읽었을까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즐거운 동양고전 읽기! 끝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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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삼경, 즉 '대학, 논어, 맹자, 중용(여기까지 '사서'), 시경, 서경, 주역(여기까지 '삼경')'에 해당하는 '대학, 중용'을 읽게 되었다. 이런 고서를 비교적 좋아하는지라 세세하게 읽어보았는데, 역시 한 번 읽고 반납하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매 도서 목록 같은 걸 만들어야 하려나...) 공자, 맹자 등 유명한 사상가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써 놓은 '대학, 중용'은 주희라는 사람이 도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유명하신 분들의 말씀을 한 데 모아 써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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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간됨을 가르쳐 주는 책, 군자의 군자됨을 요구하는 책!
사람으로 태어나서 학문을 하고 일상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목적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로 노력해야 하고 자신이 정말로 애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시간을 허비한 채 필요없는 논쟁으로 삶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그래서 주희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사람으로서 깨달아야하고 군자로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을 책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학과 중용입니다. 주희는 또 '중용'에서 '중'은 치우치거나 기댐이 없으며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이고 '용'은 평상의 의미로서 본분에 의거하여 괴이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용의 첫 구절인 '하늘이 만물에게 부여해 준 것은 본성이며 성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도이며 도를 닦는 것은 가르침이다."를 곱씹어보면 중용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내용을 살펴보면 '논어'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라와 사회를 선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개인의 수양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경1장 4에서도 "예전에 온 세상에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집안을 반듯하게 하였다. 자신의 집안을 반듯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닦았다. 자신의 몸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았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였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앎을 극한까지 확충시켰다. 그와 같은 앎의 확충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즉 대의를 꿈꾸는 사람이야말고 자신을 잘 가꾸며 앎을 확충시켜 나가기 위해 사물을 탐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죠. 동양 고전에서 또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논어에서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대학 중용'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전10장 2에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아랫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윗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그리고 자신이 뒷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앞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뒷사람에게 먼저 하도록 시키지 말며 자신이 앞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뒷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라. 또 자신이 왼쪽에 있을 때 오른쪽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며 자신이 오른쪽에 있을 때 왼쪽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라. 이것이 '자신의 마음으로 미루어 헤아려 보는 도'의 의미이다.' 참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군신의 관계 속에서 항상 겸손과 덕양의 모습을 요구하는 동양철학사상의 핵심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분야에 최고가 되든, 경영하는 분야에 최고가 되든, 유명한 소설가가 되든 영향력있는 누군가가 된다면 꼭 지켜 해야할 일들이 적혀 있는 '대학 중용'을 읽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가지 선을 등한시했던 여러가지 핑계를 뒤로하고 책에서 말한 덕목들을 실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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