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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만큼이나 선명한 ...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만큼이나 선명한 ..." 내용보기
기독교 안에 수많은 변증서들의 존재론, 우주론, 목적론 등의 변증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했다. 또 많은 경우 기독교에 대해서 ‘체험’을 변증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수많은 기독교 변증의 경우 전자는 차가운 이성이 신으로 나가게 되고 후자의 경우 지극히 개인적인 신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날에도 이런 새로운 방식과 접근으로서 불신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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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에 수많은 변증서들의 존재론, 우주론, 목적론 등의 변증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했다. 또 많은 경우 기독교에 대해서 ‘체험’을 변증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수많은 기독교 변증의 경우 전자는 차가운 이성이 신으로 나가게 되고 후자의 경우 지극히 개인적인 신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날에도 이런 새로운 방식과 접근으로서 불신자를 향한 신존재 증명은 요구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논리와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 책은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 비견할만한 불신자를 향한 변증서다. 엄밀하게 말하면 앞부분의 논리는 순전한 기독교보다 현대 사회에 더 적절하다. 순전한 기독교가 서구의 이성 만능 주의 사회 속에서 나온 이성과 인간 내면의 도덕률을 통한 기독교 변증이었다면 이 책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신비, 영성 등과 같은 용어로 사용되는 인간 내면의 표출되고자 하는 ‘종교성’을 통한 기독교의 신에 대한 변증서이다. 둘 다 인간 내면에 있는 어떤 소리에 대해서 풀어가는 과정을 엄밀하게 탐구해 가고 있고 그 결론점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발견해 낸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의 탁월한 논리와 감성으로 이 보편적인 종교성에서 하나님을 찾아간다. 우리 안에는 ‘목마름’이 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는 그런 근원적인 ‘목마름’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마름은 그런 목마름을 채워줄 존재가 있다는 논리로 갈 수는 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목마름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토록 한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마름이 필요한 존재라면, 그 목마름이 있다는 것이 그 목마름을 채울 무엇이 실재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자연적 표지’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옳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논리를 전개해 나갈 때 감동과 짜릿함...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기독교 변증의 한 장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이 있다. 그리고 .... 설득력이 있다. ‘목마름’이라는 것에서 시작한 책은 그 목마름을 통해서 발견되어진 그 목마름을 채워줄 존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되고, 그 존재는 우리의 이 깊은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심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분 안에서 무엇도 해갈시킬 수 없었던, 그 집요한 갈증이 해결된다. 책의 논리와 함께 내 안에 이미 있는 그분의 향기가 느껴진다. 난 그분이 이미 나의 갈증을 해결하셨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오늘을 사는 행복감에 젖는다. 신학자들과 신앙의 선진들, 철학자들 그리고 인간이라면(진지하게 한번이라도 인생을 고민해 본 인간) 해봤을만한 보편적 생각들이 저자의 글쓰기 아래 모여서 잔잔하게 흐러간다. 그리고 그 흐르는 논리 속에서 기다리는 분, 영원한 생수, 마르지 않는 강, 인간 속 깊은 곳에 그분 아니면 누구도 무엇도 채울 수 없는 영영한 단서인 ‘영적 갈망’을 심어 놓으신 분을 만난다. 그리고 그분에게 날 의탁한다. 한없는 행복감 속에서 .... 신자와 비신자 모두 ... 인생의 목마름에 대해서 생각할만한 모든 이에게 ... 이 책은 기대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 줄 것이다. 책의 주제를 넘어서서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글의 색깔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 같아 부연한다. 어느 날엔가 부터 저자의 글은 전혀 달라졌다. 몇 해 전 “복음주의와 기도교적 지성”과 “회의에서 확신으로”에서 만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탁월한 신학자이고, 정확한 개념과 논리를 사용하는 기독교 지성인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은혜롭거나 쉽게 이해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논의 과정을 좇기 위해서는 치열한 사고의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평신도나 불신자가 읽기에는 부담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년 전쯤 읽게 된 책 “내 평생에 가는 길”부터는 다른 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을 쓰고 있다. 이 책 “목마른 내 영혼”역시 그러한 이전과는 다른 책 중 한 권이다. 삶이 느껴지고, 고심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신비가 포함되어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논리, 감성이 묻어나는 논리다. 책을 읽는 내내 단숨에 읽혀지는 그의 논리도 좋았지만, 책과 책의 여백과 그 여백을 통해서 생각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감성도 좋았다. 두 가지 전기와 후기로 나눠서 그의 글을 비교해 보며 읽는 것도 즐거운 책 읽기가 될 것이다.
l******s 2005.04.22. 신고 공감 6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인생이 꿈이 되는 순간
"인생이 꿈이 되는 순간" 내용보기
일류 대학, 좋은 직장, 넓은 집과 멋진 자동차, 권력, 열정적 사랑...모두가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망가지고 불행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기를 원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 뭘까?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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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대학, 좋은 직장, 넓은 집과 멋진 자동차, 권력, 열정적 사랑...모두가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망가지고 불행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기를 원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 뭘까?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목표도 없이 살아야 하는가? 뭔가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 인생 자체가 헛된 것인가? 성경에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게 말한 성경 저자는 부와 지혜와 명예와 권력을 겸비한 솔로몬 왕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보니 인간의 그 모든 수고와 노력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탄식한다. 그렇게 인생이 공허함을 느낄 때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이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기독교 서적이다. 그러나, 저자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적 답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허전함과 갈망에 대해 저자가 알고 있는 최고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제목이 아쉽다. 제목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띄어버리니까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이 못 읽을 것 같다.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며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눈에 띄면 좋으련만 '목마른 내 영혼'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분명 그들은, 이 책은 '기독교인이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현대인은 맹목적으로 신을 믿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환경에 처해 있다. 인간은 원자를 쪼개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체세포를 통해서 생명을 복제하는 첨단 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수많은 철학 사상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은 자본주의를 통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시켰고 부를 재분배해서 모두가 같이 잘 살려는 정치적인 노력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심리학으로 해부되고 있고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려면 스스로가 알고 있는 현실과 느낌에 근본적인 모순이 되지 않는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이나 철학, 정치, 심리학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그것들이 우리의 허한 공간을 채워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최첨단의 과학 시대에 경제적 여유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공허함을 느끼기 쉬운 사람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의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무언가 진지한 주제로 생각을 돌린다." 배가 부를 때 목적을 성취했을 때 정상에 올랐을 때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더 큰 빈방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왜 인간의 내부에 이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 곳은 바로 인간을 창조한 신이 스스로가 거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다. 저자가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스스로가 그 공간을 인식했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대답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공감하겠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로 생각할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도 처음에는 헛소리라고 생각했고 다른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그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런 책들을 통해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이 진리 안에 거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다. 이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은 꿈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꿈이 되어야만 하고 또 꿈이 될 것이다 (노발리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이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혹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인/생/이/ 꿈/이/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인생은 제 1의 현실에서 제 2의 현실로 밀려난다. 마치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꿈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주 마음이 편안해진다. 꿈에서 설사 내가 죽더라도 나는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나는 꿈을 즐기기 시작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은 결코 죽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아마도 그 시작의 순간은 바로 인생이 편안하고 행복한 꿈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공허함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는 이 책을 읽고 허무함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혹은 기독교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부끄럽고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차갑고 너저분하고 우스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인생이 달콤하고 행복한 꿈이 되는 순간'을 맛보기를 희망한다.
d****l 2005.05.19.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