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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소개를 하지 않더라고 중남미 작가 중에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보르헤스 전집"도 출간돼 있어 그를 만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마르케스의 단편들을 모은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재미나게 읽었으면서도 보르헤스 전집은 다음에, 하는 식으로 미뤄왔다. 몇몇 작품을 접했었지만 보르헤스 보다는 마르케스가 더 와 닿았던 것은 사실이다.
<기억의 왕="" 푸네스="">가 실린 책은 중남미 대표소설 모음집인 <붐 boom="">이다. 보르헤스 외에도 실비나 오캄포, 카를로스 푸엔테스, 환 룰포, 이사벨 아옌데, 마르케스 등의 쟁쟁한 작가 12명의 단편이 실려있다. 옮긴이 송병선이 쓴 작품해설이 무척이나 유용하다. 영미문학이나 프랑스 소설에 익숙해있어 다소 생소하게 여겨졌던 중남미 현대소설에 대한 관심의 물꼬를 트기에 충분할 정도로 전반적인 흐름을 상세히 제시했으며, 무엇보다 애정을 가지고 애쓴 흔적이 보여 무척이나 고맙다. 12편중에 첫 번째로 실려있는 <기억의 왕="" 푸네스="">는 앞서 인용한대로 보르헤스의 자전적 요소가 짙다. <칼날과 사랑="">의 김인숙이 "모든 소설은 다 자전소설이다"라고 못을 박듯이 또렷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항상 시계처럼 시간을 알고 있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레네오 푸네스라는 소년은 말에서 떨어져 전신 마비 증상을 일으키면서 "이 세상이 생긴 이래 모든 인간이 가졌을지 모르는 기억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 혼자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거의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게 된다. 동틀 무렵 남쪽 하늘의 구름 모양을 알고 있었으며, 강에서 어떤 노가 일으킨 물거품의 모양과 기억 속의 구름을 비교할 수도 있었고, 각 산에 있는 각각의 나무들 나뭇잎 하나 하나를 특별한 존재로서 기억했다. 촛불을 켜지 않은 채 정체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그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순간적이자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지켜보는 단 하나의 외롭고도 뛰어난 관객이었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은 자신이 치료한 환자는 모두다 기억을 한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고도 도무지 기억에 없어 충격이었노라고 반 고백 투로 말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않는다"와 "못한다"는 분명 다른 의미인데 내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특별한 무엇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사소한 것도 특별한 것일 수 있다.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자 몇 년 전에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옷차림, 왼손에 들고 있던 오톨도톨한 까만색 가방, 선배는 곱슬머리인 친구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에서 세 번째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자판기 커피를 막 뽑아들고 한 모금 마시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이 아래로 향해있어 그네들의 흙 묻은 남색 운동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이런 식으로 어쩌면 별 필요도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것들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기억하기에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산다고 때로는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필요가 있고 없고를 과연 무엇으로 판가름해야 옳을지가 정작 내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불면과 기억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어릴 적 잠이 안 와 고생한 적이 있는가? 기억이 쌓여가면서 그것들을 일일이 꺼내서 되씹고, 소화하고, 다시 되새김질하느라고 수많은 불면의 밤과 맞닥뜨리게된다. 삶이 계속되는 감정의 동요인 이상 치러야하는 통과의례이리라. 또한 이외수가 지독한 치통과 맞바꾸고 싶은 것이 불면증이라고 했듯이 불면은 우리에게 던져진 최고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선택한 불면증을 즐기기도 했지만, 이제 그만 쉬고싶다.
다른 작품들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특히 중남미의 조이스라고 불린다는 푸엔테스의 <공주인형>이 아주 좋았으며, 마르케스의 <꿈꾸는 데="" 날="" 빌려줍니다="">도 재미났다. 이번 기회에 두 번째 꺼내 읽으니 기억이 정말 새롭다. 그냥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여백에 새로 그림하나를 그려 넣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보르헤스는 샤르보니에와의 인터뷰에서 <기억의 왕="" 푸네스="">는 '불면의 은유'를 나타내는 자전적인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눈을 감고 가구, 거울, 집들을 상상하는 내 자신을 발견' 하고서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으나 이 모든 노력은 불쌍한 푸네스처럼 실패한다. 보르헤스는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요법의 하나로 이 불면증과 투쟁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주석8번) -그에게 잠을 자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기억의>꿈꾸는>공주인형>칼날과>기억의>붐>기억의>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