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죽음" 내용보기
<예스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늦은 봄, 큰삼촌이 돌아가셨다. 병문안을 다녀간지 삼일째 되던 날, 엄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았고 이미 큰삼촌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몇 시간의 사투끝에 토를 하시고 깊은 호흡을 몇 번 하시더니 그렇게 돌아가셨다. 몇 차례 간호사들이 다녀가긴 했지만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리러 올
"이반 일리치의 죽음" 내용보기

<예스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늦은 봄, 큰삼촌이 돌아가셨다. 병문안을 다녀간지 삼일째 되던 날, 엄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았고 이미 큰삼촌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몇 시간의 사투끝에 토를 하시고 깊은 호흡을 몇 번 하시더니 그렇게 돌아가셨다. 몇 차례 간호사들이 다녀가긴 했지만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리러 올 때 한 번 방문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지켜보며 큰삼촌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도했던 그 당시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죽음의 과정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들여다본것은 처음이었는데 죽음의 대상인 이반 일리치의 입장이 되어보니 큰삼촌이 돌아가시 던 날이 또렷이 생각나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돌아가시던 날, 큰삼촌이 위독하다는 소리에 병원을 찾았던 언니는 미리 예약해 둔 가족여행을 다녀오느라 발인날 화장장에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면서. 이반 일리치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가족과 지인들은 보상금과 인사이동 등을 염두에 두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다. 나의 죽음은 타인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다. 


책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다 죽음의 당사자인 이반 일리치의 입장이 되어 그가 살아온 나날들과 죽기 직전의 모습까지 그의 생애 전부를 담는다. 잔인하다. 마치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처럼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급기야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가족들에게 화가 나는 이유를 알 것 도 같았다.


타인의 죽음은 '남의 일' 뿐이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이반 일리치 주변인들의 모습에 그날 가족과 친인척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화장을 하고 작은 유골함에 담겨 납골당에 안치된 큰삼촌의 모습. 한 사람의 우주가 그렇게 끝이났다. 돌아가시기 사흘전 평소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시던 큰삼촌에게 자전거 얘기를 꺼냈는데 한 달 이상의 입원으로 허벅지가 팔뚝만해진 큰삼촌의 눈빛이 그렇게 반짝일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날 오전에 호흡이 가빠 힘들다며 수첩에 잔뜩 남겨놓으신 말씀, 숨을 쉴 수 없는 그 고통의 무게가 나에게 오롯이 전달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큰삼촌은 돌아가시기 전 핸드폰의 모든 것을 정리해놓으셨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러시아의 평균기대수명이 40세에 불과했다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어쩌면 지금 현대사회에서 여겨지는 이른 죽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과 죽음의 대상이 된 사람의 감정선은 지금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큰삼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본 것 처럼 이반 일리치의 삶과 죽음의 과정은 나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었다.   

p.26 마치 죽음이란 것이 자신과는 무관하고 오직 이반 일리치만이 겪는 모험이라도 된다는 투였다.

p.68 의사의 말을 바탕으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하지만 의사를 비롯해 다른 모든 이들에게 그건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크나큰 충격과 상처, 그 자신에 대한 깊은 동정심에 휩싸였다. 이 중대한 문제에 저토록 무심한 의사에게 한없는 적대감을 느꼈다. 

p.94 더 이상은 판사 업무도 숨기고 싶은 일을 숨겨주지 못하고, 판사 업무를 도피처로 삼아 죽음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더 큰 문제는 죽음이 자꾸만 그를 끌어당긴다는 데 있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바라보도록, 눈을 똑바로 뜨고 대면하도록 하게끔 말이다.

'나도 여러 차례 영원한 이별을 했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면 한동안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루하루에 휘말려 죽음을 잊고 만다. '남의 일'로 여기고 만다.'는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역자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논리학에서 나오는 3단논법은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 아닌 지금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명제이다. 이반 일리치도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단지 '카이사르'와 '이반 일리치'만의 문제일뿐이다. 하지만 이윽고 나에게도 죽음이 닥쳐올때 이 명제와 이 소설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때 이반 일리치가 느낀 공포와 두려움, 분노와 해탈의 과정을 곧이 곧대로 겪게 될 테다. 

그때 이 문장이 생각날 것 같다.

'죽음이 끝났군. 이제 죽음은 없어.'


#리뷰어클럽리뷰
이달의 사락 m****d 2025.12.0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본 적이 있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이반 일리치는 전형적인 행정 관료로 옆구리를 다친 이후 그 병증이 악화되어 죽게 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가 죽기 전과 죽은 후를 모두 보여준다. 이반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본 적이 있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전형적인 행정 관료로 옆구리를 다친 이후 그 병증이 악화되어 죽게 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가 죽기 전과 죽은 후를 모두 보여준다. 이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에 별 생각을 갖지 않는다. 본인들에게 돌아올 이해타산을 계산할 뿐이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죽은 후에 그런 모습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의 아내는 어떻게든 나라에서 주는 돈을 더 받으려고 하고, 그의 친우는 이따 할 카드게임 생각 뿐이다. 그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외롭게 죽는다. 그나마 그에게 도움이 된 사람은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 게라심 뿐이다. 죽음을 타자화 했던 사람일지라도 죽음 직전에는 그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듯이, 이반 또한 그랬다.


"어린 시절에서 떨어져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기쁜 기억은 더더욱 무의미하고 의문스러워졌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지? 무엇 때문에?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삶이 이토록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이란 말인가? 정말로 삶이 그렇다면 왜 죽어야 하는 거지?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뭔가 잘못된 거야."


사실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딱히 없다. 내게 죽음은 아직 멀리 있는 것, 막연하게 두려운 것이었다. 읽고 난 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구나. 이 지독하고 기나긴 삶을 살아내면 남은 건 죽음 뿐이구나. 죽음에 다다른 순간에 삶을 돌아보면 내 삶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보일까. 어쩌면 죽음에 오면 그 모든 것은 소용없어지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삶을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은 건,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서. 끝에서 생을 돌아봤을 때, 그게 눈부시지 않더라도 살고 싶다.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살아있고만 싶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이 소중해진다. 죽음이 무엇인지 사유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y 2025.12.07.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