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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양자역학’의 원제는 ‘Tibetan Buddhism and Modern Physics’이다. 그런데 번역본의 제목을 ‘불교와 양자역학’으로 설정한 것은 원제가 말하는 불교가 티베트 불교에 한하지 않은 보편 불교이고 현대물리학은 양자역학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천문학자인 저자 빅 맨스필드(Vic Mansfield: 1941 - 2008)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물리학적 이론들로 불교의 진리를 입증하려면 그 철학적 위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자신의 목록에 포함된 위치가 없는 양자(量子)나 양자역학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비인과적 과정 등이 중관사상(中觀思想)의 공관(空觀)과 세부적으로 현저하게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관사상(불교)이란 붓다께서 과도한 고행주의와 안일한 세속생활의 양극단과, 형이상학적으로는 극단적인 존재의 긍정이나 존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을 거부했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중도(中道)를 지향하는 사상이다.(일지 스님 지음 ‘중관불교와 유식불교’ 24 페이지) 공(空)은 독립적 또는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저자에 의하면 수학 및 객관화를 강조하는 과학과 비이원적이고 비개념적 체험에 근거하는 불교는 뚜렷하게 대비된다.(42 페이지) 충분히 예상된 바이지만 저자는 유물론적,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우리를 무의미하고 맹목적인 우주로 인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49 페이지) 또한 불교가 내면의 주관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괴로움을 없애려면 객관세계의 참된 본성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50 페이지) 불교와 과학이 객관적인 현상에 대한 견해에서 불가피하게 충돌하는 영역이 있어서 상보성(相補性)이 간단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51 페이지)도 저자에게서 나왔다.(상보성이란 불확정성 원리에서 나온 것과 같이 한 쌍의 양(量)에서 한쪽을 정확히 측정하면 다른 쪽은 부정확해지는 관계를 말한다.(뉴턴 코리아 출간 ‘과학용어사전’ 참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등이 상보성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저자는 분노(憤怒)를 과학과 불교가 함께 토론하기에 쉬운 주제로 정의하는 한편 불교의 비개념적 앎 즉 개인에 대한 앎이 과학과 불교의 대화를 매우 어렵게 한다고 덧붙인다.(59 페이지) 저자는 독자적인 자기동일성이나 자성(自性)이 없는 연속성을 중관사상이나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로 규정한다.(73 페이지) 저자의 독특성은 공(空)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눈다는 데에 있다. 저자에 의하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독립적이거나 본래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공의 부정적 측면이라면 현상들은 오직 그들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는 것이 공의 긍정적 측면이다.(74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보이는 엄청난 다양성과 상이점이 독자적 정체성이나 자아가 없는 분별 불가능한 입자라는 존재의 바다에서 생긴다는 생각은 놀라운 일이다.(75 페이지) 이로부터 저자는 우리의 극히 차별적 본성, 모습, 심리 상태와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구하는 점에서의 무차별성이라는 역설을 강조한다. 저자는 아이러니한 진실 즉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우리의 자기사랑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79 페이지) 저자는 ‘에고’와 ‘에고에 부수된 신체’를 동일시하는 것, 아집, 에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자기 애착이나 자기 본위를 낳는다고 주장한다.(81 페이지) 저자는 물질들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특성들이 양자 무차별성에서 나타나듯 진정한 보리심은 우리의 무차별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전한다.(87 페이지) 3장 중관사상의 공에 대한 개설에서 저자는 양자역학의 가장 심오하고 놀라운 특징인 비국소성(非局所性) 이론을 소개한다. 비국소성이란 일정 시간과 공간의 영역 안에 어떤 시스템을 국한시키는 일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151 페이지) 물체들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된 영역에 국한될 수 없으며 그들이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맺는 관계가 그들의 고립된 현존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론인 비국소성에는 물체들이 특정 시공간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비국소성이라)는 의미가 담겼다.(100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본래적이거나 독립적인 존재를 너무 넓게 한정하면 허무주의가 되고, 너무 좁게 한정하면 실재론으로 귀착한다고 말한다.(105 페이지) 중관사상은 그 두 사상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대상들과 주관들은 본래적 존재의 공(空)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자족적 본질을 결여하며 본질적 자성(本質的 自性: self - nature)을 갖지 않기에 그들을 제한하는 무한한 관계들의 그물망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고 발전하므로 무상(無常) 즉 공(空)이라 말한다. 또한 연기(緣起)는 공의 동의어로서 저자에 의하면 “공과 연기는 양면에서 무상이 퍼져 나가는 한 손의 앞뒷면과 같다.”(115 페이지) 독립적 존재의 투사(投射: 독립적이라는 의식을 대상이나 세계에 부여하는 것)에 의해 생성된 거짓 기반과 영원히 즐기는 자로서의 자아를 지탱하려는 우리의 끊임 없는 노력은 우리의 이기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기반이 된다.(126 페이지) 자아를 영원하고 독립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감옥에 갇힌 우리는 자기 생각에 빠져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염려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의 실상을 적확하게 깨닫게 한다. 저자는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탈옥)은 많은 노력, 도덕 재교육, 명상과 같은 평생의 공부를 필요로 할 것이라 말한다.(129 페이지) 저자는 과학에 의해 크게 지배받는 오늘날 중관사상은 현대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36 페이지) 저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보적 속성들의 짝” 가운데 잘 알려진 파동과 입자 사이의 상보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이끌어간다. 저자는 비국소성은 물체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전적으로 교정하여 자연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투사(의존적이고 상호관계적인 존재 양태와 다른 독립적이고 자족적이라는 의식을 대상에 부여하는 것: 115 페이지)를 제거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전제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물체들을 명확한 시간 - 공간의 영역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실제로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17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중관사상의 공이 양자 비국소성보다 더 포괄적인 원리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이거나 본래적인 존재에 대한 중관사상의 부정은 양자 비국소성을 확립한 물리학의 논법과 매우 유사하다.(175 페이지) 저자는 빛보다 빠른 상호 연결들은 광속보다 빨리 정보를 보내는 데 사용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양자역학의 통계상의 본성 때문이다.(177 페이지) 저자는 만일 내가 진실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실상이 다른 생명과 나의 환경에 상호의존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바로 나와 관계할 수 있는가? 묻는다.(180 페이지) 저자는 공을 확언하지 않는 부정(否定: 190 페이지)이라 정의하며 그것이 양자 비국소성과 가까운 친구처럼 껴안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과율에 관해서 물리학과 불교가 심각한 불일치를 지닌 친구처럼 보인다는 말을 한다.(191 페이지) 저자는 중관사상이 인과율을 주된 원인(substantial causes; 因)과 보조 조건(cooperative conditions: 緣)으로 분석한다고 말한다.(197 페이지) 저자는 인과율에 대한 중관사상의 해석은 전적으로 모든 원인과 결과가 본래적 존재를 결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202 페이지) 저자는 중관사상의 문제는 만일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없다면(미래로 이어지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핵심이 없다면) 어떻게 어떤 행위로 인해 생기는 업(業)이 미래 즉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가라는 것이라 말한다.(203, 204 페이지)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답을 저자는 제시한다. 각각의 소멸 상태가 찰나에서 찰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의 인과율을 논의하기 위해 빛의 파동 - 입자 이중성을 논한다. 저자에 의하면 양자역학에 대해 해석상의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과 그것의 모든 예측이 광범위하고 정확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207, 208 페이지) 저자는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확률 진폭이 큰 것은 측정을 하면 그 시간과 장소에서 입자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를 표현하는 확률과 객관적인 불확정성을 묘사하는 확률을 구분한다.(223 페이지) 전자는 고전물리학이나 뉴턴 물리학,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 나타나고 후자는 양자역학에 진정으로 새롭고도 중요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양자역학에서 그 이론이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광자가 측정될 확률이 1/3이라면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향후의 측정에서 기대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224 페이지) 양자역학에서는 측정이 실제로 물리적 시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진화하고 있는 확률의 중첩(重疊)으로부터 실제의 시공 속의 사건으로 변화를 야기한다.(226 페이지) 의학의 경우 측정에서 나타나는 확률은 무지의 표현이고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은 자연의 본질적인 불확정성의 표현이다. 양자역학에서 하는 일은, 그 시스템의 세부 사항을 고려해 역학방정식을 풀어 이들 확률 진폭들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능한 실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227, 228 페이지) 확률 진폭의 인과적 진화는 어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실재를 상정하지 않고, 그 시스템의 장치를 통과하는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광자 없이 양자 시스템의 지속성을 설명해준다. 이는 중관사상의 소멸에 의한 인과율의 지속과 놀랄 만큼 유사성을 지닌다.(229 페이지) 저자는 양자역학의 예측의 정확성에는 의심이 없지만 그것이 우리의 물리적 우주관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성가신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231 페이지) 저자는 양자역학의 인과율의 결여가 불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다.(235 페이지) 저자는 인과율에 대한 양자역학과 중관사상의 관점의 차이(중관사상의 인과관은 고전적인 뉴턴 물리학과 잘 맞아떨어진다.: 234 페이지)가 불교의 공의 논증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뇌의 상태와 정신 상태가 상관관계라는 주장이 정신상태를 뇌의 상태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인과관계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님을 주목하라고 말한다.(236, 237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고통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피한 결과로 그 고통은 우리가 이 지구에 적응하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엄격한 다윈주의자에게는 사성제(四聖諦)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242 페이지) 저자의 말 가운데 우리가 살아남은 것이 자연스럽게 고통으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고통은 불가피한 것,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공 즉 독립적 존재의 완전한 결여는 본성상 지속적 변화를 보장한다고 말한다.(28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직접적으로 공을 표현하는 무상은 우주의 법칙이다. 물론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왜 우리는 불가피하게 늙음과 병과 죽음에 굴복해야 하는 것일까? 이론상으로는 공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젊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것도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빅뱅은 급속히 발생했고 우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는 것이다.(280 페이지) 중요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들도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281 페이지) 저자는 불행하게도 저자 거리의 보통 사람들은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이 지닌 의미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더욱 우리의 세계관의 변혁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303 페이지) 그러나 저자는 과학 혁명의 중요성은 그것이 얼마나 폭넓게 이해되었는가와 얼마나 설명하기 어려운가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저자에 의하면 과학 혁명의 중요성은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는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304 페이지) 저자는 중관사상이 강조하듯 공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완전하게 친절을 실천하게 되고 역으로 우리가 공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완전하게 자비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306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자비로운 행동이 틀림 없이 현대물리학에 의해 밝혀진 상호 연결된 우주를 드러낼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랑과 지식의 합일을 이루게 될 것이라 말한다.(311 페이지) 저자가 통합해 설명한 티벳 불교/ 중관불교와 양자역학은 그 자체로 어렵고 비일상적인 분야이다. 저자는 충분히 유효하게 설명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그릇이 충분하지 않아 이해하기도 풀어쓰기도 어려웠다. 더 나은 이해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거듭 되는 암중모색이 두 분야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은 불행일 수도 있고 다행일 수도 있다. 사랑과 지식의 통합을 지향한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이 소득이다. 이렇게 어렵고 긴 우회로를 거쳐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가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회 없이 또는 노고 없이 이해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