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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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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에서 저자는 예배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논하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자체를 예배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주장이라 여겨진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데, 즉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배라는 행위가 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 동시에 그 자체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 내용보기
제2장에서 저자는 예배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논하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자체를 예배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주장이라 여겨진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데, 즉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배라는 행위가 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 동시에 그 자체를 통한 선교적 사명을 수행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예배행위 그 자체는 세상을 향한 섬김과 선교라는 측면보다는 제도적 교회 내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배가 교회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예배학자인 저자는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제3장 예배의 역사적 발전을 다루는 부분과 제6장의 내용 중 종교개혁시기에 개혁가들의 특징을 예배 예전을 중심으로 기술한 면은 내게 신선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개혁의 주요 동인 및 개혁세력의 다양성에 대한 원인을 예배 및 예전에 깊이 근거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학문적인 독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배의 회복과 갱신을 개혁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로 삼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예배가 원초적인 이유가 아니라 결과라고 본다. 또한 현대의 예배복고운동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반드시 예전과 의식이 강조되는 예배가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물론 형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이다. 예배복고 운동의 참 의미도 형식보다는 예배의 전통과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면 예배복고운동을 바람직하다고 한 저자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저자는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제4장에서 예배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은 사실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농촌에서 노인들을 중심으로 단독목회를 하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교육을 거의 못받았을 뿐 아니라 글조차 제대로 모르고, 지적인 능력이나 이해가 절실히 부족한 사람들, 또는 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예배자의 자세가 요구되어진다면 결코 이들은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드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좋으나 상류층의 입장이 아닌 하층 민중의 입장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연구도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집례자에 대한 설명에서 만인사제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을 주장하면서 종교개혁가들의 이론을 재해석하는 형식을 통해 결국은 만인사제론을 거부하고 현재의 성직자들(목사)만 사제로 여기고 있는 듯한데, 이는 예전을 중시하는 예배학의 귀결이 아닐까? 제7장에서 성공회나 루터교의 갈래에 한국의 감리교와 성결교를 근접한 줄기를 가진 교단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들이 장로교나 침례교보다 성찬성례전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볼 때, 예배의 다양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다소 억지이다. 예배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성경에 바탕한 예배를 주장하고 있다. 제8장과 11장의 설교부분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 ‘왜 오직 성경인가?’ 하는 질문을 하고 싶다. 물론 종교개혁의 정신이 ‘오직 성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 안에 갇힌 하나님과 신앙을 향한 개혁의 기치였다면 오늘날에는 오히려 신앙과 신학과 예배가 성경 속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교회의 우위에 선 성경이 모든 성서비평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실제로 우리나라 교회 현실에서 하나님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지는 않은지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서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예배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왜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을 강조하는지, 우리에게 성서란 무엇인지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제 8장에서는 각 예배 순서의 의미와 바른 집례를 설명하고 있다. 현재 예배가 습관화되고 형식적 타성에 따라 드려지고 있어서 예배자들이나 집례자나 그 진행 순서 하나 하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채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 비추어 개인적으로 유익한 내용이었다. 제9장과 10장의 성례전은 저자의 주장과 이해를 같이한다. 현재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세례 및 성찬이 바른 의미를 되찾고 보다 진지하고 엄숙하게 드려졌으면 한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철저히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그 질을 높이는 한가지 방법이 세례교육 및 세례요건의 강화이다. 또한 성찬은 주님의 고난과 공동체라는 측면과 더불어 때로는 애찬식이라 불리는 의미에서의 감사와 축제 분위기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성찬성례전은 지나치게 십자가 신학과 연결되어있는 듯하다. 성물도 애찬의 의미로 사용할 때는 큰 덩이에, 가득한 잔으로 나누면 좋겠다. 다만 주님의 살과 피를 합당치 못하게 먹고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일련의 준비들이 세례를 비롯한 각 예전과 훈련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11장은 저자의 이전 저서인 [설교학 개론]과 동일하게 중복되어있다.

제12장의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른 설교나 예전의 집례는 저자의 주장처럼 강조되어야 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친 형식화로 치우칠 염려가 있으므로 늘 그 정신의 강조와 의미의 되새김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서는 예배의 의미 및 내용과 역사를 균형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개론서의 수준으로는 상당히 자세하고도 실제적으로 기술하였다. 예배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최근 예배복고운동의 경향과 더불어 크게 발전하여 온 결과이겠지만 그 연장선에서 말씀과 성례전의 균형있는 발전을 강조하고 예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있음이 눈에 띈다. 위의 소감 및 생각과 더불어 몇가지 아쉬운 점은 개론서의 한계성을 갖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기독교 예배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이다. 개신교만으로도 선교 100주년이 훨씬 넘는 지금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 소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문제있다’는 지적보다는 구체적으로 오늘의 우리나라 교회 예배현실을 진단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또한 최근(1999년) 개정판인 점을 감안하면 열린예배라든가 새로운 예배의 시도들에 대한 소개 및 평가작업도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예배갱신에 대한 제언도 곁들여야 온전한 예배학 개론서가 되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o***l 2002.01.20.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