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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_ 이이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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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허난설헌 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조선 중기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입니다. 절대 깨지지 않을 조선이라는 견고한 벽 안에서 숨 막힌 삶을 살다간 허난설헌의 안타까운 삶을 따라가다가 그 관심이 허균에게까지 옮겨간 것이지요. 누이와 남동생이 동시에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라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언젠가 허균의 죽음을 다룬 방송을 보고 관심도는 더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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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허난설헌 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조선 중기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입니다. 절대 깨지지 않을 조선이라는 견고한 벽 안에서 숨 막힌 삶을 살다간 허난설헌의 안타까운 삶을 따라가다가 그 관심이 허균에게까지 옮겨간 것이지요. 누이와 남동생이 동시에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라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언젠가 허균의 죽음을 다룬 방송을 보고 관심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역모 죄에 연루된 허균의 사형 집행이 일사천리로 집행되었고 그가 죽기 전 ‘할 말이 있다’고 외쳤다는 기록 때문에 허균의 생애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매의 쓸쓸하고 불행한 마지막이 어찌도 그렇게 닮아있는지 그 또한 안쓰러웠지요. 평소 허균이란 인물에게 갖고 있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책을 한 권 만났습니다. 바로 《허균의 생각(2014.10.13.교유서가)》 입니다.

 

《허균의 생각》 은 먼저 허균이 살았던 시대의 혼란스럽고 차별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정리하다 보면 성리학의 폐해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허균이 태어나 활동했던 시기에도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유교주의(p.18)가 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일전쟁 전, 후 조선을 피폐하게 만든 원인인 당쟁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이이가 조일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 서얼금고와 천민문제라는 차별적 신분제도로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명문가였던 허균 집안이 쑥대밭이 된 사연을 확인하기 위해 허균의 행적을 살펴봅니다. 개인적으로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인물로 기억하는 조선 14대 왕 선조가 허균에게는 또 다른 의미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선조의 죽음 이후 광해군의 등극이 불행의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살았다면 그토록 굴곡 많은 삶, 비극적인 생의 마지막은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란 헛된 상상도 해 봅니다.

 

《허균의 생각》은 지금껏 허균과 그의 가족의 삶에 머물렀던 사소한 관심에서 허균의 정치관과 학문, 문학에 대한 견해로 확대시켜 줍니다. 그를 왜 이단아, 저항아 그리고 개혁사상가(p.5)라고 지칭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허망한 죽음이 이토록 안타깝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감정입니다.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무엇보다 허균의 글을 통해 허균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쉽게 따라가지 못할 혁신적인 생각과 깊은 깨달음을 지닌 허균의 문장을 읽는 기쁨은 포기할 수 없기에 몇 번이고 곱씹어 볼 생각입니다.

 

 

b******s 2016.03.2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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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허균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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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허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입니다   @첫째 -임진왜란 이후의 시대상황과 그의 집안내력을 자세히알수있다 @둘째-다음 정치, 종교, 문학의 세 갈래로 그의 삶을 재조명한 모습을 볼수있다 @셋째 -사대부의 자제로서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도 당대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했던 그의 힘찬 발전 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개혁의지와 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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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허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입니다

 

@첫째 -임진왜란 이후의 시대상황과 그의 집안내력을 자세히알수있다

@둘째-다음 정치, 종교, 문학의 세 갈래로 그의 삶을 재조명한 모습을 볼수있다

@셋째 -사대부의 자제로서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도 당대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했던

그의 힘찬 발전 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개혁의지와 냉철한 현실인식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네요

 

*허균(1569∼1618)*

명문가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역모죄에 얽혀 능지처참에 처해진 허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개혁사상가였던 허균은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가의 교양을 쌓았으나 이단의 학문을 숭상한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하기도 했다

반유교적인 행동과 학문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산림에 묻힌 선비들은 썩은 무리로, 현실에 적극 참여해 잘못을 고치려는 자를 참선비로 보았다

k*****6 2015.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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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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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홍길동전>이고, 그 다음이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여성의 삶을 위축시켰다. 성리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로지 글재주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씁쓸하게도 그녀의 글재주는 조선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추앙을 받았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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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홍길동전>이고, 그 다음이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여성의 삶을 위축시켰다. 성리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로지 글재주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씁쓸하게도 그녀의 글재주는 조선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추앙을 받았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남편으로 인해 그녀의 삶이 고달팠을수도 있겠으나 시절을 잘못 만난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런 그녀였으니 동생 허균의 사상이야 어떠했을지.... 허균을 시대의 이단아라 하는 이유는 뭘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굴곡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일생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는 허균, 파격적인 학문과 정치를 추구했다던 허균. 책을 통해 들여다 본 그의 삶은 끝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민중뿐이다" 로 시작하는 호민론. 놀라웠다! 민중을 '호민', '怨民', '恒民' 으로 나누어 나름대로 그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항민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나 지식이 없어 가장 좋은 수탈의 대상이 된다. 원민은 수탈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스스로의 처지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 무리다. 그러나 그런 의지를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니 지금의 소시민이나 자기의 안일만을 찾는 나약한 지식인에 견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민은 어떤 존재일까? 한마디로 말해 혁명가다. 부당한 대우나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 사회개조를 지향하는 무리. 결정적인 때가 오면 혁명의지를 실현코자 하는 무리.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민이 들고 일어났을 때 좋은 협조자가 될 수 있는 원민과 항민으로 보인다. 그러니 올바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라를 생각함에 있어 이이와 허균을 비교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임진왜란을 예견했던 이이와 병자호란을 예견했던 허균.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이이는 벼슬자리에 있었고 허균은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요, 군정의 어지러움을 보고 추상적으로 예견한 것이 이이라면 허균은 구체적으로 누가 침략해 올것인지를 가리켰다는 점이요, 이이가 나라안의 사정만 보고 이론을 세웠다면 허균은 나라 안팎의 사정을 살펴보고 적의 침입 경로까지 예견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도 이이보다 허균의 이름이 높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때문이었다.

 

허균이 말한 학문은 두가지다. '자기 몸을 위한 공부(爲己之學)'와 '남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로 저 혼자만의 안위를 위한 공부가 '爲己之學'이요, 후세에 남김이 있게 한다는 것이 '爲人之學'이다. 허균은 세상에 쓰이지 못할 학문을 하지 말라는 '爲人之學'을 중시했다. 허균이 추구했던 학문은 인과 덕을 배경으로 했던 요순시대에 배경을 두었다. 이이나 조광조처럼 도학정치와 이상정치를 추구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현실에 뿌리를 두었다. 또한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같은 학문도 깊이있게 받아들였다. 당시에 허균이 불교와 도교에 빠졌다는 것은 유교로 인한 폐단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균은 소승불교보다 대승불교에 뜻을 두었다. 그것은 남을 위한 공부를 중시했던 그의 학문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즐겨보았을 뿐이라던 그의 말속에서 불교를 하나의 학문으로 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불혹이었으나 세상의 비난쯤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복불교를 나무랐고 참진리를 강조했다. 자기를 이롭게 하기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것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음에도 불교를 향한 그의 관심은 꺾을 수 없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포괄적인 성격을 보였다던 도교를 종교로써보다는 생활의 방법으로 받아들인 점이 많았다고 하니 도교 역시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신선사상에 물들었다고 한다. 그런 흐름을 간파한 불교가 칠성각이나 산신각을 지어 도교를 포용한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귀거래사를 남긴 도연명이나 물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이태백, 그리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었다는 소동파를 마음의 벗으로 삼았다는 허균은 은둔의 삶을 갈망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명을 다 살지 못했다. 문득 김시습을 떠올리게 된다. 한사람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사람이요, 한사람은 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사람이라는 점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에 관한 책을 가장 먼저 들여온 사람이 허균이라는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된다. 중국사신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고 두번이나 중국을 다녀왔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누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건네준 것도 그 무렵이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어땠을까?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의 지탄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의 글재주만은 인정했다는 말이 보인다. 시를 통해 현실의 모순에 저항했으며 제도 따위는 인간의 참모습을 막을 수 없다며 그런 것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어쩌지 못하고 시를 통해 세상을 비웃기도 했다니 그것은 어쩌면 현실도피였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기에 은둔을 꿈꿨을 것이다. 형식이나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표절이나 답습은 삼가야 한다는 말로 독창성을 강조했다는 그의 문학정신을 보니 <홍길동전>이 태어나게 되는 배경을 익히 짐작하겠다. 문장은 알기 쉽게 상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폈듯이 그는 어쩌면 자신의 본성과 감성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홍길동이 되어 멋지게 펼쳐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허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비생각

 

i****9 2014.10.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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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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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에 선조가 죽고 난 뒤에 민중은 개혁과 새로운 기풍으로 생활을 안정시켜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회혼란은 선조 때보다 더했다. 이긍익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첫째,꾸며내서 일으킨 옥사, 곧 무옥(誣獄)이 잇달아 일어났다.    ........   둘째,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친다.    ........   셋째, 과거제도가 어지러워지고 벼슬아치들이 제 이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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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에 선조가 죽고 난 뒤에 민중은 개혁과 새로운 기풍으로 생활을 안정시켜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회혼란은 선조 때보다 더했다. 이긍익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첫째,꾸며내서 일으킨 옥사, 곧 무옥(誣獄)이 잇달아 일어났다.

   ........

  둘째,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친다.

   ........

  셋째, 과거제도가 어지러워지고 벼슬아치들이 제 이끗만 차렸다.

   ........

  넷째, 무리하게 토목공사를 벌이고 고관들의 사치가 심해졌다."

 

 이 책에 나오는 허균의 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1980년에 출판돼 많은 지식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이 책이, 왜 다시 출판돼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많이 무관심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어쩌면 1980년 만큼이나 위험한 시대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해 봤다. 심각하고 부정한  많은 일들이 머리속을 열거된다. 허균의 시대

 만큼 끔직한 일들이 일어 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것으로 지식을 얻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다른 삶을 살 것인

  지를 통찰하는 것" 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허균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개혁가, 이상적 정치가, 천재, 시인, 누이 난설헌, 홍길동, 호민론.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균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누구보다 더 깊고 넓은 시각으로 가르친다. 그의 민중을 위한 사상과 의지가 필요한 시대가 오늘이 아닌지.

 어쩌면 이 책이 다시 출판된 오늘이 비극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p******0 2014.10.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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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필요한 정치가,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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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이러한 행동과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민중을 생각했다.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허균을 새롭게 평가하려는 것이며, 그를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부침한 양식 있는 한 인물로 자질하여 오늘날의 거울로 비추어보려는 것이다.      <허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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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이러한 행동과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민중을 생각했다.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허균을 새롭게 평가하려는 것이며, 그를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부침한

양식 있는 한 인물로 자질하여 오늘날의 거울로 비추어보려는 것이다.

 

 

 <허균의 생각>의 작가 이이화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는 만큼, 허균이라는 인물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지 않았고 허균을 향한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생과 어울려 놀기를 즐겨했다는 점과 이이첨에게 빌붙어 벼슬자리를 얻어낸 행동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유자로서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계급이 미천한 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며 손가락질을 받은 것은 허균이 그만큼 백성들의 삶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며 백성들의 처지와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홍길동전>만 읽어봐도 허균이 그 당시에 백성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특히 천한 계급이라 하여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자들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다. 동시에 수탈을 일삼는 권력층에 대한 분노도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성미를 지닌 사람은 미움을 받기 십상이며 자리에서 내침을 당하기도 쉽다. 허균은 백성들의 입장에 서서 권력층의 부당한 횡포들을 낯낯이 고발하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미움을 받았고 망나니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지금은 허균이 살던 세상보다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다. 허균과 같은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있기는 한 건지 그것도 사실 모르겠다. 국민을 상대로 한 세금인상은 점점 늘어만 가고, 정치인이나 재벌이 받고 있는 혜택은 표면상 부각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점점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허균이 정의하는 '항민'에 속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무관심하고 그저 열심히 돈을 벌며 세금이 오르면 왜 오르는지도 모른채 꼬박꼬박 착실히 세금을 내는 부류가 바로 '항민'일 것이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이 항민이 가장 다루기 쉽고 수탈의 대상으로도 안성맞춤이라는 게 허균의 생각이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느낀건 정부 정책에 대한 분노가 아주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서만 그치고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몸소 행동에 나서지는 못한다. 허균의 정의에 의하면 이러한 부류는 '원민'이다. 청장년층 중에서 이 원민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럼 허균이 말한, 가장 두려워해야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바로 '호민'이다. 책에서는 호민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대의 사명을 스스로 깨달아서 남과 사회와 국가를 나와 관계지을 줄 알고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나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이다. 자기의 권익과 함께 남의 권익을 위해서 조직력과 행동력,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앞장서는 것이다. 이들은 비겁하지도 않고 나약하지도 않으며 자기의 신념을 지향하면서도 사회개조를 지향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주의자이고 사회 속에 있으면서 그 사회질서를 밑바탕에서부터 파괴하려는 불순한 세력들에 저항하는 혁명가이다. 그렇기에 호민은 잠적해 있다가 결정적인 때를 타서 자기들의 혁명의지를 실현하고 원민을 선동한다. 이때에 원민은 호민의 좋은 협조자가 되며, 항민 또한 막연하나마 그들을 따르는 세력이 된다.

-106쪽 중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 섰던 분들이 바로 이 호민에 속하지 않을까. 위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이 호민일 것이다. 위정자들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그저 항민으로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며 항민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어떠한 조치들을 취하고는 한다.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바로 '단합'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국민들이 지배층을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가 지배층은 서로서로 똘똘 뭉쳐 단합이 정말 잘 되어있는데 국민들은 이 단합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호민의 등장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금방 그 불씨가 꺼져버리고 만다. 국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더 많은 호민의 등장이 필요하며 이 호민의 뜻에 동참하는 원민과 항민 역시 많아져야 할 것이다.

 

 책 속 작가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허균과 이이에 대한 평가와 관련한 것이다. 조일전쟁을 예견한 이이와 조청전쟁을 예견한 허균이 있는데 이이에 대한 평가는 높고 거론도 많이 되는데 허균을 향한 평가는 전혀 없음에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이는 조일전쟁을 예언했고, 허균은 조청전쟁을 예언했다. 두 사람은 한국의 역사에서 쌍벽을 이루는 국방정책가요 예언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예언은 그 내용이 조금 다르다. 첫째로 이이는 병조판서 같은 관련 있는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군정의 폐단을 이야기했지만 허균은 그런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요, 둘째는 이이는 군정의 어지러운 모습을 보고 추상적으로 환란을 걱정했지만 허균은 구체적으로 침입할 적을 가리켰다는 점이요, 셋째로 이이는 내정개혁의 성격을 띤 국한된 이론을 폈으나 허균은 나라 안팎의 정세를 살펴보고 그 판단 아래 적의 침입 경로까지 예견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이의 양별설은 높이 평가하면서 허균의 여진침입설은 전혀 평가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 145쪽 중에서-

 

 나는 허균이라고 하면 <홍길동전>밖에는 몰랐다. 멍청하게도 그냥 소설가인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국방문제에 있어서도 통찰력이 깊었고, 또 녹봉을 받으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정치인이었으면서도 백성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또 신분과 계급에 막혀 뜻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몸소 변화를 일으키고자 앞장 섰던 분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허균의 생각>을 통해서 <홍길동전> 이외의 다른 많은 그의 글들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의 인생, 그의 생각, 그의 정치, 그의 문학 등을 이 책 한 권 속에 담아내어준 작가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감동과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홍길동전>은 내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겨준 문학작품이다. 그래서 허균이라고 하면 홍길동전밖에 떠올릴 수 없었는데 이번 <허균의 생각>을 읽음으로써 허균의 또 다른 면모들을 알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오랜만에 다시 <홍길동전>을 읽어보고 싶다. 허균의 생애와 인생을 알고 나서 다시 읽는 <홍길동전>은 아마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d********4 2014.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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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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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하면 제일 먼저 홍길동전이 떠오른다. 신출귀몰한 능력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하지만 당시 조선의 신분제 아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했던 홍길동을 읽고 있으면 떄론 눈물이 났고 때론 통괘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생각을 해보니 그 속에는 작자 허균의 바람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균이 살았던 시대는 당쟁이 심화되었고 유교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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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하면 제일 먼저 홍길동전이 떠오른다. 신출귀몰한 능력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하지만 당시 조선의 신분제 아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했던 홍길동을 읽고 있으면 떄론 눈물이 났고 때론 통괘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생각을 해보니 그 속에는 작자 허균의 바람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균이 살았던 시대는 당쟁이 심화되었고 유교의 이념은 교조주의가 된 채 이념에만 빠져있었으며 서얼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허균은 당대 명문가 허엽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형들도 있었고 당대 최고 시인 중 한명이었던 허난설헌도 누이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서얼들과 자주 만나 그들의 불운한 삶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는 유학을 공부했지만 불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글을 써갔다. 홍길동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교적 이념 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적인 성향이 드러난 글도 상당히 있었으며 허구적이고 신기한 행적에 대한 책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는 홍길동전 뿐만 아니라 호민전, 유재론, 후록론, 병론, 서변비로고서, 고나동불가피란서 등의 많은 책을 펴냈다. 그밖에 전도 5편 정도를 썼다. 호민전은 그의 혁명사상이 잘 드러난 책이다. 나라가 부패할 때 백성들을 이끌 지도라로 호민을 말하면서 이들은 많지 않은 수이지만 이들이 정말로 무서운 존재이다 라고 하면서 사회개혁의 의지와 불순한 세력에 저항하는 저항세력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백성들의 영웅적인 입장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이끄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리고 유재론은 인재를 적절하게 잘 등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하늘이 낸 인재를 스스로 버리면 이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다 라고 했다. 훌륭한 인재가 있음에도 신분이나 사회의 벽에 막혀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는 당시의 안타까움이 들어있는 책이다. 이 두 책을 통해 우리는 허균의 민본주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허균에 대한 전반적인 사상을 책이나 말 등을 통해 다루고 중반을 넘어가면서 영역을 정치, 문학, 학문의 3가지로 나누어 허균의 사상을 말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민본주의 사상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그는 유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들은 그의 다양한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조시간이라는 책의 제일 앞에는 불교의 윤회를 보여주는 구절이 나온다.(이 몸의 전생은 김시습이었는데 오늘날에는 가낭선이 되었구나) 허균은 학문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공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학에서는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글이나 시를 정말 잘 썼다. 당시 많은 학자들이 칭찬을 했고 그의 책으로 시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가 당대에 얼마나 뛰어난 문장가였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허균에 대해 단편적인 면모만을 알고  있었다. 홍길동전을 통해 드러난 그의 사상을 통해 그의 사상과 문장력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허균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당대와는 맞지 않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이나 문학들은 현대에도 많은 감명과 교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에 따라 지금의 시대도 좀 더 민본주의로 나아가길 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b*****6 2014.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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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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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또는 호랑이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다”(p.122)   우리는 모두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바란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도자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지도자를 찾아보긴 어렵다. 아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을 호구로만 여기는 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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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또는 호랑이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다”(p.122)

 

우리는 모두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바란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도자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지도자를 찾아보긴 어렵다. 아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을 호구로만 여기는 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자의 목소리는 어딘가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위 글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호민론에서 말한 내용이다. 그는 민중을 근본으로 한 민중의 복리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설정했다. 조선 시대에 이런 사상을 가진 학자가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그저 홍길동의 저자라고만 여겼기에 더욱 그러했다.

 

허균은 민본 정치를 위해 실제적인 정책을 제시한다. 그는 관람원다(官濫員多)’라고 말하며 정부의 폐단을 꼬집는다. 관람원다, 정부기구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관원이 많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저 조선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정부조직들과 그 조직들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 허균의 질타가 떠오른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 하나 처리하려고 해도 이리 가라, 저리 가라하면서 정작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절로 터져 나온다.

 

허균은 또한 당쟁의 폐해와 붕당에 대해 말한다. 그는 소인론에서 붕당을 음붕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하는데, 음붕은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파당을 짓고 떼거리로 남을 배척하고, 자기 파당이 아니면 무턱대고 배척하고 자기 파당이면 어떤 잘못이 있더라고 옳다고 편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소인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해독보다 더 큰 해독을 끼친다고 말한다.

 

음붕의 폐해, 이도 역시 조선시대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정치 집단에 한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패거리를 지어 자신의 패거리가 아니면 사장시켜버리는 행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런 행태가 비리와 뒷거래로 이어진다. 이런 행태에 휘말려 인재가 등용되지 못한다.

 

허균은 소설과 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고발하고 이에 저항한다. 서얼 차별 철폐, 가난한 백성의 구제, 탐관오리 응징 등 그가 가진 개혁적 사고를 보여준다. 그는 홍길동전이라는 작품을 통해 백성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다.

 

허균은 백성과 함께 하며 백성을 사랑한 시대의 선각자였다. 시대의 사명을 깨달아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한다는 호민, 허균 그가 바로 진정한 호민은 아니었을까?

p*****4 2014.10.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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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허균의 등장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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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하는 방법으로 수시가 중요해지면서 생활기록부에 대한 관심도 많이 증가했다. 생활기록부라 하면 학창시절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한 것이니 만큼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의 과거를 되짚을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않거나 엉뚱하게 기록한 부분을 보면 누구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생활기록부가 이와 같은데 한 시대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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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하는 방법으로 수시가 중요해지면서 생활기록부에 대한 관심도 많이 증가했다. 생활기록부라 하면 학창시절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한 것이니 만큼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의 과거를 되짚을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않거나 엉뚱하게 기록한 부분을 보면 누구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생활기록부가 이와 같은데 한 시대를 살아온 인물을 기록한 기록물에 오해와 의혹이 담겨 있다면 얼마나 한탄할 일인가?

    

 

그 중심에 허균이 있다. 허균은 누구인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인물, 그리고 역모를 했다는 혐의로 능지처참 당한 인물이다. 글을 잘 쓰기는 했지만 그 시대에 허용되지는 않는 여러 가지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런데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하는 허균, 그리고 최후의 19에 등장하는 허균의 모습은 분명 달랐다. 시대의 슬픔을 담고 있으며 시대를 볼 줄 알고 사람을 섬기고 사랑할 줄 아는 이였다. 변화의 꿈을 꾸었지만 결국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에 의해 무참히 죽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를 더 잘 알고 싶어서 이이화 선생님의 허균의 생각을 펼쳤다.

 

 

1. 정치 : 조선은 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분사회이다. 당연히 출신성분이 그 사람의 운명을 정한다. 타고난 재능과 재주는 가지고 태어난 계급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다. 그러나 허균이 바라는 조선의 모습은 달랐다. 하늘이 인재를 낼 적에 귀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여 그 준 것을 풍부하게 하지 않았고, 천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여 그 준 것에 인색하게 하지 않았다.... 하늘이 인재를 냈는데도 사람이 스스로 버리면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p.122” 인간의 재능과 재주는 하늘이 주신 것이다. 가지고 태어난 신분이 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나라의 중심은 왕이나 사대부들이 아닌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또는 호랑이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이다. p .122” 분명 그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진정한 정치인이었다.

    

 

2. 학문: 조선은 유교를 섬긴 나라이다. 주자의 유교를 제외하고는 어떤 학문도 인정되지 않았다. 같은 유교를 설명한 책이라도 주자의 설명에 어긋나는 것은 사문난적이라는 이름하에 사대부들에게 철저히 짓밟혔다.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 당한 윤휴라는 인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니 불교, 도교, 서학 등과 같은 다른 학문들 또한 철저히 무시되고 경시되었다. 그럼에도 허균에게는 학문의 경계가 없었다. 주자학으로 굳어 화석화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학문을 접함으로서 사고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생각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3. 문학: 높은 벼슬아치들과 사귀기 위한 문학이기 보다는 시대의 아픔, 가지지 못한 이들의 슬픔을 노래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홍길동전이다. 한자가 자신의 계층을 대변해 주던 시대에 그는 언문을 사용해 잡스러운 이야기로 천대받던 소설이라는 형태로 홍길동전을 썼다. “ ..... 그가 사랑하고 아끼던 민중이 쉽게 읽고 재미를 느끼게 함으로써 민중의 공감을 얻고 각성을 불러일으켜서 사회 모순을 고발하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p. 278”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가만히만 있어도 높은 벼슬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음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변화를 간곡히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잔인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시대의 슬픔을 간직한 이가 바로 허균이다

l*******g 2016.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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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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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역적인가 아니면 현실주의자인가? 이것은 근래에 자주 쟁점이 되어 온 문제다. 역사의 심판이 결정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양반이었으나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니었다. 그는 제처소생이었고 그나마 권문세가라고는 하지만 북인이 대거 정계에서 밀려난 후 요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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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은 역적인가 아니면 현실주의자인가? 이것은 근래에 자주 쟁점이 되어 온 문제다. 역사의 심판이 결정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양반이었으나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니었다. 그는 제처소생이었고 그나마 권문세가라고는 하지만 북인이 대거 정계에서 밀려난 후 요절한 부친때문에 스승 이달과  외롭게 자란데다 장차 관직에 나가서도 지지하는 막강한 세력도 없었다. 그런 그가 재상까지 된 것은 광해군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외척이나 지지당파의 배경도 없이 세자로 옹립된 광해군에게는 험난한 여정이 쌓여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세자인 광해군에게 대리청청을 맡기고 피난길에 올랐다. 말하자면 궂은 일은 아들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보신만 꾀한 것이다. 게다가 권력의 중앙에서 시기질투로 이순신 같은 명장을 하옥, 파직시킨 것을 보면 절대군주제가 군주 자신을 의심 많게 하고 외롭게 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는 아니었다. 또한 무책임한 면이 많다.

그러나 광해군은 대리청청된 왕자로 전난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궁중 깊숙한 곳의 다른 왕자들과 다르게 피폐한 민생을 보았다. 그가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왕권을 강화한 것이나 전후의 복구대책사업을 벌인 것은 권력유지를 위한 왕권강화의 일환이었으나 한편으로 그의 현실적인 상황파악도 드러나 있다.

그때문에 그는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허균을 등용했을 것이다.그는 천재시인이면서도 서얼금고나 전란후 사회의 모순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현실성을 고려한다면 광해군과 허균은 절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과의 중립외교나 대동법시행등 광해군은 집권초에 사회의 모순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결국 그들의 관계는 역적이라는 이름아래 파탄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허균이 반역자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형제를 죽이고도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수많은 옥사를 일으킨 만큼 광해군은  절대군주를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그는 권력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무슨  일이든 해야했다.  그러니 홍길동전과 같이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는 허균에게 전제왕권은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로 광해군이 거대 토목공사를 벌여 과시하고싶은 군주의 이중성 콤플렉스를 드러낸내는 마당에 그들의 밀월관계는 결국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의  그의 급진적인 실리외교에 기인한  서인들과의 반목에서  허균도 고립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대가 용인하지 않았던 이단아 ,인간으로 허균의 이면을 다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a*****8 2016.03.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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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권위에 도전한 민본주의자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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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이화 선생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역사가가 이덕일이라면 이이화는 개인적인 몇 가지 때문에 혹은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덕일의 책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논쟁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풀어낸 역사를 좋아한다. 물론 이덕일의 역사 서술 중 몇 가지는 호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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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이화 선생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역사가가 이덕일이라면 이이화는 개인적인 몇 가지 때문에 혹은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덕일의 책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논쟁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풀어낸 역사를 좋아한다. 물론 이덕일의 역사 서술 중 몇 가지는 호불호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역사 서적도 미스터리 소설처럼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역사가이기에 그 이름을 가슴 한 곳에 새겨두었다.

 

왜 이덕일을 앞에서 꺼냈느냐 하면 이이화가 한 인물, 허균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서 이덕일이라면 훨씬 자극적이고 흥미롭게 썼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전두환의 신군부가 득세하던 1980년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글쓰기와 지금은 다를 것이고, 시대의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다. 비록 허균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추가되면서 더 풍성해졌다고 해도 구성에서 큰 변화가 없고, 사료 우선에 진중한 글을 쓰는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쉽게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 속에서 이전 연구자들의 글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허균의 모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그것은 바로 요즘 허균에 대한 생각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많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장은 허균이 살던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풍경을 보여주고, 2장은 천재 이단아였던 허균의 생애를 요약한다. 다음 장들은 각각 허균이 생각하는 정치, 학문, 문학에 대해 그의 글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이때 만나게 되는 그의 행동과 사상은 끊임없이 민중을 생각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허균이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허균을 영웅으로 그려내기보다 ‘역사 속에서 부침한 양식 있는 한 인물’로 서술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돌아보고 비춰보기를 원한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허균은 분명히 시대적 한계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는 상향식 민주주의를 아직 그는 몰랐다. 그것은 다른 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는 점에서 그의 민본주의는 뜻이 깊다. 어리고 잘 모를 때 이 한계를 용납하지 못한 적이 있다. 역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고, 발전해가는 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한계성을 지적하는 글이 나오는 것도 단순히 해석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자료에 집착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한 인물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되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인 허균도 바로 그런 인물이다. 동시에 광해군도.

 

저자는 각 장에서 허균의 생각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글 전문을 번역해서 실었다. 앞에서 인용했던 글들이 저자의 해석으로 한 번 인식되고, 전문 속에서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서 저자의 해석이 하나씩 각인된다. 이 두 번의 강조는 허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인식시켜준다. 그리고 조선에 처음 서학을 가져왔고, 자신이 불교도임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면 약간 낯설지만 오히려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 속에 나온 허균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모습을 산산조각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와 그 시대에 대해 더 많는 연구가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최근 광해군 열풍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가 정치에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하지만 문학에서 보여준 문장에 대한 글은 아주 현대적이었다. 화려한 수사보다 뜻을 쉽게 알 수 있게 일상 언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뜻이 우선이란 말이다. 요즘 글들을 보면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단어를 끌어다가 치장하는 문장들이 많은데 이 부분은 한 번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 자신도 가능한 간결하고 분명하게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길어지거나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가끔 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균은 정치적으로는 민본주의자요, 학문적으로는 대단히 포용적이며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당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자고, 새로운 시대를 읽는 눈이 누구보다 탁월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생겼다. 앞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수많은 것들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그것을 지울 정도다. 앞으로 허균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점점 더 조선시대 학자들에 대한 공부할 거리가 늘어난다. 반갑다.

f***2 2014.10.25. 신고 공감 0 댓글 0